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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명나라 빨던 이성계 역할, 조선족 중국인

조선

이성계가 고려와 원나라에는 천하의 역적 놈이었지만 명나라 입장에서는 반대였다. 고려 우왕의 뒤통수를 친 위화도 회군은 명나라에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위화도가 어디냐? 바로 압록강 한 가운데 섬이다

바로 강을 건너면 요동 땅이었고 만약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뒤통수를 치고 돌아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명나라는 아직 건국된 지 20년 밖에 되지 않는 신생국가였다


<이성계가 우왕의 뒤통수를 친 위화도>


원나라 농민 출신 주원장은 황제로 등극하자마자 무시무시한 독재 정치를 펴며 기존의 건국 공신들을 거의 모두 학살했다. 친구고 자식이고 없었다. 그냥 뭐 막 죽였다

고대 중국의 도교 책을 모은 『구선활인심법이라는 책을 출판해 조선의 이황이 무술주(개고기 술)를 한국에 퍼트리도록 하는 빌미를 준 주권이 주원장 아들 중 하나였다




<이미 사라진 고대 중국의 개고기 술을 소개한 주권의 『구선활인심법』(위)과 이를 표절해 조선에 퍼트린 이황(아래)>


열 일곱 번째 아들인가 했던 주권은 반란을 일으키다 실패해 신선 선() 자를 쓰는 주선이라는 이름을 쓰며 은거했으나 주권의 아들이 다시 반란을 일으켜 일가가 몰살당하고 말았다.

아들들까지 몰살시킬 정도로 주원장은 내부 청소를 아주 깨끗이 했다. 과도한 숙청은 언제나 장단점이 있다. 실력자들을 다 쳐냈으니 내부적으로는 반란을 일으킬 놈들이 없어져 안정될 수 있다


<이성계가 포기한 요동 박물관에는 청 왕조 시대의 중국 모습이 남아 있다, 고소소번화도, , 1759>


그러나 외부적으로는 외적을 막아낼 인재()군들이 사라지니 필연적으로 군사력이 약해진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뒤통수를 치던 1388년이 딱 그랬다. 이 때 만약 이성계가 우왕의 지시대로 요동을 쳤다면 명나라는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여기에 만약 혈연관계로 묶인 북원 황실과 고려 왕실이 연합해 명나라를 쳤다면 중국까지 지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뒤통수를 쳤고 덕분에 고려 왕실은 몰살되게 된다


<원 제국 이전 고려는 송나라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불교와 도교의 영햘을 받은 송나라에서는 개고기 먹는 문화가 사라진 상태였다>


명나라도 건재할 수 있었다. 위화도 회군을 하는 시점을 전후 해서 조선 건국까지 일련의 거사에 이성계 일파가 명나라 사주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 이유다. 이성계 집안은 순수 고려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 이성계가 여진족이라는 설도 있다.


나는 이성계 집안이 여진족을 가장한 중국 한족일 수도 있다고 본다. 이성계 집안은 고려 시대 요동 지역을 장악한 무인 집안이었다. 고려는 조선을 제외한 모든 한민족 왕조가 그랬듯 매우 개방적인 왕조였다.


<아랍과도 교역한 고려의 배가 새겨진  황비창천명형 동경,  고려, 918~1392년


실력만 있다면 외국인도 벼슬을 받아 고려인이 될 수 있었다. 이성계 집안이 실은 원나라를 증오하던 중국 한족 가문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지나치게 명나라를 물고 빨았다

명나라는 조선을 말 잘 든는 오랑캐라고 부르며 멸시하는데도 이성계는 조선도 이제야 명나라가 되었다며 좋아했다이성계가 중국 한족이 아니라면 미친 거다. 이 때부터 조선은 명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 왕과 왕세자를 책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을 구경하는 고려 상류층과 마당에서 뛰노는 고려의 개. 건축 양식과 복식이 송나라와 유사하다>


명나라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가 아니었다. 말 잘 듣는 오랑캐인 조선이 요동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은 조선이 북원(몽골)과 연합을 영구히 포기한다는 의미였다. 북쪽 국경과 서쪽 국경이 안전하다면 중원도 안전할 수 있었다

원은 더 이상 요동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몽골 고원을 기점으로 발전했다 명나라의 북쪽 국경 걱정을 덜어준 조선은 정말이지 이상한 왕조였다. 조선은 명나라가 되기 위해 그때까지 존재한 한민족의 모든 것을 지웠다


<고려 시대까지 복날에는 팥죽을 먹었지만 조선과 조선족의 힘으로 복날에는 개고기를 먹는 것으로 왜곡되었다>


고려 대까지 존재한 모든 역사는 사라졌다. 조선인 스스로 조상들의 역사와 문화를 지운 것이다그 대표적인 예가 복날 개고기다. 고려 대까지만 해도 복날 팥죽을 먹으며 액막이를 했다

조선 건국 후부터 개고기는 한국 전통이라고 왜곡하더니 조선 후기 들어 본격적으로 복날에는 고대 중국 풍습인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세뇌했다안타깝게도 명나라를 도운 이성계와 같은 역할을 현재 조선족이 담당하고 있다이성계와 마찬가지로 조선족도 출신이 불분명하다.


<특별법을 제정해 조선족 동포 이민청을 신설해달라고 요구하는 100만 조선족 중국인뉴데일리, 2017년 5월 8일>


들이 중국 한족인지 여진족의 후예인지 한국의 독립운동가인지 사실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현행 법 상 조선족은 194910월 이전 중국으로 간 한국동포를 뜻한다. 한국 같은 경우는 1970년대까지 호적과 족보가 정확하지 않았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중공은 더 하다. 아무도 그들이 진짜 한국동포인지 증명할 수 없지만 그들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처럼 당당히 한국 땅에 들어와 새로운 한국을 건설하고 있다. 복날 개고기가 한국인의 전통이라는 거짓말을 하면서 말이다

142.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개고기 동북공정'

조선

개고기는 중국 문화다. 중국이라고 다 같은 중국이 아니다. 중국 역사에는 순수 중국 한족 역사와 기마 유목 왕조 역사가 섞여 있다. 단적인 예로 원나라는 중국사에 속하지만 정확히 중국 역사는 아니다

기마 유목 왕조 국가인 몽골 역사다. 청나라 역시 중국사에 속하지만(청사공정 이전에는 중국사에서 제외) 중국 역사가 아니다. 기마 유목 왕조 국가인 만주족의 역사다중국 역사에는 이민족인 기마 유목 왕조에게 지배당한 역사도 섞여 있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과 조선은 개고기를 좋아한 공자를 숭배. 중공의 공자학원은 전 세계에서 중국 문화를 가르친다>


이 굴욕적인 역사적 사실을 중국은 뇌피셜(자의적인 해석)로 간단히 해결했다. 몽골? 몽골도 중국 속국이었어.” “만주? 만주도 중국 속국이었어.”고구려? 중국 속국이었어!” 역사적 근거는 없다

세뇌가 안 되는 인간들은 개 때려잡듯 학살 하거나 위그르 집단 수용소 같은 곳에 보내 장기를 털어버리면 해결되었다. 그 결과 조선족을 포함한 모든 중국인은 오직 중국 공산당이 정한 역사만 앵무새처럼 따라한다


<고구려에 이어 백제까지 중국 역사에 편입시킨 중국 공산당, 동아일보, 2017년 9월 13일>


지나가는 조선족 붙잡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누구 역사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중국 역사라고 할 것이다그럼 중국 한족 왕조와 기마 유목 왕조는 뭐가 달랐냐? 개고기가 달랐다. 기마 유목 왕조 국가는 절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모든 기마 유목민은 개를 가족처럼 사랑했다. 사자 개는 기마 유목 왕조의 상징이자 왕을 상징하는 옥새와 같은 존재였다. 중국 한족은? 개를 가축으로 키워 잡아먹었다. 개는 가축이자 식량이었다. 조선족이 신처럼 따르는 중국 공산당은 고대 중국으로 돌아가자는 복구 운동을 했다


<조선족 무형문화유산전람관에는 개고기가 전시되어 있다, 월드코리안뉴스, 2010년 12월 14일>


개고기? 당연히 가축이자 식량이다. 한국에 집단 거주한 조선족이나 중국 공산당의 지시에 따르는 한국의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도 같은 말을 한다. ‘개는 가축이자 식량이라고. 앵무새처럼 말이다. 역사적 근거? 그 딴 거 필요 없다


개는 우리 조상들의 가족이자 수호신이었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매국노로 몰면 입을 다물었다. 이게 1997년 이후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중국 공산당의 개고기 동북 공정의 실체.


<중국 공산당의 동북공정에 따라 개고기 불간섭 선언을 한 한국의 사회 지도과 각계 각층의 사람들,  2001년 12월, 오마이 뉴스>


중국 공산당은 원나라와 청나라까지 모두 중국이었다고 우기지만 순수 중국 역사와 기마 유목 왕조 지배기를 구분하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개만 보면 된다. 개고기를 신나게 먹은 시기는 중국 한족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고 봐야 한다. 딱 한나라 대까지다

유방이니 번쾌니 하는 그 시기다. 개고기를 금지하거나 개고기 먹기를 꺼려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왕조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거나 영향을 받은 시기다. 516국이니 수, 당이니 하는 시기부터다. 이렇게 따지면 순수한 중국 한족 역사는 한나라와 명나라, 중국 공산당 지배기 정도로 국한된다


<왕소군의 고향 한나라는 개고기를 먹었고 한나라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흉노를 개를 숭배했다>


이민족의 지배기 동안 중국 한족은 이를 박박 갈며 오랑캐 지배자 놈들을 욕하며 버텼다. 원나라 대 한족은 원나라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이 사람들이 거의 노예 취급을 받았다. 이 중 한 명인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을 때 중국 한족은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이 때 같이 만세를 부른 사람들이 고려에도 있었다. 이성계 집안이었다. 고려 왕실은 원황실과 한 집안이었다. 고려는 원 황제의 사위의 나라였다. 고려 왕실은 원 황족과 같은 황금씨족이었다. 원 황실에서는 공주를 시집보낼 때 급이 맞는 집안을 골라 보냈다


<고려 충렬왕의 장모인 원 제국 쿠빌라이 칸의 황후, 14세기>


고려 왕족이 원 황실과 사돈을 맺을 만한 급이었던 것이다. 명나라가 원 왕조를 중국 땅에서 몰아냈을 때 고려의 우왕은 이성계를 요동으로 보내 후방을 치게 했다. 위화도 회군? 위화도 뒤통수. 장군이 왕의 명령을 안 듣고 돌아와 왕을 몰아낸 사건이 자랑스러운가

만약 우왕의 명령대로 이성계가 요동 땅을 정복했다면 만주는 우리 땅이 되었을 것이다. 또 북원(전 원나라) 군대는 후방을 지원 받아 명나라 군을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몽골 고원으로 쫓겨난 북원이 다시 중국 대륙을 지배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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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요약] 단군은 중국인, 개고기는 조선 전통 음식?

조선

조선족은 개고기를 먹는 것이 자신들의 전통이라고 주장하며 중국 대륙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개고기를 먹는다. 조선족인 것으로 추정되는 김일성은 북한에 개고기를 퍼트렸다개고기로 오염된 조선족과 북한에 이어 한국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공식적으로 100만 명 이상의 조선족이 집단 이주한 상태다. 조선족이 가는 곳에는 반드시 개고기 시장이 존재한다. 조선족은 자신들이 한국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주장하며 개고기 전통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모두 헛소리다. 


<조선족이 소중히 지킨 개고기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자는 주장, 통일뉴스, 2015년9월 14일>


개고기는 중국 한족 전통으로 한국인과는 상관없다개고기로 대변되는 중국의 침입은 조선 건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조선 지배층은 매우 특이한 존재였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자국민이 자국 역사를 증오했다. 

고대 중국과 명나라를 제외한 모든 국가를 증오하고 배척했다. 조선이 증오한 왕조는 고려는 물론 발해, 고구려, 신라, 백제, 고조선도 포함되었다이 말은 자기 조상을 증오했다는 말이 된다"아니? 조선은 제사에 목숨 건 나라 아냐?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거잖아?" 라고 반론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른다.


<한국 왕조와 여진, 거란 금, 청의 관계도>


조상도 급이 있다고 믿었다. 조선 이전의 조상은 오랑캐였다. 오랑캐는 조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려의 모든 역사를 불태우고 파괴했다. 고려는 요승 신돈이 망친 썪어빠진 왕조라고 주장했다. 이성계는 고려의 일개 장수였다

장수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과 왕족을 몰살시키고 왕이 되었으니 고려를 미워한 건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조선은 단군부터 시작해 한민족의 모든 역사를 부정했다. 단군의 고조선은 짐승 같은 상태를 면치 못하다가 중국 지배를 받고나서야 사람 꼴을 갖추게 되었다고 했다


<고대 중국과 고구려(단군)의 개에 대한 인식 차이>


제 조상을 짐승 같은 놈이라고 욕하는 호로잡*이 조선 지배층이었다이런 인간들이 국가 권력을 차지하고 앉아 모든 교역을 중단하고 나라 문을 걸어 잠근채 내부적으로는 농사와 노예장사를 하며 부를 장악했다 "얘네들 정체가 뭐야?" 싶다. 


고구려부터 고려까지 국가 지도층이 갖추어야 할 기본 자질은 전쟁과 교역이었다전쟁과 교역을 하려면? 말을 타고 활을 쏴야 한다. 비록 무신정권과 몽골제국의 조종을 받아 꼴이 우스웠지만 어쨌든 고려 말까지 지배층의 모습은 공민왕이 남긴 그림과 같았다.


<개로 보는 고구려, 고려, 조선 지배층 차이>


말을 타고 있다고구려선비의 무사와 같은 모습이다그러던 것이 조선 시대 와서 이 꼴이 되었다. 앉아서 글만 읽었다. 오직 유학만 공부했다. 유학 외의 다른 글을 읽었다가는 삼대를 몰살했다.  

겉으로는 갓 쓰고 공자 왈 맹자 왈 하고 뒷구멍으로는 노비 장사, 고리대금업으로 배를 축적한 것이 조선 시대 양반들이었다마찬가지로 조선은 한민족 역사 상 유일하게 복날 개고기를 먹인 왕조였다


<민족 역사 속 유일하게 개 식용 정책을 편 조선


정확히는 조선 후기부터 중국 샤먼을 한국 백성들에게 강요했다단군에서 고려 대까지 개는 반려견이자 수호신이자 왕의 상징이었다5천 년 동안 한국 샤먼을 믿으며 개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믿은 백성들이 말을 듣지 않자 제일 만만한 노비들부터 먼저 먹였다

한국에서 복날 개고기를 먹게 된 것은 조선 후기 양반들이 복날 노비에게 개를 주어 잡아먹게 하면서부터다그러면서 내세운 논리가 중국 진나라 덕공이 복날 개고기로 액막이를 했다는 헛소리다. 그러나 이 헛소리가 2019년인 지금도 통하고 있다


<고려시대까지 복날 팥죽을 먹었지만 조선 후기 노비부터 복날 개고기를 먹임>


현재 한국인이 복날 개고기를 먹어야 하는 이유는 중국 진나라에서 그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헛소리를 듣고도 아무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한국이 처한 현실을 말해준다. 

조선을 지나 일제 시대가 되면서 중국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복날 개고기나 먹이는 조선 지배층과 조선 백성은 대립관계였다조선 양반과 백성들의 갈등은 거의 식민지 관리와 식민지 국민 수준으로 심했다.


<개고기로 보는 조선 양반과 백성의 민족 의식 차이


지배층인 양반은 조선이 중국이며 자신들이 중국인이라고 하면 백성들은 헛소리 말라고 욕했다조선 말기 동학교도처럼 말이다. 지배층인 양반은 동의보감등을 집중 발행했다. 

그러나 아무리 개는 가축이며 복날 개고기는 전통이라고 주장해도 대부분의 백성들은 개는 먹으면 안 된다고 믿었다개를 둘러싼 조선 지배층과 백성들의 이런 갈등은 조선 왕조가 사라지고 일제 식민지를 받으며 뒤섞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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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영남학파는 복날 노비에게 개고기를 먹였나?

조선

청 왕조 시대 내내 개를 죽이고 먹는 것은 반역 행위였다. 청 왕조에서 개 죽이는 것을 법으로 금했기 때문이다. 반청 행위를 하는 세력은 순수 한족 왕조의 부활을 꿈꿨다. 조선 시대 노비들을 시켜 개를 때려죽이게 한 양반들처럼 말이다. 

조선 시대 양반은 좀 정신이 비정상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들은 조선인인척 하는 중국인 혹은 중국 식민지 대리인이다. 그들은 고려까지 한민족의 모든 정통을 부정했다. 대신 조선은 작은 명나라라고 하며 조선을 중국으로 만들려 했다. 그 중에는 개고기 식용도 포함된다. 


<복날 개고기로 보는 한민족의 중국화>

고려시대까지는 복날에는 동지와 마찬가지로 팥죽을 끓여 먹었다. 팥은 우리 전통에서 귀신을 쫓는것으로 알려졌다. 이걸 조선 시대 꼴통 양반들은 개고기로 바꿔 버렸다. 왜? 고대 중국에서 복날이면 개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다. 

병자호한 후에는 개고기를 먹는 것이 오랑캐인 청나라를 몰아내자는 운동이었을 수도 있다. 비록 명 왕조 대에도 개고기는 여전히 고대인이나 먹던 음식으로 치부되어 강남의 거지나 먹는 음식으로 전락했지만 말이다

<명나라 황자 주권의 호인 구선을 딴 구선활인심법,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명나라 왕자 주권이 고대 중국 기록을 찾아내 무술주를 알리긴 했지만 사실 그는 딱히 개고기 술을 알리려 한 게 아니라 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거저거 하다 보니 개고기 술이 나오는 고대 기록을 필사한 것 뿐이었다. 

황위 싸움에서 진 그는 사형을 당한 형들과 달리 연금만 당했다. 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진심이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연금 상태에서 중국 도교에 심취했다. 당, 송 대 이전 중국 고대 도교에서는 신선이 되는 것을 최고 목표로 삼아 금단이니 한식산이니 하는 마약 성분을 먹었다고 했다. 


<북제교서도 중 한식산을 마시는 귀족들, 양자화, 북제, 6세기>

주권이 고대 중국 도교 서적을 파다보니 걸린 것 중 하나가 개고기 술이어서 책으로 냈는데 그걸 조선의 이 황이 훔쳐와 마치 자기가 개고기 술 비법을 깨우친 양 조선에 알린 것 뿐이다. 


명나라에서 개고기를 식량으로 먹었다든가 개고기 술이 대대적으로 유행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오직 조선에서만 도산 서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권력 기관을 장악한 퇴계 이황으로 인해 개고기 술과 개고기 약효에 대한 환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권의 책을 표절해 개고기 술을 조선에 퍼트린 이황>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굴복한 조선 지배층은 이황과 마찬가지로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을 간악하게 수탈하며 개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했다. 개인적으로 복날 머슴이 개고기를 먹게 된 것도 이황의 퇴계 학파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안동을 중심으로 한 퇴계 학파에서는 지금도 이황의 후손들이 개고기 술인 무술주 담그는 시연을 한다. 퇴계 학파와 관련 있는 안동 장 씨가 남긴 음식디미방은 조선 후기 양반이(천주교 제외) 개고기를 먹은 유일한 기록이다


<개고기 요리법이 담긴 『음식디미방』, 안동 장 씨, 조선, 1670년>

노비 거래로 재산을 불린 이황은 노비를 가축쯤으로 여겼다. 고려 시대까지 팥죽을 먹던 복날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이 날만은 노비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야 했지만 평소 개고기를 좋아한 이황답게 노비에게 개를 때려잡아 먹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상식적으로 주인인 나도 개고기를 먹는데 노비에게 못 먹일 이유가 없다. 특히 뭔가를 해 먹여야 하는 복날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북한에서 김일성이 개고기에 환장한 이후 북한 주민 전체가 개고기를 먹게 되는 것과 같은 과정이다.


<고려 시대까지 복날에는 액을 쫓는다는 의미로 팥죽을 먹었지만 조선 후기 중국화되면서 개고기 식용으로 왜곡되었다>

복날 노비가 개고기를 먹는 풍습은 영남(경상도) 퇴계 학파 양반들이 주도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황을 추종하는 퇴계학파 가문에서 한양에 집을 샀다면 한양 집 노비들에게도 복날이면 개를 때려잡아 먹게 했을 것이고 호남 지방에 땅을 샀다면 거기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북한 주민에게 개고기를 먹인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해서 양반가 노비들에게 전파된 복날 개고기 먹는 악습은 청 왕조에 대한 복수였다. 청 황제가 조선 양반들은 노비들을 시켜 개를 때려잡아 먹게 한답니다라는 소식을 듣고 부들부들할 걸 상상하며 흐뭇해했을 지도 모른다


<조선 지배층은 고대 중국과 명나라 외의 모든 왕조를 증오했다>

청 황제를 열 받게 하는 건 망한 명나라(명나라는 개를 안 먹었지만)에 대한 부흥운동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 백성 중 대부분은 개고기를 먹고 싶어했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 왕조가 망하는 순간까지 개고기는 가장 비천한 신분인 노비만 먹도록 강력히 규제되었다


한편, 1910년 일제에 의해 식민지배를 당하면서 조선 왕조는 사라지고 일본 황가에 편입되었다. 조선 왕족은 일본 황족이 되었다. 개고기 술을 좋아한 영남학파를 포함한 500년 기득권을 쥔 조선 양반들을 어찌 되었을까? 조선 왕가와 마찬가지로 일본에 협력해 앞날을 보장받은 일부 양반들 외에는 쫄딱 망했다.


<1910년부터 일본 황족이 된 순종,고종,순종황후, 덕혜옹주, 1909년>

조선 양반들 입장에서 제일 열받는 건 신분이 철폐되었다는 것이다. 노비도 없어지고 양반도 없어졌다. 노비는 신나지만 양반은 열 받는 정책이었다. 두 번째 토지개혁으로 일제에 토지를 왕창 빼앗겼다

측량을 하니 토지대장을 만든다느니 하는 선진문물에 적응하지 못한 시골 양반들은 눈 뜨고 땅을 빼앗겼다조선 왕조 500년 내내 오직 땅에서 난 곡식으로만 산 양반들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딱 뛸 일이었다. 토지개혁? 99%의 백성들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일제의 토지 조사 사업, 1918년>

조선의 땅은 대부분 왕가와 양반들 소유였기 때문에 토지개혁을 하든 토지 분양을 하든 가난한 백성들과는 전혀 상관 없었다. 병자호란 후 조선 말기까지 열 명 중 너 댓 명은 꾸준히 굶어죽을 정도로 굶주렸다. 백성들 입장에서 일제시대는 그다지 손해 볼 게 없는 장사였다

특히 노비 입장에서는 노비문서가 없어진 것만으로 꿈이냐 생시냐 했을 것이다1910년 이후 조선에서 가장 불만이 많은 세력은 기득권을 잃은 양반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뿌리까지 반청복명(청나라를 멸망시키고 명나라를 복원하자) 파였다


<조선 시대 개고기는 가장 비천한 계급이 먹도록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헐버트, 『The passing of Korea』, 1907년>

특히 개고기 술 빗어먹던 영남학파는 더 분노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미워 죽겠는 일제가 개고기는 조선의 야만적인 악습이라며 욕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한반도 개고기 식용은 일제에 대한 독립운동과고 연결되게 된다. 

여기에 1921년 중국 공산당이 건국된 후부터 본격적으로 개고기를 둘러싼 피바람이 시작되었다. 조선 영남학파와 마찬가지로 개고기를 먹으며 청나라를 증오한 중국 공산단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개고기를 이용해 공산주의 혁명 운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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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개 식용은 반청복명 운동, 중국 공산화 운동

조선

개고기는 중국 문화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은 청나라가 아니다. , 당 왕조 이전의 고대 중국과 명나라,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여기에는 1392년 건국된 조선도 포함된다

1392년 고려인은 조선인이 되었다. 조선은 명나라를 추종하며 순수 한족 중국 왕조를 조선에 재연하고자 했다. 우리 조상인 고려인이 조선인이 되었고 명나라 인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키자 조선 지배층은 패닉에 빠졌다. 


<고대 중국과 고구려의 개에 대한 기본 인식 차이>

조선 건국 이념 상 명나라와 함께 망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망하는 대신 조선은 이중정책을 썼다. 청나라에게는 복종한다고 약속해놓고 조선 안에서는 배신자를 색출하며 내부 단속을 했다. 그래서 광해군이 제거되었고 소현세자와 그 가족들이 몰살되었다

진짜 명나라 대신 청나라를 택하는 순간 조선 시대 지배층은 즉시 제거되었다그 결과 모든 조선 시대 지배층은 조선이 망하는 순간까지도 오직 명나라만 추종하게 되었다조선이 망하고 일제의 지배를 받은 후에도 명나라 사랑은 변치 않았다


<비밀 명나라 복원 운동을 하던 조선의 왕은 청 나라 사신이 오면 성 밖까지 나가 마중을 해야 했다, 18세기>

일제 황국 신민이 된 조선인은 여전히 몰래 마지막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 이후 형성된 기이한 소중화주의는 중국 공산당이 창당되자 중국 공산당 추종으로 이어졌다. 왜 그런가?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자 중국 대륙에서는 진짜 한족 중국을 복원하자는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진짜 중국이 명나라라고 믿은 중국인은 국민당이 되었고 중국 공산당이라고 믿은 사람들은 공산당이 되었다


<아편전쟁에서 청 왕조가 패배하기 전까지 티베트탄 스패니얼 계열의 사자 개는 오직 청 황족만 만지고 볼 수 있었다, 1899년>

이 시기 황국 신민이 된 조선인 중 일제에 의해 독립해 명나라인이 될 것인지  중국 공산당 당원이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믿은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은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조선 독립운동 파벌이 형성되었다.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각 지역 군벌이든 너도나도 개고기를 다시 먹기 시작했고 조선의 독립운동가들도 개고기를 먹었다개고기를 먹는 것은 명나라 복원 운동이자 청나라 반대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선 땅에도 해당되었다


<민족 역사 속 유일하게 개 식용 정책을 편 조선>

병자호란 이후 조선에도 개를 죽이며 명나라를 부활시키려는 세력이 있었다조선 후기 지배층이었다조선 후기에도 개고기를 먹는 것은 명나라 부흥운동이자 청나라 반대 운동이었다

힘으로 청 왕조에 굴복해 복종은 하지만 속마음까지는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 조선 후기 지배충들이 가진 기본 이념이었다. 송시열이 주장한 소중화주의는 결국 반청 운동의 일환이었다


<청 나라에서 사자개는 오직 황족만 키울 수 있었다,  도자기, 청, 17~18세기>

이런 신념은 청 왕조가 다스리는 중국 대륙 안에 숨어 암약하던 명나라 복원 세력과 뜻을 같이 했다. 청 왕조에게 있어 조선은 반정부 세력이나 마찬가지였다명나라를 부흥시키자는 중국 내 반청 세력과 조선의 반청 세력은 개를 죽였다

? 청 왕조가 개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다. 만약 청 왕조가 개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개 도살 금지법 같은 걸 만들지 않았다면 중국과 한국에 개고기 식용 악습은 농업혁명과 더불어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청 왕조를 증오하며 개고기를 군량미로 사용한 중국 공산당 군대, 1930년>

하지만 하필 청 왕조는 개를 유독 사랑했다. 그것이 개를 둘러싼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다. 청 시조인 누르하치의 목숨을 구해준 개는 모든 만주족에게 신성했다. 청 왕조에는 황족만 만지고 볼 수 있는 특별한 개가 있었다

그 개는 페키니즈, 시추, 라사압소로 불리는 사자개다. 페키니즈, 시추, 라사압소는 티베트 개다. 티베트, 청 왕조의 고향인 만주, 위그르, 몽골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 개를 죽이는 것은 지독한 금기다


<티베트와 위그르가 청나라에 복속된 이유는 같은 기마 유목 민족이기 때문>

지금도 오직 중국 한족만 이 지역에서 개고기를 먹는다. 티베트, 만주, 위그르는 모두 청 왕조로 하나되어 있었다. 청 왕조는 이들 국가의 맏형 격이었다. 맏형인 청왕조가 중국 대륙을 다스리니 티베트, 위그르, 만주, 몽골도 형의 지배력 아래 들어가 함께, 파트너 자격으로 중국을 다스린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같은 문화와 종교를 가졌다는 동질성에 의해 가능했다. 티베트, 만주, 위그르, 몽골, 청은 같은 편이었고 개를 사랑했다이에 반해 중국 한족은 적이자 개고기 먹는 인간들이었다. 청 왕조는 다수의 적인 중국 한족을 소수의 만주족으로 다스렸다


<몽골의 샤먼 의식에 신성한 동물로 등장하는 몽골 전통개는 삽살개와 유전자가 99.9%동일하다>

티베트, 위그르, 몽골 등 다른 유목 왕조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다. 만주족과 마찬가지로 개를 신성시한다 왕의 상징으로 여기는 이들은 청 왕조의 동료였다. 개를 죽이는 것을 법으로 금지할 정도로 사랑한 청 왕조에 반대하려면? 개를 죽이면 되었다

개고기를 금지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에게 반대한 586운동권들이 행한 방법과 같은 방법이었다. 20 세기 한국과 달리 청 왕조 시대 중국에서 개를 죽이다 걸리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고 불교와 도교의 영향으로 개고기를 먹는 관습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지만 말이다


<청 황제의 명으로 서양화가가 그린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개인 티베트탄 마스티프>

그런데 청 반대 세력은 조선 땅에도 있었다고 했다. 더군다나 중국 땅에서는 못 죽이는 개를 조선에서는 마음껏 죽일 수 있었다병자호란 후 조선 양반들은 개를 죽임으로써 청 왕조에 엿을 먹이고 굶어죽는 대중을 선동하는 치졸한 방법을 썼다

양반들이 (지들은 먹지도 않으면서) 글로 써서 우아하게 개를 죽여 개고기를 약과 식량으로 먹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면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백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실행했다. 이렇개 해서 조선의 개고기 역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개고기로 보는 조선 양반과 백성의 민족 의식 차이>

실제로 조선백성들이 고등어 구워 먹듯 개를 많이 먹어서 역사가 된 것이 아니다. 전직 고려인인 조선 백성은 한민족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한민족의 전통에 의하면 개는 먹어서는 안 되는 신성한 동물이다

티베트, 만주, 위그르, 몽골과 마찬가지로 한민족 역시 개가 죽음과 관련된 영물이라고 믿었다백성들의 생활과는 달리 조선 후기 지배층은 그동안 중국에서 출판된 고대 중국 의학서를 죄다 긁어모아 출판했고 이것이 조선의 역사로 둔갑했다


<김일성 황구라는 새 견종까지 만들어 낸 북한이 믿은 『동의보감』의 원 저자인 신농>

알곡인지 쭉정인지 가리지 않고 조선시대 출판된 책은 모두 조선의 역사로 취급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역사 인식 수준이다. , 중국 역사책이 조선 역사책이고 중국 역사가 조선 역사다

이렇게 해서 중국과 일체화된 조선의 개고기 역사는 만들어졌고 조선족과 북한의 김일성은 개고기가 보약이라고 믿게 되었다. 중국 조선족과 북한의 개고기 역사 인식은 1997년 이후 한국에 전파되어 오늘날 우리가 믿는 개고기 전통설과 개고기 만병통치설이 되었다. , 한국 개고기 문제의 원흉은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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