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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백제는 일본을 지배했나? 만주는?

한국 속 유목사

임나일본부설, 한반도 일본 지배설은 별 의미 없다고 본다. 아마 당시 한반도와 일본을 지배한 계층은 기마 유목 왕조인 제 3의 세력이었을 것이다.  기마 유목 왕조의 국제 커넥션이 6~7세기 중국 선비족 왕조와 백제, 신라, 일본을 반가사유상으로 연결해주었을 수 있다. 

특유의 기마 유목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신성한 개를 믿는 관념이다. 신성한 개는 고대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믿은 알타이 샤먼 즉 텡그리 신앙에서 시작되었다. 

 <날개 달린 개 신앙과 한민족의 치우 신앙>


텡그리 신앙은 빛을 믿는 신앙이다. 빛의 종교에서 개는 신의 사자이거나 신 그 자체, 혹은 지상의 왕을 상징한다. 하늘에 있는 신이므로 개에게는 날개가 있다. 날개 달린 개는 곧 신이다. 날개 달린 신성한 개를 믿은 지역을 보자. 

중앙아시아 대륙으로 국한해서 봤을 때 고대 중국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포함된다. 이 고대 빛의 종교는 고대 4대 문명권에서 각자 다른 신앙으로 발전했다. 중국 황하 문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개와 개고기로 보는 세계 5대 문명권>

패권을 장악한 기마 유목 왕조에게는 왕조를 상징하는 신성한 개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집트, 인더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지배층에게도 신성한 개가 있었다. 그 신성한 개가 티베트탄 마스티프에서 유래되는 마스티프 계열의 사자 개다.

신라 왕조에서 왕족만 키울 수 있던 삽살개는 단군과 함께 제단에 모셔진 신성한 개였다. 그 신성한 삽살개를 일본 만주군은 개 가죽 군복으로 만들어 멸종시켰다. 그런데도 현재 한국인은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산수도깨비 문양 벽돌, 백제, 6세기 추정>

또 삽살개가 단군과 함께 할 정도로 신성했다는 사실과 신라 왕족들만 키울 수 있었다는 사실도 모른다.  삽살개든 뭐든 한국에 사는 모든 개는 언제든 때려잡아 먹을 수 있는 식자재라고 보기 때문이다. 심한 비약이라고?

애지중지 키우던 내 개를 이웃이 납치해 때려죽여 먹어도 고작 벌금 몇 푼만 내면 되는 되는 것이 현재 한국 실정이다. 신성한 개를 둘러싼 고대 기마 유목 왕조와 한반도, 일본의 역학 관계는 당나라가 멸망 하면서 깨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 시조 김알지의 탄생 설화>


신라 성골 시대가 막을 내리고 진골 시대를 연 통일신라가 국풍(신라 문화)를 버리고 화풍(중국 문화)를 따르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한반도의 중국화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망한 왕조의 왕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낙랑과 마찬가지로 한국 고대사 학계는 고구려, 신라, 백제 영토가 정확히 어디인지조차 속 시원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백제 금동대향로, 국립부여박물관, 520~534년, 국보>

홍산문명권에서 고도로 발달된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면서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 한국 왕조 영토에 만주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제기 되었지만 국뽕이라고 비난받았다.

정작 국뽕 한 사발 마신 건 중화사상을 발전시킨 고대 중국인인데 말이다. 분명한 것은 통일신라 영토가 고구려, 백제, 신라 땅을 합친 것보다 훨씬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고구려 땅은 그대로 발해가 가져갔다. 그럼 백제 영토는?

 <7세 통일신라 이후 국제 관계와 개에 대한 개념

663년 백제가 멸망하고 그 지배층은 어디로 갔을까? 의자왕과 삼천궁녀처럼 전부 다 물에 퐁당했을까? 나라를 잃으면 왕이 목을 잘리는 것은 중국 농경민적인 관점이다. 

말 타고 배 타고 이동하는 것이 업인 유목민은 여차하면 튈 수 있다. 백제의 경우 중국 대륙과 요서 지방,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 교역 커넥션을 가지고 있었다. 기존의 국제 교역로를 따라 배 타고 도망쳤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매 사냥하는 거란 혹은 몽골 족, 9~10세기>

전 왕조의 모든 왕족을 다 잡아 죽일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전 왕족을 전멸시킨 것은 조선이 유일하다. 튈 놈은 튀고 남을 놈은 남고 잡힐 놈은 잡히는 것이 유목 왕조의 특성이다. 

도망치는 전 왕조의 왕족은 언제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 백제, 통일신라, 발해가 멸망한 후에도 끊임없이 왕조 부흥 운동을 일으킬 수 있었다. 전 왕조 부흥 운동을 일으키지 않은 건 고려가 유일했다. 왜? 이성계가 다 죽였으니까. 


<날개 달린 개와 피닉스 신앙 지역>

자, 그럼 어디로 튀었나? 우리 역사학계는 멸망한 백제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을 지배했다는 가설은 신나게 떠든다. 그런데 중국 대륙이나 요서 지방으로 갔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또 입을 다문다. 

중국으로 튀어서 거기를 휘젖고 다녔을 가능성 자체가 국뽕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중국만 나오면 국뽕이라는 이름으로 입을 틀어막는지 모르겠다. (중국 뽕을 말아 드셨나?)

<백제의 산수봉황무늬 벽돌, 6세기 추정>

백제 지배층이 중국 북부나 만주 지역으로 갔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기존 기마 유목 왕조와 합류하거나 또 다른 왕조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존 왕조에 합류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결혼이다. 같은 기마 유목 왕족이니 적어도 결혼 상대는 될 수 있었을 것이다.

47. 한 큐에 신선이 될 수 있던 한국 도교

한국 속 유목사

고려 유물을 보면 유독 청동 거울이 많다. 잘 닦으면 또렷이 보이는 은제 거울도 아니고 청동 거울이다. 청동기 시대부터 거울은 왕을 상징하거나 제사에 사용했다.

교역을 많이 한 고려 시대 청동 거울도 제사에 사용했다. 배를 타기 전 무사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반드시 청동 거울을 바다에 던졌다. 청동 거울을 던지던 고려의 제사는 조선 시대 제사와는 다르다.

<황비창천명형 청동 거울,  고려, 918~1392>

유교가 한반도에 들어오기 이전 고대부터 존재한 한민족 고유의 도교와 무교, 불교가 합쳐진 형태의 제사라고 본다. 조선 지배층은 전통 도교 뿐 아니라 1392년 조선 건국 이전의 역사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조선 지배층에게 반만 년 역사 중에 단군은 중국에게 가르침을 받은 기자 조선부터 시작된다. 고구려·백제·신라·통일신라는 존재조차 하지 않은 역사이고 고려는 역사에서 지워버릴 만큼 형편없는 나라였다.

<은제 신선 경치 무늬 화장품 그릇, 고려, 숙신공주 묘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이런 식으로 4,500년을 날려먹고 개고기는 전통이니까 먹으라는 헛소리를 했다. 열에 서넛이 굶어죽는 흉년에 소작료는 70%나 받아서 챙긴 돈으로 화로에 소고기 구워 먹으면서 말이다. 소시오패스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다수 굶주린 조선 백성들은 기꺼이 개고기를 먹었을까? 고려의 문화와 종교를 보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개고기는 4,500년 우리 역사 내내 강력한 금기였다. 500년 조선 역사 중 극히 일부만이 개고기를 먹었다.

<쌍용문 청동거울, 고려, 918~1392>

대놓고 못 먹으니 복날이면 으슥한 산으로 개를 끌고 가 고대 중국인을 흉내 잡아 먹었다. 그러나 조선 백성은 곧 고려 백성이었다. 인간이란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다.

특히 문화와 금기는 잘 바뀌지 않는다. 작정하고 금기를 버린 조선 지배층이나 1945년 이후 북한, 197·80년대 이후 남한 내 운동권 세력을 제외하고 말이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중국을 추종했다.

<무덤 화상석 중 부엌 그림, 한, 2세기>

1907년 고종의 특사인 헐버트가 남긴 책을 봐도 조선 말기까지 개고기는 가장 비천한 계층이 먹는 음식이었다. 예를 들어 복날 머슴이 개고기를 먹거나 산속에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이 개고기를 먹었다.

조선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다고 외국에 알린 사람들은 산 속에 숨어 있던 외국 천주교 신부들이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조선 중 극히 일부인 천주교 사회에서 개고기 먹는 모습을 본 것이다.  

<개고기를 금지하는 산신도, 조선, 1900~1925년>


조선의 실제 모습은 고려 사회를 참고해 유추해야 하지만 고려는 물론 통일신라와 삼국 시대에 대해서도 제한적인 정보 밖에 얻을 수 없다. 일제가 없애기 전에 조선이 먼저 다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고려에 대한 대표적인 기록은 1123년 송나라 사신 일행으로 고려를 다녀간 서긍이 남긴『선화봉사고려도경』이다. 나는 서긍이 일개 수행원이 아닌 송나라 파견한 스파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정도로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매와 같이 날카로운 눈으로 고려 구석구석을 관찰했다. 고려에는 개고기 문화가 존재할 수 없었다.

마니교를 국교로 믿은 위그르가 채식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고려도 채식을 했다. 불교의 영향이다. 정확히는 양나라 무제 식 중국 불교의 영향이다.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 청 왕조 인쇄>

 

불교는 고려의 국교였다. 백제와 마찬가지로 고려에도 살생금지법이 있었다. 왕은 뭔 일만 터지면 살생금지법을 강화했다. 오직 사신이 올 때만 대비해 가축을 키웠다.

짐승을 죽여본 적이 없으니 도살 기술이 엉망이었다. 고기 해체도 못해 내장이 터져 고기 맛이 끔찍했다고 한다. 불교를 믿었고 도살하는 법도 모를 정도로 채식을 하던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었다고 믿기 힘들다.

  

< 신선이 되는 과정을 그린 유송년의 삼생도,남송,12~13세기>

개를 많이 키운 사실 자체가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근거라는 모 논문이 있다. 그 논문이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은 증거랍시고 거론된다. 이게 한국 지식인 수준이다.  

개고기를 금지한 불교를 국교로 믿은 것 외에 고려에는 고구려·백제·신라와 통일신라를 거쳐 발달해온 전통적인 도교가 존재했다. 고려 도교는 조선이 기형적으로 받아들인 중국 도교와 달랐다.

 

불교와 도교의 신 토기, 당, 728년>

고려 도교는 무교(알타이 샤먼)와 불교가 섞인 독특한 종교였다고 생각된다.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시작된 ‘날개 달린 개’를 믿는 빛의 종교가 중국에 도교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중국 도교에서는 신선이 사는 세계는 빛의 세계에 들어가야 영원히 살 수 있었다. ‘날개 달린 새’를 믿는 종교는 중앙아시아 기마 유목 왕조의 종교였다. 고구려·백제·신라는 기마 유목 왕조였다.  

<극락에 있는 부처님을 둘러싼 불새,위그르, 9세기>

이들 왕조가 농경민을 정복해 수 천 년 동안 기마 유목 문화를 정착시켰다. ‘날개 달린 새’를 믿는 빛의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였고 아후라 마즈다 교였으며 마니교였고 경교였다

이름만 다르고 종교는 같다. 아후라 마즈다 교는 몽골의 전통 신앙이다. 고구려인이 시조로 믿은 주몽은 동명왕이다. 주몽(朱蒙)은 명 궁수라는 뜻이다. 동명왕 석상은 몽골 초원에도 우뚝 서 있었다.

 

<몽고 원의 동명왕 추정 석상, 주채혁 교수 제공>


몽골 영토에 존재한 흉노와 돌궐의 태조 이름도 투멘(T’umen), 즉 주몽이다. 개와 늑대 시조 신화를 제외하고도 고구려와 몽골, 흉노와 돌궐, 위그르는 같은 뿌리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즉, 이들은 굳이 신선 세계라는 귀찮은(그러나 아주 흥미진진한) 개념을 추가해서 대중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고구려가 ‘날개 달린 개’를 믿는 빛의 종교의 적자였기 때문이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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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중국의 식인풍습과 빛의 종교 '개 새'

종교

빛의 종교 속 ‘개 새’ 개념은 진· 한 시대 중국 대륙에도 전해졌다. 그게 중국 도교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에 단절되어 있었어도 중국 한족 지배층은 끊임없이 중국 외부와 전쟁 혹은 교류를 해야 했다. 

<불새와 지팡이 든 노인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문화와 종교도 그렇게 조금씩 중국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기원전 7세기 『도덕경』이란 글은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났을까? 노자조차 실제 인물인지, 아닌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확실치 않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중국 도교도 고통스러운 인생을 사는 인간들에게 돌파구를 마련해주었다. 그 돌파구는 신선이 되어 신선세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불새와 함께 있는 도교 여신, 명, 15~16세기, 영박>

‘개 새’를 믿는 빛의 종교는 고통과 죽음이 없는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있고 결국 마침내 빛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 주요 교리였다.

이것을 중국 도교는 신선 세계로 받아들인 것 같다. 신선이 되는 방법은 불로장생 약을 먹고 한 방에 신선이 되는 방법과 힘든 수련을 통해 되는 방법이 있었다. 

<불새와 날개달린 개, 생명의 나무가 새겨진 타일, 한, 기원전 206년~서기200년>

 

‘개머리를 한 새’를 믿은 지역에서는 당연히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은 좀 다르다. 초기에는 믿음이 약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당 이전까지 중국에는 식인 풍습이 만연했다.

2세기 중국 무덤 벽화 화상석을 보면 한나라 상류층 부엌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리에 걸린 죽은 물고기와 새 두 마리가 있고 도살하러 끌고 들어오는 소와 도살될 차례를 기다리는 개가 있다. 

<무덤  화상석 중  부엌 그림, 한, 2세기>

 

굶어죽기 직전의 좀비 상태인 백성들에게 백날 빛의 종교 ‘개 새’와 신성한 개에 대해 설명해 봐야 입 만 아프다. 21세기 베네수엘라와 북한처럼 굶어죽기 직전이라면 눈앞에 개를 잡아먹기 마련이다. 

이게 당 나라 이전 중국 백성들의 문화였다. 개고기를 좋아했다고 역사에 기록된 공자, 유방, 번쾌 모두 선비와 농민, 천민이다.


<공자의 초상, 당, 8세기>

 

당시 중국 법령 상 반드시 개고기를 먹어야만 하는 계층이었다. 그런데 공자가 개고기를 먹었으니 앞뒤 따지지 말고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 조선 지배층의 논리였다.

그 기록들이 조선 시대 개고기 역사로 남아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개고기를 먹은 근거가 되었다. 역사에 무지한데다 성의도 없는 이 주장을 21세기 대한민국도 따르고 있다.


한편, 사람이라도 잡아먹어야 하던 고대 중국 백성들은 물론 중국 지배층도 빛의 종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낯선 이방인이 종교인이랍시고 신의 말씀 어쩌구 하고 다니면 궁금하고 수상해서라도 잡아다 심문을 하기 마련이다. “그래, 네가 말하는 신의 섭리(도)란 뭔가?”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마니교 예배 장면, 광명왕국의 생명의 나무, 위그르  8~9세기>

 “태초에 개 새가 있었는데요. 빛이 있고 어둠이 있어요. 어둠이 빛을 몰아내서 빛의 세계로 들어가면 그 곳이 천당이고 어쩌구 저쩌구”하다 보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

“이 쉑히 사기꾼 아니야? 그래서 요점이 뭐야?!” 수 천 년 동안 조상 대대로 믿어온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황당하게 들린다. 일단 짧고 강렬하게 “한 마디로 영원히 잘 사는 겁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김홍도의 풍속화첩 속 신선 무리, 조선, 19세기~20세기 초>

 

“영원히 잘 산다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지배층은 귀가 번쩍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궁궐 기와에 사신도를 그려 넣었고 악착같이 불로초, 금단, 한식산을 찾아 먹다 비명 횡사했다.  

원래 신의 말씀과는 달라지는 것은 중국 도교 뿐 아니다. 중국 불교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부처님이 말씀하신 공의 세계는 고통도 없고 번뇌도 없는 세계를 말한다. 

 <공자, 노자, 부처가 그려진 청화백자, 청, 1780-1830>

 

이걸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 극락으로 해석했다. 열심히 수행을 하면 공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교리는 부처님 불단에 쌀과 꽃을 바치면 다음 생에 미남미녀로 태어난다는 식으로 해석되었다.

설법을 듣는 중생이 무식해서일 수도 있고 쌀과 꽃을 노린 땡중의 의도일 수도 있다. 중국 도교 역시 시대와 계파에 따라 달라졌다.

 

 < 불멸의 신과 신선들과 함께 하는 새, 청, 17세기>

 

진시황처럼 불로장생 약을 먹고 영원히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교가 있는가 하면, 노자처럼 도를 논하며 물 흐르듯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교도 있다. 현세에서 로또나 맞게 해달라고 비는 도교도 있다.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인 쿠샨 왕조처럼 ‘개 새’ 신앙을 비롯해 그 때까지 중국에 존재한 여러 잡다한 종교들이 골고루 섞인 것이 중국 도교 같다. 이 중 불로장생 약은 일반 백성들과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 연못과 새, 신비한 풀 혹은 나무가 묘사된 무덤 부장품,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마치 초호화 개인용 제트기 값이 얼마인지 우리같은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관계없는 것과 같다. 불로초, 금단, 한식산을 먹으면 영원히 산다는 말도 사는 게 지옥인 백성들 입장에서는 저주였다.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농경민이 농사를 못 짓는다는 건 굶어 죽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대로 영원히 살라는 건 영원히 배고프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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