개고기 문제

111. 복날 보신탕 먹는 사람의 조상은 노비

AnDant 2019. 8. 13. 13:37

해마다 복날이 되면 마음이 착잡하다. 조선족의 전리품이 되어 해마다 수 백 만 마리씩 잔인하게 살해되는 한국 개들 생각에 착잡하고 1997년 이후 중국 공산당의 논리대로 세뇌되어 복날은 개고기 먹는 날이라고 외치는 일부 얼빠진 한국 사람들의  행태에 착잡해진다

조선족에게 도살되는 개가 바로 현재 우리 한국인들이 처한 처지다. 개 같은 처지라고 하면 너무 심한 비하 같은가? 고대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는 개는 귀한 존재였다. 모든 기마 유목 왕조, 중국의 당, , 청 왕조에서 개는 황실(신성한 피)의 상징이었다


<청 황실의 신성한 존재인 개가 손잡이에 조각된 황색 도자기, 1736~1795년>

그렇게 따지면 개 같다는 말은 칭찬이다개를 비천한 존재, 먹어야 할 식량, 약재로 취급하기 시작한 건 중국 고대 왕조, 조선 왕조, 중국 공산당 지배 시기 이후다. 한민족이 가난해진 것도 조선시대부터다.

? 교역을 금지했으니까. 예나 지금이나 교역을 하지 않는 집단은 가난해진다고려 시대까지 교역을 하며 부유하던 한반도는 조선이 교역을 중단하면서 북한만큼 가난해졌다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황금기를 누린 키푸로스의 금 목걸이, 기원전 1400~1200년>

조선 시대에는 오직 중국(명나라)과만 교역했다. 장사는 시전, 육의전 등 국가가 정해진 사람만이 할 수 있었다. 상인은 농민보다 천한 신분이었다조선은 오직 농사만 짓는 국가였다농사가 천하의 근본이라 주장하며 모든 국가 시스템이 농사 위주로 돌아갔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조선은 독재를 했다. 역시 북한과 마찬가지로 굶어죽는 백성들에게 개고기 먹을 것을 강요했다. 북한과 다른 점은 정작 양반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고한 그들은 소고기, 돼지고기를 먹었다.


<복날 민어탕을 먹은 양반들의 단체 사진, 1863년

천주교 신자를 제외하고 개고기를 먹은 조선 시대 양반은 소수다. 왕족 중 개고기를 먹은 사람은 정조 엄마 혜경궁 홍 씨가 유일하다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 조선 왕조 역사 상 처음이지 마지막으로 개고기를 올렸다

연산군 시대 개고기를 염소고기로 속여 진상한 인간은 중벌을 받았다백성들이 절양가를 부를 정도로 수탈을 하면서 옛다, 개고기나 먹어라고 한 조선 시대 양반들은 복날 민어탕을 먹었다.


<개고기 요리를 먹은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을 재연한 밀랍 인형, 오마이뉴스2013년 3월 29일>

절양가는 스스로 거세를 해 자식을 낳지 않음으로써 자식에게 지옥 같은 삶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조선 후기 노래다. 절양가를 부른 사람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양민이었다. 


조선 시대 세금을 내지 않은 노비 비율이 50%60%니 하는 말은 개고기 역사에서 중요하지 않다. 둘 다 공평하게 굶었기 때문이다어느 시대든 인간은 배가 고프면 개를 잡아먹는다보릿고개라는 단어가 1970년대까지 존재했을 정도로 조선 시대 이후 한반도는 가난했다.


<중국 진나라에서 복날 개고기로 제사를 지낸 것이 우리 민족이 복날 개고기를 먹는 시초 , 우리문화신문, 2019년 8월 11일>

양민이든 노비든 젖먹이 사내아이부터 노인들까지 고혈이 빨렸다. 누구에게? 상위 10%의 지배층인 양반들에게봄에 보리를 심어 보리가 자랄 때까지 졸졸 굶다 보면 초여름이 오고 모내기를 해야 했다

모내기를 하고 나서 논에 자란 피(잡초)를 뽑다 보면 삼복더위였다일꾼(양민머슴노비)들이 더위 먹고 쓰러지지 않게 하려면 건강관리를 해줘야 했다그래서 가장 더운 삼복이면 하루 일을 쉬고 시원한 곳을 찾아 맛있는 것을 먹으며 즐겼다

<복날 보신탕 먹는 한국인이 줄고 있다는 기사, 연합뉴스, 2017년7월 12일>


양반은 주로 민어를 먹었고 양민들은 삼계탕이나 과일을 먹었다. 민어는 민어 껍질 먹다 패가망신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비싼 생선이다. 지금도 한 마리에 수 십 만원에서 수 백 만 원이 넘는다

...확실히 쫄깃하고 맛이 있긴 하다정작 땀 뻘뻘 흘리며 논에 들어가 거머리에게 피 빨리며 피(잡초)를 뽑은 가난한 양민이나 머슴, 노비는 뭘 먹었을까?


<개고기 찬성 인구 18.5% 중 상당 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 중국인(화교, 조선족), 한겨레. 2018년 5월 17일>

 

복날에는 머슴과 노비를 잘 먹여라!” 이런 규정은 없었지만 사회 통념 상 복날에는 일꾼을 잘 먹여야 한다는 암묵적인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한반도 농토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식량의 반 이상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조선 시대에는 쌀이 돈이었다. 돈(쌀)이 사라졌으니 물가가 폭등했다. 가난한 양민, 머슴, 노비는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지금의 베네수엘라가 북한보다 조선 후기 상황은 끔찍했다. 베네수엘라는 옆나라로 도망이라도 칠 수 있다.  


<복날에만 개고기를 먹는 중국인과 달리 조선족은 사시사철 개고기 먹음, 중앙일보, 2017년 7월 19일>


북한은 그마나 중국이나 남한에서 식량 원조를 받는다. 조선 후기 지배층은 나라 밖에 나가 식량을 구해 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공자 왈 맹자 왈 따지며 중국은 조선이니 개고기는 조선의 전통음식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머슴과 노비에게 복날이라고 삼계탕 1인 1닭을 먹일 수 있었을까택도 없다. 모 교수 말에 의하면 이런 이유로 조선 후기 서울 양반가를 중심으로 복날이면 머슴에게 개를 줘 몰래 잡아먹게 했다고 한다


<중국 진나라에서 개고기를 먹었으니 개고기가 우리 전통이라면 고구려 벽화 속 개도 개고기용 개가 된다. 고구려 고분 춤 무덤 중 주인과 개, 5세기>


그 근거가 황당하다. 중국 진나라 덕공이 복날에 개를 잡아 제사를 지냈다는 중국 역사서의 기록이었다. 중국 역사가 왜 조선 백성이 개고기를 먹어야 하는 근거가 될까? 그 조선인이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미친놈이다. 

중국인인 척 하는 양반 지시에 따라 복날 개고기를 사람도 조사 결과 머슴이 아니라 노비’일 가능성이 높다. 머슴은 양민 중 새경을 받고 일정 기간 동안 노비처럼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다노비는 노예다. 노비 문서는 대대로 계승되어 장래 태어날 자신들까지 전부 노비가 되는 가축 같은 사람들이었다

<진나라에서 복날 개고기를 먹었으니 개고기는 우리 민족이 천 년 넘게 먹은 전통이라는 대구대학교 교수, 매일신문, 2019년 8월 7일>

대대로 한양에 살던 양반가의 후손 분과 북한 개성에 살던 양반가 후손, 1960년대까지 실제 머슴살이를 하신 어르신들을 인터뷰해 본 결과 복날 개를 잡아먹던 사람들은 노비가 맞다정확히는 가난한 집안의 노비

1907년 헐버트의 증언대로 조선에서는 가장 비천한 사람들만 개고기를 먹도록 엄격한 제한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복날 개고기를 먹던 조선 시대 노비였다. 따라서 복날이면 개고기가 전통이라고 먹는 사람들의 조상은 노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