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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142.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개고기 동북공정'

조선

개고기는 중국 문화다. 중국이라고 다 같은 중국이 아니다. 중국 역사에는 순수 중국 한족 역사와 기마 유목 왕조 역사가 섞여 있다. 단적인 예로 원나라는 중국사에 속하지만 정확히 중국 역사는 아니다

기마 유목 왕조 국가인 몽골 역사다. 청나라 역시 중국사에 속하지만(청사공정 이전에는 중국사에서 제외) 중국 역사가 아니다. 기마 유목 왕조 국가인 만주족의 역사다중국 역사에는 이민족인 기마 유목 왕조에게 지배당한 역사도 섞여 있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과 조선은 개고기를 좋아한 공자를 숭배. 중공의 공자학원은 전 세계에서 중국 문화를 가르친다>


이 굴욕적인 역사적 사실을 중국은 뇌피셜(자의적인 해석)로 간단히 해결했다. 몽골? 몽골도 중국 속국이었어.” “만주? 만주도 중국 속국이었어.”고구려? 중국 속국이었어!” 역사적 근거는 없다

세뇌가 안 되는 인간들은 개 때려잡듯 학살 하거나 위그르 집단 수용소 같은 곳에 보내 장기를 털어버리면 해결되었다. 그 결과 조선족을 포함한 모든 중국인은 오직 중국 공산당이 정한 역사만 앵무새처럼 따라한다


<고구려에 이어 백제까지 중국 역사에 편입시킨 중국 공산당, 동아일보, 2017년 9월 13일>


지나가는 조선족 붙잡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누구 역사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중국 역사라고 할 것이다그럼 중국 한족 왕조와 기마 유목 왕조는 뭐가 달랐냐? 개고기가 달랐다. 기마 유목 왕조 국가는 절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모든 기마 유목민은 개를 가족처럼 사랑했다. 사자 개는 기마 유목 왕조의 상징이자 왕을 상징하는 옥새와 같은 존재였다. 중국 한족은? 개를 가축으로 키워 잡아먹었다. 개는 가축이자 식량이었다. 조선족이 신처럼 따르는 중국 공산당은 고대 중국으로 돌아가자는 복구 운동을 했다


<조선족 무형문화유산전람관에는 개고기가 전시되어 있다, 월드코리안뉴스, 2010년 12월 14일>


개고기? 당연히 가축이자 식량이다. 한국에 집단 거주한 조선족이나 중국 공산당의 지시에 따르는 한국의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도 같은 말을 한다. ‘개는 가축이자 식량이라고. 앵무새처럼 말이다. 역사적 근거? 그 딴 거 필요 없다


개는 우리 조상들의 가족이자 수호신이었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매국노로 몰면 입을 다물었다. 이게 1997년 이후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중국 공산당의 개고기 동북 공정의 실체.


<중국 공산당의 동북공정에 따라 개고기 불간섭 선언을 한 한국의 사회 지도과 각계 각층의 사람들,  2001년 12월, 오마이 뉴스>


중국 공산당은 원나라와 청나라까지 모두 중국이었다고 우기지만 순수 중국 역사와 기마 유목 왕조 지배기를 구분하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개만 보면 된다. 개고기를 신나게 먹은 시기는 중국 한족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고 봐야 한다. 딱 한나라 대까지다

유방이니 번쾌니 하는 그 시기다. 개고기를 금지하거나 개고기 먹기를 꺼려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왕조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거나 영향을 받은 시기다. 516국이니 수, 당이니 하는 시기부터다. 이렇게 따지면 순수한 중국 한족 역사는 한나라와 명나라, 중국 공산당 지배기 정도로 국한된다


<왕소군의 고향 한나라는 개고기를 먹었고 한나라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흉노를 개를 숭배했다>


이민족의 지배기 동안 중국 한족은 이를 박박 갈며 오랑캐 지배자 놈들을 욕하며 버텼다. 원나라 대 한족은 원나라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이 사람들이 거의 노예 취급을 받았다. 이 중 한 명인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을 때 중국 한족은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이 때 같이 만세를 부른 사람들이 고려에도 있었다. 이성계 집안이었다. 고려 왕실은 원황실과 한 집안이었다. 고려는 원 황제의 사위의 나라였다. 고려 왕실은 원 황족과 같은 황금씨족이었다. 원 황실에서는 공주를 시집보낼 때 급이 맞는 집안을 골라 보냈다


<고려 충렬왕의 장모인 원 제국 쿠빌라이 칸의 황후, 14세기>


고려 왕족이 원 황실과 사돈을 맺을 만한 급이었던 것이다. 명나라가 원 왕조를 중국 땅에서 몰아냈을 때 고려의 우왕은 이성계를 요동으로 보내 후방을 치게 했다. 위화도 회군? 위화도 뒤통수. 장군이 왕의 명령을 안 듣고 돌아와 왕을 몰아낸 사건이 자랑스러운가

만약 우왕의 명령대로 이성계가 요동 땅을 정복했다면 만주는 우리 땅이 되었을 것이다. 또 북원(전 원나라) 군대는 후방을 지원 받아 명나라 군을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몽골 고원으로 쫓겨난 북원이 다시 중국 대륙을 지배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121. 한민족 파괴자 조선, 고려가 개를 먹어?

조선

조선 왕조를 비판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친일파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역사를 사랑한다.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 한국인은 흥의 민족이다. 흥이 나면 불같이 확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론 불같이 훅 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실망할 건 없다. 또 어디선가 불같이 훅 일어날 것이고 같은 한국인으로서 뭉치면 되기 때문이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중요한 이유. 우리가 뭉칠 수 있는 힘이기 있기 때문이다. 

<단군을 그린 산신도, 1900-1925년>

한국인이라는 의미는 혈연적인 정의로 국한할 수 없다. 알타이-시베리아 지역의 기마 유목 왕조는 인종과 언어는 달랐지만 하나로 연결되었다. 초기 에트루리안 왕조의 지배층 중에는 아프리카 흑인도 있었다

역사와 문화(종교 포함)를 공유한다면 같은 민족이다. 한국인의 정체성만 가지고 있다면 한반도든 중국이든 지구 어디든 우리는 한국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단군의 홍익인간을 높이 평가한다.


<선비족 무덤에서 나온 벽화 중 수렵도 , 몽골, 337-370년>

그런 단군을 짐승이라고 욕하며 부정한 인간들이 있다. 일제 시대 일본 놈들이 그랬냐고? 아니, 조선 왕조다. 우리는 일본 식민지 시절 우리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 문화를 파괴했으며 역사를 왜곡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미 500년 전부터 조선 왕조는 한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파괴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조선 왕조가 500년 동안 작업해온 한민족 파괴 작업에 숟가락을 얹고 거기에 문화적 인종론'이라는 양념을 팍팍 친 것 뿐이라고 볼 수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 중 수렵도, 고구려, 5세기>

조선 왕조의 건국 세력은 고려까지 존재한 모든 역사서를 불태웠다. 그리고 500년 내내 강력한 검열을 통해 (학문)의 독재를 했다. 그 결과 조선은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왕조가 되었다.

조선은 개국을 하자마자 대대적으로 고려 역사를 정리해 고려사를 편찬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조선 왕조가 적폐로 규정한 고려 역사를 조선 왕조가 썼다는 소리다. 좋은 말을 했을까? 온갖 잡소리에 욕이란 욕은 다 썼다


<조로아스터교에서 신으로 추앙받는 네눈박이 몽골의 전통 개들>

고려가 좋은 왕조라면 조선 개국은 명분을 잃는다. 이성계가 쿠데타를 일으킨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는 고려 왕조가 반드시 천하의 샹샹바가 되어야 했다. 고려 왕조의 나쁜 점을 구구절절 써 놓은 역사책이 고려사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이 고려사를 정사로 취급하며 고려 역사를 다룬다. 왜곡된 고려 역사를 배울 수밖에 없다. 그 대표인 예가 개고기다. 한국 학계가 얼마나 심각하게 역사 왜곡을 하고 있는지는 고려의 개고기 식용 설만 봐도 알 수 있다


<고려 왕실에서 사용한 청자용 모란무늬 합과 받침대 중 강아지 손잡이, 고려, 13세기>

고려사에는 개와 개고기에 대한 몇 구절이 나온다. 개고기를 먹은 인물은 몽골 침략기에 뒤통수를 치거나 무신 집권기에 야비한 행동을 한 나쁜 놈들이다. 나쁜 놈들을 묘사할 때 개고기를 먹었다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쓴 것이다


이걸 한국의 학자들은 긍정적으로 취급했다. 고려의 나쁜 놈인 아무개가 개고기를 먹었으니 개고기는 고려의 전통이라는 결론에 도출한 것이다. 상식적인가? 또 아무 맥락 없이 단지 가 나왔다는 이유로 중간 검증 과정은 생략한 채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경우도 있다.


<양을 치고 양고기가 주식인 몽골인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몽골, 1920경>

고려사에는 몽골군이 침입해 개와 닭까지 절종시켰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구절은 고려인은 개고기를 먹었다는 결론의 근거가 되었다. 이해가 되는가? 단지 고려 개경에 엄청 많은 개와 닭이 있었고 그 개와 닭을 몽골군이 죄다 죽였기 때문에 고려인은 개고기를 신나게 먹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고? 그 정도로 개를 많이 키울 이유는 식용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거짓말 같지만 이게 모 식품영양학과 논문 내용이다. 개는 가축이라는 대전제가 뇌에 박힌 채 역사를 연구하니 결론이 이 모양인 것이다. 더 창피한 것은 이 논문이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은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고려인이 해산물 위주의 채식을 했다고 한 서긍의 선화봉사 고려도경>

이 식품영양학과 연구원의 논문은 2000년 이후 한국의 언론계, 출판계에 퍼졌고 당연한 수순처럼 인터넷에 무차별 살포되었다. 그 결과 고려인은 개고기를 먹었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처럼 굳어지게 되었다근거는

고려사에 나온 몽골군이 고려의 개와 닭을 절종시켰다는 단 한 문장이다. 이런 비합리적인 추론과 연구는 고구려 고분 벽화와 개고기 식용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고구려 고분 벽화 중 안악 3호 분 부엌 그림 중 고깃간에 걸린 짐승이 목매달아 죽은 개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안악 3호 분 중 부엌 그림 중 고깃간, 고구려, 357년>

이 주장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전혀 없다. .. 진짜 ..도 없다. 어떤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안악 3호분 고깃간 그림에 걸린 짐승이 개고기고 그것이 고구려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은 증거라고 휘갈긴 주장이 전부다

그런데도 이 주장은 역시 언론계와 식품영양학계, 인터넷 상에 무차별 살포되었다. 고구려 벽화 전문가가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개는 무덤 주인만큼이나 중요하게 취급되던 반려견이었으며 개는 영혼인도 동물 역할을 했다고 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안악 3호분 고깃간 옆 부엌에는 개 2마리가 서성이고 있다, 고구려, 357년>

영혼인도 동물은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안내해주는 역할이다. 그러니까 저승사자 같은 역할이다. 상식적으로 무덤을 만들면서 저승사자를 잡아먹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을까? 알타이 샤먼에서 개고기를 먹으면 재수가 없고 벌을 받는다고 믿는다.

역시 개가 저승으로 안내한다고 믿은 조로아스터교에서는 개고기를 먹으면 지옥에 간다고 믿는다. 조로아스터교는 알타이 지방인 서 몽골에서 유래되었다. 고구려 고분 벽화 속 개들은 고구려인이 개를 신성하게 여겼으며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안악 3호분 주인과 원나라 귀족 무덤 주인 부부의 초상>

역시 고구려 벽화 전문가는 안악 3호분 고깃간에 걸린 목매달린 짐승은 사냥한 노루라고 주장했지만 귀 기울이는 이는 별로 없었다. 고구려가 개를 숭배한 사실은 같은 시기 개를 때려잡아 먹은 한나라와 명확히 비교된다

한나라에서는 개를 때려잡아 먹었다. 현재 중국의 개고기 축제와 북한, 한국의 조선 족 개 도살자가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과연 누가 한국의 개고기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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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조선족이 개고기를 안 먹으면 티베트가 독립?

중국 공산당

1911년 이후 본격적으로는 1921년 이후 중국 공산주의를 추종한 세력이 조선족(독립운동가 포함), 북한, 남한의 공산주의자들(민주화, 종교 세력)이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개고기다

얘네들이 개고기에 목숨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적어도 1921년 이후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서 개고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중국 공산주의 혁명의 상징이다개고기로 하는 성찬식이자 이념 전쟁이다.


<마오쩌둥의 명령으로 시작된 문화혁명, 1968년 5월>

청 왕가 멸망 후 중국의 많은 지도자(군벌)들이 앞 다투어 세력을 키웠다. 그 중 대표가 국민당과 공산당이었다. 사실 공산당은 국민당에 비해 쩌리였다

마오쩌둥은 소련과 일본의 팽창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 덕분에 쩌리에서 일약 국가 지도자급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마오쩌둥 식 공산주의 독재의 정점은 1966~1976년까지 불어 닥친 문화혁명이다.

 

<1949년 중곡의 침략으로 망명을 떠난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개>

마오쩌둥은 쩌리답게 공산주의 혁명 이론 따위 지키지 않고 제 멋대로 독재를 했다. 독재를 하다 보니 닥치는 대로 정적을 죽였다. 더 이상 죽일 명분이 없자 대중을 선동해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의 대학살을 했다

인류 역사 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인간은 개를 사랑한 칭기즈칸이 아니다. 개고기 먹은 마오쩌둥이다. 그는 최소한 수 천만 명의 중국인을 죽였다. 문화혁명은 단순, 무식, 잔인했다. 일단 그들이 정한 ‘이 있고 이 있다


<문화혁명 당시 학살을 주도한 노동자, 여성, 어린 학생들. 연합뉴스 2016월 5월 12일>

선은 마오쩌둥이고 악은 마오쩌둥에 반대되는 모든 것이다. 문화혁명 부대는 마오쩌둥 어록을 들고 다니며 시시콜콜 반동분자를 색출해서 죽였다. 마오쩌둥 말씀에 따라 어린 학생이 선생님 목을 자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등 패륜의 극을 달렸다

5천 년 찬란한 중국 역사, 문화, 지식이 모두 반동이 되었다. 문화혁명 부대는 탈레반보다 더 악랄하게 중국 문화유산을 파괴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보다 더 꼼꼼하게 역사책을 불태웠다. 그나마 양식 있고 똑똑한 중국인은 다 죽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혁명 당시 반동 분자로 찍힌 처형 직전의 중국 지식인들>

중국인 수준이 낮아진 이유다. 조선족도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중국 공산당 편이 아닌 조선족은 다 죽였다. 부주석까지 오른 조남기조차 좌천되어 가택 수색을 수도 없이 당했다. 항일 독립운동을 했어도 미국, 소련, 국민당과 관련 있는 조선족은 다 죽였다.


그 결과 현재 조선족 자치구에 사는 독립운동가는 모두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은 중국 공산주의자들이다. 조선족은 문화혁명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중국인 중 하나다문화혁명 당시 중국은 위그르, 티베트, 조선족 등 중국 소수민족의 역사와 민족 유산 말살 정책을 폈다


<세상 모든 개의 아버지라 불리는 티베트탄 마스티프인 사자개는 티베트의 상징이다. 출처 : National Purebred Dog Day>

그나마 남아 있던 조선족의 한국인으로서의 민족의식은 철저히 말살되었다. 1941년에 태어난 조선족이 한국 역사와 문화, 언어를 알았다가는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뇌를 포맷할 수 밖에 없다. 살기 위해서 말이다. 

개고기가 한국인의 전통이 아니라고 말한 조선족 역시 죽었다. 살아남은 모든 조선족은 개고기가 전통음식이라고 외쳐야 했다. 깨끗하게 포맷된 그들의 뇌에는 개고기는 한국인의 전통이라는 문구가 문신처럼 새겨졌다.


<1949년 이후 티베트, 위그르 인이 따라야 했던 중국의 개고기 식용 정책의 표본, 한나라, 2세기>

현재 조선족은 한민족에게 개고기 금기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다. "쉿...알면 죽어..." 이거다. 1950년대 이후 중국은 이미 미국보다 더 극단적인 용광로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용광로 정책은 중국 공산주의 세뇌즉 중화사상이었다중화사상에 의하면 개고기는 전통음식이다. 동시에 55개 중국 소수민족 중 조선족만은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개고기를 먹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개와 함께 사진을 찍은 티베트 카르마파 달라이 라마의 아들, 1952년> 

한민족의 개고기 금기에 대해 설명하려면 알타이 샤먼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중국 샤먼은 복 날 개피를 문에 발라 액막이를 했지만 알타이 샤먼에서는 개를 숭배했다는 차이를 설명해야 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기마 유목 민족 왕조였다는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그 많은 개들은 생전에 무덤 주인이 사랑한 반려견이자 영혼인도동물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


<티베트 카르마파와 비슷한 구도로 그려진 단군과 삽살개장천1호분, 5세기 후반>

그렇게 되면 중국 공산당이 서북공정에 이어 심혈을 기울이던 동북공정은 끝장난다. 고구려는 중국 한족 왕조와는 전혀 다른 기마 유목 왕조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고구려, 위그르, 티베트가 같은 기마 유목 왕조였다는 결론은 위그르, 티베트 , 몽골, 만주 독립과도 연결된다.

고구려, 티베트, 위그르는 중국과 생판 남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1953년 휴전한 한국 전쟁은 중국 공산당에게 매우 중요한 전쟁이었다. 한국 전쟁은 중국과 소련이라는 공산진영과 미국과 유엔이라는 자유진영이 치른 대리전이었다


<지금도 티베트 인은 개와 전통을 지키고 있다, 출처 : Sciencemag.org>

대리전에서 죽어난 것은 조선족 군대와 북한 군대, 300만 명의 한국인 민간인이었지만 말이다. 만약 중공군(실은 조선족)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휴전 없이 북한까지 자유민주국가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조선족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고 중국에서 분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족이 분리되었다면 마오쩌둥은 1970년대 후반까지 독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오쩌둥이 없었다면? 티베트와 위그르, 몽골, 만주는 애저녁에 독립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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