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미국 노예제가 잔인? 조선 노비제는 더 끔찍
중국 사람들은 고구려 인구의 30%가 놀고먹는 한량이라고 욕했다. ‘대가’인 이들은 평소에는 사냥이나 다니며 놀았다. ‘대가’는 군인이었다. 사냥은 평화 시 군사훈련이었다. 조선 왕조의 지배층 10% 중 대부분은 나라도 지키지 않고 글만 읽었다.
그 와중에 이순신 장군 같은 무인은 또 차별했다. 차별에 차별을 거듭해 모든 국가의 부와 권력은 문인 양반들에게만 집중되었다. 그들은 성리학만 공부했다. 그래서 행복했을까? 진정한 학자라면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사농공상의 신분제 중 천민에 속한 조선 시대 상인, 1904년>
공부는 왜 하나? 무릇 학문하는 즐거움이란 학문적 호기심을 채우는데 있다. 공부를 하다 보면 생각이란 건 하게 된다. 생각을 하다 보면 이건 이거 같고 저건 저거 같다는 의문점이 생긴다.
의문점이 생기면? 다른 자료를 찾아서 그 논리가 맞는지 확인을 해봐야 한다. 이게 학문적 호기심과 충족이다. 공부하는 것이 의무이자 특권이던 조선 시대 남자 양반들은 성리학 외에 다른 학문에 호기심을 가질 수 없었다.
<조선 시대 양반, 1904년>
학문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순간 자신은 물론 일가친척이 몰살될 수도 있었다. 소현세자 일가 등 청나라에서 서양 학문을 접한 왕족과 양반들은 모두 살해되었다. 그러면서 조선은 작은 중국이니 더욱 더 가열차게 공자 왈 맹자 왈을 해야 한다고 강요했다.
무서워서 글자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두뇌회전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생각이란 걸 하는 순간 죽으니까. 조선 이 망한 이유 중 하나다. 지배층들 머리가 안 돌아갔다. 팽팽 머리가 돌아가고 똘똘한 양반들은 기생충 양반들이 모두 제거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한 달 전 미국 남부 버지니아의 노예 시장, Bourcier, 프랑스, 1861년>
그 결과 조선 말기가 되면 기생충 양반들만 남았다. 물론 기생충 양반들 중에도 좋은 사람들은 있었다. 여기에서 비난하는 건 제도다. 조선은 오직 남자 양반들을 위한 국가였다. 조선 양반들이야 말로 인류 역사 상 최악의 진정한 기생충이다.
그 기생충들이 복날이면 가장 가난한 백성들에게 개고기를 먹였다. 이게 우리가 소중히 지켜야 하는 전통인가? 정확히 무엇이 전통인가? 복날 보신탕이? 아니면 복날 머슴과 노비에게 개고기를 먹인 조선의 신분 제도가? 조선의 신분제도는 곧 노비 제도였다.
<등불을 들고 주인을 기다리는 노예 소년 대리석 조각, 로마, 기원전 3세기>
그러나 지금까지 조선의 노비 제도와 신분제에 대해 솔직히 말할 수 없었다. 왜냐? 누가 봐도 조선의 노비 제도는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다. 인류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다. 이런 노비제도와 양반제도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었다. 노비제를 비난하면 양반제도 비난하게 된다.
양반제를 비난하면? 조선에 대한 비난을 하게 된다. 조선을 비난하는 것은? 친일파다. 엥? 왜 논리가 그렇게 되냐고? 마치 북한에서 『동의보감』의 개고기 약효가 완전무결해야 하는 것과 같다. 미리 대전제가 있는 것이다. "일본 놈은 나쁘다"이다. 일본은 조선을 멸망시켰다. 그러므로 조선은 훌륭하다. 일본이 나쁜 놈이면?
<북한과 조선족이 신봉하는 개고기 약효의 원 저자인 신농, 명, 1503년>
조선 왕조가 선하다. 선한 조선 왕조를 비난하면? 친일파다. 미친 소리 같지만 이게 조선 왕조에 일제시대에 대한 역사적 논쟁의 진실이다. 일제가 절대 악인한, 절대 조선 왕조는 비난할 수 없다.
건전한 비판조차 할 수 없다. 친일파가 되지 않으려면 무조건 찬양해야 한다. 그렇기에 노비제도 자체를 비난할 수 없다. 양반제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기 때문이다. 양반제도에 대한 비난을 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가축 취급은 받지 않은 미국 노예 주인과 노예의 혼혈 아이들, 미국 뉴올리언즈, Myron H. Kimball , 863-4년>
조선의 노비제도도 얼렁뚱땅 비판 없이 넘어가야 한다. 조선 후기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어째서 저주받은 음식인 개고기를 복날 먹어야 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은 하지 않고 차 떼고 포 뗀 채 개고기만 찬양하는 이유다.
조선 시대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은? 노비다. 그들이 복날 개고기를 먹었다. 노비들의 한과 서러움을 잊지 않기 위해 복날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주장도 말이 안 된다.
<복날 개고기는 천 년 넘은 민족 음식이라는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매일신문, 2019년 8월 7일>
미국의 노예제도를 기리기 아프리카 계 미국인은 공공음수대를 따로 사용하자는 말을 미국에서 하는 것과 같다. 만약 흑인 노예들이 공공음수대를 따로 사용하는 것을 좋아했다면 그건 전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굴욕감을 느꼈다면 전통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인종분리정책을 폐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선 후기 복날 개고기를 먹은 노비와 머슴들이 행복하게 개고기를 먹었다면 그건 전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조선 시대 개고기가 저주 받은 음식이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음수대 차별정책을 계승해서 미국 노예제도를 기리자는 논리와 같은 복날 개고기 전통론, 미국, 오클라마호, 1939년>
저주 받은 음식을 먹고 행복할 사람은 없다. 개고기도 우리 전통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농촌 일꾼들이 먹던 복날 개고기가 우리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 왜곡이다.
이런 역사적인 왜곡이 지금도 얼빠진 지식인과 언론인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 복날 개고기를 먹인 조선의 노비제도가 인류 역사 상 최악의 노예제도인 이유 중 하나는 그 폐쇄성에 있다.
<남북전쟁 중 북부로 도망치는 흑인 가족 중 남자 아이만 잡아가는 남부군, Theodor Kaufmann , 미국, 1867년>
첫째 한 국가의 30~50%나 노예로 부린 국가가 없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노예제도는 남부에만 있었다. 북부에는 노예제도가 없었다. 만약 노예가 남부에서 북부로 도망치면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약 노예가 남부에서 북부로 도망치면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터지자 흑인 노예들은 너도나도 북부로 도망치려 했다. 조선의 노비들은 도망조차 치지 못했다. 미국 남부에만 노예제도가 있던 이유도 조선과 같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미국 남부도 농사가 주요 경제 기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