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 여진족' 태그의 글 목록 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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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명나라 빨던 이성계 역할, 조선족 중국인

조선

이성계가 고려와 원나라에는 천하의 역적 놈이었지만 명나라 입장에서는 반대였다. 고려 우왕의 뒤통수를 친 위화도 회군은 명나라에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위화도가 어디냐? 바로 압록강 한 가운데 섬이다

바로 강을 건너면 요동 땅이었고 만약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뒤통수를 치고 돌아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명나라는 아직 건국된 지 20년 밖에 되지 않는 신생국가였다


<이성계가 우왕의 뒤통수를 친 위화도>


원나라 농민 출신 주원장은 황제로 등극하자마자 무시무시한 독재 정치를 펴며 기존의 건국 공신들을 거의 모두 학살했다. 친구고 자식이고 없었다. 그냥 뭐 막 죽였다

고대 중국의 도교 책을 모은 『구선활인심법이라는 책을 출판해 조선의 이황이 무술주(개고기 술)를 한국에 퍼트리도록 하는 빌미를 준 주권이 주원장 아들 중 하나였다




<이미 사라진 고대 중국의 개고기 술을 소개한 주권의 『구선활인심법』(위)과 이를 표절해 조선에 퍼트린 이황(아래)>


열 일곱 번째 아들인가 했던 주권은 반란을 일으키다 실패해 신선 선() 자를 쓰는 주선이라는 이름을 쓰며 은거했으나 주권의 아들이 다시 반란을 일으켜 일가가 몰살당하고 말았다.

아들들까지 몰살시킬 정도로 주원장은 내부 청소를 아주 깨끗이 했다. 과도한 숙청은 언제나 장단점이 있다. 실력자들을 다 쳐냈으니 내부적으로는 반란을 일으킬 놈들이 없어져 안정될 수 있다


<이성계가 포기한 요동 박물관에는 청 왕조 시대의 중국 모습이 남아 있다, 고소소번화도, , 1759>


그러나 외부적으로는 외적을 막아낼 인재()군들이 사라지니 필연적으로 군사력이 약해진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뒤통수를 치던 1388년이 딱 그랬다. 이 때 만약 이성계가 우왕의 지시대로 요동을 쳤다면 명나라는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여기에 만약 혈연관계로 묶인 북원 황실과 고려 왕실이 연합해 명나라를 쳤다면 중국까지 지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뒤통수를 쳤고 덕분에 고려 왕실은 몰살되게 된다


<원 제국 이전 고려는 송나라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불교와 도교의 영햘을 받은 송나라에서는 개고기 먹는 문화가 사라진 상태였다>


명나라도 건재할 수 있었다. 위화도 회군을 하는 시점을 전후 해서 조선 건국까지 일련의 거사에 이성계 일파가 명나라 사주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 이유다. 이성계 집안은 순수 고려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 이성계가 여진족이라는 설도 있다.


나는 이성계 집안이 여진족을 가장한 중국 한족일 수도 있다고 본다. 이성계 집안은 고려 시대 요동 지역을 장악한 무인 집안이었다. 고려는 조선을 제외한 모든 한민족 왕조가 그랬듯 매우 개방적인 왕조였다.


<아랍과도 교역한 고려의 배가 새겨진  황비창천명형 동경,  고려, 918~1392년


실력만 있다면 외국인도 벼슬을 받아 고려인이 될 수 있었다. 이성계 집안이 실은 원나라를 증오하던 중국 한족 가문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지나치게 명나라를 물고 빨았다

명나라는 조선을 말 잘 든는 오랑캐라고 부르며 멸시하는데도 이성계는 조선도 이제야 명나라가 되었다며 좋아했다이성계가 중국 한족이 아니라면 미친 거다. 이 때부터 조선은 명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 왕과 왕세자를 책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을 구경하는 고려 상류층과 마당에서 뛰노는 고려의 개. 건축 양식과 복식이 송나라와 유사하다>


명나라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가 아니었다. 말 잘 듣는 오랑캐인 조선이 요동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은 조선이 북원(몽골)과 연합을 영구히 포기한다는 의미였다. 북쪽 국경과 서쪽 국경이 안전하다면 중원도 안전할 수 있었다

원은 더 이상 요동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몽골 고원을 기점으로 발전했다 명나라의 북쪽 국경 걱정을 덜어준 조선은 정말이지 이상한 왕조였다. 조선은 명나라가 되기 위해 그때까지 존재한 한민족의 모든 것을 지웠다


<고려 시대까지 복날에는 팥죽을 먹었지만 조선과 조선족의 힘으로 복날에는 개고기를 먹는 것으로 왜곡되었다>


고려 대까지 존재한 모든 역사는 사라졌다. 조선인 스스로 조상들의 역사와 문화를 지운 것이다그 대표적인 예가 복날 개고기다. 고려 대까지만 해도 복날 팥죽을 먹으며 액막이를 했다

조선 건국 후부터 개고기는 한국 전통이라고 왜곡하더니 조선 후기 들어 본격적으로 복날에는 고대 중국 풍습인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세뇌했다안타깝게도 명나라를 도운 이성계와 같은 역할을 현재 조선족이 담당하고 있다이성계와 마찬가지로 조선족도 출신이 불분명하다.


<특별법을 제정해 조선족 동포 이민청을 신설해달라고 요구하는 100만 조선족 중국인뉴데일리, 2017년 5월 8일>


들이 중국 한족인지 여진족의 후예인지 한국의 독립운동가인지 사실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현행 법 상 조선족은 194910월 이전 중국으로 간 한국동포를 뜻한다. 한국 같은 경우는 1970년대까지 호적과 족보가 정확하지 않았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중공은 더 하다. 아무도 그들이 진짜 한국동포인지 증명할 수 없지만 그들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처럼 당당히 한국 땅에 들어와 새로운 한국을 건설하고 있다. 복날 개고기가 한국인의 전통이라는 거짓말을 하면서 말이다

142.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개고기 동북공정'

조선

개고기는 중국 문화다. 중국이라고 다 같은 중국이 아니다. 중국 역사에는 순수 중국 한족 역사와 기마 유목 왕조 역사가 섞여 있다. 단적인 예로 원나라는 중국사에 속하지만 정확히 중국 역사는 아니다

기마 유목 왕조 국가인 몽골 역사다. 청나라 역시 중국사에 속하지만(청사공정 이전에는 중국사에서 제외) 중국 역사가 아니다. 기마 유목 왕조 국가인 만주족의 역사다중국 역사에는 이민족인 기마 유목 왕조에게 지배당한 역사도 섞여 있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과 조선은 개고기를 좋아한 공자를 숭배. 중공의 공자학원은 전 세계에서 중국 문화를 가르친다>


이 굴욕적인 역사적 사실을 중국은 뇌피셜(자의적인 해석)로 간단히 해결했다. 몽골? 몽골도 중국 속국이었어.” “만주? 만주도 중국 속국이었어.”고구려? 중국 속국이었어!” 역사적 근거는 없다

세뇌가 안 되는 인간들은 개 때려잡듯 학살 하거나 위그르 집단 수용소 같은 곳에 보내 장기를 털어버리면 해결되었다. 그 결과 조선족을 포함한 모든 중국인은 오직 중국 공산당이 정한 역사만 앵무새처럼 따라한다


<고구려에 이어 백제까지 중국 역사에 편입시킨 중국 공산당, 동아일보, 2017년 9월 13일>


지나가는 조선족 붙잡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누구 역사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중국 역사라고 할 것이다그럼 중국 한족 왕조와 기마 유목 왕조는 뭐가 달랐냐? 개고기가 달랐다. 기마 유목 왕조 국가는 절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모든 기마 유목민은 개를 가족처럼 사랑했다. 사자 개는 기마 유목 왕조의 상징이자 왕을 상징하는 옥새와 같은 존재였다. 중국 한족은? 개를 가축으로 키워 잡아먹었다. 개는 가축이자 식량이었다. 조선족이 신처럼 따르는 중국 공산당은 고대 중국으로 돌아가자는 복구 운동을 했다


<조선족 무형문화유산전람관에는 개고기가 전시되어 있다, 월드코리안뉴스, 2010년 12월 14일>


개고기? 당연히 가축이자 식량이다. 한국에 집단 거주한 조선족이나 중국 공산당의 지시에 따르는 한국의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도 같은 말을 한다. ‘개는 가축이자 식량이라고. 앵무새처럼 말이다. 역사적 근거? 그 딴 거 필요 없다


개는 우리 조상들의 가족이자 수호신이었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매국노로 몰면 입을 다물었다. 이게 1997년 이후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중국 공산당의 개고기 동북 공정의 실체.


<중국 공산당의 동북공정에 따라 개고기 불간섭 선언을 한 한국의 사회 지도과 각계 각층의 사람들,  2001년 12월, 오마이 뉴스>


중국 공산당은 원나라와 청나라까지 모두 중국이었다고 우기지만 순수 중국 역사와 기마 유목 왕조 지배기를 구분하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개만 보면 된다. 개고기를 신나게 먹은 시기는 중국 한족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고 봐야 한다. 딱 한나라 대까지다

유방이니 번쾌니 하는 그 시기다. 개고기를 금지하거나 개고기 먹기를 꺼려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왕조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거나 영향을 받은 시기다. 516국이니 수, 당이니 하는 시기부터다. 이렇게 따지면 순수한 중국 한족 역사는 한나라와 명나라, 중국 공산당 지배기 정도로 국한된다


<왕소군의 고향 한나라는 개고기를 먹었고 한나라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흉노를 개를 숭배했다>


이민족의 지배기 동안 중국 한족은 이를 박박 갈며 오랑캐 지배자 놈들을 욕하며 버텼다. 원나라 대 한족은 원나라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이 사람들이 거의 노예 취급을 받았다. 이 중 한 명인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을 때 중국 한족은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이 때 같이 만세를 부른 사람들이 고려에도 있었다. 이성계 집안이었다. 고려 왕실은 원황실과 한 집안이었다. 고려는 원 황제의 사위의 나라였다. 고려 왕실은 원 황족과 같은 황금씨족이었다. 원 황실에서는 공주를 시집보낼 때 급이 맞는 집안을 골라 보냈다


<고려 충렬왕의 장모인 원 제국 쿠빌라이 칸의 황후, 14세기>


고려 왕족이 원 황실과 사돈을 맺을 만한 급이었던 것이다. 명나라가 원 왕조를 중국 땅에서 몰아냈을 때 고려의 우왕은 이성계를 요동으로 보내 후방을 치게 했다. 위화도 회군? 위화도 뒤통수. 장군이 왕의 명령을 안 듣고 돌아와 왕을 몰아낸 사건이 자랑스러운가

만약 우왕의 명령대로 이성계가 요동 땅을 정복했다면 만주는 우리 땅이 되었을 것이다. 또 북원(전 원나라) 군대는 후방을 지원 받아 명나라 군을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몽골 고원으로 쫓겨난 북원이 다시 중국 대륙을 지배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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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한민족 파괴자 조선, 고려가 개를 먹어?

조선

조선 왕조를 비판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친일파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역사를 사랑한다.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 한국인은 흥의 민족이다. 흥이 나면 불같이 확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론 불같이 훅 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실망할 건 없다. 또 어디선가 불같이 훅 일어날 것이고 같은 한국인으로서 뭉치면 되기 때문이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중요한 이유. 우리가 뭉칠 수 있는 힘이기 있기 때문이다. 

<단군을 그린 산신도, 1900-1925년>

한국인이라는 의미는 혈연적인 정의로 국한할 수 없다. 알타이-시베리아 지역의 기마 유목 왕조는 인종과 언어는 달랐지만 하나로 연결되었다. 초기 에트루리안 왕조의 지배층 중에는 아프리카 흑인도 있었다

역사와 문화(종교 포함)를 공유한다면 같은 민족이다. 한국인의 정체성만 가지고 있다면 한반도든 중국이든 지구 어디든 우리는 한국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단군의 홍익인간을 높이 평가한다.


<선비족 무덤에서 나온 벽화 중 수렵도 , 몽골, 337-370년>

그런 단군을 짐승이라고 욕하며 부정한 인간들이 있다. 일제 시대 일본 놈들이 그랬냐고? 아니, 조선 왕조다. 우리는 일본 식민지 시절 우리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 문화를 파괴했으며 역사를 왜곡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미 500년 전부터 조선 왕조는 한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파괴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조선 왕조가 500년 동안 작업해온 한민족 파괴 작업에 숟가락을 얹고 거기에 문화적 인종론'이라는 양념을 팍팍 친 것 뿐이라고 볼 수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 중 수렵도, 고구려, 5세기>

조선 왕조의 건국 세력은 고려까지 존재한 모든 역사서를 불태웠다. 그리고 500년 내내 강력한 검열을 통해 (학문)의 독재를 했다. 그 결과 조선은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왕조가 되었다.

조선은 개국을 하자마자 대대적으로 고려 역사를 정리해 고려사를 편찬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조선 왕조가 적폐로 규정한 고려 역사를 조선 왕조가 썼다는 소리다. 좋은 말을 했을까? 온갖 잡소리에 욕이란 욕은 다 썼다


<조로아스터교에서 신으로 추앙받는 네눈박이 몽골의 전통 개들>

고려가 좋은 왕조라면 조선 개국은 명분을 잃는다. 이성계가 쿠데타를 일으킨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는 고려 왕조가 반드시 천하의 샹샹바가 되어야 했다. 고려 왕조의 나쁜 점을 구구절절 써 놓은 역사책이 고려사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이 고려사를 정사로 취급하며 고려 역사를 다룬다. 왜곡된 고려 역사를 배울 수밖에 없다. 그 대표인 예가 개고기다. 한국 학계가 얼마나 심각하게 역사 왜곡을 하고 있는지는 고려의 개고기 식용 설만 봐도 알 수 있다


<고려 왕실에서 사용한 청자용 모란무늬 합과 받침대 중 강아지 손잡이, 고려, 13세기>

고려사에는 개와 개고기에 대한 몇 구절이 나온다. 개고기를 먹은 인물은 몽골 침략기에 뒤통수를 치거나 무신 집권기에 야비한 행동을 한 나쁜 놈들이다. 나쁜 놈들을 묘사할 때 개고기를 먹었다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쓴 것이다


이걸 한국의 학자들은 긍정적으로 취급했다. 고려의 나쁜 놈인 아무개가 개고기를 먹었으니 개고기는 고려의 전통이라는 결론에 도출한 것이다. 상식적인가? 또 아무 맥락 없이 단지 가 나왔다는 이유로 중간 검증 과정은 생략한 채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경우도 있다.


<양을 치고 양고기가 주식인 몽골인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몽골, 1920경>

고려사에는 몽골군이 침입해 개와 닭까지 절종시켰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구절은 고려인은 개고기를 먹었다는 결론의 근거가 되었다. 이해가 되는가? 단지 고려 개경에 엄청 많은 개와 닭이 있었고 그 개와 닭을 몽골군이 죄다 죽였기 때문에 고려인은 개고기를 신나게 먹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고? 그 정도로 개를 많이 키울 이유는 식용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거짓말 같지만 이게 모 식품영양학과 논문 내용이다. 개는 가축이라는 대전제가 뇌에 박힌 채 역사를 연구하니 결론이 이 모양인 것이다. 더 창피한 것은 이 논문이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은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고려인이 해산물 위주의 채식을 했다고 한 서긍의 선화봉사 고려도경>

이 식품영양학과 연구원의 논문은 2000년 이후 한국의 언론계, 출판계에 퍼졌고 당연한 수순처럼 인터넷에 무차별 살포되었다. 그 결과 고려인은 개고기를 먹었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처럼 굳어지게 되었다근거는

고려사에 나온 몽골군이 고려의 개와 닭을 절종시켰다는 단 한 문장이다. 이런 비합리적인 추론과 연구는 고구려 고분 벽화와 개고기 식용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고구려 고분 벽화 중 안악 3호 분 부엌 그림 중 고깃간에 걸린 짐승이 목매달아 죽은 개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안악 3호 분 중 부엌 그림 중 고깃간, 고구려, 357년>

이 주장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전혀 없다. .. 진짜 ..도 없다. 어떤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안악 3호분 고깃간 그림에 걸린 짐승이 개고기고 그것이 고구려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은 증거라고 휘갈긴 주장이 전부다

그런데도 이 주장은 역시 언론계와 식품영양학계, 인터넷 상에 무차별 살포되었다. 고구려 벽화 전문가가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개는 무덤 주인만큼이나 중요하게 취급되던 반려견이었으며 개는 영혼인도 동물 역할을 했다고 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안악 3호분 고깃간 옆 부엌에는 개 2마리가 서성이고 있다, 고구려, 357년>

영혼인도 동물은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안내해주는 역할이다. 그러니까 저승사자 같은 역할이다. 상식적으로 무덤을 만들면서 저승사자를 잡아먹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을까? 알타이 샤먼에서 개고기를 먹으면 재수가 없고 벌을 받는다고 믿는다.

역시 개가 저승으로 안내한다고 믿은 조로아스터교에서는 개고기를 먹으면 지옥에 간다고 믿는다. 조로아스터교는 알타이 지방인 서 몽골에서 유래되었다. 고구려 고분 벽화 속 개들은 고구려인이 개를 신성하게 여겼으며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안악 3호분 주인과 원나라 귀족 무덤 주인 부부의 초상>

역시 고구려 벽화 전문가는 안악 3호분 고깃간에 걸린 목매달린 짐승은 사냥한 노루라고 주장했지만 귀 기울이는 이는 별로 없었다. 고구려가 개를 숭배한 사실은 같은 시기 개를 때려잡아 먹은 한나라와 명확히 비교된다

한나라에서는 개를 때려잡아 먹었다. 현재 중국의 개고기 축제와 북한, 한국의 조선 족 개 도살자가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과연 누가 한국의 개고기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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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중국 조선 총독부 조선 왕조, 개고기는 전통?

조선

고구려는 고조선을 이어받았다고 했다. 고려는 고구려를 이어받았다고 했다. 사실 고구려 국가체제가 그대로 이어진 건 발해다.

어쨌든 이 주장대로라면 한민족의 역사적 정통성은 고조선→고구려→고려로 이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은 중국을 이어받았다고 했다.

<여진족이라는 설이 있는 태조 이성계>

이해가 가는가? 왜 뜬금없이 고려 다음에 중국인이 한반도를 지배하게 됐는지? 중국인이라고 자처한 자들이 세운 것이 조선 왕조다. 중국의 조선 식민지 총독부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명나라가 부모 나라이며 공자가 신이고 개고기가 전통 음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선 지배층인 양반과 백성을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장 보고 돌아오는 조선 양반 가족, 1900년>

조선 지배층은 예를 행하는 곳이 바로 중국이며 조선 땅은 중국인에게 가르침을 받아 예를 아는 곳이라고 했다. 즉, 자기들은 교화된 중국인이고 조선은 교화된 중국 땅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이라고 믿는 걸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한다. 정신병이다. 정신병적 중국 집착은 생명 경시 사상으로 이어졌다. 예(유교)를 모르는 대다수 백성은 오랑캐 상태, 즉 짐승이었다.  

<1960년 대한민국 문맹률이 78%라고 한 국가기록원>

1960년대 한글도 모르는 문맹률이 78%였다. 한자는 한글보다 몇 천 배 외우기 힘들다. 조선 시대 문맹률은 몇 %였을까? 약 10%의 양반을 제외한 나머지 90% 조선인은 가축이었을 것이다.

일제의 식민사관? 물론 나쁘다. 하지만 영악한 그들은 조선 왕조의 부패, 모순, 무능을 통치 수단으로 이용한 것뿐이다. 중화사관으로 무장한 조선 왕조는 부패했고 무능했으며 모순 투성이였다.

<상위 10%안에 든 양반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 1910년>

조선은 고려 왕족만 몰살 시킨 게 아니다. 고조선, 고구려, 고려로 이어지는 한민족의 정통성을 지워버렸다. 한민족 정통성 지우기 작업의 일환으로 중국의 개고기를 조선의 전통이라고 대중에게 세뇌했다.

이런 소시오패스적 생명관이 이황을 비롯한 조선 지배층을 반인륜적인 노예 상인으로 만들었다. 조선 말기 인구의 50% 이상이 노비(노예)였다고 한다.

<정선이 그린 이황의 도산서원>

갑오경장으로 신분이 철폐된 것은 500년 동안 내려온 노비 문서가 사라진 것을 의미했다. 명나라 왕자의 『활인심법』을 자기 책인 양 출판해 조선에 개소주를 퍼트린 이황은 비열한 노예상인이었다.

정확히는 조선의 언론, 교육, 출판의 기능을 담당한 서원을 장악한 똑똑한 노예 상이었다. 그런 이중성과 사악함이 조선 양반들의 모습이었다. 노비제도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 조선의 특징이라고?

 

인구의 50% 이상이 노비라는 사실은 부끄럽다. 역사 상 모든 국가에는 노예 계층이 존재했다. 그러나 서양 제국주의 국가나 미국처럼  주로 침략국 백성이나 불법적인 인신매매로 충당했다.  

노예에서 왕비가 된 오스만 왕국의 예처럼 신분 해방에도 융통성도 있었다. 조선처럼 같은 민족, 같은 나라 사람의 절반을 노예로 부린 왕조는 없다. 더 어처구니없는 건 서자 차별법이었다.

<재가금지법이 있던 양반 과부와 교미 중인 개, 조선, 혜원, 18세기>

양반은 세 명의 첩을 둘 수 있었다. 여노비를 강간하는 건 무제한 자유였다. 첩이 자식을 낳으면 그 아이는 천민이었다. 엄마가 노비면 아빠가 양반이어도 자식은 노비였다.

본처는 첩이나 여노비를 질투할 수는 없었지만 언제든 강상죄로 죽일 수 있었다. 부모 한 쪽이 노비이면 자식까지 대대손손 노비로 만드는 제도는 역사 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잔인한 신분제도다. 

<임진왜란(1592~1598년)>

 
결국 이 신분 제도로 인해 조선 양반들은 숙원인 붕당정치를 할 수 있었다. 붕당정치 체제 안에서 개인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다. 100명의 인재가 있어도 당의 의견이 정해지면 오직 당의 의견에 따를 뿐이다. 

중종의 조카, 그것도 서출인 천 것이 왕이 되었다는 콤플렉스로 인해서인지 선조는 중국에도 없던 붕당 정치를 허락했다. 또 멍청한 판단을 해 임진왜란을 초래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1601년>

아들 광해군을 견제한 찌질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의 막사발에 반해서 국보로 남겼다는 등의 국뽕 선동은 집어치우고 이성적으로 임진왜란을 살펴보자. 

임진왜란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일본은 계속해서 전쟁 도발 사인을 보냈다. 조선에서는 전쟁 가능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사신까지 보내 확인했다. 

<부산을 침공하는 일본군, 1592년>

붕당정치에 의해 동인과 서인에서 한 사람씩 공평하게 일본에 사신을 보냈다. 지금으로 따지면 북한과 비핵화 협의를 하는데 민주당과 자유당에서 한 사람씩 보내 회담을 한 거다.

송나라 사신 수행원 서긍의 예처럼 사신 맞이 행사와 환영 연회 같은 걸 하며 친선교류인 척 뒤로를 염탐을 했을 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얼마나 조선을 우습게 봤을지 상상이 간다.

<죽인 숫자대로 돈을 받아야 해서 베어간 조선인의 코와 귀 무덤>


더 어처구니없는 건 동인과 서인 대표는 돌아와 각각 딴 소리를 했다는 거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원수처럼 싸워도 북한 문제에는 한 목소리를 낸다.

동인과 서인은 국가의 안위가 걸린 문제에도 서로를 반대했다. 정세분석? 그 딴 거 없다. 결국 파워 센 당의 주장이 채택되어 일본은 전쟁 할 생각이 없다로 결론 났다. 얼마 후 일본은 조선을 침략해 조선인을 대량 학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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