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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138. 개 먹는 민주화 운동과 미국 교포 사회의 좌경화

정치

이상하게도 한국 민주화 운동 세력은 개고기에 호의적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개고기는 우리 전통이라고 주장한다. 그 결과를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김일성은 위인이라고 찬양하고 중공 건국 70주년 축하 행사를 당당히 여는 것이 현재 한국의 현실이다.   

또 그들은 기본적으로 반 제국주의를 주장한다. 반 제국주의란 일본과 미국, 서양 강대국에 반대하는 것이다. 모두 개고기를 반대하는 국가들이다. 따라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혹은 그 후손들은 개고기가 한국 전통이라고 믿는다.


<김정은 찬양한 대학생 단체가 미군철수를 외치며 미대사관저에 침입하고 있다, 조선일보, 2019년 10월 19일>


그래서인지 한국의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 학생 운동, 종교 운동 등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개고기 식용에 호의적이다. 조선족에 호의적이다. 조선족이 한국 독립운동사를 대표한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독립운동을 하는 건 좋다. 하지만 일제에게 독립을 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분열되었다. 조선으로 돌아갈 것인가? 새로운 조선이 될 것인가새로운 조선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개고기 안 먹으면 변절하기 쉽다는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 백기완, 초이스경제, 2014년>


새로운 조선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따라야 한다는 쪽은 이승만 계열 독립운동단체였다. 중국식 공산주의가 되어야한다는 쪽이 중국 공산당 계열 독립운동단체였다 

중국식 공산주의 주도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한 곳이 중국 만주였다. 이들이 조선족 독립운동가들이다. 조선족 독립운동가들은 개고기를 전통이자 공산주의의 상징으로 여기며 열심히 먹었다. 조선족 독립운동가들은 조선이 곧 중국이라고 믿었다.


 <한국은 중국 일부라는 중화사상은 1921년 이후 중국 공산화 운동이 되었다>


1954년 이승만 정권에서 개고기를 금지한 이유는 개고기로 대변되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역사 왜곡 문제를 정확히 인지했기 때문이다. 1921년 이후 중국식 독립운동가들이 개고기를 열심히 먹으며 개고기는 전통, 개고기는 전통이라고 노래를 부른 이유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을 중국인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중국 공산당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도 한국 공산당이 되어야 한다. 북한은 중국 공산당의 의도에 충실히 따라 김일성 주도로 개고기를 민족 음식으로 받아들였지만 남한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까지 개고기를 금지했다.


<독재자의 탄압으로 80년대 보신탕을 못 먹어 서러웠다는 기사, 한겨레21, 2002년 7월>


공통적으로 이들은 강력한 반공정책을 펴며 한국 내 중국 세력 확장을 경계했다. 이에 반대한 세력들은? 음지에서 열심히 개고기를 먹었다.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 학생 운동, 천주교, 일부 개신교 세력이 개를 때려잡아 먹는 행위는 결국 중국 공산화 운동이었다.  

그리고 중국 공산화 운동은 현재 성공단계에 있다. 1980년대까지 전무하던 차이나 타운 숫자가 전국적으로 수 십 개에에 이른다. 미국, 캐나다의 차이나타운과 달리 한국 차이나타운에는 반드시 개고기 시장이 존재한다.


<대림동 차이나 타운 >


한국 차이나타운은 조선족이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족은 제사에도 개고기를 올리고 추석날에도 개고기를 먹는다. 조선족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개고기 집이 있다. 


그러면 왜 이 꼴이 되었는가? 왜 한국은 개고기 천국, 조선족 천국이 됐는가? 미국 교포 사회가 원흉이다. '한국의 조선족 천국 = 개고기 천국'이고 그 뒤에는 미국 교포 사회의 좌경화가 있다. 한국의 공산화에는? 중국 공산당이 있다. 


<중국공산당이 개고기로 한민족의 역사를 지배하는 매커니즘 > 


종전 후 그 많던 공산주의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한국 땅 어디선가에서 장장 60년 넘게 살고 있었다. 우리 곁에서 우리 이웃으로 말이다. 뭘 하고 살았나? 사회 각계 각층에서 끊임없이 독재에 반대해 민주화 운동을 했다. 

1954년 이후 외국의 천주교 신부와 미국 개신교 목사가 각각 한국에 입국했다. 이들은 학생운동가와 노동운동가를 지도하며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가 되었다. 외국인 천주교 신부는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을 만들었고 개신교 목사는 한국 노동운동의 스승이 되었다. 


<개 식용은 중국 공산화 운동 한국전쟁 후 개고기 적화 과정>


그들의 제자들은? 개를 때려잡아 먹으며 민주화 운동을 했다. 장장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말이다. 서울대학교 출신 차종환은 박정희 독재 정부에 항거하다 해직된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몰몬교 신자인 그는 마침내 미국 한인 사회의 대표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뭘 했나? 미국 동포 사회 대표 자격으로 청와대를 방문해 전두환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그가 한 요구는 '재외동포법 제정'이었다. 


<1921년부터 1980년 대까지 한국의 좌파 운동과 개고기 전통론>


그렇다. 바로 지금 조선족을 한국의 특권층으로 만들어 준 재외동포법은 차종환이 만들었다. 수 십년 미국 교민 사회의 숙원인 이중국적을 포기하면서까지 말이다. 차종환이 만든 제외동포법은 철저히 조선족을위한 법이었다. 

모양새로 보면 한국에 조선족을 풀어놓은 재외동포법을 미국 교민이 만든 셈이지만 실상을 따지고 보면 중국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전 한국 공산주의자가 중국인인 조선족을 한국에 집단 거주시키는 법안을 만든 것이다. 


<위조 여권 사용 및 불법을 저지른 조선족 추방에 항의해 7번째 무기한 단식을 한 서경석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2013년 5월 20일>


쿵짝쿵짝 뒤에서 말이다. 차종환은 전세계에 퍼져 사는 한국인의 특징이 '개고기'라고 했다. 중국공산당이 정의한 대로 한국인을 정의한 것이다. 자, 급한대로 재외동포법은 만들어졌다. 

이제 문제는 한국에 떼거지로 들어온 조선족이 어떻게 정착해서 밥을 벌어먹고 살 것인가였다. 정착을 하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밥을 먹고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미국 교민사회가 나섰다. 누가? 서경석 목사가.  


137. [요약] 한국전쟁 후 좌파의 개고기 적화 운동

중국 공산당

현재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먹는 국가는 한국이다. 그 한국인의 대표는 조선족이다. 재외동포법으로 인해 조선족이 모든 한국인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족은 중국인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중국인이 되었다. 황당하지만 외부에서 보기엔 그렇다. 중국인인 조선족이 한국인의 대표가 되는 근현대사의 과정은 고구마 백 개 쯤 먹은 것같은 답답함의 연속이다. 이 황당한 일의 원인은 개고기 전통론이다.

<개를 사랑한 청 왕조는 개 도살금지법을 시행했다>

개고기로 조선족과 한국인이 하나되어 중국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1911년까지 중국과 한반도에 대중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현상은 없었다. 중국과 한반도 모두 개는 그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몰래 숨어서 먹는 불결한 음식이었다. 

모든 것은 개를 사랑한 청 왕조가 멸망하면서 시작되었다. 중국 공산당은 개고기를 공산혁명의 상징으로 삼았다. 여기에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참여하면서 한국은 완전히 중국화 되기 시작했다. 


<1921년 이후 중국공산당의 개고기 역사 공정 >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은 조선에는 죽어도 왜놈 지배만은 받을 수 없다는 정서가 존재했다. "일본 지배를 받을래? 중국 지배를 받을래?"라고 물으면 중국이라도 답할 조선인이 훨씬 많았다.  

반일정서로 지배층, 피지배층 모두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러자 조선 왕조 내내 존재한 피지배층의 반중 정서도 희석되었다. 독립운동을 하느라 바빠서 민족 의식이니 정체성이니 하는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1925년 청요리집에서 창당한 조선공산>

그 틈을 정확히 파고 든 게 중국 공산당이다. '일제 식민지 해방 = 조선 독립 = 만주 독립운동'이 최고 선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었고 만주 독립운동가들이 민족 지도자 자리를 꿰차자 그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만주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공산당 지원을 받았다. 처음에는 국민당 지원을 받은 독립운동가들도 나중에는 공산당 지원을 받았다. 곧 '중국 공산당 = 항일운동 = 독립운동 = 최고 선'이라는 개념도 생겼다. 


<김원봉 김일성 중국 공산주의 독립운동의 개고기 남침 관계도>


중국 공산당은 뭐를 먹는다? 개고기. 개고기 먹는 중국 공산당이 조선 독립을 지원해주는데 거기에 대고 토를 달수는 없다. 중국 공산당이 개고기를 먹으면? 독립을 원하는 조선인도 따라 먹어야 했다.  


개고기 식용은? 중국 공산화 운동. 이렇게 해서 1920년 대 이후 개고기 식용은 중국 공산화 운동이 되었다. 이 개고기 공산 혁명을 가장 열렬히 수행한 사람이 조선족과 김일성이다. 

 

<개고기 식용으로 본 북한과 중공의 한국 침략>

만주 독립운동가들은 완전히 공산화되어 개고기를 먹으며 북한과 남한을 공산화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물론 여기에 저항한 민족 세력도 있었다.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 세력이다. 

천도교는 일제 시대 가장 강력한 일제 저항 세력이었다. 천도교는? 개고기를 아주 강력히 금지했다. 1920년대 이후 1945년까지 한반도는 중국 공산화 운동과 천도교로 대표되는 민족운동, 독립운동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개고기 전통론 침투로 보는 한국전 양상 사진 >


이런 와중에 천도교는 일제와 중국 공산당의 공격을 동시에 받았다. 그 적나라한 결과를 우리는 북한에서 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출신 김일성은 천도교 세력을 모두 없애버렸다. 

김일성은 천도교 정신 대신 개고기는 민족음식이라는 세뇌를 북한 인민에게 주입했다. 북한은 세계 최악의 노예 국가이자 유사 종교 국가가 되었다. 일제 패망 후 해방된 한반도는 여전히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었다. 


<김원봉 김일성 중국 공산주의 독립운동의 개고기 남침 관계도>

미국(자유 진영)과 소련(중공을 포함한 공산 진영)은 어느날 갑자기 한반도에 38선을 긋고 남한과 북한으로 나눴다. 남한은 이승만, 북한은 김일성이 등장해 미국과 소련(중공) 대표해서 남한과 북한을 지배했다. 

38선이 그어진 순간 북한은 적화된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남한으로 피신했다. 조선족으로 추정되는 김일성은 빠르게 북한을 공산화 했다. 하루 하루 두 끼 개고기를 먹으면서 말이다. 그 결과 지금 북한에서 개고기는 민족의 음식이 되었다. 


<조선족의  625남침과 개고기 침략 과정  >


북한과 달리 자유민주국가 남한에서는 개고기 공산화 운동이 쉽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개고기 금지법을 만들어 남한이 개고기로 적화되는 것을 막았다. 이 와중에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중국 공산당의 영향을 받아 고기로 무장한 김일성과 김원봉이 개고기 금지법이 있던 남한을 공격했다. 개고기 먹는 조선족 군대의 지원을 받아서 말이다. 문제는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다. 휴전 후 남한 측이 잡은 수많은 전쟁 포로는 모두 북한인과 조선족이었다. 

 

<개 식용은 중국 공산화 운동 한국전쟁 후 개고기 적화 과정 >


북한과 중국으로 복귀하지 못한 북한인과 조선족은 파악조차 안 된다. 남한, 북한, 조선족은 같은 말을 쓰는 같은 민족이다.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한국 전쟁 후 남한에는 수많은 북한인과 조선족이 스며들어 숨죽이고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반공 정책을 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부는 독재 정치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대한 민주화 운동을 했다.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은 반공 정책에 반대했다. 즉, 친공산주의를 주장했다. 개고기를 먹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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