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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조선견피주식회사'에 해당되는 글 2건

  1. 54. 왜 조선족은 개고기를 먹게 되었나?(1)
  2. 53. 조선족 조직폭력배와 한국의 개고기 시장

54. 왜 조선족은 개고기를 먹게 되었나?(1)

중국 공산당

조선족은 현재 중국에서 개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집단이다. 그들이  언제부터 개고기를 먹게 되었는지, 조선족과 한국의 개고기 식용 문화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1. 청 왕조에는 개 도살 금지법이 있었다. ? 청 시조 누르하치의 생명의 은인이 개였다.

<도광제(1820~1850년)의 정귀비와 육황자, 청>

2. 중국 역사 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지배한 만주족은 채 백만 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인원만 만주에 남겨두고 중국 대륙으로 모두 이동해 중국을 다스렸다.

3. 청 왕조의 성지인 만주는 사람이 살지 않는 보호 구역이 되었다만주 출입 금지가 풀린 것은 1911년 청 왕조가 망한 후였다그전까지 만주는 허허벌판이었다.

<조선의 고종, 청의 서태후, 일본의 메이지 천황, 1905~1909년>

4.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청나라가 조선의 지배력을 상실했다. 일부 조선인 독립문을 세워 일제의 승리를 축하했다.


5. 1910년 한·일병합으로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조선인은 조선 계 일본인,  일본인이 되었다.

<독립문, 조선, 1904년>

 

6. 1911년 청 왕조 멸망하자 영국은 청 황실 개를 납치해 품종개량을 해서 지금의 시추와 페키니즈, 라사압소로 만들었다.  만주족도 고향인 만주로 돌아갔지만 보호자(지배층)가 없었다

 

7. 만주족과 조선인(주로 독립운동가), 조선 계 일본인(조선인), 일본인(주로 독립군 잡는 순사), 중국 공산당, 중국 국민당 등이 섞여 있는 만주는 무법천지였고 언제든 갈등이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세 살 무렵 푸이의 사진, 청, 1909년>


8. 조선의 독립운동가는 만주를 거점으로 중국에서 독립운동 했다. 일제를 피해 혹은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조선백성들 중 일부도 만주로 이동했다.


9. 청 멸망 후 중국에서는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싸우는 내전이 발생했다만주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만주는 여전히 무법천지였다.

<도광제와 황실 가족들과 노는 페키니즈, 청, 1899년 11월 30일>


10. 중국공산당, 국민당 모두 청 왕조를 증오했다. 그래서인지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 개고기를 먹었다모택동의 붉은 군대(공산당)의 경우 부족한 군량미 대신 먹였을 가능이 높다. 얘네들은 중국 내륙 산악 지대로 쫓겨가 아주 생고생을 하며 국민당과 싸웠다. 자금과 군수품이 풍부한 국민당 군대까지 개고기를 먹은 건 청 왕조에 대한 반발심이 크다.


11. ·송 이후 이후 중국 대륙에서 개고기는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그 많은 중국인 중 개고기는 거지나 먹는 음식이었지만 청 왕조 멸망을 계기로 중국에서 개고기 식용 문화가 되살아났다.  

<대만 원주민의 사냥 모습, 1750년>

12. 중국 공산당에 패해 중국에서 쫓겨나 정착한 대만을 점령한 중국 국민당은 대만에서도 개고기를 먹었다. 국민당이 학살한 대만 원주민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 같다. 대만에서 개고기가 금지된 것은 국민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후이다. 대만은 현재 아주 강력한 개고기 금지법을 실행하고 있다

13. 1931 여전히 무주공산으로 남아 있는 만주를 지배하기 위해 일제가 일으킨 자작극이 남만주 철도 사변이다. 일제의 주력부대인 관동군은 만주 사변을 계기로 만주 지역을 점령한다

<남만주 철도 사태를 조사하는 일본 전문가들, 1931년 9월>

 
14. 만주는 더럽게 춥다. 추위에 약한 일본군이 만주에서 견딜 수 있도록 일본군은  방한용 군복을 만들어야 했다일제는 조선 개의 가죽을 이용하기로 한다. 견피주식회사를 통해 묶어 놓은 개와 진돗개 외의 조선의 모든 개는 학살되었다. 이 때부터 한국인에게는 개를 묶어 놓아야 살릴 수 있다는 트라우마가 생긴다.

15. 신라시대 왕족만 키울 수 있던 신성한 삽살개는 만주 일본군 군복이 되어 멸종되었다

<일제에 의해 도살되기 직전의 조선 토종 개, 1941년>

16. 1932년 청 왕조 마지막 황제 푸이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운 일제가 만주에 만주국을 세웠다괴뢰국이라는 비웃음을 당했지만 어쨌든 법적으로 만주는 청 황실 소유였고 볶아 먹든 지져먹든 푸이 마음이었다. 이때부터 만주인은 일본인이었고 일본인은 조선인이었다. , 만주족 = 일본인 = 조선인 이 된다.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이들과 싸웠다.


17.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일제는 만주국에 일본인과 조선인을 대규모로 이주시켰다. 조선인은 일본인이었으니 공식적으로 만주로 이주해 간 사람들은 모두 일본인이다. 주로 조선 계 일본인이 조선족의 조상이다.

<광복군의 이범석 장군과 개, 1920년>


18. 조선족 즉, 일제 시대 조선계 일본인은 왜 개고기를 먹게 되었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평안도나 황해도 지역 조선인이 만주로 많이 이동했다. 열명에 한 명이 굶어죽던 조선 시대에도 가장 가난하고 척박한 지역으로 악명높은 이 지역은 양반조차 개가죽으로 갓을 만들어 쓴다고 조롱을 당했다. 조선에서도 가장 개고기 친화적인 지역이기는 했다.

19. 하지만 만주의 조선족이 본격적으로 개고기를 먹게 된 것은 중국공산당과 관련 있다.

53. 조선족 조직폭력배와 한국의 개고기 시장

중국 공산당

병자호란 후 소현세자가 끌려간 심양은 청나라 만주족 땅이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만주족은 중국 공산당에 의해 집단 학살당했고 만주족이 사라진 만주를 조선족이 차지했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푸이가 정말 마지막으로 황제 노릇을 한 만주는 우리나라 삽살개 멸종과도 연관이 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만주를 지배한 일제가 조선의 개를 죽여 개 가죽 옷을 만들어 군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1935년 청 영토와 만주>

역사 상 식민지 토종 개를 멸종시킨 것은 일제가 처음이다.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조선 개도 일본 개와 같아야 했다. 일본 아키타 견과 가장 닮은 진도개가 순종으로 정해졌고 나머지 개들은 잡종이 되었다.

기마 유목 왕조에서 옥새와 같이 신성하게 여겨지던 삽살개도 잡종으로 분류되었다. 조선 개 학살을 위해 조선견피주식회사가 세워졌다.

<남만주 철도 사태를 조사하는 일본 전문가들, 1931년 9월>

 

진돗개와 줄에 묶어 놓은 개 외의 모든 조선 개는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다른 조선의 토종개들과 함께 삽살개가 멸종되었다. 만주군의 개 가죽 옷이 되어서 말이다.

만주는 현재 대한민국의 개고기 산업과도 연관이 깊다. 만주에 사는 조선족 때문이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개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사람들이다.

<일제에 의해 도살되기 직전의 조선 토종 개, 1941년>

중국에서 유일하게 개고기 전통음식이라고 주장하는 민족이기도 하다. 확실히 1945년 이후 개고기가 조선족의 대표 음식이 되긴 했다. 김일성이 다스린 북한처럼 말이다.

조선족과 김일성의 개고기 뒤에는 중국 공산당이 있다. 또 한국의 개고기 문화 뒤에도 조선족이 있다. 개고기로 조선족과 북한, 한국이 하나 되는 것이다. 

<개고기를 먹지 않은 만주족 상인, 1904년>

1945년 이후 중국 개고기 산업을 견인한 조선족은 김대중 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한국에서 개고기 산업이 폭발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운동권의 상징인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에서 개고기는 제사상에 올리는 전통 음식이라고 했다. 거짓말이다. 개고기를 제사상에 올린 건 고대 중국인뿐이다.

<제사상에 개고기를 올린다고 한 김대중 대통령, 2002년 >

조선족 자치구나 북한에서는 제사에 개고기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 제사를 지낸다면 말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으로 유입된 조선족 수는 얼마나 될까? 아무도 모른다. 

동포라는 이유로 지문 조회, 신분 조회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똑같은, 혹은 그보다 좋은 혜택과 권리를 누리는 조선족 수는 백 만 명이 넘는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많다.

 

조선족과 함께 들어온 조선족 조직폭력배는 몇 명이나 될까? 아무도 모른다. 조선족 조직폭력배가 한국의 개고기 산업에 왜 중요하냐?

원래 조선족 조폭이 중국에서 하던 사업이 개고기 비즈니스였기 때문이다. 조선족은 개고기를 민족의 전통음식으로 여기며 개고기 라면까지 판매했다. 이 개고기 라면에 들어가는 개고기를 조선족 조폭이 공급했다.

<조선족 조폭이 개고기에 관련되었다는 기사, 중앙일보, 2017년 >

중국 전역을 돌며 개를 납치해서 말이다. 왜 힘들게 왜 개를 납치했느냐? 중국은 1견 1증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게 뭐냐면 개 한 마리 당 증명서 한 장을 발급하는 것이다. 증명서 발급에는 돈이 든다.

한국처럼 6000마리 씩 개 농장에서 식용 개를 키웠다가는 증명서 발급 비용으로 다 나갈 판이다. 돈이 안 된다. 또 중국에서는 개를 집단 사육하는 게 불법이다. 뜬장? 당연히 불법이다. 공산국가인 중국에도 동물보호법은 있다.

<조선족 개고기 라면 기사, 아시아경제, 2012년>

이런 이유로 중국에서 유통되는 개들은 모두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인접 국에서 수입한 개들이거나 중국 내에서 납치한 주인 있는 개, 혹은 불법 포획한 유기견들이다.

1견 1증 정책 등으로 지지부진해지던 중국 내 개고기 산업은 조선족 조폭이 개입하면서 폭발적으로 발달했다고 한다. 자연스레 중국에서 개고기의 본고장은 조선족 자치구가 되었다.

<일제에 의해 도살되기 직전의 조선 토종 개, 1941년>

개고기 비즈니스를 업으로 하던 조선족 조폭들이 한국에 와서 뭘 할까? 하던 일 계속 할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개고기 사업은 손 짚고 헤엄치기다. 중국처럼 잡혀갈 염려가 없다.

일개 농림부 장관 명령에 의해 개 농장은 합법이 됐으니 힘들게 돌아다니며 납치할 필요가 없다. 농림부, 환경부 어디에서도 개농장을 관리하지 않는다. 돈이 안 든다.

<개를 가축에 포함시킨 농림부 장관의 행정명령>

개를 사고 파는 과정도 아무도 참견하지 않는다. 개를 죽이고 개고기를 파는 것도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다.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잡혀갈 걱정도 없다. 왜?

개고기가 불법이므로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이 담당 공무원의 변명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는 개를 때려죽이든 삶아먹든 중국처럼 걸리지 않는다.

<가리봉동 동북식 개고기 요리를 요리를 소개한 기사, 한겨레21, 2000년>

2002년 이후 연간 수 조원에 이르는 개고기 산업은 눈먼 돈이 되어 거대한 지하 경제를 이루고 있다. 이 검은 돈에 조선족 조폭이 개입되었을 가능성? 충분히 있다. 

여기에 십 만 명인지, 백 만 명인지 이 백만 명인지 모를 조선족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개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계층이다. 대한민국 개고기 역사에서 조선족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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