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는 양귀비가 죽은 후에도 장장 152년이나 더 유지되었다. 당나라는 위그르가 망하는 바람에 같이 망했다. 유목 왕조가 원래 불 같이 일어났다 불 꺼지듯 망하는 게 특징이긴 하다.
위그르가 망한 이유는 채식이다. 황당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 마니교가 채식을 했기 때문이다. 엘리트 기마 무사들이 채식을 하게 되면서 살생을 하지 않았다. 위그르 군사력이 약해진 것이다.
<고창 왕국, 중국 풍 옷을 입은 위그르 왕자, 9~12세기>
이것도 따지고 보면 위그르가 너무 잘 살아서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아즈텍-마야 문명의 보물을 쓸어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인플레이션으로 휘청인 것 처럼 말이다. 유목민에게는 고기가 흔하고 곡식이 귀하다.
나라에 돈이 많으니 곡식이 넘쳤을 것이다. 비잔틴 제국 사신 말에 의하면 돌궐 왕의 천막은 온통 황금으로 장식되었다. 위그르가 믿은 마니교에 대해 설명하자면 예수 탄생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초기 기독교 성지, 하면 시리아 안티오크였다.
<17세기의 안티오크>
지금은 터키 땅 끝에 속한 안티오크는 고대 시리아 수도였다. 당연히 터키와 시리아는 오랜 앙숙이다. 로마 제국은 동서로 길게 위치했다. 동 로마와 서 로마는 문화, 역사, 정치 모든 게 달랐다. 특히 기독교의 경우 원조는 로마의 동쪽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안티오크, 알렉산드리아 등이 있는데 이 중 안티오크는 기원전 67년 로마에 정복 당하기 전까지 앗시리아, 스키타이, 페르시아, 그리스의 영향권에 있었다. 구약을 믿는 유대교는 동로마 지역에 존재한 수많은 토착 종교 중 하나였다.
<기원전 1세기~기원후 7세기 로마와 페르시아 지도>
예수 탄생 이후 유대교와는 달리 신약을 믿는 기독교가 생겼다. 예루살렘과 인접한 이들 지역에는 예수 사후에도 관련된 기록과 증언이 생생하게 존재했다. 증언과 기록을 근거로 저마다 정통성을 주장하는 교회가 생겼다.
대표적으로 시리아의 안티오크 파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파가 있었다. 이 초기 기독교 중심 도시들을 로마가 지배 하기 시작하면서 무시무시한 박해도 시작되었다. 로마인들은 이교도인을 현지에서 바로 죽이지 않았다.
<안티오크의 성 이그나티우스, 17세기>
굳이 그 먼 이탈리아 로마까지 끌고 와 콜로세움 안 사자 먹이로 던져 주어 죽였다. 콜로세움 살육 파티가 당시 로마 시민들이 가장 즐기던 놀이였다.
로마로 끌려와 사자에 물어 뜯겨 죽은 기독교도 중에는 108년 순교한 성 이그나티우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안티오크 주교인 그는 ‘카톨릭 교회’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다.
아기 예수를 업고 강을 건넌 것으로 추앙받는 성 크리스토퍼도 시리아에서(안티오크 추정) 순교했다. 그런데 성 크리스토퍼는 개 머리를 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대체 왜 신성한 성인 머리가 개인지 종교학자와 역사학자는 설명을 하지 못한다. 안티오크는 현재 터키 땅이다. 터키와 고대 시리아가 속한 아나톨리아 반도는 투르크가 지배했다. 왕이 늑대 머리 깃발을 휘날리던 그 투르크다.
<개 머리 성인 성 크리스토퍼, 러시아, 17세기>
중앙아시아 기마 유목민이 인종과 시대만 다를 뿐 문화가 같다고 했다. 적어도 스키타이 시절부터 아나톨리아 반도에서는 텡그리와 신성한 개(늑대) 신앙을 믿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개 머리를 한 인간은 이 지역에서 고대부터 믿어온 늑대 인간과도 일치한다. 그가 선택받은 인간의 왕(텡그리)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로마 카톨릭이 천 년 이상 지배한 중세 유럽에서는 성 크리스토퍼가 철저하게 지워진다.
<성 크리스토퍼, 독일, 14세기>
중세가 끝나가는 14~15세기가 돼서야 조금씩 흔적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나마 개 머리를 한 모습이 아니고 아기 예수를 어깨에 멘 인간 모습이다. 반면 안티오크 파를 계승한 동방교회 에서는 때때로 개 머리를 한 모습 그대로 그려진다.
카톨릭 교회라는 단어의 창시자와 아기 예수를 구한 성인이 안티오크 출신이라는 점에서 안티오크 파가 가지는 자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313년 로마 제국 황제가 느닷없이 기독교를 국교로 공표하면서 안티오크 파는 쫄딱 망한다.
<안티오크 파 주교를 파문한 로마 카톨릭의 제 3차 공의회>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안티오크 파를 이단으로 규정해 파문한 것이다.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하나로 통일하고자 했다. 하나의 성경, 하나의 교리로 만들자는 것이다. 취지는 좋았으나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서로마 제국 멸망 후 천 년 동안 모든 유럽인은 오직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정한대로 살아야했다. 조금이라도 규정을 어기면 죽었다. 로마 카톨릭 교단에서는 주로 불에 태워 죽였다.
<스위스의 마녀 화형식, 16세기>
313년을 시작으로 거의 천 년 동안 중세의 암흑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모든 종교는 권력과 밀접하다고 했다. 백성들의 신앙심만 강하다면 종교 지도부만 관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로마 당국은 기독교에 대해 잘 몰랐다.
지리적으로 발흥지와 너무 멀었고 국교가 되기 바로 전날까지도 기독교는 이단이었다. 로마에서는 각 계파 기독교 수장들을 불러 통일된 교리(성경)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당연히 각 기독교 계파 간 교리 싸움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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