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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에트루리안의 아동성애와 헤라클래스의 동성애

유목사

영웅, 헤라클래스는 동성애자 


소아시아(터키, 시리아) 중동 사막에서 키푸로스 찍고 바다를 건너 그리스와 로마로 진출한 초기 에트루리안은  곳에서 신이 되었다. 신이 에트루리안은 신나게 그들 특유의 문화를 누렸을 것이다. 중에는 아동 성애와 동성애, 극도의 문란도 포함되었다. 




<에트루리안의 이동 경로와 해양 유목>




에트루리안 무덤 벽화에 의하면 헤라클레스는 명백한 동성애(혹은 양성애자)였다. 에트루리안의 찬란한 역사를 공부하는 학자들 일부는 그들의 잔혹함과 문란한 성문화에 당혹감을 느낀다. 신라 성골 시대의 성문란을 부정하고픈 한국인 심정과 비슷할 것이다. 




<남자와 성교 중인 헤라클레스와 싸우려 다가오는 아켈로우스 가면을 쓴 황소, 에트루리안, 이탈리아, 기원전 5세기>



아무데서나 . 아무나 잡고 . 남녀 구분, 파트너 구분도 없어. 남사스럽고 성에 미친 놈들 같애.  사람들이 그리스-로마 문화의 근원? 그리스-로마 문화는 서양의 뿌리인데?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서양 문화의 뿌리가 성에 미친 악마?



특히 금욕을 강조한 로마 카톨릭 지배를 천년이나 받은 중세 시대 유럽인들 눈에는 성에 미친 악마로 보였을 것이다. 에트루리안에서 성이 중요했던 이유는 무조건 아이를 많이 낳아 소중한 혈통을 지키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채찍질의 무덤에 있는 쇼킹한 벽화, 에트루리안, 이탈리아, 기원전 490년>




엄마 아빠가 고귀한 혈통이면 후계자가  되는 거고 쪽이 딸려도 귀한 혈통이긴 마찬가지다. 조선 시대 노비제도처럼 아빠가 양반이고 엄마가 노비면 자식도 노비되는 그런 문화가 아니었다. 아빠가 신이고 엄마가 인간이어도 대우를 받았다. 



<제우스와 인간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헤라클래스가 새겨진 금화, 반대편에는 순록을 잡아먹는 사자, 키프로스, 기원전 362~312년>



그리스 신화를 보면 신이라는 것들은 툭하면 짐승으로 변해 세상 아름다운 인간 여자는 덮치고 다니는 같다. 이렇게 인간 여자 사이에서 낳은 자식도 신들 찌끄레기에 끼워는 준다. 격은 낮지만 어쨌든 인간보다는 높은 반인반신이다.

 

아기만 낳으면 장땡~


에트루리안에서 여자 지위가 높았기 때문이다. 여주인은 남자 주인과 동등하게 연회(사교와 외교) 주관하고 재산을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 남자 주인과 동등하게 아무 때나 아무 하고나 하고 싶을 성관계를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나이를 불문하고 말이다. 여주인이 낳은 혼외 자식도?



<표범 혹은 개가 새겨진 에트루리안 연회 무덤 벽회, 이탈리아, 기원전 5세기>



소중한 혈통이다. 학자들은 에트루리안에서는 어린아이들도 성관계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연령에 상관없이 멀쩡히 가다가도 예쁜 여자(어린이) 있거나 잘생긴 남자(어린) 있으면 성관계를 맺었다. 이게 합의된 관계라면 상관없다. 




<에트루리안의 항해술, 기원전 5세기>



같은 에트루리안인들끼리는 그게 문화니까 그러려니 거다. 집안 따지고 서열 따져서 하고 싶은 놈이 하는 거에 거부감이 없다. 그런데 토착민인 그리스, 로마 인들은 어땠을까? 죽여버리고 싶었을 거다. 이거야 말로 문화 차이다. 




어린이까지 성에 몰두한 에트루리안


유목민은 엄마가 누구냐가 중요하지만 정착민은 아빠가 누구냐가 중요하다. 여자가 남자 남자와 관계하거나  받아들일 없다. 루크레치아의 강간 사건처럼 여자의 정절이 중요하다. 그런데 에트루리안 미친*놈들은 막을 수가 없어. 거부하면 죽어. 




<황소로 변한 제우스 등에 앉은 인간 여인, 구운 진흙, 파르티안, 기원전 3~2세기>




천벌을 받아. ? 그들은 신이니까. 마찬가지로 그리스-로마 토착민은 어린아이까지 성관계를 맺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부족이 달라붙어 성관계를 즐기도록 장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혈통 그까짓거. 


지켜야 소중한 혈통은 부계로만 전해졌다. 왕이 명의 후궁을 두면 해결되었다. 정착민인 그리스-로마 인들 눈에는 어린아이와도 관계하는 에트루리안은 짐승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감히 반항할 없었을 것이다. 



개고기 먹은 그리스 토착민 



왜냐? 상대가 신처럼 강했으니까. 고대 그리스에서는 개를 잡아먹은 것으로 보인다. 토기에 개고기를 삶아 먹던 고대 그리스 눈에 청동기 무기를 휘두르며 개를 왕의 상징으로 삼는 에트루리안은 도저히 넘을 없는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왕으로 추정되는 창과 방패를 든 페키니안 군인, 이탈리아 타로스, 기원전 5세기>


배를 타고 자유자재로 바다를 누비며 듣도 보도 못한 건축물을 세우며 화려하기 그지 없는 금세공물을 몸에 두른 에트루리안 침입자들이 신처럼 보였을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개인적으로 초기 에트루리안이 그리스-로마 신화의 주인공들이라고 믿는다. 그럴 밖에 없는 청동기 무기로 무장한 말탄 무사는 현대의 초음속 전투기 정도의 위력 지녔다. 



<말 탄 페키니아인,  키프러스, 기원전 800~400년>




황금으로 보나 무력으로 보나 문화수준으로 보나 초기 에트루리안과 그리스 로마 토착민은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버섯 모양 흙 집에 것도 감지덕지 하던 토착민 눈에 대리석 저택에서 살며 초음속 제트기(말탄 무사) 자유자재로 다루는 에트루리안 지배층은 신처럼 보일 밖에 없다. 



몰록을 버리고 신이 된 에트루리안 



, 초기 에트루리안이 그리스-로마에서 신이 되었다고 치자. 누굴 신으로 만들 것인가? 동료나 부모형제겠지. 부족 연합체인 유목민의 특성   에트루리안도 부족(가문) 별로 맡은 역할이 있었을 것이다. 초기 에트루리안 석상을 보면 거의 모든 석상이 닮았다. 




<페키니아 추정  구리합금 개 조각, 시리아 발견, 시기 미정>


눈은 아몬드 모양이고 콧대는 일직선처럼 높고 광대뼈가 발달했으며 턱은 주걱턱이다. 형제처럼 닮았다. 아마 소아시아와 중동의 몰록 신을 모시던 에트루리안 지배 부족 가문이 바다를 건너는 성공해 초기 권력을 독점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에트루리안 왕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개가 새겨진 청옥 스카라브 금인장, 이탈리아, 기원전8~3세기>



그래서 그리스 로마 신화가 모두 근친이나 부모자식, 형제들 이야기가 주가 되지 않았나 싶다. 신라 성골 시대나 고구려, 백제, 이집트처럼 순수한 피를 독점해 부와 권력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 아이부터 어른까지 성에 몰두하고 근친을 것이다.


83. 로마 - 카톨릭의 개 숭배 원조는 에트루리안

유럽사

사극을 볼 때 느끼는 안타까운 고증 실수가 있다. 청자가 없던 시기가 배경인데도 떡 하니 청자가 나오거나 도자기가 없던 시대인데도 도자기로 된 다기 세트가 나오는 걸 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왕족이라고 다 도자기를 쓴 건 아니다. 도자기는 인간이 섭씨 1000도 이상의 화력을 만들수 있게 된 후에야 만들어졌다. 섭씨 1000도 이상의 화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첨단 과학이 사용되었다


<신석시 빗살무늬 토기, 한반도 서울 지역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도자기의 발전은 과학의 발전과도 직결된다도자기가 발명되기 전 지배층은 토기를 사용했다일반 백성은 잘 해야 투박한 질그릇 정도 사용했다. 신석기 시대를 예로 들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토기 한 번 구경 못하고 죽은 인간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뛰는 남자와 개가 그려진 토기 (그리스 도기), 서 그리스, 기원전 480년

신석기 토기 유형을 보면 그 지역을 어느 세력이 지배했는지 알 수 있다. 신석시 시대 한반도 대표 토기는 빗살무늬토기다. 빗살무늬토기는 중국 황하 강과 양쯔강 쪽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오직 기마 유목민이 장악한 초원길과 비단길 루트에서만 발견된다고대 흉노는 늑대와 개를 신성하게 여겼고 중국 한족은 늑대를 증오하고 개고기를 먹은 것과처럼 극명하게 대비된다. 


<날개달린 개와 불새가 새겨진 금 인장 반지, 에트루리인, 기원전600~550년>

그리스 토기(그리스 도기라고도 한다)는 개성이 강하다딱 봐도 "앗, 이건 그리스 토기"라고 알 수 있다. 가로 줄을 여러 개 긋거나 검은색 배경에 그림을 그렸으면 십중팔구 그리스 도기다. 

고대 어느 시기부터 한반도에도 기마 유목민이 지배층으로 유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토기를 가지고 지배층의 성격을 구분하는 방식은 고대 그리스와 에트루리안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늑대(개) 모양 테라코타 용기, 에트루리안, 기원전 550~525년 >

그런데 에트루리안 토기도 그리스 토기와 양식이 같았다. 두 지배층이 같다는 뜻이다에트루리안은 페키니아라고 했다. 강력한 해상 왕국을 세운 고대 페키니아(에트루리안)가 그리스도 지배를 했다는 의미다. 


흉노와 페키니아 지배층도 결국 같다고 했다이 시기 흑해와 소아시아,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반도이집트인더스 지방중앙아시아와 중국 북부한반도까지 아주 강력한 청동기 지배층이 존재했다고 본다.


<그리스 신이 조각된 은제 장식, 흉노, 기원전 1세기~ 기원후 1세기>


이 광범위한 지역을 다스린 청동기 지배세력은 끊임없이 이동을 하며 교역을 해 부를 쌓았다. 협력 관계인 이들 지배 세력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쪽은 말을 타고 이동하며 무역을 했고 한 쪽은 주로 배를 타고 무역을 했다말을 탄 세력은 기마 유목 왕조다. 배를 탄 세력은 해상 왕국을 세운 왕조다기마 유목 왕조의 대표는 흉노다. 해상 교역 왕조의 대표는 페키니아다


<마스티프가 그려진 토기(그리스 양식), 에트루리안, 기원전 5세기 추정>

페키니아(에트루리안)는 그리스-로마 지역을 지배했다흉노와 그리스(페키니아) 지배층은 긴밀히 협력한 것은 당연했다지배층끼리만 놓고 본다면 그들은 동료였다.

 

<이집트 신 베스 추정 부적, 흉노, 기원전 세기~ 기원 후 1세기>

흉노가 이집트 신을 믿고 그리스 신화 유물을 남긴 이유다. 흉노와 페키니아로 대표되는 유목 세력은 공통적으로 개를 숭배했다티베트탄 마스티프는 두 세력에서 공통적으로 왕을 상징했다.

삽살개(티베트탄 마스티프)가 신라 왕가를 상징했다. 고구려 무덤 벽화에 단군(텡그리)과 삽살개가 함께 등장했다역사를 잊은 한국인은 삽살개도 개고기용 개라고 주장하며 열심히 개고기를 먹고 있지만 말이다.


<개가 새겨진 금 인장 반지, 에트루리안, 로마 지역 출토,기원전 8~3세기>

개고기를 먹은 문명은 중국 문명이 유일하다. 조상을 팔아먹었든지 중국인이 한국인 행세를 하든지 둘 중 하나다. 한편, 고대 유목 세력은 강력한 군사력인 청동기 무기와 풍부한 자본인 금세공술을 자랑했다


에트루리안도 고도로 발달된 청동기 유물을 남겼다완성도 높은 에트루리안 청동기 유물에는 거의 개가 등장하거나 날개달린 개 상징이 등장한다개는 왕의 상징이다


<스카라베 장식이 달린 금목걸이, 에트루리안, 기원전 4세기>

날개달린 개는 신을 의미하고 개는 지상의 왕을 의미한다. 왕가에서 사용한 청동기 유물에 왕가의 인장을 찍듯 개를 그려넣은 이유일 것이다에트루리안은 또한 아주 높은 수준의 금 세공술을 자랑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전사와 뛰어오르는 개가 그려진 스카라베, 에트루라인, 기원전 420~380년>

에트루리안 지배층은 흉노와 같은 누금 방식의 세공술을 선호한 듯 하다왕가의 여인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아름다운 에트루리안 금 목걸이에는 스카라베(풍뎅이모양 장식이 달려있다.  


<스카라베 장식이 달린 금목걸이 뒷면, 에트루리안, 기원전 4세기>


스카라베는 이집트 왕가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스카라베는 또한 에트루리안 지배층의 상징이기도 하다이집트와 달리 에트루리안의 스카라베에는 대개 전사(왕일 것으로 추정)와 개가 새겨져 있다

에트루리안 양식의 스카라베는 유럽의 카메오 세공품으로 발전한 듯 하다. 위의 에트루라인 금목걸이 뒷면에도 역시 전형적인 에트루리안 스카라베 양식을 따르고 있다. 전사와 개가 새져진 것이다. 

<개와 노는 투구를 쓴 에트루리안 전사가 새겨진 스카라베,  기원전 480~440년>

스카라베(), (), 전사()는 에트루리안 지배층의 상징이었던 것이다이와 같은 고유의 에트루리안 문화는 에트루리안이 로마제국에게 멸망당한 후 로마제국 황실로 이어진 듯 하다.

결정적으로 에트루리안과 로마 제국의 지배층은 무덤 양식이 같았다. 지배층의 무덤 양식이 같다는 건 뿌리가 같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에트루리안과 로마 제국 지배층은 또한 유독 개를 숭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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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그리스-로마 인은 개고기를 먹었을까?

유목사

그리스-로마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이는 큐피트 조각을 보면 발밑에 랩독으로 보이는 강아지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 중 키프로스에서 태어난 신들은 항상 개와 함께 등장한다. 

그 중 하나가 큐피트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서 개고기를 먹었다는 주장이 있다. 일부 고대 유적에서 출토된 개 뼈 유적으로 보아 고대 그리스인이 개고기를 먹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사랑의 신 큐피트와 개 조각, 그리스 로마 지역 추정, 1~2세기>


고대 한반도 유적에서 나온 개 뼈 유적을 근거로 한국인은 고대부터 개고기를 먹었다고 하는 주장과 비슷하다. 분명한 사실은 고대 그리스와 한반도에서 특정 시기 이후 개 식용 문화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를 숭배하는 세력이 강력한 군사력(청동기)과 자금(황금)을 바탕으로 침략해 눌러앉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경우 고구려, 백제, 신라였으며 그리스의 경우 에트루리안(페키니아)이었다. 


<장천1호 분 에불도 중 단군과 삽살개, 고구려, 5세기 후반>

이 시기부터 그리스와 한반도에서는 개를 숭배하는 문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개로 대표되는 상층 문화와 하층 문화가 충돌했다고 볼 수 있다. 

개고기에 관한 진리는 간단하다. "인간은 배가 고프면 개를 잡아 먹는다" . 역사를 통틀어 식량과 고기가 부족한 곳에서는 개고기 (사람 고기 포함)를 먹었다.


<큐피트로 추정되는 젊은남자와 개가 그려진 그릇(그리스 양식) 이탈리아, 기원전300~280년> 

개 먹(는) 파인 그들은 그리스와 한반도의 고대 정주민이었다. 해양 무역과 기마 교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외부 세력이 이들 지역을 침입했다. 새로운 지배층인 교역 세력은 딱히 개고기를 먹을 필요가 없었다. 


개고기에 대한 또 하나의 진리는 역사적으로 돈 많은 인간들은 개보다 질 좋은 단백질(소, 돼지, 양, 닭)을 먹는다는 것이다. 기마 무역 세력의 대표는 흉노였으며 해양 무역 세력의 대표는 페키니아(에트루라인)였다.

흉노(스키타이 이하 모든 기마 유목 왕조)와 페키니아 모두 양고기가 주식이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지배층도 불교 이전까지는 육식을 했을 것이다. 양을 치려면 양치기 개가 필요하다. 밥벌이 하는 개를 굳이 잡아먹을 필요가 없다. 


<스피츠 하운드 개 조각, 키푸로스 혹인 이집트, 1~2세기>


돼지나 먹던 감자를 가장 빨리 받아들인 스위스 산간 지대 양치기(사실은 염소치기)를 제외하고 양치기가 개고기를 먹은 예는 없다. 개는 인간의 친구였다. 평민은 양을 치고 귀족은 무역을 한 고대 무역 세력도 개고기를 먹을 필요가 없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지배층은 신성한 개를 키웠다. 유물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 지배층도 왕족만 키울 수 있던 개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 지배층이 키우던 개는 사자개인 페르시안 마스티프(티베트탄 마스티프)였다.


<국경 경계석에 새겨진 날개달린 개, 중기 바빌로니아, 기원전 1125~1100년 추정

고구려 지배층은 삽살개를 무덤 벽화에 남겼다. 신라 왕족도 삽살개를 키웠다. 삽살개와 티베트탄 마스티프는 유전자 대부분이 일치한다. 사자개를 키운 고대 그리스의 새로운 지배층은 에트루리안이었다. 

고대 해양 무역 세력은 소아시아(터키), 아라비아 반도, 페르시아, 이란반도, 이집트, 인도로 퍼졌다. 이 광활한 지역을 지배한 무역 세력(지배층)은 개를 숭배하는 고대 종교를 믿었다. 개(를) 숭(배하는) 파다. 


<마스티프가 새겨진 국경 경계석, 중기 바빌로니아, 기원전 1125~1100년 추정>

기원전 12세기 중기 바빌로니아 국경 경계석을 보면 개 혹은 날개 달린 개가 새겨져있다. 개가 왕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날개 달린 개를 믿은 빛의 종교는 몽골의 전통 신앙이었으며 조로아스터교였다. 또 불교와 이집트 전통 신앙 형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조로아스터교는 다시 인도의 힌두교의 기반이 되었다. 고대 빛의 종교와 조로아스터교는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기독교와 조로아스터교의 반동으로 이슬람교가 생겼다. 고대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와 몽골의 전통 종교는 같다. 


<신관으로 추정되는 남자 석상, 키푸로스(페키니아), 기원전 600~575년>

고등 종교로 평가되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도 이리저리 얼키고 설켜 따지고 보면 결국 근원이 같다. 그 근원에 개를 숭배하는 신앙이 있는 것이다. 세계 4대 종교가 모두(한국 제외) 개고기를 금지하는 이유다. 

페르시아와 이란 일부 지역에서 해양무역 세력의 유물(예를 들어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과 기마 무역 세력의 유물(파르티안 기마법 등)이 발굴되는 이유 또한 이 지역이 교차점이었기 때문이다. 


<날개달린 사자(개) 인장,구리합금, 이란 쿠샨 왕조, 1~2세기>

해양무역 세력과 기마 무역 세력의 중개인 역할은 사마르칸드 등을 거점으로 한 소그드 상인이 했을 것이다. 해양 무역 세력인 페키니아(에트루리안)가 그리스를 점령한 이후 그리스에서는 개고기가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왕이 개를 신으로 모시는 종교를 믿는데 백성이 개고기를 먹는다면 그건 신성모독이다. 정확히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청나라 멸망 후 중국 대륙에서 나타났다. 중국 공산당의 모택동은 당시 중국 정서와 달리 개고기를 좋아했다.  


<중국 공산당의 개고기 식용에 대한 개념도>

모든 문화가 그렇듯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문화는 처음에는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가 수 백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점차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흐르듯 이동했을 것이다. 

그것이 한민족의 전통문화가 되었고 그리스-로마 문화가 되었다. 그리스-로마 문화를 받아들인 로마 제국에서 개를 숭배하고 개고기를 먹지 않은 이유다. 안타깝게도 한민족의 전통문화는 조선 시대 이후 변질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 또한 개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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