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6 | |
| 7 | 8 | 9 | 10 | 11 | 12 | 13 |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 28 | 29 | 30 | 31 |
- 티베트 개
- 조선족 게이트
- 천주교 개고기
- 개고기 조선족
- 김일성 개고기
-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 노무현 개고기
- 조선 개고기
- 박옥선
- 우한 폐렴
- 김대중 개고기
- 차이나타운 개고기
- 개 가축 고시
- 복날 개고기
- 중국 공산당 개고기
- 중국공산당 개고기
- 개고기 전통론
- 페키니즈
- 개를 가축에서 제외
- 마오쩌둥 개고기
- 박옥선 조선족
- 티베트탄 마스티프
- 조선족 혜택
- 에트루리안
- 중국인 입국 금지
- 시추
- 조선족 부동산 대출
- 운동권 개고기
- 조선족 개고기
- 북한 개고기
- Today
- Total
목록김일성 개고기 (10)
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초복, 중복이 지났는데 어째 조용~~하네요. 작년까지의 그 떠들썩한 육견협회의 개잡이 놀음이 없어요. 그러고보니 동물보호단체도 다른 해와 다르게 조용했던 거 같습니다. 아마 그거겠죠. 고기 음식점 어디서 유통된 고기를 파나?TheEpochtimesKorea, 2020년 3월 28일>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행사를 하긴 했는데 언론에서 실어주고 안 실어주고의 차이. 그런 의미에서 올해 복날을 앞두고 에포크타임즈 코리아에서 뜻 깊은 기사를 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너무 뜻 깊은 기사였습니다. 고기 음식점 어디서 유통된 고기를 파나?TheEpochtimesKorea, 2020년 3월 28일> 1997년 이후 처음으로 언론..
현재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먹는 국가는 한국이다. 그 한국인의 대표는 조선족이다. 재외동포법으로 인해 조선족이 모든 한국인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족은 중국인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중국인이 되었다. 황당하지만 외부에서 보기엔 그렇다. 중국인인 조선족이 한국인의 대표가 되는 근현대사의 과정은 고구마 백 개 쯤 먹은 것같은 답답함의 연속이다. 이 황당한 일의 원인은 개고기 전통론이다.개고기로 조선족과 한국인이 하나되어 중국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1911년까지 중국과 한반도에 대중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현상은 없었다. 중국과 한반도 모두 개는 그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몰래 숨어서 먹는 불결한 음식이었다. 모든 것은 개를 사랑한 청 왕조가 멸망하면서 시작되었다. 중국..
법무부와 외교부 자료를 쭉 보면 조선족은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저항해 항일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이주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정의는 언론에서 조선족을 다룰 때 즐겨 사용되는 수식어이기도 하다. 조선족 스스로 자신들은 한반도 조선인이 일제의 식민 통치에 순응하고 있을 때 만주로 가 독립 운동을 했다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비약해서 해석을 하면 한국을 무시하거나 탓하게 된다. 중국의 조선족과 북한 주민은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 미제 와 일제에 대항해 싸우느라 개고생을 했는데 남한은 미제와 일제에 기생해서 꿀을 빨았다는 거다. 남한은 물질적으로는 부유해졌을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미제와 일제에 의해 오염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즉, 개고기를 먹는 조선족만이 ..
북한의 대표 음식은 개고기다. 농담이 아니라 실제 북한에서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자신들의 대표 음식은 개고기라고. 사실 맞는 말이다. 북한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개고기”다.북한에서 개고기를 대표 음식으로 자랑하는 이유는 김일성에 있다. 김일성 자신이 개고기 중독이라고 할 만큼 개고기를 좋아했고 그런 김일성이 북한을 만들었다. 즉, 북한은 김일성 그 자체고 북한의 문화는 개고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김일성이 만든 주체 사상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쇄국 정책의 바탕이 되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기생한 구 소련과 중국이 원조를 끊어버리자 북한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였다. 개방을 하느냐, 쇄국을 고수하느냐?!북한은 쇄국 정책을 택했다. 국제사회와 한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원조를 받으면서 말이다. ..
김일성은 여름휴가 동안 먹을 ‘김일성 황구’를 평양 중이 목장에서 포태리 별장까지 비행기로 공수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겨 무장군인들이 지키며 키우던 ‘김일성 황구’를 외부에 내보내게 되었다. 여름 별장 옆에 중이 목장의 개 농장 지부를 만든 것이다. 포태리 인근 주민 중 일부가 차출되어 개 농장으로 일을 하러 갔고 평양보다 관리가 허술 한 탓에 김일성 황구에 대한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었다. 처음 김일성 황구에 대한 뉴스를 접했을 때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대명천지에 “누런 개가 가장 몸에 좋다”는 조선 시대 기록(사실은 신석기 시대 중국 기록)을 철썩같이 믿어 눈알까지 노란 누렁이를 만들어내는 미친 집단이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 어려운 것을 김일성은 해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
청나라에 반발한 마오쩌둥은 개고기 먹는 관습이 거의 사라진 중국 대륙에 다시 개고기 열풍을 불어 넣었다. 김일성 이전 북한의 권력은 천도교 세력에 있었다. 천도교는 개고기를 금지한다.그렇다고 김일성이 천도교 세력에 대한 반발로 개고기를 먹은 것 같지는 않다. 중국 공산당 출신 김일성은 진심으로 개고기를 좋아했다. 김일성을 신으로 모시는 북한의 주체사상은 세계10대 종교에 포함된다. 북한은 변형된 형태의 사회주의 국가인 동시에 종교국가다. 중세 카톨릭 독재 시대에 유럽에서 교황이 전지전능한 권력을 휘둘렀듯이 북한에서 김일성은 신이자 교황이었다. 그런 김일성이 하루에 두 끼는 반드시 개고기를 먹을 정도로 좋아했으니 국가 기관이 총 동원되어 개고기를 찬양할 수 밖에 없었다. 북한에서 개고기 전통론이 생겨난 이..
한국 내 식용견 수 약 6000만 마리.개 농장주는 농가지원금으로 개 농장 설립. 기업형 프랜차이즈 개농장 성행. 아무도 한국 개를 보호하지 않는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누가 개를 가축에 포함 시켰나? [1] 한국에는 강력한 개고기 금기가 있었다. ※ 알타이 샤먼인 무교 영향. [2] 1907년 개고기는 한국에서 엄격히 금지된 식품이었다. [3] 1910년 일본 식민 지배. 천주교와 기독교 포교 허용. 한국 기독교는 전 세계 기독교 중 유일하게 개고기를 먹는다. ※ 천주교 개신교는 무교와 대립. [4] 1945년 8월. 미국에 의해 일본 식민지 해방. [5] 1948년. 이승만 대통령 취임. (종교 : 개신교)※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6] 1954년도 한국에는 개고기 금지법이 존재. [7] 북한의 김..
원래는 불법이나 사실 상 합법이 된 개소주는 개고기를 푹 고아 만든다. 퇴계 이황이 발명했다고 하는데 사실 신농 씨가 원조이다. 신농 씨가 누구냐고? 이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이 안되는 존재가 바로 신농 씨다. 질겅질겅 씹고 있는 건 약초다. 신농 씨가 입으로 약초를 씹어 사람을 치료한 기록이 중국 한의서인 『신농본초』, 혹은 『본초』이다. 중국과 조선에 존재한 모든 개고기 약효 역시 이 『본초』에서 나왔다.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이 먹은 황구도 이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신석기 시대 신농씨 조언에 따라 만들었다. 신농 씨가 산 중국 황하 문명권에서는 개고기를 약으로 사용했다. 물론 신석기 시대 개고기를 약으로 사용한 건 황화 문명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황하 문명을 제외한 모든 문명에서 개를 약으로 먹는 ..
개고기 중독 김일성 교가 퍼진 북한 해방 후 북한은 개고기 금지한 천도교에서 개고기 먹는 김일성 교로 바뀌었다. 주체사상이라는 김일성 교에서 김일성의 일말과 행동은 신의 계시와 같다. 까라면 까고 먹으라면 먹는다. 1960년대까지 북한에서 개고기가 대중적이지 않았다.그러던 것이 하루 두 끼 개고기를 먹던 김일성이 한 마디 하자 즉시 단고기가 되었다. 남한은 어땠을까? 역시 남한 내 세력이 없던 이승만이 깜짝 등장해 건국 대통령이 되었다. 이승만과 김일성은 대 중국 정책과 개고기 식용 정책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미 반중 정책을 폈다. 김일성은? 친중 친소 정책을 폈다. 이승만 대통령은 강력한 개고기 금지 정책을 썼다. 김일성은 개고기 보급 정책을 썼다. 71%의 인구가 개고기를 금..
김일성 이전 북한을 지배한 천도교 1894년 동학의 농민봉기는 북한의 김일성과 김일성이 좋아한 개고기와도 연관이 깊다. 일제 식민지 지배 후 동학은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여러 갈래로 분열되었다. 먼저, 일진회는 친일을 했다. 1907년 일본 황태자가 조선을 방문하자 이를 기념해 천황을 찬양하는 글귀와 문양이 새겨 아치를 세우기도 했다. 또 다른 동학의 후계자인 천도교는 북한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그런 천도교 신자가 약 800만 명이었다. 이 중 신자 약 640만 명과 간부 대부분은 북한에 살았다. 해방 직후 남한 인구가 약 1600만 명, 북한 인구가 약 900만 명이었다. 북한 인구의 약 71%가 천도교 신자였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막강할 수밖에 없었다. 김일성이 북한을 접수하려면 반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