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루리안 개' 태그의 글 목록 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155. 청에 대한 증오로 시작된 개고기 공산 혁명

중국 공산당

중국 공산당의 상징은 개고기

 

중국 공산주의는 반드시 개고기를 인정해야 한다. ? 개고기가 중국 공산혁명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럼 모든 공산당이 개고기를 먹느냐? 아니다. 공산주의 역사 상 오직 중국 공산당만 개고기를 먹는다. 공산주의 역사가 언제부터일까?


<거짓된 대중 선동으로 처형 당한 마리 앙뜨와네트가 사랑한 반려견 코코, 영국, 1786년박>


반려견 코코와 함께 지하 감옥에 갇힌 후 단두대에서 처형된 마리 앙뜨와네트의 브루봉 왕조를 끝장낸 프랑스 대혁명까지 공산주의 혁명으로 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따지면 18세기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이론과 사상이 퍼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생긴 것과 다르게 코코는 루브르 궁전의 가구를 만들던 당대 최고의 가구 장인이 만든 개 집에서 살았다, 프랑스, 1775-80년>


18세기 이후 전 세계에서 문명이라고 할 만한 지역에서 공산주의 사상과 함께 보편적인 개고기 식용이 나타난 예는 없다. 오직 1911년 이후 중국 공산주의를 제외하고 말이다. 어쩌다 개고기가 중국 공산혁명의 상징이 됐냐고?


 <반려견 코코는 주인인 마리 앙뜨와네트가 지하감옥으로 끌려 갈 때 함께 간 유일한 친구였다, 영국, 1895년>


중국 공산당이 쳐부순 게 청 왕조기 때문이다. 청 왕조는 개고기를 못 먹게 했다. 청 왕조는 개도살 금지법을 시행했으며 황족을 상징하는 신성한 개를 키웠다. 이 개들이 시추, 페키니즈, 라사압소 등의 사자개다.


1911년까지 개 도살법이 존재한 중국


1911년까지 중국에서 황족 이외의 사람들이 이 개들을 쓰다듬거나 보거나 안으면 국법으로 처형시켰다. 북한에는 김일성 일가가 먹는 식용 개인 김일성 황구를 보는 사람을 처형한다고 한다.

<시추, 라사앞소, 페키니즈 등의 티베트탄 스페이얼(사자개)는 청 왕족 외의 인간은 볼 수 없었다, 1899년>


비록 식용숭배라는 다른 목적을 가졌지만 두 왕조 모두 극도로 개를 보호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개를 사랑한 청 왕조를 중국 공산당은 증오했다. 청 황족과 만주족을 학살할 정도로 말이다.


미칠 만큼 증오하니 청 황족과 함께 중국 내 모든 개들도 학살하기로 한 것이다. 심지어 중국 공산당은 1950년대는 광견병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수 천 만 마리의 개들을 학살했다. 수 천 만 마리의 개사체가 발생했다수 천 만 명 분의 개고기가 준비된 것이다. 묻어줬을까? 먹었겠지


<마리 앙트와네트와 코코가 죽은 후 프랑스를 차지한 나폴레옹 황제의 후손 나폴레옹 4세와 반려견, 프랑스, 1912년>


아직 중국인이 냉장고를 사용하기 전이니 상하기 전에 얼른 먹어야 했을 것이다. 강제로 말이다. 사실 중국 대륙에서 개고기가 없어진 건 청 왕조 이전이다, 송 왕조 대 이후 중국 대륙에서는 개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보편적인 정서가 강하게 생겼다.

 

<송나라 사람은 죽으면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는데 이 때 생전에 죽거나 먹은 모든 짐승이 몰려와 고자질해 지옥에 간다고 믿었다, 남송, 1195년>


종교 때문이다. 신앙심과 개고기 금지가 연결된 것이다. 불교와 도교를 믿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북방 기마 유목 왕조의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중국 내 개고기 식용 관습은 빠르게 사라졌다.


개는 죽음을 관장하는 신 


오직 중국 남부에 사는 거지나 가난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중국 대륙에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은 없었다. 이는 인도나 조선, 일본과 같은 상황이었다. 인도, 조선, 일본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계층은 개고기를 먹었다


동서양 역사를 막론하고 누구든 인간은 죽을 만큼 배가 고프면 개고기를 먹는다. 그 인간들의 수가 많지 않아 개고기가 보편적인 식문화로 확산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그러나 북방기마 유목민과 소아시아와 그리스 로마의 해양 유목민의 경우 죽기 직전까지 배가 고파도 개를 먹지 않았다. 


<전시안이 새겨진 날개가 달린 스킬라(바다 여신), 에트루리안, 2세기 말>


개가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굶어 죽을 건데 죽어서라도 천당 가야지, 개고기 먹고 지옥 갈 순 없잖아. 북방기마 유목 왕조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마찬가지로 알타이 샤먼을 믿고 개를 숭배했다.

 

<스킬라는 인어나 날개 달린 인어, 개 머리를 한 물고기, 개 머리를 한 뱀, 날개 달린 개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스페인, 16세기>


중국 대륙에서 개고기를 식량으로 먹은 시기는 한 왕조 이전이다. 딱 공자와 한나라 유방 대까지다. 한나라 유방은 공자의 유교를 국교로 채택했다. 개고기 좋아하는 인간이 개고기 좋아하던 인간을 믿는 종교를 내세워 나라를 세운 것이다.

 

<날개달린 개와 개가 그려진 도자기접시, 이태리, 1515~1530년>


공자는 개고기를 반드시 먹어야 하는 제 3계급인 선비였다. 개고기 먹는 공자를 믿는 종교(유교)를 가진 왕조에서는 개고기 식용 현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공자를 믿은 조선에서도 지배층은 반드시 백성들에게 개고기를 먹여야 했다.

 


<한 왕조, 조선, 중국 공산당은 개고기를 좋아한 공자를 숭배한다>


이걸 조선 백성들은 끝까지 거부한 것이다. 그 증거가 동학 농민 운동이다. 동학교도들은 개고기 먹는 고문을 당했다. 개고기 먹은 공자를 추앙한 국가가 또 있다. 중국 공산당이다. 또 고대 중국 왕조인 진, 한 왕조를 국가 모델로 정한 국가가 있다. 중국 공산당이다.


한 왕조, 조선, 중국 공산당 공통점? 개고기 

 

<개고기로 보는 조선 양반과 백성의 민족 의식 차이>


개고기 먹던 고대 중국 왕조와 개고기 먹은 공자를 추앙한 중국 공산당은 태생 자체가 개고기와 뗄레야 땔 수 없는 관계다. 여기에 공산주의라는 독재 체제까지 더해지니 1920년대 이후 중국인은 죽고 싶지 않으면 개고기를 먹어야 했다.

 

<송나라 시대 중국에는 개를 죽이면 벌을 받는다는 불교와 도교를 믿었다, 청명상하도, 북송>


이게 현재 조선족 중국인이 말하는 개고기 전통의 실체다. 중국 공산당을 만든 마오쩌둥 일화를 보면 이상하게도 개고기를 찬양하는 내용이 뜬금없이 등장한다. “개고기를 먹지 않은 사람은 개고기 먹는 것을 두려워하나 일단 먹어보면 괜찮다라는 말을 왜 했을까?

 

<마오쩌둥과 함께 개고기로 공산혁명을 한 중공의 붉은 군대, 1930년대>


중국 사람들이 개고기 먹는 것을 꺼리고 싫어했으니까. 이미 중국인들은 1000년 이상 개고기를 먹으면 지옥에 간다는 불교와 도교를 믿고 있었다. 개고기 먹으면 조상신이 노한다고 믿은 조선인의 믿음보다 강도는 약했지만 분명 중국에도 개고기를 꺼리는 정서가 존재했다.

83. 로마 - 카톨릭의 개 숭배 원조는 에트루리안

유럽사

사극을 볼 때 느끼는 안타까운 고증 실수가 있다. 청자가 없던 시기가 배경인데도 떡 하니 청자가 나오거나 도자기가 없던 시대인데도 도자기로 된 다기 세트가 나오는 걸 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왕족이라고 다 도자기를 쓴 건 아니다. 도자기는 인간이 섭씨 1000도 이상의 화력을 만들수 있게 된 후에야 만들어졌다. 섭씨 1000도 이상의 화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첨단 과학이 사용되었다


<신석시 빗살무늬 토기, 한반도 서울 지역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도자기의 발전은 과학의 발전과도 직결된다도자기가 발명되기 전 지배층은 토기를 사용했다일반 백성은 잘 해야 투박한 질그릇 정도 사용했다. 신석기 시대를 예로 들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토기 한 번 구경 못하고 죽은 인간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뛰는 남자와 개가 그려진 토기 (그리스 도기), 서 그리스, 기원전 480년

신석기 토기 유형을 보면 그 지역을 어느 세력이 지배했는지 알 수 있다. 신석시 시대 한반도 대표 토기는 빗살무늬토기다. 빗살무늬토기는 중국 황하 강과 양쯔강 쪽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오직 기마 유목민이 장악한 초원길과 비단길 루트에서만 발견된다고대 흉노는 늑대와 개를 신성하게 여겼고 중국 한족은 늑대를 증오하고 개고기를 먹은 것과처럼 극명하게 대비된다. 


<날개달린 개와 불새가 새겨진 금 인장 반지, 에트루리인, 기원전600~550년>

그리스 토기(그리스 도기라고도 한다)는 개성이 강하다딱 봐도 "앗, 이건 그리스 토기"라고 알 수 있다. 가로 줄을 여러 개 긋거나 검은색 배경에 그림을 그렸으면 십중팔구 그리스 도기다. 

고대 어느 시기부터 한반도에도 기마 유목민이 지배층으로 유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토기를 가지고 지배층의 성격을 구분하는 방식은 고대 그리스와 에트루리안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늑대(개) 모양 테라코타 용기, 에트루리안, 기원전 550~525년 >

그런데 에트루리안 토기도 그리스 토기와 양식이 같았다. 두 지배층이 같다는 뜻이다에트루리안은 페키니아라고 했다. 강력한 해상 왕국을 세운 고대 페키니아(에트루리안)가 그리스도 지배를 했다는 의미다. 


흉노와 페키니아 지배층도 결국 같다고 했다이 시기 흑해와 소아시아,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반도이집트인더스 지방중앙아시아와 중국 북부한반도까지 아주 강력한 청동기 지배층이 존재했다고 본다.


<그리스 신이 조각된 은제 장식, 흉노, 기원전 1세기~ 기원후 1세기>


이 광범위한 지역을 다스린 청동기 지배세력은 끊임없이 이동을 하며 교역을 해 부를 쌓았다. 협력 관계인 이들 지배 세력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쪽은 말을 타고 이동하며 무역을 했고 한 쪽은 주로 배를 타고 무역을 했다말을 탄 세력은 기마 유목 왕조다. 배를 탄 세력은 해상 왕국을 세운 왕조다기마 유목 왕조의 대표는 흉노다. 해상 교역 왕조의 대표는 페키니아다


<마스티프가 그려진 토기(그리스 양식), 에트루리안, 기원전 5세기 추정>

페키니아(에트루리안)는 그리스-로마 지역을 지배했다흉노와 그리스(페키니아) 지배층은 긴밀히 협력한 것은 당연했다지배층끼리만 놓고 본다면 그들은 동료였다.

 

<이집트 신 베스 추정 부적, 흉노, 기원전 세기~ 기원 후 1세기>

흉노가 이집트 신을 믿고 그리스 신화 유물을 남긴 이유다. 흉노와 페키니아로 대표되는 유목 세력은 공통적으로 개를 숭배했다티베트탄 마스티프는 두 세력에서 공통적으로 왕을 상징했다.

삽살개(티베트탄 마스티프)가 신라 왕가를 상징했다. 고구려 무덤 벽화에 단군(텡그리)과 삽살개가 함께 등장했다역사를 잊은 한국인은 삽살개도 개고기용 개라고 주장하며 열심히 개고기를 먹고 있지만 말이다.


<개가 새겨진 금 인장 반지, 에트루리안, 로마 지역 출토,기원전 8~3세기>

개고기를 먹은 문명은 중국 문명이 유일하다. 조상을 팔아먹었든지 중국인이 한국인 행세를 하든지 둘 중 하나다. 한편, 고대 유목 세력은 강력한 군사력인 청동기 무기와 풍부한 자본인 금세공술을 자랑했다


에트루리안도 고도로 발달된 청동기 유물을 남겼다완성도 높은 에트루리안 청동기 유물에는 거의 개가 등장하거나 날개달린 개 상징이 등장한다개는 왕의 상징이다


<스카라베 장식이 달린 금목걸이, 에트루리안, 기원전 4세기>

날개달린 개는 신을 의미하고 개는 지상의 왕을 의미한다. 왕가에서 사용한 청동기 유물에 왕가의 인장을 찍듯 개를 그려넣은 이유일 것이다에트루리안은 또한 아주 높은 수준의 금 세공술을 자랑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전사와 뛰어오르는 개가 그려진 스카라베, 에트루라인, 기원전 420~380년>

에트루리안 지배층은 흉노와 같은 누금 방식의 세공술을 선호한 듯 하다왕가의 여인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아름다운 에트루리안 금 목걸이에는 스카라베(풍뎅이모양 장식이 달려있다.  


<스카라베 장식이 달린 금목걸이 뒷면, 에트루리안, 기원전 4세기>


스카라베는 이집트 왕가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스카라베는 또한 에트루리안 지배층의 상징이기도 하다이집트와 달리 에트루리안의 스카라베에는 대개 전사(왕일 것으로 추정)와 개가 새겨져 있다

에트루리안 양식의 스카라베는 유럽의 카메오 세공품으로 발전한 듯 하다. 위의 에트루라인 금목걸이 뒷면에도 역시 전형적인 에트루리안 스카라베 양식을 따르고 있다. 전사와 개가 새져진 것이다. 

<개와 노는 투구를 쓴 에트루리안 전사가 새겨진 스카라베,  기원전 480~440년>

스카라베(), (), 전사()는 에트루리안 지배층의 상징이었던 것이다이와 같은 고유의 에트루리안 문화는 에트루리안이 로마제국에게 멸망당한 후 로마제국 황실로 이어진 듯 하다.

결정적으로 에트루리안과 로마 제국의 지배층은 무덤 양식이 같았다. 지배층의 무덤 양식이 같다는 건 뿌리가 같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에트루리안과 로마 제국 지배층은 또한 유독 개를 숭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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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왜 성모 마리아는 개를 안고 있었을까?

유럽사

한국 천주교는 천주교 역사 상 유일하게 개고기를 전통으로 인정하며 적극적으로 먹는 조직이다. 원래 천주교에서는 개를 신성하게 여겼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용과 싸우는 개가 그려진 메달 형태의 성체함, 프랑스, 1420년>

유럽사는 곧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역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종교 개혁 이전의 천주교와 종교 개혁 후의 개신교를 설명하면서 유럽사도 함께 알아볼 것이다.

<개고기를 모두 금지하는 세계 5대 종교>

유럽사는 곧 이슬람사, 미국사와도 이어진다. 복잡다단한 이 역사들 속에서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개고기 안 먹는다. 한국 기독교만 먹는다.”


<성모마리아와 예수와 개, 1590년, 독일>

유럽 예술에서는 성모마리아와 개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종교 개혁 전과 후 형식이 조금 달라진다. 종교 개혁 전에는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혹은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와 강아지 혹은 성모마리아와 개가 함께 묘사되었다.


<개를 안은 성모마리아 청동상, 14세기(처음에는 15세기로 알려졌으나 14세기), 프랑스>

이 성모마리아 상은 아예 개를 안고 있다. 어린 양이 아니라 당나라 황실 여인 신발을 물어뜯던 것처럼 작은 랩독이다. 심지어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성모 마리아는 임신을 한 상태다


<개를 안은 마리아 청동상 측면, 14세기, 프랑스>

다른 방향 옆모습을 보면 옷 주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주름이 없는 쪽은 확실히 그렇다. 앞서 설명했듯 중세 시대는 카톨릭 독재시대였다. 그 날 입은 옷 색깔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잡혀가 화형을 당할 수 있을 정도로 엄격했다. 


<개를 안은 여자와 왕이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프랑스, 14세기,>

그런 중세 시대에 성모마리아가 개를 안고 있다는 것은 개와 성모마리아의 연관성을 카톨릭 교황청이 인정했다는 의미다. 개는 중세 시대 거울 케이스에도 자주 등장했다


<개들과 승마하는 여인이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14세기, 프랑스>

보통 구도는 비슷하다개를 안고 있는 여인과 그 여인을 에스코트 하는 듯한 남자가 있다. 중세 시대 피터지는 왕위 계승 싸움 속에서 교황이 인정하는 자만이 왕이 될 수 있었다.  


<개를 안은 여자와 남자가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프랑스, 14세기

개가 새겨진 성체함을 가진 일족은 우위를 차지했다. 여기까지 정리하자면 중세 시대 개가 예수님(신)과 지상의 왕을 상징한 것이다. 교황이 인정한 개의 신성성은 교황의 힘이 몰락한 종교 개혁 후 달라진다. 


<팔 모양 성체함 중 날개달린 개, 1230년,프랑스>

노골적으로 왕의 후견인임을 의미하던 개의 상징성은 친근함으로 바뀌었다. 왕의 대관식에 참여하던 개는 왕과 일상을 함께 하는 반려견으로 그려졌다. 개는 개지만 역할이 조금 달라졌진 것이다.

 

<1515년 즉위한 프랑수와 1세와 여동생 마가레트(여왕 마고) 1827~30년 작품, 영국>

마찬가지로 성모마리아와 개의 관계도 달라졌다. 아기 예수를 낳거나 어린 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 발치에 개가 함께 하는 구도에서 점차 젊은 아가씨와 개 한 마리를 그리는 구도로 바뀌기도 했다


보통 그럴 경우 초상화 제목은 마리아일 경우가 많았다.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실제 여성의 초상화일수도 있고 성모 마리아의 마리아일 수도 있다.


<개를 안은 마리아, 영국,  1777년>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강아지는 너무 많이 알려진 카톨릭의 상징이라 아기 예수를 빼는 방식으로 카톨릭의 종교 색을 없앤 듯하다. 그렇다고 개신교와 동방정교회 등의 기독교에서 개를 무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기독교에서 개는 신성하다. 

 

<Marie Émilie Coignet de Courson와 개, 프랑스, 1769년>

그 이유가 나는 유럽 기독교 문화의 바탕이 된 에트루리안 문화에 있다고 본다. 에트루라인은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개 숭배 신앙을 유럽으로 이어준 아주 중요한 연결 고리다. 


<손에 뱀을 든 날개 달린 천사 혹은 악마, 에트루리안, 기원전425~400년>


중세 시대 성모마리아와 개를 새긴 거울 케이스를 다시 보자. 이와 비슷한 거울 케이스가 에트루리안 시대에도 있었다. 에트루리안 시기의 거울 케이스에도 개가 등장한다.


<신을 경배하는 개가 새겨진 거울 케이스, 에트루리안, 6세기 추정> 

기원전 6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에트루리안 거울 케이스 중앙에는 신을 향해 뛰어오르는 개가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남자는 지팡이를 들고 있다. 지팡이를 든 남자? 성 크리스토퍼이다. 


<성 크리스토퍼를 조각한 성체함, 프랑스, 1375–1425년>

성 크리스토퍼는 보통 예수님를 어깨에 메고 지팡이를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로마 로물루스 형제에 의해 지배되기 전 그리스와 로마 지역에 제국을 세운 에트루리안의 기원은 시프러스인 듯 하다


<날개 달린 개 신앙이 유럽에 유입된 과정>

나중에 그리스로마 신화를 설명하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 중 개와 함께 묘사되는 신은 모두 시프러스 섬에서 출신이다.  


<거울 뒷면에 새겨진 에로스와 테우트라스 왕의 화해, 에트루리안, 기원전 4세기 추정>


에트루리안 지배층은 또한 터키(소아시아) 지역에서 믿은 낭두독(개 머리 깃발, 날개달린 개)을 믿었다. 낭두독은 지금의 터키와 당나라 시대 돌궐과 위그르에서 왕을 상징했다. 지상의 왕은 날개달린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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