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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52. 개고기 먹인 조선, 마녀 사냥한 유럽

조선

조선 지배층은 오랑캐 청나라의 신하 나라가 것이 수치라며 자살을 한다는 난리를 쳤다그러나 청나라 사신이 오면 왕이 버선발로 달려가 맞은 것이 조선의 현실이었다

이런 표리부동 짓을 이유는 하나다체제 유지공자의 중국을 이어 받았다며 고려 이전의 역사를 지워버린 조선은 중국이 없다면 존재 의미가 없었다 

<청 사신을 맞이하는 조선 왕, 18세기l>

그러니 왕가끼리 통혼을 하자는 손을 내밀며 다가오는 청과 거리를 두며 명나라 황제 제사라도 몰래 지내야 했다. 잘못했다가는 애써 지워버린 고려 이전의 한민족의 역사가 되살아날 판이었다

이상은 살겠다, 반항하는 백성들을 찍어 누르는 수단으로도 소중화주의는 쓸만했다명나라까지 망했으니 이제 순수한 중국은 조선 하나 남았다는 것이 송시열이 주장한 소중화주의다

<고종이 즉위한 1863년의 조선 양반들>

소중화주의로 명나라는 중국, 조선은 작은 중국이라는 헛소리를 하며 전보다 강한 일당 독재를 했다독재를 하려면 사상 검열부터 한다. 조선이 망할 때까지 권력을 놓지 않은 이들도 사상을 검열했다.  

만약 자라도 기준에서 벗어난 글을 읽거나 쓰거나 지니고 있으면 죽였다. 본인도 죽고 친척, 친구도 죽고 가족 전체가 노예가 되었다. '()' 가장한 '()' 독재였다. 

<조선의 포청, 1900년>

왕들과 왕족들은 줄줄이 독살 당했고 유일 당에 반대하는 양반들은 숙청되었다. 그러는 동안 조선 백성들은 드라마 킹덤처럼 사람 고기를 먹어야 만큼 끔찍한 기아에 시달렸다

설상가상 17세기 조선에는 여름에 서리가 내리고 우박이 떨어졌다. 이때를소빙하기라고 한다소빙하기가 태양의 활동에 문제가 생겨 지구 전체 온도가 내려간 기상이변 시기를 말한다

시기 세계적으로 정권 교체가 일어나는 아주 혼란스러웠다굶주린 피지배층이 들고 일어나 왕조가 뒤집히는 것이다. 쫓겨나고 싶지 않은 (지배층)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조선처럼 독재를 하면 된다. 또는 민중의 분노의 방향을 바꾸면유럽의 마녀 사냥처럼 말이다. 흔히들 마녀 사냥이 중세 시대에만 자행된 아는데 그렇지 않다

<마녀 재판과 개, 1848년>

오히려 르네상스니 인본주의니 하던 16세기 말∼17세기에 가장 심했다마녀사냥은 분노한 민심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정치 행위였다주로 약한 여자(과부, 노처녀, 미녀) 고양이가 대상이었다

 

조선은 어땠을까? 개를 죽이라고 선동했다자칭 중국 조선 총독부인 조선 지배층은 굶주리고 분노한 백성들에게 약과 식량 삼아 개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했다

<마녀의 화형식, 1632년>

시베리아-알타이 샤먼을 믿어 동네마다 마을을 지켜주는 장승을 믿은 우리 조상들에게 말이다. 알타이 샤먼을 믿은 문화권에서는 개를 숭배한다. 개 숭배 사상이 날개달린 개를 신으로 믿는 신앙으로 발전했다.  

<개 머리를 한 새를 새긴 은제 접시, 인도, 7~8세기>

이 신앙은 다시 고대 종교로 이어졌다. 한민족은 조선 이전까지 신성한 개 신앙을 믿었다. 알타이 산 개 숭배 신앙의 영향으로 한국 무교에서는 절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기독교 문화를 빼놓고 서양사를 논할 수 없듯, 무교를 빼놓고 한국 역사를 논할 수 없다. 무교는 한국 문화, 역사, 전통의 근간이었다.  조선 시대 마을마다 장승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조선 백성들이 보편적으로  장승의 힘을 믿었다는 소리다. 

 

<주술 인형, 조선, 20세기 초반>

장승의 힘을 믿는 한, 개고기는 먹을 수 었없다. 개고기를 먹으면 신이 화가 나 가버리거나 벌을 내린다는 것이 한국 무교의 기본 믿음이었다. 조선시대 저주 인형은 장희빈만 만든 게 아니었다.

아주 흔한 복수의 수단인 지푸라기 저주 인형을 만든 사람도 개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신이 열받아 저주 빨이 떨어질 수 있었다. 1900년까지도 조선 백성은 병에 걸리면 민간 처방인 주술을 했다.

<조선 시대의 민간요법, 1910년 이전>

이런 치료 용 주술을 하는 사람도 개고기를 먹으면 안 됐다. 신이 분노해 약빨이 안 받을 수 있었다. 산신은 우리 조상들이 믿은 대표적인 토속신 중 하나다.

개고기를 먹으면 산신제에 참석할 수 없었다. 산신제는 물론 장례, 제사, 돌잔치, 결혼식 등등 모든 행사에 가지 못했다. 산에 올라가거나 배를 타거나 하는 모든 위험을 동반한 일을 할 때 개고기는 먹으면 안 됐다.

<조선의 산신도, 1900~1925년>

개고기를 먹으면 신이 분노한다는 강력한 개고기 금기를 믿은 백성들에게 중국 전통인 개고기가 우리 전통이니 먹으라고 강요해야할 만큼 17세기 조선 상황은 끔찍했다. 

임진왜란 번에 조선 농지의 1/3 사라졌다얼마 받은 청나라가 쳐들어와 병자호란이 터졌고 이번에는 소빙하기가 닥친 것이다

<볏짚을 진 소와 농부, 조선, 1900년>

 

1699 통계를 보면 전국적으로  백 명이 굶었고 140여만 명이 굶어 죽었다1910 조선 말기 인구가 1300 정도라고 한다. 정말 많이 잡아 2천만 명이라 해도 10~14명에  명이 굶어 죽은 것이다

왕은 소를 잡아 먹어도 좋다는 특별 조칙을 내렸지만 이미 잡아먹을 있는 동물은 잡아 먹은 후였다개와 인육을 포함해서 말이다전쟁, 기아 다음 순서는 전염병이다

<조선의 고위 관리, 1900년>

전염병으로 한 번에 20만 명, 50만 명  죽는 해도 있었다. 17세기 조선은 그대로 생지옥이었다 상황에서 조선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송시열은 했을까아무 것도 안 했다. 

적한 현안을 처리해 함께 백성을 구제하자는 효종의 청을 번번이 거절했다. 그러면서 지들은 숯불에 소고기를 구워 먹으며 동안 개를 먹는다는 개념조차 없던 조선 백성들에게 개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했다

 

47. 한 큐에 신선이 될 수 있던 한국 도교

한국 속 유목사

고려 유물을 보면 유독 청동 거울이 많다. 잘 닦으면 또렷이 보이는 은제 거울도 아니고 청동 거울이다. 청동기 시대부터 거울은 왕을 상징하거나 제사에 사용했다.

교역을 많이 한 고려 시대 청동 거울도 제사에 사용했다. 배를 타기 전 무사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반드시 청동 거울을 바다에 던졌다. 청동 거울을 던지던 고려의 제사는 조선 시대 제사와는 다르다.

<황비창천명형 청동 거울,  고려, 918~1392>

유교가 한반도에 들어오기 이전 고대부터 존재한 한민족 고유의 도교와 무교, 불교가 합쳐진 형태의 제사라고 본다. 조선 지배층은 전통 도교 뿐 아니라 1392년 조선 건국 이전의 역사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조선 지배층에게 반만 년 역사 중에 단군은 중국에게 가르침을 받은 기자 조선부터 시작된다. 고구려·백제·신라·통일신라는 존재조차 하지 않은 역사이고 고려는 역사에서 지워버릴 만큼 형편없는 나라였다.

<은제 신선 경치 무늬 화장품 그릇, 고려, 숙신공주 묘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이런 식으로 4,500년을 날려먹고 개고기는 전통이니까 먹으라는 헛소리를 했다. 열에 서넛이 굶어죽는 흉년에 소작료는 70%나 받아서 챙긴 돈으로 화로에 소고기 구워 먹으면서 말이다. 소시오패스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다수 굶주린 조선 백성들은 기꺼이 개고기를 먹었을까? 고려의 문화와 종교를 보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개고기는 4,500년 우리 역사 내내 강력한 금기였다. 500년 조선 역사 중 극히 일부만이 개고기를 먹었다.

<쌍용문 청동거울, 고려, 918~1392>

대놓고 못 먹으니 복날이면 으슥한 산으로 개를 끌고 가 고대 중국인을 흉내 잡아 먹었다. 그러나 조선 백성은 곧 고려 백성이었다. 인간이란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다.

특히 문화와 금기는 잘 바뀌지 않는다. 작정하고 금기를 버린 조선 지배층이나 1945년 이후 북한, 197·80년대 이후 남한 내 운동권 세력을 제외하고 말이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중국을 추종했다.

<무덤 화상석 중 부엌 그림, 한, 2세기>

1907년 고종의 특사인 헐버트가 남긴 책을 봐도 조선 말기까지 개고기는 가장 비천한 계층이 먹는 음식이었다. 예를 들어 복날 머슴이 개고기를 먹거나 산속에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이 개고기를 먹었다.

조선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다고 외국에 알린 사람들은 산 속에 숨어 있던 외국 천주교 신부들이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조선 중 극히 일부인 천주교 사회에서 개고기 먹는 모습을 본 것이다.  

<개고기를 금지하는 산신도, 조선, 1900~1925년>


조선의 실제 모습은 고려 사회를 참고해 유추해야 하지만 고려는 물론 통일신라와 삼국 시대에 대해서도 제한적인 정보 밖에 얻을 수 없다. 일제가 없애기 전에 조선이 먼저 다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고려에 대한 대표적인 기록은 1123년 송나라 사신 일행으로 고려를 다녀간 서긍이 남긴『선화봉사고려도경』이다. 나는 서긍이 일개 수행원이 아닌 송나라 파견한 스파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정도로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매와 같이 날카로운 눈으로 고려 구석구석을 관찰했다. 고려에는 개고기 문화가 존재할 수 없었다.

마니교를 국교로 믿은 위그르가 채식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고려도 채식을 했다. 불교의 영향이다. 정확히는 양나라 무제 식 중국 불교의 영향이다.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 청 왕조 인쇄>

 

불교는 고려의 국교였다. 백제와 마찬가지로 고려에도 살생금지법이 있었다. 왕은 뭔 일만 터지면 살생금지법을 강화했다. 오직 사신이 올 때만 대비해 가축을 키웠다.

짐승을 죽여본 적이 없으니 도살 기술이 엉망이었다. 고기 해체도 못해 내장이 터져 고기 맛이 끔찍했다고 한다. 불교를 믿었고 도살하는 법도 모를 정도로 채식을 하던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었다고 믿기 힘들다.

  

< 신선이 되는 과정을 그린 유송년의 삼생도,남송,12~13세기>

개를 많이 키운 사실 자체가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근거라는 모 논문이 있다. 그 논문이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은 증거랍시고 거론된다. 이게 한국 지식인 수준이다.  

개고기를 금지한 불교를 국교로 믿은 것 외에 고려에는 고구려·백제·신라와 통일신라를 거쳐 발달해온 전통적인 도교가 존재했다. 고려 도교는 조선이 기형적으로 받아들인 중국 도교와 달랐다.

 

불교와 도교의 신 토기, 당, 728년>

고려 도교는 무교(알타이 샤먼)와 불교가 섞인 독특한 종교였다고 생각된다.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시작된 ‘날개 달린 개’를 믿는 빛의 종교가 중국에 도교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중국 도교에서는 신선이 사는 세계는 빛의 세계에 들어가야 영원히 살 수 있었다. ‘날개 달린 새’를 믿는 종교는 중앙아시아 기마 유목 왕조의 종교였다. 고구려·백제·신라는 기마 유목 왕조였다.  

<극락에 있는 부처님을 둘러싼 불새,위그르, 9세기>

이들 왕조가 농경민을 정복해 수 천 년 동안 기마 유목 문화를 정착시켰다. ‘날개 달린 새’를 믿는 빛의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였고 아후라 마즈다 교였으며 마니교였고 경교였다

이름만 다르고 종교는 같다. 아후라 마즈다 교는 몽골의 전통 신앙이다. 고구려인이 시조로 믿은 주몽은 동명왕이다. 주몽(朱蒙)은 명 궁수라는 뜻이다. 동명왕 석상은 몽골 초원에도 우뚝 서 있었다.

 

<몽고 원의 동명왕 추정 석상, 주채혁 교수 제공>


몽골 영토에 존재한 흉노와 돌궐의 태조 이름도 투멘(T’umen), 즉 주몽이다. 개와 늑대 시조 신화를 제외하고도 고구려와 몽골, 흉노와 돌궐, 위그르는 같은 뿌리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즉, 이들은 굳이 신선 세계라는 귀찮은(그러나 아주 흥미진진한) 개념을 추가해서 대중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고구려가 ‘날개 달린 개’를 믿는 빛의 종교의 적자였기 때문이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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