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 개고기 16

112. 개는 조상신이니 먹지 마! 조선 시대 양반

조선이 망하는 순간까지 한양 사대문 안에 사는 사람들은 특권층이었다. 한양 사람들은 계급, 직종 별로 정해진 구역 안에서 살았다. 경복궁과 창경궁 등 궁궐 주위 중 물 좋고 경치 좋은 구역은 잘 나가는 권문세가들이 살았다. 지금의 평창동은 조선 시대에도 특권층이 모여 살던 구역이었다. 배산임수 조건에 맞는 명당이었기 때문이다. 양반 중에서도 권력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사대문 밖 남산 등지에서 살았다. 남산골샌님이란 말이 생긴 이유도 지지리 가난한데 일은 안 하고 공자 왈 맹자 왈 꼬장꼬장 따지기나 하는 양반들이 남산골에 모여 살았기 때문이다.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일을 할 수 없었다. 일을 하는 순간 양반이 아니었다. 다 쓰러져가는 초가삼간에 살아도 허름한 갓을 쓰고 책을 읽어야 했다. 양반이 돈을 벌 ..

조선 2019.08.15

111. 복날 보신탕 먹는 사람의 조상은 노비

해마다 복날이 되면 마음이 착잡하다. 조선족의 전리품이 되어 해마다 수 백 만 마리씩 잔인하게 살해되는 한국 개들 생각에 착잡하고 1997년 이후 중국 공산당의 논리대로 세뇌되어 복날은 개고기 먹는 날이라고 외치는 일부 얼빠진 한국 사람들의 행태에 착잡해진다. 조선족에게 도살되는 개가 바로 현재 우리 한국인들이 처한 처지다. 개 같은 처지라고 하면 너무 심한 비하 같은가? 고대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는 개는 귀한 존재였다. 모든 기마 유목 왕조, 중국의 당, 원, 청 왕조에서 개는 황실(신성한 피)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개 같다는 말은 칭찬이다. 개를 비천한 존재, 먹어야 할 식량, 약재로 취급하기 시작한 건 중국 고대 왕조, 조선 왕조, 중국 공산당 지배 시기 이후다. 한민족이 가난해진 것도 ..

개고기 문제 2019.08.13

99. 개고기 먹는 조선족 조상이 노비일 확률

그깟 개고기 가지고 뭔 개소리냐고 할 지 몰라도 개고기만 두고 보자면 중국의 침략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충실한 첨병 역할은 한국 전쟁 이후 조선족이 하고 있다. 1911년 이후 조선족도 출세를 하려면 중국공산당원이 되어야 한다. 공산당원에 가입하기 전부터 그들은 중국인으로 태어나 길러지고 교육받는다. 조선족 대표는 중국 소수민족 대표로 중국 공산당 대회에 참석한다. 중국은 모든 것을 공산당 지시로 움직이는 나라다. 그러므로 조선족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과 사상은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나온다. 조선족이 개고기를 그들의 전통 음식으로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결국 중국 공산당 뜻이다. 조선족 무형문화유산전람관에 개고기가 조선족의 대표 음식으로 소개되어 있는 것은 중국 공산당이 그렇게 지시했기 때문..

중국 공산당 2019.07.16

98. 조선 시대 저주받은 음식이 복날 전통이라고?!

신박한 개고기 업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2003년 조선족이 한국에 청산가리 개고기를 수출한 이유는 개고기가 불법이기 때문이었다. 넘치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따라가질 못하니 어쩔 수 없이 개고기를 밀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공급이 넘친 2012년 이후에도 여전히 중국산 개고기를 밀수입했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개고기 업자 말에 의하면 한국에서 유통되는 중국산 개고기가 30%가 넘는다. 2016년 모 동물보호단체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에는 6000만 마리가 넘는 식용견이 가축이라는 명목으로 사육되고 있었다. 여기에 강아지 농장 개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7~8000만 마리가 될 수 있다. 애견이라 불리는 개들은 팔리지 않고 재고가 되면 보신탕이 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진돗개마저 보신탕이 된다..

개고기 문제 2019.07.13

44. 왜 조선은 개고기를 강요했나?

18세기 김홍도가 중국 도교에서 팔선 중 하나로 모시던 한상자를 그린 사실로 보아 조선 지배층도 명나라 도교의 트렌드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최고 여신인 서왕모가 사자 개를 타고 나타난다고 믿던 명나라 도교와 달리 조선은 당 이전 도교 서적만 골라 출판했다. 마약인 한식산을 먹으며 개고기를 약으로 잡아먹던 시기의 중국 도교만을 고집해 받아들인 것이다. 조선 지배층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고 온 나라가 피폐해진 17세기 이후 중국의 한의학과 도교 서적을 많이 출판했다. 그 때까지 중국에 존재한 개고기에 관한 모든 내용을 총망라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2004년 대한민국 인재들이 모여 개고기 합법화를 위한 정책을 연구한 것처럼 조선 백성들에게 개고기를 먹이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

조선 2019.02.21

5. 개장국 금지 이승만Vs 단고기 먹은 김일성

개고기 중독 김일성 교가 퍼진 북한 해방 후 북한은 개고기 금지한 천도교에서 개고기 먹는 김일성 교로 바뀌었다. 주체사상이라는 김일성 교에서 김일성의 일말과 행동은 신의 계시와 같다. 까라면 까고 먹으라면 먹는다. 1960년대까지 북한에서 개고기가 대중적이지 않았다.그러던 것이 하루 두 끼 개고기를 먹던 김일성이 한 마디 하자 즉시 단고기가 되었다. 남한은 어땠을까? 역시 남한 내 세력이 없던 이승만이 깜짝 등장해 건국 대통령이 되었다. 이승만과 김일성은 대 중국 정책과 개고기 식용 정책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미 반중 정책을 폈다. 김일성은? 친중 친소 정책을 폈다. 이승만 대통령은 강력한 개고기 금지 정책을 썼다. 김일성은 개고기 보급 정책을 썼다. 71%의 인구가 개고기를 금..

정치 2018.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