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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5. 개장국 금지 이승만Vs 단고기 먹은 김일성

정치

개고기 중독 김일성 교가 퍼진 북한


해방 후 북한은 개고기 금지한 천도교에서 개고기 먹는 김일성 교로 바뀌었다. 주체사상이라는 김일성 교에서 김일성의 일말과 행동은 신의 계시와 같다. 까라면 까고 먹으라면 먹는다. 1960년대까지 북한에서 개고기가 대중적이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하루 두 끼 개고기를 먹던 김일성이 한 마디 하자 즉시 단고기가 되었다. 남한은 어땠을까? 역시 남한 내 세력이 없던 이승만이 깜짝 등장해 건국 대통령이 되었다. 이승만과 김일성은 대 중국 정책과 개고기 식용 정책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


<휴전협정에 서명하는 김일성, 이 시기 김일성은 하루에 두 끼는 반드시 개고기를 먹었다, 1953년 7월>


이승만 대통령은 친미 반중 정책을 폈다. 김일성은? 친중 친소 정책을 폈다. 이승만 대통령은 강력한 개고기 금지 정책을 썼다. 김일성은 개고기 보급 정책을 썼다. 71%의 인구가 개고기를 금지하는 천도교를 믿은 북한 주민의 충성심을 확인하려는 것을 수도 있다.

 

개고기 반대 친미친중 정책의 이승만

 

이걸 도식으로 보면 개고기 먹은 중국공산당가 북한이 한 편 먹고 개고기를 금지한 이승만 정권을 압박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면 이승만 대통령은 왜 개고기를 금지했을까? 우리 전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과 고구려의 개에 대한 인식 차이>


개고기는 고대 중국 전통이었다. 그걸 중국 공산당이 중화사상 뽕에 미쳐 되살려 낸 것이었다. 중국인 김일성이 북한을 접수하면서 북한도 개고기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것이었다. 개고기는 중국 공산화를 의미했다.




<1950년 11월 서울. 폐허 속을 뒤지는 여자와 아이들>


역사를 통틀어 인간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면 개를 잡아먹는다. 이승만 대통령이 개고기 금지법을 시행하던 1954년은 굶주림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 전쟁 때문에. 1950년 북한의 침공으로 시작된 한국 전쟁은 1953727일 휴전 협정으로 끝이 났다.

 

한국전쟁 끝나자마자 개고기 금지부터

 

1954년이면 작년에 전쟁 끝나고 이제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나 막막해하던 시기였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초토화되고 미국과 유엔의 식량지원을 받아 겨우 연명했다. 그런데도 이승만 대통령은 강력하게 개고기를 금지했다.


<1954년 4월 26일 북진통일 촉구 대회 중 혈서쓰는 청년>


그는 아마 중국과 한국, 북한에서 개고기가 갖는 의미를 이해한 것 같다. 개고기는 중국공산혁명의 상징이었다. 그렇다면 개 먹는 행위 자체가 공산혁명 운동이 된다. 이를 저지하는 개고기 금지법 시행은 강력한 반공운동의 일환이었다.


개고기 금지법이 시행되던 1954년 남한에서는 연일 중국 공산당 물러가라!” “북진 통일하자!” 는 데모가 열렸다. 학생, 시민들은 혈서를 썼다. 반드시 북진 통일을 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승만의 개고기 금지는 반중반공 운동

 

31운동 기념 시가행진에서도 북진 통일을 외쳤다. 한국 전쟁 때 납북된 사람들의 가족들은 납북자 석방을 촉구하며 공산당을 욕했다. 뭘 해도 결론은 "중공 나쁜 놈, 북한 나쁜 놈"이었다.


<1954년 4월 26일. 중공군 물러가라는 플랭카드>


사사오입 개헌으로 장기집권을 시도한 이승만 정권 기반은 강력한 반공정신이었다. 남한은 공산주의, 즉 북한과 중공을 증오했다. 그들은 무찔러야 할 적이었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개고기 먹다  잘못 걸리면 빨갱이(친중파, 친북파= 간첩)로 몰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뒷골목 으슥한 곳에서 숨어서 개고기를 판 것이다. 당연히 남한에는 제대로 된 개고기 조리법이 존재할 수 없었다.

 

중공 나쁜 놈, 북한 나쁜 놈


개고기는 남한에 숨어있던 친중파와 친북파 혹은 일부 민주화 운동 세력, 천주교, 개신교, 증산교, 원불교 등의 종교 세력이 숨어서 몰래 먹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숨어서 먹었다.


<개고기 식용 대 개고기 금지로 보는 한국전 양상>


개를 먹는 행위는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신문에서 날 정도로 몰염치한 짓이었다. 195461954630일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있다.


<1954년 6월 30일 경향신문의 개장국 관련 기사>


개장국 판매는 (정부의) 인가를 받은 것이냐, 는 제목의 기사를 보자. 개장국 판매를 금한다는 보도가 새로운데, 마이동풍 격으로 계절에 따라 공공연히 판매를 하니 이는 인가된 것이냐는 질문에 개장국 판매는 법으로 금하고 있다는 답변하고 있다.

 

개장국에서 보신탕, 보신탕에서 영양탕

 

음식점으로는 허가한 일은 있어도 개장국 판매점으로 인가한 적 없으며 당국에서는 가축보호의 견지에서 개장국 판매를 금하고 있으니 보안 관련 경찰에게 신고하라는 것이다. 개장국으로 팔면 경찰에 잡혀 가니 보신탕으로 이름을 바꿔 팔았던 것이다.

1980년 대 전두환 대통령이 보신탕을 규제하자 영양탕으로 이름만 바꾼 것과 같은 꼼수다. 반중반공으로 뭉친 남한이 동물보호법으로 개장국을 강력히 금지하고 있을 때 북한에서는 김일성 표 개고기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었다.


<외신기자들을 불러 놓고 개고기는 제사 음식이라고 한 고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그 김일성 표 바이러스가 현재 한국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김일성이 먹던 개고기는 우리 전통이 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이 금지한 개고기 금지법은 철저하게 잊혀졌다.

 

북한의 김일성 표 개고기 바이러스

 

남한은 이승만을 언급하는 것이 큰 죄라도 짓는 것처럼 승만 지우기에 열성이었다. 그와 함께 이승만의 개고기 금지법도 잊혀졌다. 혹자는 말한다. 친미친일파인 이승만은 나쁘다고.


<1948년 5월 1일. 북한의 기념식에 걸린 소련의 스탈린과 김일성 사진>


아니 그럼 친소친중파 김일성은 착해? 소련 뒷배로 권력을 잡은 김일성이 한 일이라고는 북한에 개고기 바이러스나 퍼트린 거다. 개고기는 전통이라는 세뇌로 말이다. 김일성은 남한의 적인 중국공산당은 친구였다.


적의 친구는 뭐다? . 중국 공산당은 1958년 김일성을 초대해 천안문 광장에서 카 퍼레이드까지 열어줬다. 누가 보면 금의환향한 동포인 줄 알 정도로 성대하게 말이다. 결국 누굴 파트너로 삼느냐의 차이였을 뿐이다.


이승만은 나쁘고 친중파 김일성은 착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승만 정신은 잊히고 김일성 정신은 한국에서 살아남았다. 개고기 금지법은 사라지고 개고기 식용이 뿌리 내렸다는 의미다. 북한의 김일성 표 개고기 바이러스가 남한에도 전파된 것이다.

 

1984년 원불교 신문에는 1998년 이후 한국에 퍼진 '개고기 전통론'과 똑같은 논리로 개고기를 옹호하는 기사가 실렸다. 개고기는 우리 전통이고 외국에서 보신탕을 욕하는 것은 타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야만이라고 주장이다.


<1984년 개고기는 전통이라고 한 원불교 신문>


당연히 당시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인 1997년까지 복날이면 유력 신문에는 복날 개고기는 중국 전통이라는 내용의 사설이 실렸다.

 

이승만 정신과 함께 사라진 개고기 금지법

 

원불교 측 주장과 달리 현재 널리 알려진 우리 조상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증거는 조악하기 그지없다. 고대 중국 기록의 짜집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개를 먹지 않았다. 


<1958년 11월. 중공 천안문 광장에서 카 퍼레이드를 하는 김일성>


해방 후 남한과 북한, 한국과 중국은 개고기식용이냐, 금지냐, 로 뚜렷이 구분되었다. 그 경계가 점차 사라지더니 김일성의 만수무강을 위해 진행된 북한의 개고기 연구가 남한에서 발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 가축 고시의 근거가 된 책을 쓴 모 식품학과 교수의 논문에는 개고기에 대한 많은 참고문헌이 실렸다. 112개에 달하는 참고 문헌 중 실제 조리법은 1989북한료리협회에서 소개한 개고기 요리법 밖에 없다.

 

북한 개고기 요리법을 한국 교수가 발표

 

남한 사람은 모르던 해방 후 북한에서 만들어진 개고기 요리법이다. 그 외 참고 문헌에 등장 하는 개고기 요리나 개고기의 영양학적 증거 유형은 두 가지였다. 첫째, 어느 신석기 중국인이 쓴 내용에 근거해 조선에 전해진 중국 측 기록.

 

<1989년 북한료리협회가 내놓은 북한 개고기 요리법을 인용한 남한 교수의 논문. 그의 연구는 2007년 '개 가축 고시'의 근거가 되었다>


둘째,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조선 시대 기록을 재편집한 (역시 중국 서적이 원 출처) 요리법을 총망라한 것. 모두 중국 거다. 노란색으로 표시한 김태홍의 논문은 1670년부터 1943년까지 문헌 16권에 나타난 개고기 요리의 종류와 조리법, 양념, 부재료를 조사한 것이다

이런 왜곡된 학문적 결과물은 언론과 지식인 사회를 통해 신나게 한국 전체로 전파되었다. 중국 공산당의 개고기가 김일성에 의해 북한으로 전파되었다가 다시 남한으로 전파된 후 5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으로 둔갑한 것이다.    



3. 개고기 먹는 가짜 동학 후계자는 친중파?

종교

동학이 개고기를 먹지 않은 세 가지 증거 


동학 신앙을 믿고 동학 정신을 믿는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동학 신자가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동학 신앙을 버리는 것과 같았다. 적어도 일제시대 조선 인구의 25% 혹은 해방 800 명의 조선인은 개고기를 절대 먹지 않았다

동학이 절대 다수 조선 백성들이 지지를 했다는 사실을 통해 조선 말기 대다수 백성들이 일상적으로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있다. 그 증거는 대략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평화 회의>


첫 째 헐버트의 증언. 헐버트가 누구다? 고종 황제가 국제사회에서 조선 독립을 촉구하기 위해 헤이그에서 열린 평화 회의에 특사. 미국인 헐버트도 조선인은 개고기를 일상적으로 먹지 않았다는 증언을 했다

그의 책인 『대한제국사』에서  조선에 기괴한 음식이라고는 개고기 정도인데, 그나마 가장 천한 계층이 먹도록 극도로 되어 있다고 한 것이다.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고 했다. 

  

<헐버트가 쓴 책 중 개고기에 관한 부분>


왜? 금기가 있었으니까. 이게 핵심이다. 조선 시대 개고기에는 금기가 있었다. 개고기 먹으면 재수없다는 금기. 둘째, 일제의 기록인 조선가축통계」. 당연히 일제 시대 발행된 조선가축통계」에도 개는 조선인이 기르는 가축이 아니었다


일제는 왜 통계에 개고기를 넣지 않았나? 


이 시기 일제는 조선인을 개 잡아 먹는 야만인이라고 신나게 조롱했다. 만 일제의 주장한 대로 조선인이 농경민이고 개가 가축이라면 통계에 잡히지 않았을 리가 없다.  개가 실제 조선인이 먹는 가축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제도 통계에 넣지 못한 것이다 .


<일제가 발행한 가축 위생 통계>


셋째 이승만 대통령이 정한 개장국 금지법. 1954년 6월 경향신문 기사에 의하면 당시 조선에는 개장국 금지법이 있었다. 개는 동물보호의 견지에서 보호되고 있고 개장국은 당국에서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경찰에게 신고하라는 내용이다. 

개장국을 금지하니 이름을 보신탕으로 바꿔 몰래 팔았던 모양이다. 헐버트의 증건, 일제 시대 정부 기록, 이승만 대통령의 개장국 금지법에 의해 우리 조상들이 결코 개고기를 일상적으로 먹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개장국 금지법 


그렇다면 조선 시대 가장 천한 계층이 먹도록 극도로 제한 되었고 해방 후에는 개장국 금지법이 있을 정도로 보호하던 개의 고기가 어떻게 해서 우리 민족의 전통 음식으로 둔갑할 있었을까? 가짜 동학이 진짜 동학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1954년 6월 60일 개장국 금지 질의>


중국 사대주의와 중국 공산당 정신이 진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즉 친중파의 승리다. 일제는 식민지배에 방해가 되는 동학을 변질시켰다. 동학과 비슷한 관변 단체를 만들어 적극 지원한 것이다. 

그 예가 (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시천교, 일진회, 보천교, 증산교, 원불교 등등이다. 그들이 진짜 동학 정신을 계승했는지 알아보려면 딱  '개'  하나만 보면 된다. 동학 신앙을 믿고 동학 농민 운동 정신을 계승했다면? 


개고기 안 먹는 천도교 


당연히 개고기는 먹지 말아야 한다. 선배 신자는 개고기로 고문당하며 신앙을 지키다 죽었는데 후배라는 인간이 신나게 개고기를 먹는다면 그건 뭐가 이상한 상황이다. 가짜다. 현재 남한에서 동학을 계승했다고 하는 종교 단체  천도교 관계자 분을 만나 인터뷰를   있다 


<1949년 5월 증산교 교주 강일순. 강일순의 호가 증산이다>


  말씀에 의하면 천도교는 간부 대부분이 북한에 살다 김일성에게 숙청되는 바람에 남한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원래부터 개고기는 절대  먹는다고 했다

 그런지는 모르지만 동경대전』  나오는 식용 금지 동물이 개라고 믿으며 절대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증산교는 취재를 못했다. 전화로 취지를 말씀드리니 취재 거부를 했고 만일 증산교에서 개고기 먹는 가지고 글을 쓰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고 협박했다


개고기 먹는 증산교와 원불교 


증산교 교주가 개고기 좋아하는지 아닌지 여부는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기 바란다. 역시 동학 계열로 분류되는 원불교에서도 개고기에 호의적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개고기는 우리 전통이라는 원불교 신문 기사. 1984년 2월 16일>


원불교 창시자는 증산교와 관련이 있다고 하나 육식을 멀리하고 도를 닦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 원불교 지도자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하지만 일반 신자들까지 개고기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원불교에서는 개고기를 우리 전통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진짜 동학은 개고기를 안 먹고 가짜 동학은 개고기를 먹는다. 개고기는 고대 중국과 중국 공산당이 만든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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