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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41. 주나라 왕비가 흉노족인데 웬 중화사상 뽕?

중국 속 유목사

비단 찢을 때마다 왕을 홀리는 웃음을 지어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포사는 결국 왕비 자리를 꿰찼다. 그러자 열 받은 전직 왕비가 북방 기마 유목민인 견융을 끌어들여 주 왕조를 멸망시켰다.


여자 하나 잘못 만나 나라가 망한 건 맞지만 정확히는 비단 찢다 망한 게 아니라 흉노의 침입으로 망한 것이다. 견융, 개 견 자를 쓰는 것부터 범상치 않다. 개를 섬기는 오랑캐, 즉 흉노다.

 

<흉노 혹은 선비족 인형, 기원전 4~3세기>


여불위와 진시황의 민족인 초나라 묘족도 조상이 개였다. 주 나라 마지막 왕이 쫓아낸 왕비 역시 흉노족일 가능성이 높다. 고대 중국 유물에 개와 불새와 같은 북방 기마 유목 왕조의 상징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주나라부터 따지자면 모든 고대 중국 왕조가 북방 기마 유목민과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는 셈이다. 날개달린 말과 신성한 나무, 그리고 불새는 전형적인 북방 기마 유목민의 상징이다. 

<불새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불새는 개 머리를 한 새 혹은 사자나 남자 얼굴을 한 새로도 변한다. 즉 신성한 나무와 빛의 왕국을 믿는 기마 유목 민족의 종교다.


한 왕조 유물 중에 신성한 나무 위에 앉은 불새를 활로 쏘는 남자 모습이 있는 걸로 봐서는 키푸로스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 내부에 잔존한 흉노 세력을 마침내 몰아냈다고 선포한 것 같다. 

<한 왕조의 천마와 기원전 1세기 흉노의 천마>



쫓겨난 왕비의 한풀이로 주나라가 망하자 무려 550년 간 중국은 내전에 휩싸였다. 하루아침에 나라가 세워졌다 망했다는 춘추전국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약 3년 여간 이어졌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한국 국민이 얼마나 배고팠는지 떠올려 보자.

<불새를 겨냥하는 궁수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최소 그 상태로 550년을 서로 죽이며 지냈다면 살아남은 사람들 상태가 정상일 수 있을까? 재물 가진 지배층이야 살 길이 있다 쳐도 백성들은 달랐다.

육체적인 고통과 당장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처절한 배고픔 속에 지배층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 당연했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 

 

<중화사상 개념도>

그래서인지 이 시기 학자들은 중화사상을 퍼트렸다. “중국인 외의 모든 인간은 모두 짐승(오랑캐)! 그러니까 우리 중국 최고!” 라는 믿음이다. 이집트는 앗시리아와 싸웠고 고구려도 당나라와 싸웠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외교도 하고 교역도 했다. 중국 안은 인간 세계, 중국 밖은 짐승 세계라는 이분법적 믿음은 굶어 죽는 백성들에게 뽕 맞은 거 같은 정신적 만족감을 줄 수는 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우리는 중국인이니까 훗, 그나마 짐승 같은 저 놈들보다는 백 번 나아.”라고 자뻑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주나라 마지막 왕비가 정말 흉노족이라면 이 중화사상 뽕은 완전 헛소리다.

이런 선전·선동을 학문으로 승화시킨 것이 유교였고 그 대표 주자가 맹자와 공자였다. 늙어 죽을 때까지 떠돌이 생활을 한 공자는 한나라 유방이 유교를 국가 정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공자의 일생을 그린 책, 청,  17~20세기>


중화사상 역시 20세기 모택동이 국가정책으로 이용하지 않았다면 잊혀졌을 것이다. 한편, 중화사상 뽕으로 버티던 550년의 춘추전국 시대를 흉노설이 떠도는 진시황이 통일 했지만 얼마 안 가 내란이 터졌다.

고대 중국 역사는 계속 이런 식이었다. 내란 아니면 북방기마유목민이 쳐들어왔다. 결론은 중화사상 뽕이든 뭐든 백성들은 마음 편히 농사조차 짓지 못했다. 그래서? 또 굶어죽었다. 계속 굶어죽었다.

<부엌 목매달아 잡은 개 추정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여차하면 짐 싸 짊어지고 멀리 떠날 수 있는 유목민과 달리 농경민인 중국인 농사를 못 지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식량이 부족하면 뭐든 먹는다.

쥐 고기도 먹고 개고기도 먹고 사람 고기도 먹는다. 산둥성에서는 책상 다리 빼고 다 먹는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다. 중국 역사에는 가뭄이나 전쟁으로 성 안 인구가 반으로 줄었다는 기록이 끝도 없이 등장한다. 

<유민도, 명, 16~17세기>

 

시체를 먹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사냥해 잡아먹어 인구가 반으로  준 것이다. 한나라 유방이 적장의 고기를 먹거나 공자가 사람 고기로 만든 젓갈을 즐긴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당시 법 상 반드시 개고기를 먹어야 하는 피지배층이었다. 다행히 두 사람 다 사람고기도 좋아했고 개고기도 좋아했다. (모택동도 개고기는 좋아했다)

<장막 안에서 여인과 함께 있는 황제, 한, 기원전 232 경 추정>

백성들은 미국 드라마 ‘워킹데이’ 속 좀비들처럼 서로를 잡아먹고 먹혔지만 지배층은 달랐다황금과 권력을 쥔 그들은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지금과 같은 안락한 삶을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아 헤맸고 황제들은 금단을 먹거나 한식산을 먹었다. 초기 도교 도사들의 주요 고객도 이 황제, 귀족, 부호들이었다. 일반 백성들은 치료를 할 때나 만났다. 한의사도 겸한 그들은 개고기를 약으로 썼다. 

<목줄한 개 석상, 한, 1~2세기>

 

고대 개고기를 약으로 쓴 건 중국 한족만이 아니었다. 앞서 살펴봤듯 ‘개 새’를 믿은 지역 즉 개를 죽음의 신 아누비스로 숭배한 이집트, 여신 굴라와 신성한 개를 믿은 바빌로니아에서도 개고기를 약으로 썼다.

그러나 중국인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신전의 관리 하에 아주 엄격히 개고기를 약으로 사용했다. 중국에서는 아무런 제제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개를 잡아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신농'의 처방대로 약으로 썼다.


40. 중국의 식인풍습과 빛의 종교 '개 새'

종교

빛의 종교 속 ‘개 새’ 개념은 진· 한 시대 중국 대륙에도 전해졌다. 그게 중국 도교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에 단절되어 있었어도 중국 한족 지배층은 끊임없이 중국 외부와 전쟁 혹은 교류를 해야 했다. 

<불새와 지팡이 든 노인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문화와 종교도 그렇게 조금씩 중국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기원전 7세기 『도덕경』이란 글은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났을까? 노자조차 실제 인물인지, 아닌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확실치 않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중국 도교도 고통스러운 인생을 사는 인간들에게 돌파구를 마련해주었다. 그 돌파구는 신선이 되어 신선세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불새와 함께 있는 도교 여신, 명, 15~16세기, 영박>

‘개 새’를 믿는 빛의 종교는 고통과 죽음이 없는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있고 결국 마침내 빛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 주요 교리였다.

이것을 중국 도교는 신선 세계로 받아들인 것 같다. 신선이 되는 방법은 불로장생 약을 먹고 한 방에 신선이 되는 방법과 힘든 수련을 통해 되는 방법이 있었다. 

<불새와 날개달린 개, 생명의 나무가 새겨진 타일, 한, 기원전 206년~서기200년>

 

‘개머리를 한 새’를 믿은 지역에서는 당연히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은 좀 다르다. 초기에는 믿음이 약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당 이전까지 중국에는 식인 풍습이 만연했다.

2세기 중국 무덤 벽화 화상석을 보면 한나라 상류층 부엌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리에 걸린 죽은 물고기와 새 두 마리가 있고 도살하러 끌고 들어오는 소와 도살될 차례를 기다리는 개가 있다. 

<무덤  화상석 중  부엌 그림, 한, 2세기>

 

굶어죽기 직전의 좀비 상태인 백성들에게 백날 빛의 종교 ‘개 새’와 신성한 개에 대해 설명해 봐야 입 만 아프다. 21세기 베네수엘라와 북한처럼 굶어죽기 직전이라면 눈앞에 개를 잡아먹기 마련이다. 

이게 당 나라 이전 중국 백성들의 문화였다. 개고기를 좋아했다고 역사에 기록된 공자, 유방, 번쾌 모두 선비와 농민, 천민이다.


<공자의 초상, 당, 8세기>

 

당시 중국 법령 상 반드시 개고기를 먹어야만 하는 계층이었다. 그런데 공자가 개고기를 먹었으니 앞뒤 따지지 말고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 조선 지배층의 논리였다.

그 기록들이 조선 시대 개고기 역사로 남아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개고기를 먹은 근거가 되었다. 역사에 무지한데다 성의도 없는 이 주장을 21세기 대한민국도 따르고 있다.


한편, 사람이라도 잡아먹어야 하던 고대 중국 백성들은 물론 중국 지배층도 빛의 종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낯선 이방인이 종교인이랍시고 신의 말씀 어쩌구 하고 다니면 궁금하고 수상해서라도 잡아다 심문을 하기 마련이다. “그래, 네가 말하는 신의 섭리(도)란 뭔가?”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마니교 예배 장면, 광명왕국의 생명의 나무, 위그르  8~9세기>

 “태초에 개 새가 있었는데요. 빛이 있고 어둠이 있어요. 어둠이 빛을 몰아내서 빛의 세계로 들어가면 그 곳이 천당이고 어쩌구 저쩌구”하다 보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

“이 쉑히 사기꾼 아니야? 그래서 요점이 뭐야?!” 수 천 년 동안 조상 대대로 믿어온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황당하게 들린다. 일단 짧고 강렬하게 “한 마디로 영원히 잘 사는 겁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김홍도의 풍속화첩 속 신선 무리, 조선, 19세기~20세기 초>

 

“영원히 잘 산다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지배층은 귀가 번쩍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궁궐 기와에 사신도를 그려 넣었고 악착같이 불로초, 금단, 한식산을 찾아 먹다 비명 횡사했다.  

원래 신의 말씀과는 달라지는 것은 중국 도교 뿐 아니다. 중국 불교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부처님이 말씀하신 공의 세계는 고통도 없고 번뇌도 없는 세계를 말한다. 

 <공자, 노자, 부처가 그려진 청화백자, 청, 1780-1830>

 

이걸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 극락으로 해석했다. 열심히 수행을 하면 공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교리는 부처님 불단에 쌀과 꽃을 바치면 다음 생에 미남미녀로 태어난다는 식으로 해석되었다.

설법을 듣는 중생이 무식해서일 수도 있고 쌀과 꽃을 노린 땡중의 의도일 수도 있다. 중국 도교 역시 시대와 계파에 따라 달라졌다.

 

 < 불멸의 신과 신선들과 함께 하는 새, 청, 17세기>

 

진시황처럼 불로장생 약을 먹고 영원히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교가 있는가 하면, 노자처럼 도를 논하며 물 흐르듯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교도 있다. 현세에서 로또나 맞게 해달라고 비는 도교도 있다.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인 쿠샨 왕조처럼 ‘개 새’ 신앙을 비롯해 그 때까지 중국에 존재한 여러 잡다한 종교들이 골고루 섞인 것이 중국 도교 같다. 이 중 불로장생 약은 일반 백성들과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 연못과 새, 신비한 풀 혹은 나무가 묘사된 무덤 부장품,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마치 초호화 개인용 제트기 값이 얼마인지 우리같은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관계없는 것과 같다. 불로초, 금단, 한식산을 먹으면 영원히 산다는 말도 사는 게 지옥인 백성들 입장에서는 저주였다.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농경민이 농사를 못 짓는다는 건 굶어 죽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대로 영원히 살라는 건 영원히 배고프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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