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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114.교황님, 신부님이 개고기 좀 그만 먹게 해주세요!

종교

우리나라 개고기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계층이 1960년대 농촌 일꾼이다. 1960년 대 복날에 개고기를 먹은 주요 계층은 일부 천주교, 개신교 신자와 가난한 농촌 노동자들이었다. 이들 주역은 1960년대 농촌에서 만났다.    

1980년대까지 우리 사회에는 개고기 금기가 남아있었다. 개고기 금기는 산업화 이전인 1960년 대에는 더욱 강했다. 특히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정한 개고기 금지법이 강하게 남아 있던 시기였다


<개고기 금지법을 만든 이승만과 개 반 마리는 기본으로 먹은 노기남 대주교(친미파와 친일파), 1948년>

1920~1940년대 생 어르신 중에 복날 개고기를 먹었다고 한 분은 1960년대 시골 농촌에서 머슴을 살았다는 분이 유일했다. 2000년대 이후 쏟아진 복날 개고기를 먹는 전통에 대한 기사를 봐도 1960~1970년대 힘든 농촌 노동자들이 삼복더위에 영양보충을 위해 개고기를 먹었다는 내용이 많았다

개고기 역사에서 왜 1960년대 한국 농촌이 중요한가 하면 천주교, 개신교가 활발하게 농촌 선교 운동을 하던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농촌 선교 운동은 농촌 계몽 운동과도 관련 깊다

<추기경 비서를 지낸 모 신부가 여름 수련회에서 개고기 먹은 일화, 2006년 5월>

농촌 선교 운동은 시골 구석구석에 세워진 개척 교회를 세우는 사업 외에도 여름 성경 학교 등의 놀이 선교로도 이루어졌다. 여름 방학에 집에서 심심해하던 아이들은 아직 교회에 다니지 않더라도 성당과 교회에서 주관하는 여름 수련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주로 시골로 떠나던 교회와 성당 수련회에서 뭘 했냐? 개를 잡아먹었다.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는 전 세계 기독교 중 유일하게 개고기를 먹는 종교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가 정통 기독교에서 한참 벗어난 신흥 종교라고 할 수 있다


<1980년 여름에 개 8 마리를 먹은 노기남 대주교, 중앙일보, 1981년 1월 7일>

그렇다면 왜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에서는 개를 잡아먹을까? 한국 무교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개고기를 먹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한국 기독교는 사상적으로 좌편향 된 경우가 많았다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는 1910년 일본 식민지 지배와 동시에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되었다. 1911년에는 청 왕조가 무너졌고 1917년에는 소련이 공산화되었다


<국가 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천주교 수원 교구, 카톨릭평화신문, 2019년 8월 18일>

무슨 음모론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 역사는 세계 공산화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유독 중국 공산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나라였다. 


천주교와 개신교 역시 중국 공산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 천주교가 왜 유독 민주화 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도망친 개를 주인 집에 찾아가 잡아와 잡아서 먹은 성당 수련회, 2006년 5월>

정말 중국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았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천주교 신부님과 수녀님, 목사님들이 개고기를 아주 좋아한 것만은 사실이다

개고기 좋아하는 신부님수녀님목사님이 여름이면 애들을 모아서 산으로 들로 수련회를 떠났다애들한테 뭘 먹였을까? 개고기를 먹였다


<부산 마리아 수녀회에서 개고기 판매. 2011년>

어느 유명한 천주교 신부님은 여름 수련회에서 애들을 데리고 시골 장에 가 살아있는 개를 사서 끌고 온 다음 때려죽여서 먹은 이야기를 재미있는 추억이랍시고 떠들었다

장터에서 사온 개가 줄을 끊고 필사의 탈출을 했는데도 신부님은 여유만만 했다고 한다. 신부님의 예상대로 과연 도망친 개는 자신을 판 주인 아줌마 집에 돌아가 떨고 있었다. 신부님은 도망친 개를 다시 수련회 건물로 끌고 와 때려 죽여서 맛있게 먹었다. 


<개고기 전도사 수원교구 이성효 신부, 경인일보, 2011년 5월 16일>


애들이 뭘 배웠을까? 개신교회 수련회 모습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교회 수련회 건물이든 기도원 건물이든 그 곳에서는 개를 잡는다. 이게 1910년 이후 한국 기독교 여름 수련회의 모습이었다. 마침 시기도 여름 복날과 여름 성경 학교 시기가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학생 여름 교회 수련회에서 개를 잡아먹은 일화는 개신교와 천주교 역사에 고이고이 남아 지금도 개신교와 천주교에서는 복날 개를 잡아먹는 걸 전통으로 여긴다


<한국 천주교 신부님의 개고기 식용 중단을 요구한 플랭카드, 오마이뉴스, 2008년11월 8일>

전통은 미국에서도 이어져 한국 교회 기도원에서 개를 잡아먹다가 걸려 전 미국인을 경악하게 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얼마나 많이 잡아먹었으면 미국에서 한국을 콕 찍어서 , 고양이 식용 금지 결의안이 통과되었나


농촌 계몽 운동은 도시의 지식인들이 복날이 낀 여름 한철 시골로 자원 봉사를 하러 와서 농사일을 돕고 농민과 농가 어린이들을 가르치던 운동이었다

<1961년 수원 대교구장은 프랑스외방선교회 신부에게 강제로 개고기를 먹였다,  평화신문, 2007년 3월 4일>

도시의 지식인들의 대표 단체가 대학생 농촌 동아리였다. 농촌 동아리 대학생들은 어린 농촌 아이들을 모아 놓고 데모할 때 부르는 노래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학생 운동하던 애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1960년 학생 운동의 주요 내용이 뭘까? 친일파 반대, 미군 철수, 남북통일 등이다. 개고기 역사를 연구하는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내용이 친일파 반대, 미군 철수다. 그래, 백 번 양보해 친일파 증오하고 미군 주둔하는 거 반대할 수 있다


<친일 인명사전에 등록된 노기남 대주교, 오마이뉴스, 2009년 11월 11일>

나라를 일본 놈들에게 팔아먹고 주권 국가에 남의 나라가 주둔하는 건 기분 나쁘다. 기분 나쁜 건 감정이다. 외교는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안 망하고 버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해방 후 74년이 지난 지금까지 극단적인 반일을 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마찬가지로 미군이 주둔해서 우리가 얻는 이득이 훨씬 큰데도 미군 철수를 외치는 건 우리나라를 위하는 게 아니다.


<노기남 대주교에게 친일을 허락한 교황 비오 12세는 공산주의자, 나치 혐의도 받았다>

우리나라를 위하는 게 아니면 어느 나라를 위하는 일인가중국을 위하는 일이다...중국 공산당을 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어쨌든 간에 우리가 일본과 미국과 싸우면 제일 이득을 보는 나라가 중국이다

한국인이면서 한국을 망치는 이런 일들을 일찍부터 사회 운동, 민주화 운동, 농촌 계몽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해 왔던 것이다복날 개고기 식용 문제도 마찬가지다

<개고기로 민족의 동질성 회복하자는 통일뉴스, 2015년9월 14일>

음식문화든 주거 문화든 한국인이라면 한국인을 위한 문화 발전에 힘써야 한다개고기를 먹어서 한국 국익에 도움 되는 것이 있다면 한 가지만이라도 알려주기 바란다

개고기로 민족 공통체 회복? 개고기로 한국, 중국(공산주의 독재), 북한(공산주의 독재) 동북아 개고기 경제 공통체 형성? 이게 좋은 건가? 공산주의 독재 국가와 하나 되는 것이? 

3. 개고기 먹는 가짜 동학 후계자는 친중파?

종교

동학이 개고기를 먹지 않은 세 가지 증거 


동학 신앙을 믿고 동학 정신을 믿는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동학 신자가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동학 신앙을 버리는 것과 같았다. 적어도 일제시대 조선 인구의 25% 혹은 해방 800 명의 조선인은 개고기를 절대 먹지 않았다

동학이 절대 다수 조선 백성들이 지지를 했다는 사실을 통해 조선 말기 대다수 백성들이 일상적으로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있다. 그 증거는 대략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평화 회의>


첫 째 헐버트의 증언. 헐버트가 누구다? 고종 황제가 국제사회에서 조선 독립을 촉구하기 위해 헤이그에서 열린 평화 회의에 특사. 미국인 헐버트도 조선인은 개고기를 일상적으로 먹지 않았다는 증언을 했다

그의 책인 『대한제국사』에서  조선에 기괴한 음식이라고는 개고기 정도인데, 그나마 가장 천한 계층이 먹도록 극도로 되어 있다고 한 것이다.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고 했다. 

  

<헐버트가 쓴 책 중 개고기에 관한 부분>


왜? 금기가 있었으니까. 이게 핵심이다. 조선 시대 개고기에는 금기가 있었다. 개고기 먹으면 재수없다는 금기. 둘째, 일제의 기록인 조선가축통계」. 당연히 일제 시대 발행된 조선가축통계」에도 개는 조선인이 기르는 가축이 아니었다


일제는 왜 통계에 개고기를 넣지 않았나? 


이 시기 일제는 조선인을 개 잡아 먹는 야만인이라고 신나게 조롱했다. 만 일제의 주장한 대로 조선인이 농경민이고 개가 가축이라면 통계에 잡히지 않았을 리가 없다.  개가 실제 조선인이 먹는 가축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제도 통계에 넣지 못한 것이다 .


<일제가 발행한 가축 위생 통계>


셋째 이승만 대통령이 정한 개장국 금지법. 1954년 6월 경향신문 기사에 의하면 당시 조선에는 개장국 금지법이 있었다. 개는 동물보호의 견지에서 보호되고 있고 개장국은 당국에서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경찰에게 신고하라는 내용이다. 

개장국을 금지하니 이름을 보신탕으로 바꿔 몰래 팔았던 모양이다. 헐버트의 증건, 일제 시대 정부 기록, 이승만 대통령의 개장국 금지법에 의해 우리 조상들이 결코 개고기를 일상적으로 먹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개장국 금지법 


그렇다면 조선 시대 가장 천한 계층이 먹도록 극도로 제한 되었고 해방 후에는 개장국 금지법이 있을 정도로 보호하던 개의 고기가 어떻게 해서 우리 민족의 전통 음식으로 둔갑할 있었을까? 가짜 동학이 진짜 동학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1954년 6월 60일 개장국 금지 질의>


중국 사대주의와 중국 공산당 정신이 진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즉 친중파의 승리다. 일제는 식민지배에 방해가 되는 동학을 변질시켰다. 동학과 비슷한 관변 단체를 만들어 적극 지원한 것이다. 

그 예가 (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시천교, 일진회, 보천교, 증산교, 원불교 등등이다. 그들이 진짜 동학 정신을 계승했는지 알아보려면 딱  '개'  하나만 보면 된다. 동학 신앙을 믿고 동학 농민 운동 정신을 계승했다면? 


개고기 안 먹는 천도교 


당연히 개고기는 먹지 말아야 한다. 선배 신자는 개고기로 고문당하며 신앙을 지키다 죽었는데 후배라는 인간이 신나게 개고기를 먹는다면 그건 뭐가 이상한 상황이다. 가짜다. 현재 남한에서 동학을 계승했다고 하는 종교 단체  천도교 관계자 분을 만나 인터뷰를   있다 


<1949년 5월 증산교 교주 강일순. 강일순의 호가 증산이다>


  말씀에 의하면 천도교는 간부 대부분이 북한에 살다 김일성에게 숙청되는 바람에 남한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원래부터 개고기는 절대  먹는다고 했다

 그런지는 모르지만 동경대전』  나오는 식용 금지 동물이 개라고 믿으며 절대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증산교는 취재를 못했다. 전화로 취지를 말씀드리니 취재 거부를 했고 만일 증산교에서 개고기 먹는 가지고 글을 쓰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고 협박했다


개고기 먹는 증산교와 원불교 


증산교 교주가 개고기 좋아하는지 아닌지 여부는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기 바란다. 역시 동학 계열로 분류되는 원불교에서도 개고기에 호의적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개고기는 우리 전통이라는 원불교 신문 기사. 1984년 2월 16일>


원불교 창시자는 증산교와 관련이 있다고 하나 육식을 멀리하고 도를 닦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 원불교 지도자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하지만 일반 신자들까지 개고기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원불교에서는 개고기를 우리 전통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진짜 동학은 개고기를 안 먹고 가짜 동학은 개고기를 먹는다. 개고기는 고대 중국과 중국 공산당이 만든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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