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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천주교의 개사랑 독재 Vs 북한의 개고기 독재

유럽사

상하게도 한국에서는 개고기 비난에 대해 반박할 때 외국 어디도 먹고 어디도 먹는다는 식으로 핑계를 댄다. 개고기를 먹는다고 주장하는 나라 중 하나인 프랑스와 스위스에 대한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라도 기독교와 서양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 


<대리석 개 조각, 로마, 1~2세기박>

서양사는 또한 이슬람사와 미국사, 청사와도 연결된다. 종교 개혁 이후 천주교와 청나라 역사는 조선 역사와도 연결된다. 병자 호란 이후 청나라에 끌려간 소현세자 가족들이 조선에서 몰살당한 이야기와도 관련 있다.  


<천사들과 개가 새겨진 어린이 석관, 대리석, 로마, 300년>

이 길고 긴 이야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키는 에트루리안이다. 천주교(로마 카톨릭) 토대는 에트루리안이고 종교 개혁 이전 서양 역사는 로마 카톨릭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로마 지배층은 에트루리안 문화를 그대로 가져왔다.


<횃불을 든 아르테미스와 개가 새겨진 램프, 로마, 175~225년>

수 천 년 전 개 무덤을 만들 정도로 (특정)개를 숭배한 에트루리안 지배층은 날개달린 개 신앙을 믿었다. 날개달린 개 신앙은 로마 제국 지배층은 주로 그리핀으로 변형된 날개달린 개 상징을 즐겨 사용했다.


<횃불 든 아르테미스와 개 테라코타, 로마, 기원전 3~2세기>

로마에서 개는 죽음과 어둠(어둠을 밝히는 불)의 영역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로마와 에트루리안 사이의 전쟁은 기존 해양 교역 지배 세력에 새로운 왕족(로마의 건국 세력)이 추가되는 선에서 정리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 형제가 개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마 건국 신화도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기존의 왕족이 아니기에 황제가 될 정당성이 없는 로물루스 형제에게 신성을 부여해 왕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젖이 불은 날개달린 개가 새겨진 인장 반지, 그리스 로마 지역, 기원전 1600~1500년> 

로물루스 형제가 태어나기 수 천 년 전부터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막 새끼를 낳은 듯 젖이 불은 날개달린 개가 황제를 상징한다고 믿었다. 새로운 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만 동요하는 민심을 수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와 청나라에도 있었다. 키루스 대왕과 누르하치는 죽을 위기에서 개가 목숨을 구해줬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는 개를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채택했다. 청 왕조에서는 개를 죽이는 것이 불법이었다

<조로아스터교를 믿은 후기 바빌로니아의 개석상, 기원전700~500년>


페르시아를 멸망시킨 이슬람 제국에서는 개가 악마다. 청 왕조가 멸망한 후 세워진 중국 공산당의 모택동은 중국에서 사라진 개고기 식용 문화를 되살렸다. 모택동의 붉은 군대는 개고기를 먹었다중국 공산당 군대 소속이던 김일성은 개고기를 좋아했다. 


개고기를 금지하는 천도교를 제거하고 북한을 장악한 김일성 지배 후 개고기는 북한의 전통음식이 되었다. 개고기 하나로 중국 공산당과 북한이 연결되는 것이다. 북한이 내세운 개고기 전통론의 근거는 또한 현재 한국에 만연한 개고기 전통론의 근거와 정확히 일치한다


<중국 공산당의 제국주의와 개고기 식용에 관한 개념도>


북한은 김일성이 사랑한 개고기를 전통음식으로 만들기 위해 허준의 동의보감을 내세웠다또 그 외 조선에서 발행한 개고기에 대한 문헌을 긁어모아 개고기가 보약이라고 선전했다


<모택동과 만난 김일성, 1970년 10월 1일>

그런데 앞서 말했다 시동의보감을 비롯한 조선 시대 개고기 기록의 원 출처는 신농본초신석기 시대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신농이란 신이 쓴 기록을 중국 양나라 시대 중국 한족이 찾아내 책으로 엮은 것이 신농본초


<신농, 1503년>


김일성은 동의보감의 약효를 아주 철썩같이 믿은 듯 하다김일성의 만수무강만을 연구하는 연구소는 1970년대부터 개고기 약효에 대해 아주 집요하게 연구했다. 개고기와 불포화지방 혹은 개고기와 콜레스테롤과의 관계 등 북한에서 연구한 연구 기록은 1989년 이후 한국에서 통용되었다.


<소련 공산당의 후원을 받으며 평양시 민중대회에 등장한 김일성, 1945년 10월 14일>

개고기 전도사를 자처하며 육견협회 고문을 지냈으며 개고기 사업에 열을 올리던 한 식품영양학과 교수를 통해서 말이다. 이런 식으로 북한의 개고기 전통론과 개고기 만병통치설은 아무런 검증없이 한국 사회에 퍼졌다. 


<만청상 연구원에서 김일성 만수무강을 위해 가축을 연구한다는 통일신문, 2016년 4월>


한국 언론,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 운동권 세력, 친일파 세력 등이 합세하며 형성된 한국의 개고기 옹호론의 양상은 매우 복잡하다. 

분명한 사실은 한국의 개고기 전통론과 학계에 최초 보고된 약효는 모두 북한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다. 어느 정도로 북한이 개고기에 국가의 명운을 걸었느냐 하면 전혀 새로운 종의 개를 창조해낼 정도였다.

<노란 샤페이 강아지, 사진 출처 : Beverly & Pack>

황구(누렁이)가 제일 몸에 좋다는 신농의 말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굶어죽는 와중에도 눈물나는 개량 연구 끝에 머리부터 발끝부터 심지어 눈알까지 노란 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어내는 김일성이 만수무강해야 북한도 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83. 로마 - 카톨릭의 개 숭배 원조는 에트루리안

유럽사

사극을 볼 때 느끼는 안타까운 고증 실수가 있다. 청자가 없던 시기가 배경인데도 떡 하니 청자가 나오거나 도자기가 없던 시대인데도 도자기로 된 다기 세트가 나오는 걸 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왕족이라고 다 도자기를 쓴 건 아니다. 도자기는 인간이 섭씨 1000도 이상의 화력을 만들수 있게 된 후에야 만들어졌다. 섭씨 1000도 이상의 화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첨단 과학이 사용되었다


<신석시 빗살무늬 토기, 한반도 서울 지역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도자기의 발전은 과학의 발전과도 직결된다도자기가 발명되기 전 지배층은 토기를 사용했다일반 백성은 잘 해야 투박한 질그릇 정도 사용했다. 신석기 시대를 예로 들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토기 한 번 구경 못하고 죽은 인간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뛰는 남자와 개가 그려진 토기 (그리스 도기), 서 그리스, 기원전 480년

신석기 토기 유형을 보면 그 지역을 어느 세력이 지배했는지 알 수 있다. 신석시 시대 한반도 대표 토기는 빗살무늬토기다. 빗살무늬토기는 중국 황하 강과 양쯔강 쪽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오직 기마 유목민이 장악한 초원길과 비단길 루트에서만 발견된다고대 흉노는 늑대와 개를 신성하게 여겼고 중국 한족은 늑대를 증오하고 개고기를 먹은 것과처럼 극명하게 대비된다. 


<날개달린 개와 불새가 새겨진 금 인장 반지, 에트루리인, 기원전600~550년>

그리스 토기(그리스 도기라고도 한다)는 개성이 강하다딱 봐도 "앗, 이건 그리스 토기"라고 알 수 있다. 가로 줄을 여러 개 긋거나 검은색 배경에 그림을 그렸으면 십중팔구 그리스 도기다. 

고대 어느 시기부터 한반도에도 기마 유목민이 지배층으로 유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토기를 가지고 지배층의 성격을 구분하는 방식은 고대 그리스와 에트루리안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늑대(개) 모양 테라코타 용기, 에트루리안, 기원전 550~525년 >

그런데 에트루리안 토기도 그리스 토기와 양식이 같았다. 두 지배층이 같다는 뜻이다에트루리안은 페키니아라고 했다. 강력한 해상 왕국을 세운 고대 페키니아(에트루리안)가 그리스도 지배를 했다는 의미다. 


흉노와 페키니아 지배층도 결국 같다고 했다이 시기 흑해와 소아시아,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반도이집트인더스 지방중앙아시아와 중국 북부한반도까지 아주 강력한 청동기 지배층이 존재했다고 본다.


<그리스 신이 조각된 은제 장식, 흉노, 기원전 1세기~ 기원후 1세기>


이 광범위한 지역을 다스린 청동기 지배세력은 끊임없이 이동을 하며 교역을 해 부를 쌓았다. 협력 관계인 이들 지배 세력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쪽은 말을 타고 이동하며 무역을 했고 한 쪽은 주로 배를 타고 무역을 했다말을 탄 세력은 기마 유목 왕조다. 배를 탄 세력은 해상 왕국을 세운 왕조다기마 유목 왕조의 대표는 흉노다. 해상 교역 왕조의 대표는 페키니아다


<마스티프가 그려진 토기(그리스 양식), 에트루리안, 기원전 5세기 추정>

페키니아(에트루리안)는 그리스-로마 지역을 지배했다흉노와 그리스(페키니아) 지배층은 긴밀히 협력한 것은 당연했다지배층끼리만 놓고 본다면 그들은 동료였다.

 

<이집트 신 베스 추정 부적, 흉노, 기원전 세기~ 기원 후 1세기>

흉노가 이집트 신을 믿고 그리스 신화 유물을 남긴 이유다. 흉노와 페키니아로 대표되는 유목 세력은 공통적으로 개를 숭배했다티베트탄 마스티프는 두 세력에서 공통적으로 왕을 상징했다.

삽살개(티베트탄 마스티프)가 신라 왕가를 상징했다. 고구려 무덤 벽화에 단군(텡그리)과 삽살개가 함께 등장했다역사를 잊은 한국인은 삽살개도 개고기용 개라고 주장하며 열심히 개고기를 먹고 있지만 말이다.


<개가 새겨진 금 인장 반지, 에트루리안, 로마 지역 출토,기원전 8~3세기>

개고기를 먹은 문명은 중국 문명이 유일하다. 조상을 팔아먹었든지 중국인이 한국인 행세를 하든지 둘 중 하나다. 한편, 고대 유목 세력은 강력한 군사력인 청동기 무기와 풍부한 자본인 금세공술을 자랑했다


에트루리안도 고도로 발달된 청동기 유물을 남겼다완성도 높은 에트루리안 청동기 유물에는 거의 개가 등장하거나 날개달린 개 상징이 등장한다개는 왕의 상징이다


<스카라베 장식이 달린 금목걸이, 에트루리안, 기원전 4세기>

날개달린 개는 신을 의미하고 개는 지상의 왕을 의미한다. 왕가에서 사용한 청동기 유물에 왕가의 인장을 찍듯 개를 그려넣은 이유일 것이다에트루리안은 또한 아주 높은 수준의 금 세공술을 자랑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전사와 뛰어오르는 개가 그려진 스카라베, 에트루라인, 기원전 420~380년>

에트루리안 지배층은 흉노와 같은 누금 방식의 세공술을 선호한 듯 하다왕가의 여인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아름다운 에트루리안 금 목걸이에는 스카라베(풍뎅이모양 장식이 달려있다.  


<스카라베 장식이 달린 금목걸이 뒷면, 에트루리안, 기원전 4세기>


스카라베는 이집트 왕가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스카라베는 또한 에트루리안 지배층의 상징이기도 하다이집트와 달리 에트루리안의 스카라베에는 대개 전사(왕일 것으로 추정)와 개가 새겨져 있다

에트루리안 양식의 스카라베는 유럽의 카메오 세공품으로 발전한 듯 하다. 위의 에트루라인 금목걸이 뒷면에도 역시 전형적인 에트루리안 스카라베 양식을 따르고 있다. 전사와 개가 새져진 것이다. 

<개와 노는 투구를 쓴 에트루리안 전사가 새겨진 스카라베,  기원전 480~440년>

스카라베(), (), 전사()는 에트루리안 지배층의 상징이었던 것이다이와 같은 고유의 에트루리안 문화는 에트루리안이 로마제국에게 멸망당한 후 로마제국 황실로 이어진 듯 하다.

결정적으로 에트루리안과 로마 제국의 지배층은 무덤 양식이 같았다. 지배층의 무덤 양식이 같다는 건 뿌리가 같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에트루리안과 로마 제국 지배층은 또한 유독 개를 숭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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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개 머리를 한 인어, 스킬라

유럽사

보통 많은 사람들이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가 로마 제국으로 이어졌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관점이 정확하지 않다고 본다. 중요한 에트루리안을 빼놓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때로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처럼 취급되기도 하는 에트루리안은 로마제국에게 정복 당하기 전까지 그리스-로마 지역을 비롯한 지중해의 지배자였다. 그들은 그리스-로마 신화를 만들었으며 흉노와 교류했다  


<흉노 시대 그리스 은제 장식, 몽골 지역 발굴,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대항해 시대가 오기 전까지 (혹은 그 후에도) 그리스-로마를 차지한 민족은 지중해 무역권을 장악했다. 해양무역권을 장악하면? 중계무역으로 떼돈을 벌었다.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장악한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지중해 무역권을 두고 피 튀기는 경쟁이 벌어졌다. 해양기술이 발전하기 전 고대인은 연안을 따라서만 항해했다. 연안을 벗어나 항해하면 죽는다고 믿었다.


<기마 전사와 개가 그려진 도기, 그리스 지역, 기원전500~480년>

수평선 너머는 바다의 끝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먼 대양으로 배를 몰고 나가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떨어지듯 떨어져 죽는다고 믿었다콜롬부스가 위대한 건 오랜 인간의 두려움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고대 항해술, 이집트 혹은 키프로스 혹은 페키니아, 기원전 1340~1200년>

인류의 오랜 두려움으로 인해 고대부터 지중해 연안 주요 항구 도시들은 국제 무역을 독점했다. 그로 인한 풍요를 누린 그 대표적인 지역이 시프러스 섬이었다.

기원전 수 천 년전부터 시프러스 섬은 소아시아와 아라비아 반도, 이집트 북부 지역에서 패권을 차지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지역이었다. 몽골의 오논 강변을 차지한 기마 유목 부족이 패권을 차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몽골의 오논 강변, 주채혁 교수 제공>


말을 키우는 최적의 지형과 기후를 지닌 오논 강변에서 말떼를 키워 기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키푸로스 섬은 터키의 이스탄불 지역, 시리아의 안티오크 지역,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지역, 그리고 페르시아 지역까지 장악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기마 무역과 해양 무역의 차이가 있었지만 핵심 지배층만 놓고 보면 결국 그들은 하나였다. 기마 무역이든 해양 무역이든 최상층부 권력층은 일치했다는 이야기다신성한 개를 믿은 빛의 신앙도 그 중 하나다


<늑대 머리 깃발, 낭두독, Omer Toy>

기마 무역을 장악한 돌궐과 위그르는 왕의 상징이 늑대 머리 깃발, 낭두독이었다. 해양 무역을 차지한 세력의 상징도 낭두독과 같다. 해양 무역 세력이 믿은 낭두독은 몸통이 물고기인 경우도 있었다

하반신이 물고기 혹은 용인 여신인 스킬라는 개와 함께 묘사 되거나 개 머리를 한 물고기로 그려진다. 스킬라는 날개달린 개를 믿는 신앙을 가진 특정 해양 세력을 상징한다


<개와 함께 있는 스킬라,  로마 지역, 기원전 450년>

상체는 여자고 하체는 물고기면 인어공주다. 스킬라는 여러 버전의 인어 전설 중 하나라고 추정된다. 고도로 발전된 청동기 문화와 금 세공술을 자랑한 해양무역 세력은 군사력과 부를 장악했다

고대 청동기 문화의 대표는 청동검, 청동화살 등이었다. 군사력이다. 금 세공술은 황금, 즉 돈이다. 강력한 군사력과 황금을 가진 고대 해양 무역 세력은 소아시아와 근동 지역, 아프리카 북부 지역을 지배했다. 


<날개 달린 개 인어와 여자 인어 모양 팬던트, 스페인, 16세기>

그리고 당연히 그리스와 로마 지역 일부도 장악했다. ? 연안을 따라 항해를 해야 하니까그 고대 해양 무역 세력은 페키니아였고 카르타고였으며 에트루리안이었다

이름이 다른 이유는 중앙아시아 유목 국가의 경우와 같을 것이다지배 부족 연합체로 지내다가 패권 부족이 나오면 그 부족이 국가 이름이 되거나 하는 식이다


<말탄 무사와 앉은 개가 그려진 도기, 그리스 지역, 기원전 550년>

왕과 왕비 부족 등으로 나뉘어 철저하게 정해진 가문에서만 왕이 나오도록 하는 방식으로 지배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에트루리안은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를 선도했다검은 칠을 하는 특유의 채색 방식으로 유명한 그리스 도기는 사실 에트루리안 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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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로마 장군은 왜 개와 여인을 끌고 왔을까?

유럽사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장군으로 추앙받는 한니발 장군으로 유명한 포에니 전쟁은 흔히 로마 제국과 아프리카 국가인 카르타고와의 전쟁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카르타고는 단순한 아프리카 야만국이 아니었다.  


<페키니아의 개 무덤과 개 토우 발견 지역, 기원전 600~500년>

그들은 페키니아인이었다. 페키니아가 누구인가? 우리의 늑도 섬 개 무덤 유적과 마찬가지로 개 무덤 유적을 남긴 그 페키니아다. 기원전 600~500년 페키니아의 지배층은 개 무덤과 강아지 모양 토우를 남겼다. 


<황제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핀 인장, 로마, 1~3세기>


이 페키니아가 로마와 유럽으로 전해진 에트루리안 문화와 관련 깊다고 생각된다. 기원전 264년부터 120년 동안 벌어진 로마와 카르타고(페키티아) 사이의 전쟁은 결국 지중해 해상무역권을 둘러싼 전쟁이었다. 


<멧돼지 모양이라고 하나 전형적인 낭두독(날개달린 개) 모양의 숫돌 손잡이, 이란, 기원전 9~7세기>

중아아시아든 지중해든 무역권은 돈이었고 곧 패권이었다. 당시 그리스와 로마는 에트루리안이라고 하는 지배층이 장악하고 있었다. 특히 로마 시칠리아는 페키니아 영향권 아래 있었다.


<위의 숫돌이 출토된 이란 지역, 구글 맵>


그래서인지 에트루리안이 쇠퇴한 시기는 페키니아가 로마 제국에게 패배한 시기와 일치한다. 페키니아가(혹은 그 지배층의 일부) 곧 카르타고이고 카르타고가 곧 에트루리안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사자(개) 머리 금제 장식, 티벳, 7~9세기>

그렇게 가정한다면 개를 숭배한 여신(성모 마리아) 신앙이 로마 카톨릭과 유럽으로 퍼진 배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략의 아버지라 불리는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과 싸워 승리한 로마 제국의 스키피오를 그린 조각을 보자. 

제 2차 포에니 전쟁 후 승리한 로마 제국 측 모습을 그린 이 조각에는 쌩뚱맞게 한 젊은 여자가 왕좌에 앉은 로마 장군 스키피오에게 끌려 가고 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후 승리한 로마 장군 스키피오에게 끌려가는 여인과 개, 이탈리아, 16세기>


사기 충전한 로마 군인들이 끌고 가는 여인의 발 밑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 이 작품을 만든 작가가 그 뜻을 알고 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다고본다. 

개를 숭배하는 페키니아의 지배층은 아마도 여신을 숭배했을 것이다. 이는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 개와 새(올빼미 혹은 독수리 등) 숭배한 여신 이슈타르 신앙과도 일치한다. 


<키프로스 마스티프와 황소 기원전 1340~1200년>

대대로 믿어온 신성한 여신(혹은 네팔의 쿠마리 같은 살아있는 신녀)이 있었고 그 여신은 신성의 증거로 개를 데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강아지와 여인을 로마 제국은 승리의 증표로 끌고 온 것이다. 


이 개 신앙과 여신 신앙이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전해진 것이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었고 그 문명의 결정판을 받아들인 것이 로마 제국이었다고 볼 수 있다. 

포에니 전쟁 당시 카르타고(페키니아)의 영향권을 보자. 지금의 스페인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를 뚝 잘라 반도의 아래 반 정도를 영향권에 두고 있었다. 


<투구를 쓰고 방패를 든 무사, 에트루리안, 기원전420~400년> 

또 이탈리아 반도의 대부분과 프랑스 남부, 아프리카 북부와 히브리 지역까지가 전부 페키니아(카르타고)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그러니까 히브리 반도와 이집트, 아프리카 북부, 스페인 남부, 프랑스 남부, 이탈리아 반도는 전부 페키니아(카르타고)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는 뜻이다. 



<브라간자 브로치 중 투우를 쓴 전사와 사냥개, 스페인 이베리안 반도, 기원전 250~200년>

이 말은 즉 이 지역은 개를 숭배하는 신앙을 믿은 지배층이 지배했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인지 히브리 반도에서는 페키니아의 개 무덤과 강아지 토우가 발견되었다. 

페키니아의 영향권에 있었을 키푸로스에서는 개와 암소(여신)이 신으로 등장하고 이집트 에서는 이집트 전통개가 죽음의 신으로 숭배받았다.  


<사냥하는 사냥개가 새겨진 에트루리안 비문, 기원전490~470년>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 제국은 에트루리안이 숭배한 개 신앙을 그대로 가져왔다. 기독교 공인 후 유럽을 지배한 로마 카톨릭 교황청은 개가 그려진 성체함을 왕의 증표로 삼았다. 


<브라간자 브로치 중 낭두독(날개 달린 개), 스페인 이베리안 반도, 기원전 250~200년>

고대 프랑스에서는 개를 숭배하는 독특한 켈트 문화가 나타났고 종교 개혁 이전가까지 개를 숭배하는 카톨릭 문화가 이어졌다. 


<청동 주전자, 프랑스, 기원전 450~400년>

스페인에서는 날개달린 개를 그대로 차용한 듯한 유물이 고대부터 꾸준히 발견되었다. 왕가가 사용한 듯한 개 유물이 발견된 스페인이 카톨릭을 신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청동 주전자 중 개 모양 손잡이, 프랑스, 기원전 450~400년>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스페인나 종교 개혁 이전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믿은 카톨릭은 신성한 개와 여신을 믿은 고대 종교의 변형으로 보인다. 


<날개달린 개 모양 팬던트, 스페인, 16세기>

고대 페키나아(카르타고)에서 믿은 신성한 개 신앙과 여신 신앙이 로마 제국으로 그대로 편입되었고 그 신앙은 성모 마리아 신앙으로 이어졌으며 지금까지도 유럽에서 보편적으로 보여지는 개 사랑으로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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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왜 성모 마리아는 개를 안고 있었을까?

유럽사

한국 천주교는 천주교 역사 상 유일하게 개고기를 전통으로 인정하며 적극적으로 먹는 조직이다. 원래 천주교에서는 개를 신성하게 여겼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용과 싸우는 개가 그려진 메달 형태의 성체함, 프랑스, 1420년>

유럽사는 곧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역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종교 개혁 이전의 천주교와 종교 개혁 후의 개신교를 설명하면서 유럽사도 함께 알아볼 것이다.

<개고기를 모두 금지하는 세계 5대 종교>

유럽사는 곧 이슬람사, 미국사와도 이어진다. 복잡다단한 이 역사들 속에서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개고기 안 먹는다. 한국 기독교만 먹는다.”


<성모마리아와 예수와 개, 1590년, 독일>

유럽 예술에서는 성모마리아와 개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종교 개혁 전과 후 형식이 조금 달라진다. 종교 개혁 전에는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혹은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와 강아지 혹은 성모마리아와 개가 함께 묘사되었다.


<개를 안은 성모마리아 청동상, 14세기(처음에는 15세기로 알려졌으나 14세기), 프랑스>

이 성모마리아 상은 아예 개를 안고 있다. 어린 양이 아니라 당나라 황실 여인 신발을 물어뜯던 것처럼 작은 랩독이다. 심지어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성모 마리아는 임신을 한 상태다


<개를 안은 마리아 청동상 측면, 14세기, 프랑스>

다른 방향 옆모습을 보면 옷 주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주름이 없는 쪽은 확실히 그렇다. 앞서 설명했듯 중세 시대는 카톨릭 독재시대였다. 그 날 입은 옷 색깔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잡혀가 화형을 당할 수 있을 정도로 엄격했다. 


<개를 안은 여자와 왕이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프랑스, 14세기,>

그런 중세 시대에 성모마리아가 개를 안고 있다는 것은 개와 성모마리아의 연관성을 카톨릭 교황청이 인정했다는 의미다. 개는 중세 시대 거울 케이스에도 자주 등장했다


<개들과 승마하는 여인이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14세기, 프랑스>

보통 구도는 비슷하다개를 안고 있는 여인과 그 여인을 에스코트 하는 듯한 남자가 있다. 중세 시대 피터지는 왕위 계승 싸움 속에서 교황이 인정하는 자만이 왕이 될 수 있었다.  


<개를 안은 여자와 남자가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프랑스, 14세기

개가 새겨진 성체함을 가진 일족은 우위를 차지했다. 여기까지 정리하자면 중세 시대 개가 예수님(신)과 지상의 왕을 상징한 것이다. 교황이 인정한 개의 신성성은 교황의 힘이 몰락한 종교 개혁 후 달라진다. 


<팔 모양 성체함 중 날개달린 개, 1230년,프랑스>

노골적으로 왕의 후견인임을 의미하던 개의 상징성은 친근함으로 바뀌었다. 왕의 대관식에 참여하던 개는 왕과 일상을 함께 하는 반려견으로 그려졌다. 개는 개지만 역할이 조금 달라졌진 것이다.

 

<1515년 즉위한 프랑수와 1세와 여동생 마가레트(여왕 마고) 1827~30년 작품, 영국>

마찬가지로 성모마리아와 개의 관계도 달라졌다. 아기 예수를 낳거나 어린 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 발치에 개가 함께 하는 구도에서 점차 젊은 아가씨와 개 한 마리를 그리는 구도로 바뀌기도 했다


보통 그럴 경우 초상화 제목은 마리아일 경우가 많았다.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실제 여성의 초상화일수도 있고 성모 마리아의 마리아일 수도 있다.


<개를 안은 마리아, 영국,  1777년>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강아지는 너무 많이 알려진 카톨릭의 상징이라 아기 예수를 빼는 방식으로 카톨릭의 종교 색을 없앤 듯하다. 그렇다고 개신교와 동방정교회 등의 기독교에서 개를 무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기독교에서 개는 신성하다. 

 

<Marie Émilie Coignet de Courson와 개, 프랑스, 1769년>

그 이유가 나는 유럽 기독교 문화의 바탕이 된 에트루리안 문화에 있다고 본다. 에트루라인은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개 숭배 신앙을 유럽으로 이어준 아주 중요한 연결 고리다. 


<손에 뱀을 든 날개 달린 천사 혹은 악마, 에트루리안, 기원전425~400년>


중세 시대 성모마리아와 개를 새긴 거울 케이스를 다시 보자. 이와 비슷한 거울 케이스가 에트루리안 시대에도 있었다. 에트루리안 시기의 거울 케이스에도 개가 등장한다.


<신을 경배하는 개가 새겨진 거울 케이스, 에트루리안, 6세기 추정> 

기원전 6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에트루리안 거울 케이스 중앙에는 신을 향해 뛰어오르는 개가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남자는 지팡이를 들고 있다. 지팡이를 든 남자? 성 크리스토퍼이다. 


<성 크리스토퍼를 조각한 성체함, 프랑스, 1375–1425년>

성 크리스토퍼는 보통 예수님를 어깨에 메고 지팡이를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로마 로물루스 형제에 의해 지배되기 전 그리스와 로마 지역에 제국을 세운 에트루리안의 기원은 시프러스인 듯 하다


<날개 달린 개 신앙이 유럽에 유입된 과정>

나중에 그리스로마 신화를 설명하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 중 개와 함께 묘사되는 신은 모두 시프러스 섬에서 출신이다.  


<거울 뒷면에 새겨진 에로스와 테우트라스 왕의 화해, 에트루리안, 기원전 4세기 추정>


에트루리안 지배층은 또한 터키(소아시아) 지역에서 믿은 낭두독(개 머리 깃발, 날개달린 개)을 믿었다. 낭두독은 지금의 터키와 당나라 시대 돌궐과 위그르에서 왕을 상징했다. 지상의 왕은 날개달린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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