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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왜 성모 마리아는 개를 안고 있었을까?

유럽사

한국 천주교는 천주교 역사 상 유일하게 개고기를 전통으로 인정하며 적극적으로 먹는 조직이다. 원래 천주교에서는 개를 신성하게 여겼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용과 싸우는 개가 그려진 메달 형태의 성체함, 프랑스, 1420년>

유럽사는 곧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역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종교 개혁 이전의 천주교와 종교 개혁 후의 개신교를 설명하면서 유럽사도 함께 알아볼 것이다.

<개고기를 모두 금지하는 세계 5대 종교>

유럽사는 곧 이슬람사, 미국사와도 이어진다. 복잡다단한 이 역사들 속에서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개고기 안 먹는다. 한국 기독교만 먹는다.”


<성모마리아와 예수와 개, 1590년, 독일>

유럽 예술에서는 성모마리아와 개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종교 개혁 전과 후 형식이 조금 달라진다. 종교 개혁 전에는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혹은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와 강아지 혹은 성모마리아와 개가 함께 묘사되었다.


<개를 안은 성모마리아 청동상, 14세기(처음에는 15세기로 알려졌으나 14세기), 프랑스>

이 성모마리아 상은 아예 개를 안고 있다. 어린 양이 아니라 당나라 황실 여인 신발을 물어뜯던 것처럼 작은 랩독이다. 심지어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성모 마리아는 임신을 한 상태다


<개를 안은 마리아 청동상 측면, 14세기, 프랑스>

다른 방향 옆모습을 보면 옷 주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주름이 없는 쪽은 확실히 그렇다. 앞서 설명했듯 중세 시대는 카톨릭 독재시대였다. 그 날 입은 옷 색깔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잡혀가 화형을 당할 수 있을 정도로 엄격했다. 


<개를 안은 여자와 왕이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프랑스, 14세기,>

그런 중세 시대에 성모마리아가 개를 안고 있다는 것은 개와 성모마리아의 연관성을 카톨릭 교황청이 인정했다는 의미다. 개는 중세 시대 거울 케이스에도 자주 등장했다


<개들과 승마하는 여인이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14세기, 프랑스>

보통 구도는 비슷하다개를 안고 있는 여인과 그 여인을 에스코트 하는 듯한 남자가 있다. 중세 시대 피터지는 왕위 계승 싸움 속에서 교황이 인정하는 자만이 왕이 될 수 있었다.  


<개를 안은 여자와 남자가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프랑스, 14세기

개가 새겨진 성체함을 가진 일족은 우위를 차지했다. 여기까지 정리하자면 중세 시대 개가 예수님(신)과 지상의 왕을 상징한 것이다. 교황이 인정한 개의 신성성은 교황의 힘이 몰락한 종교 개혁 후 달라진다. 


<팔 모양 성체함 중 날개달린 개, 1230년,프랑스>

노골적으로 왕의 후견인임을 의미하던 개의 상징성은 친근함으로 바뀌었다. 왕의 대관식에 참여하던 개는 왕과 일상을 함께 하는 반려견으로 그려졌다. 개는 개지만 역할이 조금 달라졌진 것이다.

 

<1515년 즉위한 프랑수와 1세와 여동생 마가레트(여왕 마고) 1827~30년 작품, 영국>

마찬가지로 성모마리아와 개의 관계도 달라졌다. 아기 예수를 낳거나 어린 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 발치에 개가 함께 하는 구도에서 점차 젊은 아가씨와 개 한 마리를 그리는 구도로 바뀌기도 했다


보통 그럴 경우 초상화 제목은 마리아일 경우가 많았다.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실제 여성의 초상화일수도 있고 성모 마리아의 마리아일 수도 있다.


<개를 안은 마리아, 영국,  1777년>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강아지는 너무 많이 알려진 카톨릭의 상징이라 아기 예수를 빼는 방식으로 카톨릭의 종교 색을 없앤 듯하다. 그렇다고 개신교와 동방정교회 등의 기독교에서 개를 무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기독교에서 개는 신성하다. 

 

<Marie Émilie Coignet de Courson와 개, 프랑스, 1769년>

그 이유가 나는 유럽 기독교 문화의 바탕이 된 에트루리안 문화에 있다고 본다. 에트루라인은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개 숭배 신앙을 유럽으로 이어준 아주 중요한 연결 고리다. 


<손에 뱀을 든 날개 달린 천사 혹은 악마, 에트루리안, 기원전425~400년>


중세 시대 성모마리아와 개를 새긴 거울 케이스를 다시 보자. 이와 비슷한 거울 케이스가 에트루리안 시대에도 있었다. 에트루리안 시기의 거울 케이스에도 개가 등장한다.


<신을 경배하는 개가 새겨진 거울 케이스, 에트루리안, 6세기 추정> 

기원전 6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에트루리안 거울 케이스 중앙에는 신을 향해 뛰어오르는 개가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남자는 지팡이를 들고 있다. 지팡이를 든 남자? 성 크리스토퍼이다. 


<성 크리스토퍼를 조각한 성체함, 프랑스, 1375–1425년>

성 크리스토퍼는 보통 예수님를 어깨에 메고 지팡이를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로마 로물루스 형제에 의해 지배되기 전 그리스와 로마 지역에 제국을 세운 에트루리안의 기원은 시프러스인 듯 하다


<날개 달린 개 신앙이 유럽에 유입된 과정>

나중에 그리스로마 신화를 설명하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 중 개와 함께 묘사되는 신은 모두 시프러스 섬에서 출신이다.  


<거울 뒷면에 새겨진 에로스와 테우트라스 왕의 화해, 에트루리안, 기원전 4세기 추정>


에트루리안 지배층은 또한 터키(소아시아) 지역에서 믿은 낭두독(개 머리 깃발, 날개달린 개)을 믿었다. 낭두독은 지금의 터키와 당나라 시대 돌궐과 위그르에서 왕을 상징했다. 지상의 왕은 날개달린 개였다.


76. 중세 유럽 예수님의 성체를 지킨 개

유럽사

개가 그려진 12세기 프랑스 십자가는 프랑스 왕족이 소장하던 예수님 Reliquary(성체함)을 장식한 십자가일 가능성이 높다. 성체함이란 예수님의 신체 일부를 보관하는 용기를 말한다. 


<유월절에 양 피로 개 집에 부적을 써주는 남자와 밥 먹는 개, 프랑스, 1160~1170년>

불교에서 부처님 사리를 신성시하며 사리함을 보석으로 치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세 천주교에서도 예수님 성체함을 숭배하며 아름답게 치장했다. 

천주교 국가의 귀족과 왕들은 성골함을 지키는 것을 성스러운 의무, 혹은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는 표시 정도로 여겼다. 중세 유럽에서 "우리 집에 성체함 있어" 그랬다면 그 집은 왕을 배출하는 왕족이었다. 


<고려 시대 부처님 사리함, 국립중앙박물관>


이 말은 거꾸로 하면 성체함을 가지고 있다면 왕권을 이을 자격이 있다는 말이었다. 당연히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왕족들은 마치 미래의 왕좌를 찾듯, 보물찾기를 하듯 성체를 찾아 다녔다. 

애초 목적이 약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동로마 지역(특히 콘스탄티노플)과 예루살렘을 심하게 약탈한 십자군 기사단이 애타게 찾던 것이 예수님의 성체였다는 설이 있다. 


<거룩한 가시왕관 성체함, 프랑스, 1390년대>

세계적으로 히트한 『다빈치코드』는 예수님의 가족사를 둘러싼 천주교 내의 음모를 다룬 책이다. 사실 이 책은 벌써 1980년대 유럽을 휩쓴 『성혈과 성배』라는 책과 아주 비슷하다. 


<고대 페르시아 금장식 중 날개 달린 개, 기원전 5~4세기>

성혈은 예수님의 피를 의미한다. 이걸 예수님 후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중세 유럽에서는 예수님 피 한 방울이 묻은 천 조각조차 예수님의 성체였다. 

중세 시대 성골함은 예수님 몸이 스쳐 지나갔을 법한 물건이라도 구해서 보석함을 만들어 장식한 것이다.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성체함을 감싼 비단 직물 무늬 중 날개달린 개, 스페인, 12세기>

15세기 종교 개혁 이전까지 카톨릭 국가(구교)에서 만든 성체함에는 거의 대부분 '개'가 그려져 있었다. 10세기 북부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상아로 만든 성체함을 보자. 정면에 떡 하니 개 두 마리가 있다.

<개와 새가 그려진 성체함, 상아, 북부 이탈리아, 10세기>

개 위에는 새도 있다. 기독교가 정식으로 국교로 채택되기 전부터 로마에서는 이미 날개 달린 개 신앙을 믿고 있었다. 이는 고대 그리스-로마 지역을 다스리던 에트루리안과 관련 깊어 보인다. 


3세기 로마 제국의 대리석 관을 보면 황족일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가족들과 개가 지켜보고 있다. 또 아이의 대리석 석관 측면에는 날개 달린 개가 새겨져있다. 

<임종직전의 어린 소녀와 개가 그려진 대리석 석관, 로마, 200~220년>


개가 죽음이나 죽은 후 관을 지킨다는 개념은 에트루리안 시대부터 로마 제국 시대까지 지배층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니 10세기 북부 이탈리아 지역에서 예수님 성체함에 개와 새가 나타난 것도 그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에트루리안 비석 임종 순간, 로마, 기원전 490-470년>

그런데 11세기 이후 프랑스 왕조에서 만든 성체함에서는 거의 100퍼센트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개가 그려졌다. 그 중 일부가 유월절 개 집에 양 피 부적을 그려주는 모습이 그려진 십자가다.  


<임종직전의 어린 소녀가 그려진 대리석 석관 측면, 로마, 200~220년>

14세기 프랑스 발부아 왕조 가문에서 예수님의 가시나무 관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정확히는 가시 한 개) 특별히 제작한 성체함이다. 화려하기 그지 없는 성체함 뒷면을 보자. 


<거룩한 가시유물 성체함 중 뒷면의 성 크리스토퍼, 프랑스, 1390년>


성인 미카엘과 성인 크리스토퍼가 있다. 성인 미카엘은 용을 죽이고 있다. 미카엘은 프랑스 국왕을 지키는 수호성인이었다. 중세 시대 용은 악마였다. 개가 용을 물리쳤다면 개는 성인이다. 


<악마를 죽이는 성인 미카엘, 1475~1500년>


성인 크리스토퍼는 고대 안티오크 교회에서 개 머리를 한 성인이었다. 개 머리를 한 성인이 아기 예수를 어깨에 메고 있는 모습이 성체함 뒷면에 그려진 것이다. 그러면 이 성체함에 보관되었다던 가시나무 관의 일부 (가시 한 개)는 어디에서 왔을까? 


<개 머리를 한 성인 크리스토퍼(기원전 3세기), 러시아 정교회, 17세기>

 

콘스탄티노플에서 왔다. 프랑스 왕 루이 9세는 1239년 십자군군대가 한창 약탈하던 콘스탄티노플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썼다고 추정되는 가시덤풀을 샀다.  

십자군 전쟁 중 가시나무 관을 사는데 성공한 루이 9세는 가시나무 관을 로마 교황청에 선물했다. 로마 교황청은 가시나무 관의 가시를 하나 하나 해체해서 프랑스 주요 왕족에게 하나씩 선물했다. 


<루이 9세의 가시나무 관 증정식과 해체식,1239년 추정, 1490년 발행>


보물로 화려하게 치장한 성체함을 만든 발부아 왕조의 조상도 그 때 가시 하나를 받는데 성공한 유력 왕족 중 한 명이었다. 가시나무관에서 가시를 해체하는 작업은 루이 9세기 지켜보는 가운데 로마 고위 성직자가 직접 주재했다.


<가시나무 성체함, 1170년> 


교황 혹은 추기경으로 추정되는 천주교 고위 성직자가 직접 가시나무 관 증정식과 해체식을 주재한 점과 이미 1170년에도 가시나무 관을 보관하기 위한 성체함이 있던 점으로 보아 예수님이 쓰신 가시나무 관은 반드시 찾아야 하는 성물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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