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카테고리의 글 목록 (2 Page) 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139.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개고기에 목숨 건 이유?

정치

1998년 시작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 온 정책이 있다. 조선족 지원 정책이다. 조선족 지원 정책은 재외동포, 혹은 동포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조선족 지원 정책은 곧 중국인 지원 정책이다. 조선족이 중국 국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중국인은 중국 공산사상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중국인은 공산주의자다. 


<조선족은 중국국적을 가진 중국인이다>


중국 공산주의는? 한국 좌파의 근원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조선족 지원 정책은 곧 중국 공산주의 지원 정책인 셈이다. 쉽게 말해 직접적으로 남한을 공산화하기 어려우니까 미국을 거점으로 이용해 우회적으로 조선족을 지원한 것이다. 

그게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조선족 지원 정책의 실체다. 그렇게 생각하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왜 그토록 개고기에 집착을 했는지 답이 나온다. 개고기가 곧 조선족이기 때문이다. 개고기가 곧 중국 공산화기 때문이다. 


<한국 개 식용 문화 전파와 중국 공산화 운동>


전세계 공산주의 중 중국 공산주의만이 개고기를 전통이라고 주장한다. 청 왕조에서 개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개고기 정책에 가장 잘 따른 중국인이 조선족이었다. 그 말은 중국에서 조선족이 가장 열렬하게 공산혁명을 수행했다는 의미도 된다. 

당연히 중국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개를 때려 잡아 먹었다. 개고기가 전통이라고 주장하며 개를 가축으로 키워 먹는다. 이렇게 해서 조선족이 가는 곳에는 반드시 개고기 집이 생기게 되었고 한국으로 조선족이 이주하게 된다면 반드시 개고기 집도 같이 따라와야 했다.

<조선족을  위해 국경과 법을 허문 노무현 대통령을 칭송하는 서경석 목사, 동북아신문, 2009년 5월 20일>

이 모든 일들이 갑작스레 일어난다면 한국 내부에서 반발이 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작전은 주도면밀하고 철저한 계산 하에 이루어졌다. 먼저 명분 제공. 조선족을 지원하는 명분은, "한민족, 통일, 인권'이었다. 


뭐 하나 나쁜 말이 없다. 한민족, 통일, 인권을 위한다는데 반대한다면 그 인간이 나쁜 놈이다. 그런데 이 말을 더 정확히 풀어하면 이렇게 된다. "조선족을 위한 한민족, 조선족을 통한 통일, 조선족을 위한 인권" 


<1992년 이후 한국 좌파와 미국 한인 사회의 조선족 지원 기본 정책은 한민족, 통일, 인권>


중요한 '조선족'이라는 주체는 쏙 빼고 사람들을 국민들을 선동한 것이다. 한국에서 말하는 인권에 평범한 삶을 사는 한국인의 인권은 없다. 피해자의 인권도 없다. 한국에는 외국인(조선족 포함)과 가해자의 인권만 존재한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나? 

현재 100만 명이상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한국인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이 되었다. 또 전 세계 누구든 일단 한국 땅에만 들어오면 정부 세금 지원을 받는 수많은 인권단체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권'을 부르짖으며 한국에서 영구적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한국 불법체류자들이 인권을 내세우며 불법 체류 합법화를 주장하는 대규모 시위를 하고 있다, 2019년 10월 20일>


불법체류자들이 수도에서 대규모 시위를 하는 나라는 단언컨대 이 나라 대한민국 밖에 없다. 경찰은 불체자를 단속하라는 신고를 받고도 이들을 철통 경호하가며 시위를 도왔다. 

이 모든 게 '인권'을 절대 선인양 떠받들며 조선족에게 국경을 허문 결과다. 인권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누구? 김대중 대통령이다. 


<인천공항에 입국해 난민신청을 한 앙골라 가족은 인권단체의 지원으로 승소해 임시 한국인이 되었다, 노동자연대, 2019년 10월 12일>


조선족을 지원한 차종환 씨는 공교롭게도 김대중 '인권'센터와 손을 잡고 미국에서 활동했다. 차종환 씨를 대표로 하는 좌경화된(중국공산사상에 물든)된 미국 교포 사회는 조선족 지원의 모든 명분을 제공했으며 실질적인 역할도 수행했다. 

실질적인 지원은 서경석 목사가 했다. 누구를 시켜서? 노무현 대통령을 시켜서. 서경석 목사는 박정희 정부를 전복해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후 석방되자 미국으로 건너가 목사 안수를 받았


<한국 불법체류자들이 인권을 내세우며 불법 체류 합법화를 주장하는 대규모 시위를 하고 있다, 2019년 10월 20일>


종환과 서경석 목사는 서울대 선후배 사이답게 나란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조선족 지원 정책을 담당했다. 한국-> 미국-> 중국-> 한국을 옮겨다니며 활동한 서경석 목사는 한국에 돌아와 조선족 교회를 만들었이게 그 유명한 조선족 교회


이 조선족 교회를 중심으로 연변 교회와 미국 한인 교회, 한국 교회라는 트라이앵글이 완성되었다. 1998년 이후 조선족 사회의 절대 과제인 한국 집단 이주 정책도 완성되었다. 조선족의 한국 거주에서 가장 큰 문제는 체류 자격 즉 비자라고 했다


<차종환과 서경석 목사로 보는 중국 공산화와 개고기 전통론>

김대중 정부와 차종환이 재외동포법까지 만들어줬지만 약 200만 명에 이르는 모든 조선족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재외동포법 상 국가 당 쿼터 제가 있어서 제한된 수의 조선족만 정식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는 조선족 조폭에게 사채 빚을 지고 개고기 밀수선을 타고 밀항해 들어온 조선족 불체자가 엄청나게 살고 있었다이 모든 조선족 불체자들의 구원자가 서경석 목사의 조선족 교회였다

 

< 미국 교민 사회를 중심으로 한 차종환과 서경석 목사의 조선족 지원 형황과 개고기 전통론>


불체자 검거가 심해지자 서경석 목사와 조선족 불체자들은 조선족교회에 모여 단식투쟁을 하기 시작했다. 불법을 합법화하라고 중국인들이 데모를 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친히 납셨다 

조선족 교회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모든 조선족 불체자 사면을 약속하며 범죄자일지라도 불법체류자가 당당히 공항으로 가 출국할 수 있는 권리를 줬다. 그리고 모든 조선족에게는 방문취업 비자를 줘 당당히 한국에 입국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선족이 형성한 차이나 타운에는 반드시 개고기 시장이 존재한다, 애니멀라이프,  2018년 9월 23일>


이렇게 해서 25세 이상 모든 조선족은 직업이 있든 없든, 재산이 있든 없든, 살인을 저질렀든 아니든 방문취업 비자를 가지고 당당히 한국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 개고기 식용 문화도 정착되었다.

조선족은 곧 개고기 식용 문화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개고기 식용 정책에 그토록 공을 들인 것이다. 개고기 문화를 한국에 정착시키는 것이 한국의 중국공산화 작업의 마무리였다. 

138. 개 먹는 민주화 운동과 미국 교포 사회의 좌경화

정치

이상하게도 한국 민주화 운동 세력은 개고기에 호의적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개고기는 우리 전통이라고 주장한다. 그 결과를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김일성은 위인이라고 찬양하고 중공 건국 70주년 축하 행사를 당당히 여는 것이 현재 한국의 현실이다.   

또 그들은 기본적으로 반 제국주의를 주장한다. 반 제국주의란 일본과 미국, 서양 강대국에 반대하는 것이다. 모두 개고기를 반대하는 국가들이다. 따라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혹은 그 후손들은 개고기가 한국 전통이라고 믿는다.


<김정은 찬양한 대학생 단체가 미군철수를 외치며 미대사관저에 침입하고 있다, 조선일보, 2019년 10월 19일>


그래서인지 한국의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 학생 운동, 종교 운동 등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개고기 식용에 호의적이다. 조선족에 호의적이다. 조선족이 한국 독립운동사를 대표한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독립운동을 하는 건 좋다. 하지만 일제에게 독립을 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분열되었다. 조선으로 돌아갈 것인가? 새로운 조선이 될 것인가새로운 조선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개고기 안 먹으면 변절하기 쉽다는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 백기완, 초이스경제, 2014년>


새로운 조선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따라야 한다는 쪽은 이승만 계열 독립운동단체였다. 중국식 공산주의가 되어야한다는 쪽이 중국 공산당 계열 독립운동단체였다 

중국식 공산주의 주도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한 곳이 중국 만주였다. 이들이 조선족 독립운동가들이다. 조선족 독립운동가들은 개고기를 전통이자 공산주의의 상징으로 여기며 열심히 먹었다. 조선족 독립운동가들은 조선이 곧 중국이라고 믿었다.


 <한국은 중국 일부라는 중화사상은 1921년 이후 중국 공산화 운동이 되었다>


1954년 이승만 정권에서 개고기를 금지한 이유는 개고기로 대변되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역사 왜곡 문제를 정확히 인지했기 때문이다. 1921년 이후 중국식 독립운동가들이 개고기를 열심히 먹으며 개고기는 전통, 개고기는 전통이라고 노래를 부른 이유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을 중국인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중국 공산당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도 한국 공산당이 되어야 한다. 북한은 중국 공산당의 의도에 충실히 따라 김일성 주도로 개고기를 민족 음식으로 받아들였지만 남한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까지 개고기를 금지했다.


<독재자의 탄압으로 80년대 보신탕을 못 먹어 서러웠다는 기사, 한겨레21, 2002년 7월>


공통적으로 이들은 강력한 반공정책을 펴며 한국 내 중국 세력 확장을 경계했다. 이에 반대한 세력들은? 음지에서 열심히 개고기를 먹었다.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 학생 운동, 천주교, 일부 개신교 세력이 개를 때려잡아 먹는 행위는 결국 중국 공산화 운동이었다.  

그리고 중국 공산화 운동은 현재 성공단계에 있다. 1980년대까지 전무하던 차이나 타운 숫자가 전국적으로 수 십 개에에 이른다. 미국, 캐나다의 차이나타운과 달리 한국 차이나타운에는 반드시 개고기 시장이 존재한다.


<대림동 차이나 타운 >


한국 차이나타운은 조선족이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족은 제사에도 개고기를 올리고 추석날에도 개고기를 먹는다. 조선족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개고기 집이 있다. 


그러면 왜 이 꼴이 되었는가? 왜 한국은 개고기 천국, 조선족 천국이 됐는가? 미국 교포 사회가 원흉이다. '한국의 조선족 천국 = 개고기 천국'이고 그 뒤에는 미국 교포 사회의 좌경화가 있다. 한국의 공산화에는? 중국 공산당이 있다. 


<중국공산당이 개고기로 한민족의 역사를 지배하는 매커니즘 > 


종전 후 그 많던 공산주의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한국 땅 어디선가에서 장장 60년 넘게 살고 있었다. 우리 곁에서 우리 이웃으로 말이다. 뭘 하고 살았나? 사회 각계 각층에서 끊임없이 독재에 반대해 민주화 운동을 했다. 

1954년 이후 외국의 천주교 신부와 미국 개신교 목사가 각각 한국에 입국했다. 이들은 학생운동가와 노동운동가를 지도하며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가 되었다. 외국인 천주교 신부는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을 만들었고 개신교 목사는 한국 노동운동의 스승이 되었다. 


<개 식용은 중국 공산화 운동 한국전쟁 후 개고기 적화 과정>


그들의 제자들은? 개를 때려잡아 먹으며 민주화 운동을 했다. 장장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말이다. 서울대학교 출신 차종환은 박정희 독재 정부에 항거하다 해직된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몰몬교 신자인 그는 마침내 미국 한인 사회의 대표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뭘 했나? 미국 동포 사회 대표 자격으로 청와대를 방문해 전두환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그가 한 요구는 '재외동포법 제정'이었다. 


<1921년부터 1980년 대까지 한국의 좌파 운동과 개고기 전통론>


그렇다. 바로 지금 조선족을 한국의 특권층으로 만들어 준 재외동포법은 차종환이 만들었다. 수 십년 미국 교민 사회의 숙원인 이중국적을 포기하면서까지 말이다. 차종환이 만든 제외동포법은 철저히 조선족을위한 법이었다. 

모양새로 보면 한국에 조선족을 풀어놓은 재외동포법을 미국 교민이 만든 셈이지만 실상을 따지고 보면 중국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전 한국 공산주의자가 중국인인 조선족을 한국에 집단 거주시키는 법안을 만든 것이다. 


<위조 여권 사용 및 불법을 저지른 조선족 추방에 항의해 7번째 무기한 단식을 한 서경석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2013년 5월 20일>


쿵짝쿵짝 뒤에서 말이다. 차종환은 전세계에 퍼져 사는 한국인의 특징이 '개고기'라고 했다. 중국공산당이 정의한 대로 한국인을 정의한 것이다. 자, 급한대로 재외동포법은 만들어졌다. 

이제 문제는 한국에 떼거지로 들어온 조선족이 어떻게 정착해서 밥을 벌어먹고 살 것인가였다. 정착을 하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밥을 먹고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미국 교민사회가 나섰다. 누가? 서경석 목사가.  


노동 운동 개고기, 미국 대사관, 미대사관저 침입, 민주화 운동 개고기, 반미운동, 방문취업 비자, 북한 개고기, 서경석, 서경석 개고기, 시민 운동 개고기, 재외동포법, 조선족 개고기, 중국 공산당 개고기, 차이나타운 개고기, 차종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학생 운동 개고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비밀글

5. 개장국 금지 이승만Vs 단고기 먹은 김일성

정치

개고기 중독 김일성 교가 퍼진 북한


해방 후 북한은 개고기 금지한 천도교에서 개고기 먹는 김일성 교로 바뀌었다. 주체사상이라는 김일성 교에서 김일성의 일말과 행동은 신의 계시와 같다. 까라면 까고 먹으라면 먹는다. 1960년대까지 북한에서 개고기가 대중적이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하루 두 끼 개고기를 먹던 김일성이 한 마디 하자 즉시 단고기가 되었다. 남한은 어땠을까? 역시 남한 내 세력이 없던 이승만이 깜짝 등장해 건국 대통령이 되었다. 이승만과 김일성은 대 중국 정책과 개고기 식용 정책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


<휴전협정에 서명하는 김일성, 이 시기 김일성은 하루에 두 끼는 반드시 개고기를 먹었다, 1953년 7월>


이승만 대통령은 친미 반중 정책을 폈다. 김일성은? 친중 친소 정책을 폈다. 이승만 대통령은 강력한 개고기 금지 정책을 썼다. 김일성은 개고기 보급 정책을 썼다. 71%의 인구가 개고기를 금지하는 천도교를 믿은 북한 주민의 충성심을 확인하려는 것을 수도 있다.

 

개고기 반대 친미친중 정책의 이승만

 

이걸 도식으로 보면 개고기 먹은 중국공산당가 북한이 한 편 먹고 개고기를 금지한 이승만 정권을 압박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면 이승만 대통령은 왜 개고기를 금지했을까? 우리 전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과 고구려의 개에 대한 인식 차이>


개고기는 고대 중국 전통이었다. 그걸 중국 공산당이 중화사상 뽕에 미쳐 되살려 낸 것이었다. 중국인 김일성이 북한을 접수하면서 북한도 개고기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것이었다. 개고기는 중국 공산화를 의미했다.




<1950년 11월 서울. 폐허 속을 뒤지는 여자와 아이들>


역사를 통틀어 인간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면 개를 잡아먹는다. 이승만 대통령이 개고기 금지법을 시행하던 1954년은 굶주림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 전쟁 때문에. 1950년 북한의 침공으로 시작된 한국 전쟁은 1953727일 휴전 협정으로 끝이 났다.

 

한국전쟁 끝나자마자 개고기 금지부터

 

1954년이면 작년에 전쟁 끝나고 이제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나 막막해하던 시기였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초토화되고 미국과 유엔의 식량지원을 받아 겨우 연명했다. 그런데도 이승만 대통령은 강력하게 개고기를 금지했다.


<1954년 4월 26일 북진통일 촉구 대회 중 혈서쓰는 청년>


그는 아마 중국과 한국, 북한에서 개고기가 갖는 의미를 이해한 것 같다. 개고기는 중국공산혁명의 상징이었다. 그렇다면 개 먹는 행위 자체가 공산혁명 운동이 된다. 이를 저지하는 개고기 금지법 시행은 강력한 반공운동의 일환이었다.


개고기 금지법이 시행되던 1954년 남한에서는 연일 중국 공산당 물러가라!” “북진 통일하자!” 는 데모가 열렸다. 학생, 시민들은 혈서를 썼다. 반드시 북진 통일을 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승만의 개고기 금지는 반중반공 운동

 

31운동 기념 시가행진에서도 북진 통일을 외쳤다. 한국 전쟁 때 납북된 사람들의 가족들은 납북자 석방을 촉구하며 공산당을 욕했다. 뭘 해도 결론은 "중공 나쁜 놈, 북한 나쁜 놈"이었다.


<1954년 4월 26일. 중공군 물러가라는 플랭카드>


사사오입 개헌으로 장기집권을 시도한 이승만 정권 기반은 강력한 반공정신이었다. 남한은 공산주의, 즉 북한과 중공을 증오했다. 그들은 무찔러야 할 적이었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개고기 먹다  잘못 걸리면 빨갱이(친중파, 친북파= 간첩)로 몰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뒷골목 으슥한 곳에서 숨어서 개고기를 판 것이다. 당연히 남한에는 제대로 된 개고기 조리법이 존재할 수 없었다.

 

중공 나쁜 놈, 북한 나쁜 놈


개고기는 남한에 숨어있던 친중파와 친북파 혹은 일부 민주화 운동 세력, 천주교, 개신교, 증산교, 원불교 등의 종교 세력이 숨어서 몰래 먹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숨어서 먹었다.


<개고기 식용 대 개고기 금지로 보는 한국전 양상>


개를 먹는 행위는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신문에서 날 정도로 몰염치한 짓이었다. 195461954630일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있다.


<1954년 6월 30일 경향신문의 개장국 관련 기사>


개장국 판매는 (정부의) 인가를 받은 것이냐, 는 제목의 기사를 보자. 개장국 판매를 금한다는 보도가 새로운데, 마이동풍 격으로 계절에 따라 공공연히 판매를 하니 이는 인가된 것이냐는 질문에 개장국 판매는 법으로 금하고 있다는 답변하고 있다.

 

개장국에서 보신탕, 보신탕에서 영양탕

 

음식점으로는 허가한 일은 있어도 개장국 판매점으로 인가한 적 없으며 당국에서는 가축보호의 견지에서 개장국 판매를 금하고 있으니 보안 관련 경찰에게 신고하라는 것이다. 개장국으로 팔면 경찰에 잡혀 가니 보신탕으로 이름을 바꿔 팔았던 것이다.

1980년 대 전두환 대통령이 보신탕을 규제하자 영양탕으로 이름만 바꾼 것과 같은 꼼수다. 반중반공으로 뭉친 남한이 동물보호법으로 개장국을 강력히 금지하고 있을 때 북한에서는 김일성 표 개고기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었다.


<외신기자들을 불러 놓고 개고기는 제사 음식이라고 한 고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그 김일성 표 바이러스가 현재 한국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김일성이 먹던 개고기는 우리 전통이 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이 금지한 개고기 금지법은 철저하게 잊혀졌다.

 

북한의 김일성 표 개고기 바이러스

 

남한은 이승만을 언급하는 것이 큰 죄라도 짓는 것처럼 승만 지우기에 열성이었다. 그와 함께 이승만의 개고기 금지법도 잊혀졌다. 혹자는 말한다. 친미친일파인 이승만은 나쁘다고.


<1948년 5월 1일. 북한의 기념식에 걸린 소련의 스탈린과 김일성 사진>


아니 그럼 친소친중파 김일성은 착해? 소련 뒷배로 권력을 잡은 김일성이 한 일이라고는 북한에 개고기 바이러스나 퍼트린 거다. 개고기는 전통이라는 세뇌로 말이다. 김일성은 남한의 적인 중국공산당은 친구였다.


적의 친구는 뭐다? . 중국 공산당은 1958년 김일성을 초대해 천안문 광장에서 카 퍼레이드까지 열어줬다. 누가 보면 금의환향한 동포인 줄 알 정도로 성대하게 말이다. 결국 누굴 파트너로 삼느냐의 차이였을 뿐이다.


이승만은 나쁘고 친중파 김일성은 착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승만 정신은 잊히고 김일성 정신은 한국에서 살아남았다. 개고기 금지법은 사라지고 개고기 식용이 뿌리 내렸다는 의미다. 북한의 김일성 표 개고기 바이러스가 남한에도 전파된 것이다.

 

1984년 원불교 신문에는 1998년 이후 한국에 퍼진 '개고기 전통론'과 똑같은 논리로 개고기를 옹호하는 기사가 실렸다. 개고기는 우리 전통이고 외국에서 보신탕을 욕하는 것은 타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야만이라고 주장이다.


<1984년 개고기는 전통이라고 한 원불교 신문>


당연히 당시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인 1997년까지 복날이면 유력 신문에는 복날 개고기는 중국 전통이라는 내용의 사설이 실렸다.

 

이승만 정신과 함께 사라진 개고기 금지법

 

원불교 측 주장과 달리 현재 널리 알려진 우리 조상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증거는 조악하기 그지없다. 고대 중국 기록의 짜집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개를 먹지 않았다. 


<1958년 11월. 중공 천안문 광장에서 카 퍼레이드를 하는 김일성>


해방 후 남한과 북한, 한국과 중국은 개고기식용이냐, 금지냐, 로 뚜렷이 구분되었다. 그 경계가 점차 사라지더니 김일성의 만수무강을 위해 진행된 북한의 개고기 연구가 남한에서 발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 가축 고시의 근거가 된 책을 쓴 모 식품학과 교수의 논문에는 개고기에 대한 많은 참고문헌이 실렸다. 112개에 달하는 참고 문헌 중 실제 조리법은 1989북한료리협회에서 소개한 개고기 요리법 밖에 없다.

 

북한 개고기 요리법을 한국 교수가 발표

 

남한 사람은 모르던 해방 후 북한에서 만들어진 개고기 요리법이다. 그 외 참고 문헌에 등장 하는 개고기 요리나 개고기의 영양학적 증거 유형은 두 가지였다. 첫째, 어느 신석기 중국인이 쓴 내용에 근거해 조선에 전해진 중국 측 기록.

 

<1989년 북한료리협회가 내놓은 북한 개고기 요리법을 인용한 남한 교수의 논문. 그의 연구는 2007년 '개 가축 고시'의 근거가 되었다>


둘째,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조선 시대 기록을 재편집한 (역시 중국 서적이 원 출처) 요리법을 총망라한 것. 모두 중국 거다. 노란색으로 표시한 김태홍의 논문은 1670년부터 1943년까지 문헌 16권에 나타난 개고기 요리의 종류와 조리법, 양념, 부재료를 조사한 것이다

이런 왜곡된 학문적 결과물은 언론과 지식인 사회를 통해 신나게 한국 전체로 전파되었다. 중국 공산당의 개고기가 김일성에 의해 북한으로 전파되었다가 다시 남한으로 전파된 후 5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으로 둔갑한 것이다.    



1954년 개고기 금지법, 개고기 전통론, 김대중 개고기, 김일성 개고기, 복날 개고기, 복날 보신탕 사기, 북한 료리협회 개고기, 안용근 개고기 논문, 안용근 개고기 박사, 원불교 개고기, 월드컵 개고기, 이승만 개고기 금지, 친미 반중 이승만

댓글을 달아 주세요

비밀글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