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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156. 서북, 동북, 청사공정의 공통점? 개고기 금기

유목사

개고기 금기를 없앤 마오쩌둥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는 개고기를 먹으면 벌을 받거나 지옥에 간다는 금기가 존재했다. 텡그리 신앙을 이은 한반도는 단군 조선 이후, 텡그리 신앙의 간접 지배를 중국 대륙은 당, 송 왕조 이후 개고기 금기가 생겼다. 


<고구려 시대 개는 단군과 함께 신앙의 대상이었다, 장천1호분, 예불도 5세기 후반>


이 개고기 금기를 없애고 당 왕조 이전 고대 중국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 조선 왕조와 중국 공산당이었다. 그들에게 개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그들의 사상을 증명할 증거였다. 


<19세기 말 에도 단군은 여전히 조선 백성이 가장 많이 믿은 무교의 신이었다>


개고기를 먹어야 순수한 중국 한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순수한 고대 중국 한족 왕조로 돌아가고자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서 개고기 금지를 없앤 게 마오쩌둥이다. 중국 대륙이 공산화 되면서 중국인도 개고기에 오염되기 시작했다


개고기 거부하는 중국인은 학살, 문화대혁명   


공산혁명 완수를 위해 중국인에게 개고기를 먹여야 했던 그는 개고기가 얼마나 맛있는지 찬양하며 춘추전국 시대 기록까지 끄집어냈다그는 개고기가 천하 8대 진미 중 하나라는 헛소리까지 하며 중국인들에게 개고기를 먹였다


<단군 신앙의 근원인 알타이 샤먼에서 개는 신과 소통할 때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문화혁명 당시 마오쩌둥은 중국인에게 뭐다? 신이었다. 죽음의 신. 마오쩌둥 말을 따르지 않는 모든 중국인은 학살되었다이 말은 즉, 개고기는 천하 8대 진미라는 사실에 토를 다는 모든 중국인은 이 때 다 죽었다는 의미다


<1989년 천안문사태로 수 십만 명이 학살되면서 중국 내 지식인은 거의 사라졌다, 조선일보, 2014년 6월 9일>


이렇게 해서 196~70년대 이후 중국에서 개고기가 전통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 지식인은 사라졌다여기에 1989년대 일어난 천안문 사건도 한 몫 했다. 중국의 개혁 개방을 주장한 중국 지식인 수 십 만 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난징학살보다 더 많은 중국인을 죽인 천안문 사태 


참고로 중국이 주장하는 난징 대학살 당시 최대 사망 수정 숫자가 30만 명이다. 한 마디로 1992년 중국과 국교를 수교해 조선족을 받아들였을 때 중국에는 역사를 아는 지식인이 씨가 마른 상태였다. 조선족 중국인은 엉터리 역사를 배울 수 밖에 없던 것이다. 


왜? 중국 공산당에게 복종하지 않은 역사 학자는 모두 죽었으니까. 역사는 쥐뿔도 모르는 조선족 100만 명이 한국에 들어와 개고기 역사를 주입하며 개고기 식문화를 선도한 결과가 현재 세계 최악의 개 학대 국가라는 악명이다.  


<조선 왕조는 모든 한국 왕조와 이질적인 왕조로 중국의 개고기가 한국인의 전통이라고 주장했다>


개고기 전통론과 마찬가지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야금야금 중국 공산당이 왜곡한 역사가 바로 그 악명 높은 서북공정과 동북공정, 청사 공정이다. 서북공정은 티베트와 위구르, 몽골이 역사 이래 중국 한족의 지배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역사관이다. 


티베트와 위구르 지배 근거는 서북공정 


동북공정은 한반도가 중국 한족의 지배를 받았다는 역사관이다. 이런 왜곡된 중국의 역사관은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서북공정은 중국 공산당이 위구르와 티베트를 강제 점령할 당시 명분이 되었다. 

<서북공정 결과 중국에 편입된 위구르는 도시 전체가 수용소로 변해 남자들은 수용소에 감금당하고 여자들은 주로 강간을 당한다, KBS, 2019년 12월 7일>


원래 우리 땅이니까 우리가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 중국 공산당 측 주장이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와 신라, 백제가 중국 역사라는 역사관이다. 역시 중국의 한반도 침략의 역사적 근거가 되고 있다. 


<고대 중국과 고구려의 개에 대한 인식 차이>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실 한국은 원래 중국 땅이었다고 말한 근거가 바로 동북공정이다. 중국 공산당은 서북공정과 동북공정과 함께 청사공정도 주장하고 있다. 만주족이 중국 소수 민족이며 만주는 중국 속국이라는 사관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 일부였다고 말한 시진핑 주석, 2017년 4월 20일>


음...청 왕조는 만주족이 주인이었잖아? 이게 사실이라면 소수민족인 만주족이 패권 민족인 중국 한족을 지배한 것이다. 노예가 주인을 다스렸다는 말보다 더 웃긴 소리다. 이런 황당한 역사관으로 물먹는 하마처럼 주위의 모든 역사를 빨아들여 먹겠다는 것이 중국 공산당 식 역사관이다. 


고구려도 중국 역사, 동북공정 


런데 서북공정, 동북공정, 청사공정이야말로 중국과 티베트, 위구르, 몽골, 만주(청), 한민족이 전혀 다른 왕조였다는 근거가 된다. 그 근거의 가장 큰 증거가 개고기다. 그래, 바로 개고기. 


<청 왕조에서 개는 자금성에 들어가 건륭제가 재판하는 모습을 구경했지만 중국 공산당 하에서 개는 개고기용 가축이다, 청, 18세기 중반 >


개고기는 고대 중국 한족이 중앙아시아와 중국 대륙에서 얼마나 이질적인 존재인지 설명해주는 증거다. 고대 중국 한족은 텡그리 신앙을 믿지 않았다. 서북공정, 동북공정, 청사 공정의 대상 왕조는? 텡그리 정신을 믿었다.  


<스키타이와 흉노에서 개는 왕을 상징했다, 기원전 3~4세기>


텡그리 정신은? 알타이 샤먼이다. 개를 숭배하는 신앙이다. 즉 개고기 금기 문화다. 중국 공산당이 서북공정, 동북공정, 청사공정을 내세우며 파괴하고 다니는 국가는 모두 개를 숭배했다. 즉, 아주 강력한 개고기 금기가 있었다. 

155. 청에 대한 증오로 시작된 개고기 공산 혁명

중국 공산당

중국 공산당의 상징은 개고기

 

중국 공산주의는 반드시 개고기를 인정해야 한다. ? 개고기가 중국 공산혁명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럼 모든 공산당이 개고기를 먹느냐? 아니다. 공산주의 역사 상 오직 중국 공산당만 개고기를 먹는다. 공산주의 역사가 언제부터일까?


<거짓된 대중 선동으로 처형 당한 마리 앙뜨와네트가 사랑한 반려견 코코, 영국, 1786년박>


반려견 코코와 함께 지하 감옥에 갇힌 후 단두대에서 처형된 마리 앙뜨와네트의 브루봉 왕조를 끝장낸 프랑스 대혁명까지 공산주의 혁명으로 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따지면 18세기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이론과 사상이 퍼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생긴 것과 다르게 코코는 루브르 궁전의 가구를 만들던 당대 최고의 가구 장인이 만든 개 집에서 살았다, 프랑스, 1775-80년>


18세기 이후 전 세계에서 문명이라고 할 만한 지역에서 공산주의 사상과 함께 보편적인 개고기 식용이 나타난 예는 없다. 오직 1911년 이후 중국 공산주의를 제외하고 말이다. 어쩌다 개고기가 중국 공산혁명의 상징이 됐냐고?


 <반려견 코코는 주인인 마리 앙뜨와네트가 지하감옥으로 끌려 갈 때 함께 간 유일한 친구였다, 영국, 1895년>


중국 공산당이 쳐부순 게 청 왕조기 때문이다. 청 왕조는 개고기를 못 먹게 했다. 청 왕조는 개도살 금지법을 시행했으며 황족을 상징하는 신성한 개를 키웠다. 이 개들이 시추, 페키니즈, 라사압소 등의 사자개다.


1911년까지 개 도살법이 존재한 중국


1911년까지 중국에서 황족 이외의 사람들이 이 개들을 쓰다듬거나 보거나 안으면 국법으로 처형시켰다. 북한에는 김일성 일가가 먹는 식용 개인 김일성 황구를 보는 사람을 처형한다고 한다.

<시추, 라사앞소, 페키니즈 등의 티베트탄 스페이얼(사자개)는 청 왕족 외의 인간은 볼 수 없었다, 1899년>


비록 식용숭배라는 다른 목적을 가졌지만 두 왕조 모두 극도로 개를 보호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개를 사랑한 청 왕조를 중국 공산당은 증오했다. 청 황족과 만주족을 학살할 정도로 말이다.


미칠 만큼 증오하니 청 황족과 함께 중국 내 모든 개들도 학살하기로 한 것이다. 심지어 중국 공산당은 1950년대는 광견병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수 천 만 마리의 개들을 학살했다. 수 천 만 마리의 개사체가 발생했다수 천 만 명 분의 개고기가 준비된 것이다. 묻어줬을까? 먹었겠지


<마리 앙트와네트와 코코가 죽은 후 프랑스를 차지한 나폴레옹 황제의 후손 나폴레옹 4세와 반려견, 프랑스, 1912년>


아직 중국인이 냉장고를 사용하기 전이니 상하기 전에 얼른 먹어야 했을 것이다. 강제로 말이다. 사실 중국 대륙에서 개고기가 없어진 건 청 왕조 이전이다, 송 왕조 대 이후 중국 대륙에서는 개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보편적인 정서가 강하게 생겼다.

 

<송나라 사람은 죽으면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는데 이 때 생전에 죽거나 먹은 모든 짐승이 몰려와 고자질해 지옥에 간다고 믿었다, 남송, 1195년>


종교 때문이다. 신앙심과 개고기 금지가 연결된 것이다. 불교와 도교를 믿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북방 기마 유목 왕조의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중국 내 개고기 식용 관습은 빠르게 사라졌다.


개는 죽음을 관장하는 신 


오직 중국 남부에 사는 거지나 가난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중국 대륙에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은 없었다. 이는 인도나 조선, 일본과 같은 상황이었다. 인도, 조선, 일본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계층은 개고기를 먹었다


동서양 역사를 막론하고 누구든 인간은 죽을 만큼 배가 고프면 개고기를 먹는다. 그 인간들의 수가 많지 않아 개고기가 보편적인 식문화로 확산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그러나 북방기마 유목민과 소아시아와 그리스 로마의 해양 유목민의 경우 죽기 직전까지 배가 고파도 개를 먹지 않았다. 


<전시안이 새겨진 날개가 달린 스킬라(바다 여신), 에트루리안, 2세기 말>


개가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굶어 죽을 건데 죽어서라도 천당 가야지, 개고기 먹고 지옥 갈 순 없잖아. 북방기마 유목 왕조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마찬가지로 알타이 샤먼을 믿고 개를 숭배했다.

 

<스킬라는 인어나 날개 달린 인어, 개 머리를 한 물고기, 개 머리를 한 뱀, 날개 달린 개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스페인, 16세기>


중국 대륙에서 개고기를 식량으로 먹은 시기는 한 왕조 이전이다. 딱 공자와 한나라 유방 대까지다. 한나라 유방은 공자의 유교를 국교로 채택했다. 개고기 좋아하는 인간이 개고기 좋아하던 인간을 믿는 종교를 내세워 나라를 세운 것이다.

 

<날개달린 개와 개가 그려진 도자기접시, 이태리, 1515~1530년>


공자는 개고기를 반드시 먹어야 하는 제 3계급인 선비였다. 개고기 먹는 공자를 믿는 종교(유교)를 가진 왕조에서는 개고기 식용 현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공자를 믿은 조선에서도 지배층은 반드시 백성들에게 개고기를 먹여야 했다.

 


<한 왕조, 조선, 중국 공산당은 개고기를 좋아한 공자를 숭배한다>


이걸 조선 백성들은 끝까지 거부한 것이다. 그 증거가 동학 농민 운동이다. 동학교도들은 개고기 먹는 고문을 당했다. 개고기 먹은 공자를 추앙한 국가가 또 있다. 중국 공산당이다. 또 고대 중국 왕조인 진, 한 왕조를 국가 모델로 정한 국가가 있다. 중국 공산당이다.


한 왕조, 조선, 중국 공산당 공통점? 개고기 

 

<개고기로 보는 조선 양반과 백성의 민족 의식 차이>


개고기 먹던 고대 중국 왕조와 개고기 먹은 공자를 추앙한 중국 공산당은 태생 자체가 개고기와 뗄레야 땔 수 없는 관계다. 여기에 공산주의라는 독재 체제까지 더해지니 1920년대 이후 중국인은 죽고 싶지 않으면 개고기를 먹어야 했다.

 

<송나라 시대 중국에는 개를 죽이면 벌을 받는다는 불교와 도교를 믿었다, 청명상하도, 북송>


이게 현재 조선족 중국인이 말하는 개고기 전통의 실체다. 중국 공산당을 만든 마오쩌둥 일화를 보면 이상하게도 개고기를 찬양하는 내용이 뜬금없이 등장한다. “개고기를 먹지 않은 사람은 개고기 먹는 것을 두려워하나 일단 먹어보면 괜찮다라는 말을 왜 했을까?

 

<마오쩌둥과 함께 개고기로 공산혁명을 한 중공의 붉은 군대, 1930년대>


중국 사람들이 개고기 먹는 것을 꺼리고 싫어했으니까. 이미 중국인들은 1000년 이상 개고기를 먹으면 지옥에 간다는 불교와 도교를 믿고 있었다. 개고기 먹으면 조상신이 노한다고 믿은 조선인의 믿음보다 강도는 약했지만 분명 중국에도 개고기를 꺼리는 정서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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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개고기 동북공정'

조선

개고기는 중국 문화다. 중국이라고 다 같은 중국이 아니다. 중국 역사에는 순수 중국 한족 역사와 기마 유목 왕조 역사가 섞여 있다. 단적인 예로 원나라는 중국사에 속하지만 정확히 중국 역사는 아니다

기마 유목 왕조 국가인 몽골 역사다. 청나라 역시 중국사에 속하지만(청사공정 이전에는 중국사에서 제외) 중국 역사가 아니다. 기마 유목 왕조 국가인 만주족의 역사다중국 역사에는 이민족인 기마 유목 왕조에게 지배당한 역사도 섞여 있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과 조선은 개고기를 좋아한 공자를 숭배. 중공의 공자학원은 전 세계에서 중국 문화를 가르친다>


이 굴욕적인 역사적 사실을 중국은 뇌피셜(자의적인 해석)로 간단히 해결했다. 몽골? 몽골도 중국 속국이었어.” “만주? 만주도 중국 속국이었어.”고구려? 중국 속국이었어!” 역사적 근거는 없다

세뇌가 안 되는 인간들은 개 때려잡듯 학살 하거나 위그르 집단 수용소 같은 곳에 보내 장기를 털어버리면 해결되었다. 그 결과 조선족을 포함한 모든 중국인은 오직 중국 공산당이 정한 역사만 앵무새처럼 따라한다


<고구려에 이어 백제까지 중국 역사에 편입시킨 중국 공산당, 동아일보, 2017년 9월 13일>


지나가는 조선족 붙잡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누구 역사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중국 역사라고 할 것이다그럼 중국 한족 왕조와 기마 유목 왕조는 뭐가 달랐냐? 개고기가 달랐다. 기마 유목 왕조 국가는 절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모든 기마 유목민은 개를 가족처럼 사랑했다. 사자 개는 기마 유목 왕조의 상징이자 왕을 상징하는 옥새와 같은 존재였다. 중국 한족은? 개를 가축으로 키워 잡아먹었다. 개는 가축이자 식량이었다. 조선족이 신처럼 따르는 중국 공산당은 고대 중국으로 돌아가자는 복구 운동을 했다


<조선족 무형문화유산전람관에는 개고기가 전시되어 있다, 월드코리안뉴스, 2010년 12월 14일>


개고기? 당연히 가축이자 식량이다. 한국에 집단 거주한 조선족이나 중국 공산당의 지시에 따르는 한국의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도 같은 말을 한다. ‘개는 가축이자 식량이라고. 앵무새처럼 말이다. 역사적 근거? 그 딴 거 필요 없다


개는 우리 조상들의 가족이자 수호신이었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매국노로 몰면 입을 다물었다. 이게 1997년 이후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중국 공산당의 개고기 동북 공정의 실체.


<중국 공산당의 동북공정에 따라 개고기 불간섭 선언을 한 한국의 사회 지도과 각계 각층의 사람들,  2001년 12월, 오마이 뉴스>


중국 공산당은 원나라와 청나라까지 모두 중국이었다고 우기지만 순수 중국 역사와 기마 유목 왕조 지배기를 구분하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개만 보면 된다. 개고기를 신나게 먹은 시기는 중국 한족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고 봐야 한다. 딱 한나라 대까지다

유방이니 번쾌니 하는 그 시기다. 개고기를 금지하거나 개고기 먹기를 꺼려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왕조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거나 영향을 받은 시기다. 516국이니 수, 당이니 하는 시기부터다. 이렇게 따지면 순수한 중국 한족 역사는 한나라와 명나라, 중국 공산당 지배기 정도로 국한된다


<왕소군의 고향 한나라는 개고기를 먹었고 한나라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흉노를 개를 숭배했다>


이민족의 지배기 동안 중국 한족은 이를 박박 갈며 오랑캐 지배자 놈들을 욕하며 버텼다. 원나라 대 한족은 원나라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이 사람들이 거의 노예 취급을 받았다. 이 중 한 명인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을 때 중국 한족은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이 때 같이 만세를 부른 사람들이 고려에도 있었다. 이성계 집안이었다. 고려 왕실은 원황실과 한 집안이었다. 고려는 원 황제의 사위의 나라였다. 고려 왕실은 원 황족과 같은 황금씨족이었다. 원 황실에서는 공주를 시집보낼 때 급이 맞는 집안을 골라 보냈다


<고려 충렬왕의 장모인 원 제국 쿠빌라이 칸의 황후, 14세기>


고려 왕족이 원 황실과 사돈을 맺을 만한 급이었던 것이다. 명나라가 원 왕조를 중국 땅에서 몰아냈을 때 고려의 우왕은 이성계를 요동으로 보내 후방을 치게 했다. 위화도 회군? 위화도 뒤통수. 장군이 왕의 명령을 안 듣고 돌아와 왕을 몰아낸 사건이 자랑스러운가

만약 우왕의 명령대로 이성계가 요동 땅을 정복했다면 만주는 우리 땅이 되었을 것이다. 또 북원(전 원나라) 군대는 후방을 지원 받아 명나라 군을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몽골 고원으로 쫓겨난 북원이 다시 중국 대륙을 지배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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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요약] 항일 독립운동과 중국 공산혁명의 개고기

중국 공산당

인류 역사 상 개를 가축으로 먹은 문명은 중국 황하 문명이 유일하다. 이에 반해 나머지 3대 문명은 개를 사랑하고 숭배했다. 단군을 이은 한민족은 개 숭배 문명권에 속했지만 조선 시대 중화사대주의자들은 한민족이 황화 문명에 속한다고 믿었다. 

단군을 믿은 한민족은 개를 사랑하고 숭배한 증거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 잘 나타나 있다. 고구려와 흉노는 같은 문화를 공유했으며 개가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다. 

<고대 개고기 문명과 개 숭배 문명 중 한민족은 개 숭배 문명에 속했다>

이에 비해 같은 시기 중국 한족 왕조(진나라, 한나라 등)는 개고기와 개 피가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다. 고구려, 흉노, 선비로 이어지는 기마 유목 민족이 한 편이었고 한나라 및 중국 한족 왕조가 한 편이었다. 

개 숭배 문명과 개고기 문명은 서로 대립관계였다. 그러나 현재 한국인은 고대 중국인이 자신의 조상이라고 믿으며 복날이면 액막이를 하기 위해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대 중국과 고구려의 개에 대한 인식 차이>

조상의 적을 조상으로 기리는 이런 현상은 조선부터 시작되었다. 조선은 단군부터 고려까지 이어온 한민족의 정체성을 깡그리 바꿔 버렸다. 조선 후기 중국 대륙을 다스린 청왕조 역시 중국 한족의 정체성을 뒤흔들었다. 

조선과 청 왕조는 고대 개식용 문명과 개 숭배 문명 지역을 맞바꾼 것처럼 굴었다. 고대 중국인이 개고기를 먹은 중국을 다스린 청 왕조는 개 숭배 문화를 더 열심히 퍼트렸다.   

<조선과 청 고대 개고기 문명 개 숭배 문명이 뒤바뀜 >

개 숭배 문명권인 한반도를 지배한 조선 왕조는 한민족에게 개 식용 문화를 퍼트리려 갖은 노력을 했다. 조선은 고려를 포함한 모든 한국 왕조를 혐오했는데 특히 신라를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는 청 왕조를 증오했다. 


개를 사랑하고 숭배한 청 왕조에 대한 복수인지 조선을 개고기 문명권으로 편입시키려는 빅픽쳐였는지 모르겠지만 전보다 더 심하게 백성들에게 개고기 먹기를 강요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복날 개고기다. 


<민족 역사 속 유일하게 개 식용 정책을 편 조선>

그러나 이미 수 천년동안 단군(텡그리) 신앙으로 대변되는 알타이 샤먼을 믿은 한민족은 굶어죽을 지언정 개를 잡아먹을 수 없었다. 따라서 조선 말기까지 복날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조선에서 가장 천하고 가난한 사람들로 제한되었다. 


<1907년까지 조선에서 개고기는 가장 비천한 신분의 사람들만 먹도록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모든 상황은 1910년 조선 왕조가 망해 일제의 식민지가 되고 1911년 청 왕조까지 멸망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청 왕조 멸망과 동시에 청 왕조가 강력하게 실시하던 개 도살금지법도 폐지되었다.  

청 왕조에 분노한 중국 사람들은 개가 마치 청 왕조 황제나 되는 것처럼 때려죽이기 시작했다. 실제 페키니즈, 시추 등의 사자개는 청 황실을 상징했다. 


<도광제와 황실 가족들의 사랑을 받은 페키니즈, 청, 1800년>

청 왕조가 망하는 순간 황실 사람들은 청 황실견을 모두 죽여 정통성을 보존하려 했지만 영국 군인들 손에 의해 서양에 전해졌다. 구출된 몇 마리 황실 견 외의 모든 중국 개들은 1921년 중국 공산당이 창당되면서 본격적으로 개고기 용 가축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은 개 도살을 청 왕조에 대한 저항으로 이해했다. 마오쩌둥은 이미 개고기 먹는 관습을 잊은 중국인에게 개고기 먹기를 강요했다. 개고기는 중국 공산당의 상징이 되었다.  


청 왕조의 상징이던 소중한 개는 중국 공산당 치하에서 개고기용 가축으로 취급받았다. 하필 청 왕조에 반대하고 일제를 포함한 모든 서양 제국주의 국가도 개고기에 반해했다. 중국 공산당은 모든 제국주의 국가

개는 청 왕조와 모든 제국주의 국가의 상징으로 죽어 마땅한 존재였다. 중국 공산당은 고대 중국의 개고기 문명을 재건하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 독립운동가들은  만주와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동해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지원을 받았다. 


<1925년 조선공산당을 창당한 청나라 요리집 아서원, 오마이뉴스, 2019년 2월 16일>

조선 독립운동가들이 개고기를 반청 운동, 반 제국주의 운동, 항일운동의 상징으로 받아들인 중국 공산당식 사상을 만주 독립운동가들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개고기로 중국공산당과 한민족이이 하나된다는 의미였다. 


한반도는 중국 공산당의 속국이었다. 역사와 민족을 팔아넘기는 매국노 짓이라고? 공산주의자에서 역사와 민족은 중요하지 않다. 공산혁명에 필요하다면 역사 왜곡쯤 할 수도 있다. 개고기? 먹을 수도 있다. 이게 공산주의식 마인드다.  


<개고기 전통으로 보는 만주 독립운동과 조선족의 중국 공산화 논리>

한반도에 중국식 공산주의 사상이 침투되는 상황이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실 조선인은 공산주의가 뭔지 잘 몰랐다. 서양 선진 문물 중 하나 정도로 이해한 지식인들도 많았다. 

당연히 한반도 개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나라가 망하고 일본 놈이 쳐들어오고 천지개벽하는 상황에서 만주의 독립운동가들은 사회 각 분야에 침투해 독립운동을 벌였다. 개고기를 먹으면서 말이다. 


<1921년 이후 중국공산당의 개고기 역사 공정 >

공산혁명에 가담을 했는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1910년 이후 한반도에서 선교 활동을 보장받은 천주교와 개신교도 열심히 개고기를 먹었다. 

조선 시대까지 민족 정체성을 지키며 개고기를 거부한 조선의 백성들은 '서양 종교, '신문물' '교육, 의료', '독립운동' 등의 엄청난 대업에 압도되어 전통을 잊고 개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개고기 식용으로 보는 조선족의  625남침과 문화 침략 과정>

 

이렇게 해서 개고기로 고문당하며 조선 왕조에 항의한 동학 농민군은 복날 개고기를 먹은 것으로 역사가 왜곡되었다. 일부 가난한 사람만 먹던 개고기를 일본 학생이 놀리자 화를 내며 싸우다 동맹휴학까지 한 학생만세 운동의 의미도 퇴색되어 학생 운동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개고기를 먹어야 하는 풍토가 형성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만주 독립운동가들이 모조리 가져 갔다는 점이다. 한국 독립운동하면 조선족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만주의 독립운동 정신을 따른다는 것은 결국 중국 공산주의를 따른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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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한민족 파괴자 조선, 고려가 개를 먹어?

조선

조선 왕조를 비판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친일파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역사를 사랑한다.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 한국인은 흥의 민족이다. 흥이 나면 불같이 확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론 불같이 훅 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실망할 건 없다. 또 어디선가 불같이 훅 일어날 것이고 같은 한국인으로서 뭉치면 되기 때문이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중요한 이유. 우리가 뭉칠 수 있는 힘이기 있기 때문이다. 

<단군을 그린 산신도, 1900-1925년>

한국인이라는 의미는 혈연적인 정의로 국한할 수 없다. 알타이-시베리아 지역의 기마 유목 왕조는 인종과 언어는 달랐지만 하나로 연결되었다. 초기 에트루리안 왕조의 지배층 중에는 아프리카 흑인도 있었다

역사와 문화(종교 포함)를 공유한다면 같은 민족이다. 한국인의 정체성만 가지고 있다면 한반도든 중국이든 지구 어디든 우리는 한국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단군의 홍익인간을 높이 평가한다.


<선비족 무덤에서 나온 벽화 중 수렵도 , 몽골, 337-370년>

그런 단군을 짐승이라고 욕하며 부정한 인간들이 있다. 일제 시대 일본 놈들이 그랬냐고? 아니, 조선 왕조다. 우리는 일본 식민지 시절 우리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 문화를 파괴했으며 역사를 왜곡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미 500년 전부터 조선 왕조는 한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파괴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조선 왕조가 500년 동안 작업해온 한민족 파괴 작업에 숟가락을 얹고 거기에 문화적 인종론'이라는 양념을 팍팍 친 것 뿐이라고 볼 수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 중 수렵도, 고구려, 5세기>

조선 왕조의 건국 세력은 고려까지 존재한 모든 역사서를 불태웠다. 그리고 500년 내내 강력한 검열을 통해 (학문)의 독재를 했다. 그 결과 조선은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왕조가 되었다.

조선은 개국을 하자마자 대대적으로 고려 역사를 정리해 고려사를 편찬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조선 왕조가 적폐로 규정한 고려 역사를 조선 왕조가 썼다는 소리다. 좋은 말을 했을까? 온갖 잡소리에 욕이란 욕은 다 썼다


<조로아스터교에서 신으로 추앙받는 네눈박이 몽골의 전통 개들>

고려가 좋은 왕조라면 조선 개국은 명분을 잃는다. 이성계가 쿠데타를 일으킨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는 고려 왕조가 반드시 천하의 샹샹바가 되어야 했다. 고려 왕조의 나쁜 점을 구구절절 써 놓은 역사책이 고려사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이 고려사를 정사로 취급하며 고려 역사를 다룬다. 왜곡된 고려 역사를 배울 수밖에 없다. 그 대표인 예가 개고기다. 한국 학계가 얼마나 심각하게 역사 왜곡을 하고 있는지는 고려의 개고기 식용 설만 봐도 알 수 있다


<고려 왕실에서 사용한 청자용 모란무늬 합과 받침대 중 강아지 손잡이, 고려, 13세기>

고려사에는 개와 개고기에 대한 몇 구절이 나온다. 개고기를 먹은 인물은 몽골 침략기에 뒤통수를 치거나 무신 집권기에 야비한 행동을 한 나쁜 놈들이다. 나쁜 놈들을 묘사할 때 개고기를 먹었다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쓴 것이다


이걸 한국의 학자들은 긍정적으로 취급했다. 고려의 나쁜 놈인 아무개가 개고기를 먹었으니 개고기는 고려의 전통이라는 결론에 도출한 것이다. 상식적인가? 또 아무 맥락 없이 단지 가 나왔다는 이유로 중간 검증 과정은 생략한 채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경우도 있다.


<양을 치고 양고기가 주식인 몽골인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몽골, 1920경>

고려사에는 몽골군이 침입해 개와 닭까지 절종시켰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구절은 고려인은 개고기를 먹었다는 결론의 근거가 되었다. 이해가 되는가? 단지 고려 개경에 엄청 많은 개와 닭이 있었고 그 개와 닭을 몽골군이 죄다 죽였기 때문에 고려인은 개고기를 신나게 먹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고? 그 정도로 개를 많이 키울 이유는 식용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거짓말 같지만 이게 모 식품영양학과 논문 내용이다. 개는 가축이라는 대전제가 뇌에 박힌 채 역사를 연구하니 결론이 이 모양인 것이다. 더 창피한 것은 이 논문이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은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고려인이 해산물 위주의 채식을 했다고 한 서긍의 선화봉사 고려도경>

이 식품영양학과 연구원의 논문은 2000년 이후 한국의 언론계, 출판계에 퍼졌고 당연한 수순처럼 인터넷에 무차별 살포되었다. 그 결과 고려인은 개고기를 먹었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처럼 굳어지게 되었다근거는

고려사에 나온 몽골군이 고려의 개와 닭을 절종시켰다는 단 한 문장이다. 이런 비합리적인 추론과 연구는 고구려 고분 벽화와 개고기 식용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고구려 고분 벽화 중 안악 3호 분 부엌 그림 중 고깃간에 걸린 짐승이 목매달아 죽은 개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안악 3호 분 중 부엌 그림 중 고깃간, 고구려, 357년>

이 주장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전혀 없다. .. 진짜 ..도 없다. 어떤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안악 3호분 고깃간 그림에 걸린 짐승이 개고기고 그것이 고구려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은 증거라고 휘갈긴 주장이 전부다

그런데도 이 주장은 역시 언론계와 식품영양학계, 인터넷 상에 무차별 살포되었다. 고구려 벽화 전문가가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개는 무덤 주인만큼이나 중요하게 취급되던 반려견이었으며 개는 영혼인도 동물 역할을 했다고 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안악 3호분 고깃간 옆 부엌에는 개 2마리가 서성이고 있다, 고구려, 357년>

영혼인도 동물은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안내해주는 역할이다. 그러니까 저승사자 같은 역할이다. 상식적으로 무덤을 만들면서 저승사자를 잡아먹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을까? 알타이 샤먼에서 개고기를 먹으면 재수가 없고 벌을 받는다고 믿는다.

역시 개가 저승으로 안내한다고 믿은 조로아스터교에서는 개고기를 먹으면 지옥에 간다고 믿는다. 조로아스터교는 알타이 지방인 서 몽골에서 유래되었다. 고구려 고분 벽화 속 개들은 고구려인이 개를 신성하게 여겼으며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안악 3호분 주인과 원나라 귀족 무덤 주인 부부의 초상>

역시 고구려 벽화 전문가는 안악 3호분 고깃간에 걸린 목매달린 짐승은 사냥한 노루라고 주장했지만 귀 기울이는 이는 별로 없었다. 고구려가 개를 숭배한 사실은 같은 시기 개를 때려잡아 먹은 한나라와 명확히 비교된다

한나라에서는 개를 때려잡아 먹었다. 현재 중국의 개고기 축제와 북한, 한국의 조선 족 개 도살자가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과연 누가 한국의 개고기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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