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교 3

40. 중국의 식인풍습과 빛의 종교 '개 새'

빛의 종교 속 ‘개 새’ 개념은 진· 한 시대 중국 대륙에도 전해졌다. 그게 중국 도교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에 단절되어 있었어도 중국 한족 지배층은 끊임없이 중국 외부와 전쟁 혹은 교류를 해야 했다. 문화와 종교도 그렇게 조금씩 중국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기원전 7세기 『도덕경』이란 글은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났을까? 노자조차 실제 인물인지, 아닌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확실치 않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중국 도교도 고통스러운 인생을 사는 인간들에게 돌파구를 마련해주었다. 그 돌파구는 신선이 되어 신선세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개 새’를 믿는 빛의 종교는 고통과 죽음이 없는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있고 결국 마침내 빛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 주요..

종교 2019.02.12

32. 개 머리를 한 기독교 성인 크리스토퍼

당나라는 양귀비가 죽은 후에도 장장 152년이나 더 유지되었다. 당나라는 위그르가 망하는 바람에 같이 망했다. 유목 왕조가 원래 불 같이 일어났다 불 꺼지듯 망하는 게 특징이긴 하다. 위그르가 망한 이유는 채식이다. 황당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 마니교가 채식을 했기 때문이다. 엘리트 기마 무사들이 채식을 하게 되면서 살생을 하지 않았다. 위그르 군사력이 약해진 것이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위그르가 너무 잘 살아서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아즈텍-마야 문명의 보물을 쓸어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인플레이션으로 휘청인 것 처럼 말이다. 유목민에게는 고기가 흔하고 곡식이 귀하다. 나라에 돈이 많으니 곡식이 넘쳤을 것이다. 비잔틴 제국 사신 말에 의하면 돌궐 왕의 천막은 온통 황금으로 장식되었다. 위..

종교 2019.01.19

28. 개 전용 사원이 있던 당나라

삼국 중 유목 전통을 가장 충실히 지켰고 신라 왕족만 키울 수 있는 삽살개가 있던 것으로 보아 신라는 명백히 개숭(배하는)파였다. 성골이 끝나는 시점인 7세기까지는 개고기 먹을 일이 없었다. 통일신라의 국교는 불교였다. 10세기에 세워진 고려도 불교였다. 역시 개 먹을 일이 없다. 가끔 선승인 뭐니 하며 개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하는 땡중이 있다. 헛소리다. 부처님이 콕 찝어 개는 절대 먹지 말라고 하셨다. 적어도 14세기 건국된 조선 시대 전까지 우리 민족에게 개고기라는 단어는 불길한 단어였다. 그렇다면 신라는 왜 당나라와 일본에 굳이 개를 배에 실어 보냈을까? 신라 계림로 황금 보검처럼 국교 차원에서 두 나라 왕족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정세 상 공식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