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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55. 만주족을 학살한 범인은...조선족? (2)

중국 공산당

조선족이 본격적으로 개고기를 먹게 된 것은 공식적으로는 1945년 이후다. 조선족의 개고기 전통은 만주족이 학살된 후 만주에 새로 생긴 식문화다. 

20.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중심으로 중국을 침략하자 내전을 하던 모택동의 중국공산당과 장개석의 국민당은 일시 휴전을 하고 손을 잡았다. 그들의 적은 일본군이었다. 

<1930년대 이후 중국 내 일본과 중국의 대립 양상도>

여기에 조선의 독립운동가들도 합세해 가열차게 일제와 싸웠다. 만주를 중심으로 중국 공산당 + 중국 국민당 + 조선 독립운동가들의 연합체가 형성된 것이다.

일제는 만주족과 손을 잡았다. 친일과 반일로 나뉘어 만주인과 일본인이 한 편이었고 중국 공산당, 중국 국민당, 조선독립운동가들이 한 편이었다.  

<행진하는 중국공산당 붉은 군대, 1930년>

21. 국˙공 내전에서 중국공산당이 승리하면서 복잡한 조선 독립운동가 계파 중 중국 공산당 파가 만주에서 득세하게 된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을 이끈 모택동은 공산당 군대에게 개고기를 먹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고대 여덟가지 진귀한 음식 중 하나라고 칭찬을 하기도 하며 개고기를 안 먹어본 사람은 개고기 먹기를 두려워하지만 일단 먹어보면 맛이 끝내준다고 말해 개고기를 먹는 것이 공산당의 용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유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티베트 개들, 1911년>

택동의 붉은 군대는 개고기를 군량미로 먹었다. 이게 중국 공산당의 전통이 된 것이다. 즉, 20세기 초반 이후 중국 공산당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는 개고기를 전통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런 개념은 물론 중국공산당화와 관련 있다.  

 

22. 정리를 해 보자. 중국 공산당은 조선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했고 조선 독립운동가들의 주 무대는 만주였다.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중국공산당원이 되었고 개고기도 먹게 되었다. 만주의 원 주인인 만주인이었고 만주인은 개고기를 반대했다. 이때부터 아주 흥미로운 개념이 생기게 된다.

<중국 공산당의 제국주의와 개고기 식용에 관한 개념도 >

이 구도를 잘 기억해 두자. 청 왕조와 일제를 미국과 서양 세계로 치환한다면 2002년 이후 남한에 몰아닥친 개고기 민족주의 구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23. 미국은 국˙공내전에서 공산당과 국민당을 모두 지원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일제를 견제했다. 어느 놈이든 일제의 확장만 막으라는 심산이었던 것 같다. 1945년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일제가 멸망하자 어부지리로 조선이 독립했다.

<일본인의 만주 탈출을 그린 판화, 키타오카 후미오 작, 1947년>

곁다리로 만주국도 독립했다. 반일, 항일을 외치며 만주에 살던 조선 백성은 환호했고 만주에 살던 일본인들이 대 탈출을 했다. 오도가도 못하고 만주에 갇힌 만주족도 난리가 났다. 일제라는 보호자가 사라진 것이다.


 

24. 1945년 이후 일제와 중국 국민당이  사라진 만주(중국)에는 중국공산당과 조선 독립운동가와 조선족(조선인 이주민), 그리고 만주인만 남았다.   

<소주에 살던 청나라 개, 1759년,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25. 그러더니 다시 중국 공산당, 조선독립가, 조선족(조선인이주민)만 남았다. 만주족이 사라진 것이다. 어디로 갔을까?  넷 중 하나가 사라졌고 나머지 셋은 중국공산당이었다. 누가 범인일까? 누가 봐도 세 놈이 한 편이다. 아마 친일을 했다는 죄목으로 대량 숙청했을 가능성이 높다. 누구를 시켜서 죽였을까? 

<붉은 군대 간부들, 좌측부터 등소평, 서해동, 진광、섭영진、정자화、양상곤、라서경, 1930년대>

 

26. 1945년 이후 만주에서 만주족이 사라진 자리를 조선족이 차지했다. 만주에 살았다고 모두 만주족이 아닌 것이다. 만주족과 조선족(중국공산당)은 전혀 다르다. 만주족은 개를 숭배했고 조선족은 개고기를 먹었다. 개숭파를 개먹파(전직 개숭파)가 없앤 것이다.

27. 만주족이 사라진 만주에는 중국공산당과 조선 독립운동가, 조선족(조선인 이주민만) 남았다. 20세기 초반 이후 개고기를 전통이라고 주장하며 열심히 먹은 이들 중국 공산당은 개고기 전통음식설을 부정하고 있으나 조선족만은 아직도 자랑스럽게 개고기를 먹으며 중국과 대한민국 개고기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와 김일성, 1947년>

28. 한반도의 개고기 사정은 만주와는 별개로 아주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미국에 의해 독립한 한반도는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었다. 북한에는 소련의 후원을 받은 김일성이 등장했다. 남한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승만이 등장했다.

<하루 두 끼 김일성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CIA 자료, 뉴데일리, 2017년>

29. 이 중 만주 출신 전직 중국공산당 당원인 김일성은 하루 두 끼는 반드시 개고기를 먹을 정도로 좋아했다. 북한과 인접한 만주는 개고기를 군량미로 먹던 중국공산당이 지배했다. 당시 개고기는 중국의 전통이라는 새로운 규칙이 정해졌다.

 

30. 청 왕조가 망하면서 개도살금지법은 중국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1950년대 중국 공산당은 광견병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수 백 만 마리의 개들을 때려죽였다. 개를 때려죽이고 개고기를 먹는 거대한 개고기 벨트가 중국, 만주, 북한에서 형성된 것이다. 개고기 벨트는 곧 공산화 벨트였다.

<쇠사슬에 묶인 티베트 개, 1938년>

31. 중국 공산당은 티베트와 위그르를 침공해서 그 지역 개들을 학살했다. 왜 중국 공산당은 그토록 잔인하고 집요하게 티베트 개들을 때려죽였을까? 아시아에서 개고기 문화권에 편입된다는 것은 중국화, 즉 중국 공산화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54. 왜 조선족은 개고기를 먹게 되었나?(1)

중국 공산당

조선족은 현재 중국에서 개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집단이다. 그들이  언제부터 개고기를 먹게 되었는지, 조선족과 한국의 개고기 식용 문화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1. 청 왕조에는 개 도살 금지법이 있었다. ? 청 시조 누르하치의 생명의 은인이 개였다.

<도광제(1820~1850년)의 정귀비와 육황자, 청>

2. 중국 역사 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지배한 만주족은 채 백만 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인원만 만주에 남겨두고 중국 대륙으로 모두 이동해 중국을 다스렸다.

3. 청 왕조의 성지인 만주는 사람이 살지 않는 보호 구역이 되었다만주 출입 금지가 풀린 것은 1911년 청 왕조가 망한 후였다그전까지 만주는 허허벌판이었다.

<조선의 고종, 청의 서태후, 일본의 메이지 천황, 1905~1909년>

4.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청나라가 조선의 지배력을 상실했다. 일부 조선인 독립문을 세워 일제의 승리를 축하했다.


5. 1910년 한·일병합으로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조선인은 조선 계 일본인,  일본인이 되었다.

<독립문, 조선, 1904년>

 

6. 1911년 청 왕조 멸망하자 영국은 청 황실 개를 납치해 품종개량을 해서 지금의 시추와 페키니즈, 라사압소로 만들었다.  만주족도 고향인 만주로 돌아갔지만 보호자(지배층)가 없었다

 

7. 만주족과 조선인(주로 독립운동가), 조선 계 일본인(조선인), 일본인(주로 독립군 잡는 순사), 중국 공산당, 중국 국민당 등이 섞여 있는 만주는 무법천지였고 언제든 갈등이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세 살 무렵 푸이의 사진, 청, 1909년>


8. 조선의 독립운동가는 만주를 거점으로 중국에서 독립운동 했다. 일제를 피해 혹은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조선백성들 중 일부도 만주로 이동했다.


9. 청 멸망 후 중국에서는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싸우는 내전이 발생했다만주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만주는 여전히 무법천지였다.

<도광제와 황실 가족들과 노는 페키니즈, 청, 1899년 11월 30일>


10. 중국공산당, 국민당 모두 청 왕조를 증오했다. 그래서인지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 개고기를 먹었다모택동의 붉은 군대(공산당)의 경우 부족한 군량미 대신 먹였을 가능이 높다. 얘네들은 중국 내륙 산악 지대로 쫓겨가 아주 생고생을 하며 국민당과 싸웠다. 자금과 군수품이 풍부한 국민당 군대까지 개고기를 먹은 건 청 왕조에 대한 반발심이 크다.


11. ·송 이후 이후 중국 대륙에서 개고기는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그 많은 중국인 중 개고기는 거지나 먹는 음식이었지만 청 왕조 멸망을 계기로 중국에서 개고기 식용 문화가 되살아났다.  

<대만 원주민의 사냥 모습, 1750년>

12. 중국 공산당에 패해 중국에서 쫓겨나 정착한 대만을 점령한 중국 국민당은 대만에서도 개고기를 먹었다. 국민당이 학살한 대만 원주민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 같다. 대만에서 개고기가 금지된 것은 국민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후이다. 대만은 현재 아주 강력한 개고기 금지법을 실행하고 있다

13. 1931 여전히 무주공산으로 남아 있는 만주를 지배하기 위해 일제가 일으킨 자작극이 남만주 철도 사변이다. 일제의 주력부대인 관동군은 만주 사변을 계기로 만주 지역을 점령한다

<남만주 철도 사태를 조사하는 일본 전문가들, 1931년 9월>

 
14. 만주는 더럽게 춥다. 추위에 약한 일본군이 만주에서 견딜 수 있도록 일본군은  방한용 군복을 만들어야 했다일제는 조선 개의 가죽을 이용하기로 한다. 견피주식회사를 통해 묶어 놓은 개와 진돗개 외의 조선의 모든 개는 학살되었다. 이 때부터 한국인에게는 개를 묶어 놓아야 살릴 수 있다는 트라우마가 생긴다.

15. 신라시대 왕족만 키울 수 있던 신성한 삽살개는 만주 일본군 군복이 되어 멸종되었다

<일제에 의해 도살되기 직전의 조선 토종 개, 1941년>

16. 1932년 청 왕조 마지막 황제 푸이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운 일제가 만주에 만주국을 세웠다괴뢰국이라는 비웃음을 당했지만 어쨌든 법적으로 만주는 청 황실 소유였고 볶아 먹든 지져먹든 푸이 마음이었다. 이때부터 만주인은 일본인이었고 일본인은 조선인이었다. , 만주족 = 일본인 = 조선인 이 된다.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이들과 싸웠다.


17.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일제는 만주국에 일본인과 조선인을 대규모로 이주시켰다. 조선인은 일본인이었으니 공식적으로 만주로 이주해 간 사람들은 모두 일본인이다. 주로 조선 계 일본인이 조선족의 조상이다.

<광복군의 이범석 장군과 개, 1920년>


18. 조선족 즉, 일제 시대 조선계 일본인은 왜 개고기를 먹게 되었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평안도나 황해도 지역 조선인이 만주로 많이 이동했다. 열명에 한 명이 굶어죽던 조선 시대에도 가장 가난하고 척박한 지역으로 악명높은 이 지역은 양반조차 개가죽으로 갓을 만들어 쓴다고 조롱을 당했다. 조선에서도 가장 개고기 친화적인 지역이기는 했다.

19. 하지만 만주의 조선족이 본격적으로 개고기를 먹게 된 것은 중국공산당과 관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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