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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로마 장군은 왜 개와 여인을 끌고 왔을까?

유럽사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장군으로 추앙받는 한니발 장군으로 유명한 포에니 전쟁은 흔히 로마 제국과 아프리카 국가인 카르타고와의 전쟁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카르타고는 단순한 아프리카 야만국이 아니었다.  


<페키니아의 개 무덤과 개 토우 발견 지역, 기원전 600~500년>

그들은 페키니아인이었다. 페키니아가 누구인가? 우리의 늑도 섬 개 무덤 유적과 마찬가지로 개 무덤 유적을 남긴 그 페키니아다. 기원전 600~500년 페키니아의 지배층은 개 무덤과 강아지 모양 토우를 남겼다. 


<황제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핀 인장, 로마, 1~3세기>


이 페키니아가 로마와 유럽으로 전해진 에트루리안 문화와 관련 깊다고 생각된다. 기원전 264년부터 120년 동안 벌어진 로마와 카르타고(페키티아) 사이의 전쟁은 결국 지중해 해상무역권을 둘러싼 전쟁이었다. 


<멧돼지 모양이라고 하나 전형적인 낭두독(날개달린 개) 모양의 숫돌 손잡이, 이란, 기원전 9~7세기>

중아아시아든 지중해든 무역권은 돈이었고 곧 패권이었다. 당시 그리스와 로마는 에트루리안이라고 하는 지배층이 장악하고 있었다. 특히 로마 시칠리아는 페키니아 영향권 아래 있었다.


<위의 숫돌이 출토된 이란 지역, 구글 맵>


그래서인지 에트루리안이 쇠퇴한 시기는 페키니아가 로마 제국에게 패배한 시기와 일치한다. 페키니아가(혹은 그 지배층의 일부) 곧 카르타고이고 카르타고가 곧 에트루리안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사자(개) 머리 금제 장식, 티벳, 7~9세기>

그렇게 가정한다면 개를 숭배한 여신(성모 마리아) 신앙이 로마 카톨릭과 유럽으로 퍼진 배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략의 아버지라 불리는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과 싸워 승리한 로마 제국의 스키피오를 그린 조각을 보자. 

제 2차 포에니 전쟁 후 승리한 로마 제국 측 모습을 그린 이 조각에는 쌩뚱맞게 한 젊은 여자가 왕좌에 앉은 로마 장군 스키피오에게 끌려 가고 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후 승리한 로마 장군 스키피오에게 끌려가는 여인과 개, 이탈리아, 16세기>


사기 충전한 로마 군인들이 끌고 가는 여인의 발 밑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 이 작품을 만든 작가가 그 뜻을 알고 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다고본다. 

개를 숭배하는 페키니아의 지배층은 아마도 여신을 숭배했을 것이다. 이는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 개와 새(올빼미 혹은 독수리 등) 숭배한 여신 이슈타르 신앙과도 일치한다. 


<키프로스 마스티프와 황소 기원전 1340~1200년>

대대로 믿어온 신성한 여신(혹은 네팔의 쿠마리 같은 살아있는 신녀)이 있었고 그 여신은 신성의 증거로 개를 데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강아지와 여인을 로마 제국은 승리의 증표로 끌고 온 것이다. 


이 개 신앙과 여신 신앙이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전해진 것이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었고 그 문명의 결정판을 받아들인 것이 로마 제국이었다고 볼 수 있다. 

포에니 전쟁 당시 카르타고(페키니아)의 영향권을 보자. 지금의 스페인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를 뚝 잘라 반도의 아래 반 정도를 영향권에 두고 있었다. 


<투구를 쓰고 방패를 든 무사, 에트루리안, 기원전420~400년> 

또 이탈리아 반도의 대부분과 프랑스 남부, 아프리카 북부와 히브리 지역까지가 전부 페키니아(카르타고)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그러니까 히브리 반도와 이집트, 아프리카 북부, 스페인 남부, 프랑스 남부, 이탈리아 반도는 전부 페키니아(카르타고)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는 뜻이다. 



<브라간자 브로치 중 투우를 쓴 전사와 사냥개, 스페인 이베리안 반도, 기원전 250~200년>

이 말은 즉 이 지역은 개를 숭배하는 신앙을 믿은 지배층이 지배했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인지 히브리 반도에서는 페키니아의 개 무덤과 강아지 토우가 발견되었다. 

페키니아의 영향권에 있었을 키푸로스에서는 개와 암소(여신)이 신으로 등장하고 이집트 에서는 이집트 전통개가 죽음의 신으로 숭배받았다.  


<사냥하는 사냥개가 새겨진 에트루리안 비문, 기원전490~470년>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 제국은 에트루리안이 숭배한 개 신앙을 그대로 가져왔다. 기독교 공인 후 유럽을 지배한 로마 카톨릭 교황청은 개가 그려진 성체함을 왕의 증표로 삼았다. 


<브라간자 브로치 중 낭두독(날개 달린 개), 스페인 이베리안 반도, 기원전 250~200년>

고대 프랑스에서는 개를 숭배하는 독특한 켈트 문화가 나타났고 종교 개혁 이전가까지 개를 숭배하는 카톨릭 문화가 이어졌다. 


<청동 주전자, 프랑스, 기원전 450~400년>

스페인에서는 날개달린 개를 그대로 차용한 듯한 유물이 고대부터 꾸준히 발견되었다. 왕가가 사용한 듯한 개 유물이 발견된 스페인이 카톨릭을 신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청동 주전자 중 개 모양 손잡이, 프랑스, 기원전 450~400년>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스페인나 종교 개혁 이전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믿은 카톨릭은 신성한 개와 여신을 믿은 고대 종교의 변형으로 보인다. 


<날개달린 개 모양 팬던트, 스페인, 16세기>

고대 페키나아(카르타고)에서 믿은 신성한 개 신앙과 여신 신앙이 로마 제국으로 그대로 편입되었고 그 신앙은 성모 마리아 신앙으로 이어졌으며 지금까지도 유럽에서 보편적으로 보여지는 개 사랑으로 이어진 것이다. 


78. 왜 성모 마리아는 개를 안고 있었을까?

유럽사

한국 천주교는 천주교 역사 상 유일하게 개고기를 전통으로 인정하며 적극적으로 먹는 조직이다. 원래 천주교에서는 개를 신성하게 여겼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용과 싸우는 개가 그려진 메달 형태의 성체함, 프랑스, 1420년>

유럽사는 곧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역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종교 개혁 이전의 천주교와 종교 개혁 후의 개신교를 설명하면서 유럽사도 함께 알아볼 것이다.

<개고기를 모두 금지하는 세계 5대 종교>

유럽사는 곧 이슬람사, 미국사와도 이어진다. 복잡다단한 이 역사들 속에서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개고기 안 먹는다. 한국 기독교만 먹는다.”


<성모마리아와 예수와 개, 1590년, 독일>

유럽 예술에서는 성모마리아와 개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종교 개혁 전과 후 형식이 조금 달라진다. 종교 개혁 전에는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혹은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와 강아지 혹은 성모마리아와 개가 함께 묘사되었다.


<개를 안은 성모마리아 청동상, 14세기(처음에는 15세기로 알려졌으나 14세기), 프랑스>

이 성모마리아 상은 아예 개를 안고 있다. 어린 양이 아니라 당나라 황실 여인 신발을 물어뜯던 것처럼 작은 랩독이다. 심지어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성모 마리아는 임신을 한 상태다


<개를 안은 마리아 청동상 측면, 14세기, 프랑스>

다른 방향 옆모습을 보면 옷 주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주름이 없는 쪽은 확실히 그렇다. 앞서 설명했듯 중세 시대는 카톨릭 독재시대였다. 그 날 입은 옷 색깔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잡혀가 화형을 당할 수 있을 정도로 엄격했다. 


<개를 안은 여자와 왕이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프랑스, 14세기,>

그런 중세 시대에 성모마리아가 개를 안고 있다는 것은 개와 성모마리아의 연관성을 카톨릭 교황청이 인정했다는 의미다. 개는 중세 시대 거울 케이스에도 자주 등장했다


<개들과 승마하는 여인이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14세기, 프랑스>

보통 구도는 비슷하다개를 안고 있는 여인과 그 여인을 에스코트 하는 듯한 남자가 있다. 중세 시대 피터지는 왕위 계승 싸움 속에서 교황이 인정하는 자만이 왕이 될 수 있었다.  


<개를 안은 여자와 남자가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프랑스, 14세기

개가 새겨진 성체함을 가진 일족은 우위를 차지했다. 여기까지 정리하자면 중세 시대 개가 예수님(신)과 지상의 왕을 상징한 것이다. 교황이 인정한 개의 신성성은 교황의 힘이 몰락한 종교 개혁 후 달라진다. 


<팔 모양 성체함 중 날개달린 개, 1230년,프랑스>

노골적으로 왕의 후견인임을 의미하던 개의 상징성은 친근함으로 바뀌었다. 왕의 대관식에 참여하던 개는 왕과 일상을 함께 하는 반려견으로 그려졌다. 개는 개지만 역할이 조금 달라졌진 것이다.

 

<1515년 즉위한 프랑수와 1세와 여동생 마가레트(여왕 마고) 1827~30년 작품, 영국>

마찬가지로 성모마리아와 개의 관계도 달라졌다. 아기 예수를 낳거나 어린 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 발치에 개가 함께 하는 구도에서 점차 젊은 아가씨와 개 한 마리를 그리는 구도로 바뀌기도 했다


보통 그럴 경우 초상화 제목은 마리아일 경우가 많았다.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실제 여성의 초상화일수도 있고 성모 마리아의 마리아일 수도 있다.


<개를 안은 마리아, 영국,  1777년>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강아지는 너무 많이 알려진 카톨릭의 상징이라 아기 예수를 빼는 방식으로 카톨릭의 종교 색을 없앤 듯하다. 그렇다고 개신교와 동방정교회 등의 기독교에서 개를 무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기독교에서 개는 신성하다. 

 

<Marie Émilie Coignet de Courson와 개, 프랑스, 1769년>

그 이유가 나는 유럽 기독교 문화의 바탕이 된 에트루리안 문화에 있다고 본다. 에트루라인은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개 숭배 신앙을 유럽으로 이어준 아주 중요한 연결 고리다. 


<손에 뱀을 든 날개 달린 천사 혹은 악마, 에트루리안, 기원전425~400년>


중세 시대 성모마리아와 개를 새긴 거울 케이스를 다시 보자. 이와 비슷한 거울 케이스가 에트루리안 시대에도 있었다. 에트루리안 시기의 거울 케이스에도 개가 등장한다.


<신을 경배하는 개가 새겨진 거울 케이스, 에트루리안, 6세기 추정> 

기원전 6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에트루리안 거울 케이스 중앙에는 신을 향해 뛰어오르는 개가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남자는 지팡이를 들고 있다. 지팡이를 든 남자? 성 크리스토퍼이다. 


<성 크리스토퍼를 조각한 성체함, 프랑스, 1375–1425년>

성 크리스토퍼는 보통 예수님를 어깨에 메고 지팡이를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로마 로물루스 형제에 의해 지배되기 전 그리스와 로마 지역에 제국을 세운 에트루리안의 기원은 시프러스인 듯 하다


<날개 달린 개 신앙이 유럽에 유입된 과정>

나중에 그리스로마 신화를 설명하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 중 개와 함께 묘사되는 신은 모두 시프러스 섬에서 출신이다.  


<거울 뒷면에 새겨진 에로스와 테우트라스 왕의 화해, 에트루리안, 기원전 4세기 추정>


에트루리안 지배층은 또한 터키(소아시아) 지역에서 믿은 낭두독(개 머리 깃발, 날개달린 개)을 믿었다. 낭두독은 지금의 터키와 당나라 시대 돌궐과 위그르에서 왕을 상징했다. 지상의 왕은 날개달린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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