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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159. 한국에서 개 싸움은 그만. 국제 코민테른

개고기 문제

제리 레노가 또? 한국 개고기 비하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코미디언이 또 한국의 개고기 비하 발언을 했다. 외국에서 한국 개고기가 욕을 먹을 때마다 국내 반응은 대충 두 가지로 나뉜다. 니가 뭔데 우리 전통 음식 가지고 참견이냐?! 기분 나쁘니까 더 잡아먹자!”.


 <한국 개고기 문화를 비하한 미국 코미디언 제이레노, 연합뉴스, 2019년 12월 18일 >


아니면 “(니가 뭔데 우리 전통 음식 가지고 참견이냐?! 기분은 나쁘지만 그래도) 이제 옛날 배고플 때나 먹던 개고기 그만 먹을 때도 됐다.” 둘 다 개고기는 우리 전통이라는 인식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개고기는 1911년 이후 생긴 중국 공산당의 전통음식이다.

 

<1998년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인은 제사에 개고기를 올린다고 외신기자와 회견했다, 한겨례, 2002년 9월 6일>


그나마 1980년대까지는 외국에서 개고기 비판을 하면 눈치라도 보는 분위기였다. 1998년 이후부터는 기분 나쁘니까 더 잡아먹자!” 는 쪽이 우세해졌다. 1998년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친 중국 친 북한 중심 정책을 폈으며 조선족 불체자들이 물밀듯 들어왔다.


 조선족과 함께 들어온 개고기 자부심


조선족 하면? 개고기. 이 때부터 한국 개고기 판이 바뀐 것이다. 1998년 이전까지 개고기는 몰래 숨어서 먹는 음식이었다. 물론 당당하게 먹으려 애쓰던 부류들도 있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친중국파. 넓은 의미에서 중국공산주의자들이다.

 

<개고기 식용으로 본다면 중공군이 침략한 한국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개고기는 미국 식 자유민주주의와 중국식 공산주의를 가르는 이념적 상징이기도 하다. 정확히 마오쩌둥이 개고기를 통해 중국 대륙을 공산화시키던 상황과 같은 상황이 한반도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념이 들어가면? 모든 게 극단적이 된다.


<강력한 개고기 금지법을 시행한 이승만 대통령 치하에서도 한국 종교계와 노동운동, 학생운동, 민주화 운동 단체는 열심히 개고기를 먹었다>

 

자유민주주의를 따르던 이승만 정권에서는 강력한 개고기 금지법이 있었다. 그러나 서슬 퍼런 독재정권 하에서도 천주교와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 운동과 노동운동 세력은 개고기를 찬양하며 몰래 몰래 열심히 먹었다.


 개고기로 이념 전쟁


이들의 뿌리는 1920년대 중국 기반 일제 독립운동과 서양 종교 및 서양의 노동운동이었다. 죄다 중국 아니면 서양이다. 외부 세력이다. 이중 중국 기반 일제 독립운동은 중국 공산주의와 연결된다. 서양의 종교와 노동운동 역시 넓게 보면 국제코민테른(국제 공산주의)과 연결된다.

 

<1974년 인혁당 사건으로 강제 추방된 천주교 제임스 시노트 신부는 개고기를 사랑한 김수환 추기경을 움직여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


1950~60년대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천주교신부들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급진적인 공산주의자로 분류된다. 천주교 신부들은 주로 서울대를 중심으로 그들의 사상(급직적 공산주의)를 가르쳤다.


<제임스 시노트 신부가 지원한 인혁당 사건의 주도자인 지학순 신부는 개 때려잡아 먹는 전통을 가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만들어진 계기가 되었다>


그 학생들이 다시 혈관처럼 전국 대학가, 노동 현장, 농촌으로 퍼져 그들이 배운 사상(급진적 공산주의)을 가르쳤다. 그 중 일부가 개고기 전파와 조선족 지원에 혁혁한 공을 세운 차종환과 서경석 목사 등이다.


 한국에서 개 싸움, 중국공산주의와 국제 공산주의  


한국의 종교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 민주화 운동의 모태가 세계 공산주의와 연결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 공산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 공산조직은 중국 공산당의 하부 조직쯤 되는 것이다. ,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고 보는 것이다. 


<1954년 한국에 들어온 조지 오글 목사는 6~70년대 노동운동과 학생 운동을 주도하다 1974년 인혁당 사건에 연루, 강제추방되었다,뉴스프리존, 2018년 8월 11일>


지금 이 순간에도 서양 좌파(변형된 공산주의자)와 지식인들은 한국을 중국의 일부로 간주한다. 이런 현상은 특히 역사학계에서 두드러진다.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현재 한국에 남은 모든 역사책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한국, 일본, 유럽의 모든 지식인은 한국이 중국의 일부이며 중국의 개고기는 한국 전통이라고 믿고 있다>


조선 왕조는 개국하자마자 고려 이전의 모든 역사책과 유물을 없앴다. 그리고 500년을 주구장창 조선은 중국의 일부이며 심지어 중국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아니, 조선인이 그렇다는데 믿어야지. 세계 역사학자들이 보기에 조선은 당연히 중국이다.


<미국 목사 조지 오글은 도시산업선교회를 통해 196~70년대 한국의 노동운동, 학생운동,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뉴스프리존, 2018411>


일제시대 식민사관을 가진 역사학자들도 이에 동의했다. 일본 입장에서는 중국의 속국인 조선을 일본이 해방시켜 일본에 편입시킨 것이다. 해방 후 한국 역사학계도 이를 바로잡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 역사학계 내 누구도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 않다. 그 결과 한국은 과거 중국 땅, 중국의 개고기는 한국 전통음식이 되었다. 


140. 개고기로 중국 공산당 빵 셔틀이 된 한국

정치

정부가 개는 가축이라는 정책을 펴며 의도적으로 개고기 산업을 성장시킨 국가는 인류 역사 상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인류 역사 상 최악의 개 학대 국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고등학생이 남의 집 개 몸에 불을 붙여 태워 죽여도 개 값만 물어주면 되는 나라, 수의사가 유기견을 구입해 생체 실험을 해도 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의 한국은 이렇지 않았다


<개고기 집 사장 출신 김희선 열린 우리당 전 의원, 한겨레21, 2004년 3월>


골목마다 작은 발발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녔다. 개고기 집도 별로 없었다. 있어도 으슥한 뒷골목, 있는지 없는지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곳이었다개고기 먹고 온 사람? 당연히 책망을 들었다.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그랬다

이걸 개고기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독재자에 복수할 날을 꿈꾸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점이 정확히 1997년 이후다.  그 때까지 개고기는 보편적인 우리 문화가 아니었다개고기는 낯선 문화, 중국 문화였다


<80년대 운동권은 개고기 집을 운영해 자금을 조달했다, 김학민의 음식이야기, 한겨레 21, 2002년 7월>


정확히는 중국 공산당 문화였다개고기에 대한 한국인의 뿌리 깊은 반감은 중국에 대한 반감이었다. 중국에 대한 반감은 곧 중국 공산화에 대한 반감이었다. 한국은 해방 후 전두환 정권까지 반 중국 정책을 폈다. 반중국 정책이 반공 정책이다.

이런 상황에서 1992년 노태우 정부는 느닷없이 중국과 국교를 맺었다. 1992년부터 한국은 중국 공산당과 아주 긴밀히 연관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중국 공산화 되면개고기가 창궐한다. 개고기를 통한 중국 적화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이 개고기로 한민족의 역사를 지배하는 매커니즘>


조선족 자치구, 북한, 대만, 홍콩 모두 마찬가지였다. 홍콩, 대만은 중국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개고기가 금지되었다. 현재 홍콩의 일국 양제는 완전히 실패했다. 만약 홍콩이 민주화 시위에 실패해 완전히 공산화가 된다면 다시 개고기가 창궐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공산당이 홍콩, 대만 다음으로 노린 곳이 한국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1992년 한중 수교는 중국 공산당에게 성문을 열어준 것과 마찬가지였다. 고구려가 성문을 열어준 배신자에 의해 망한 것과 같은 과정이 한국에서도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수 십 개의 차이나타운이 생겼다>


중국 공산당에 의해 한국인의 정신과 영토가 잠식되고 있는 것이다. 개고기가 전통이라고 믿는 것은 한국인의 정신이 잠식되는 것이다. 개고기 시장을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수 십 개나 생긴 차이나타운은 한국 영토가 잠식되는 것이다


중국 공산화 = 개고기 창궐이기 때문이다한국의 중국화 즉 한국의 개고기 창궐에는 조선족, 한국 좌파, 미국 좌파가 긴밀하게 협력했다. 한국의 경우를 보자. 1953년 휴전 이후 경건하게 개를 때려잡아 먹으며 중국 공산화 운동을 하던 많은 이들이 사회 각계 각층으로 퍼져 자리잡은 상태였다.


<청와대에서 개고기를 먹은 첫 대통령인 김영삼 대통령, 스포츠서울, 2015년 11월>


그 대표적인 사람들 중 하나가 1993년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이다보름달 빵을 먹으며 단식을 하던 민주화 운동가 출신인 그는 당연히 개고기를 좋아했다. 청와대에서 보신탕을 끊여먹은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김영삼 정부이후 IMF까지 한국과 중국(조선족)의 관계는 빵 셔틀과 일진 같았다

차종환, 서경석으로 대표되는 미국 좌파 교민 사회와 한국 정부와 사회단체, 기업은 미친듯이 조선족 사회와 중국에 돈을 갖다 바쳤다. 빵셔틀과 다른 점은 한국과 미국 교민은 아주 행복하게 중국에 돈을 갖다 바쳤다는 점이다.


<1992~1997년 기간 내 미국 한인 사회와 한국의 조선족 지원>


 '한민족, 통일. 인권'이라는 이름의 뽕을 맞았기 때문이다빵셔틀에게 빵을 쓸어담는 일진처럼 한국의 부를 중국이 빨아들이는 시스템은 1997년 갑자기 중단되었다. 그러자 중국(조선족)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신나게 몸집을 키웠는데 빵을 못 먹으면 쓰러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족(중국)은 당장, 시급히, 안정적으로 한국 빵이 계속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약 200만 명의 조선족이 한국으로 집단 이주하는 것이 결정되었다고 본다.


<개고기 한국 전통론의 위험성>


마침 한국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중국(조선족)에는 조남기 부주석, 한국에는 김대중 대통령, 딱 일하기도 좋았다. 여기에 대한 후방 지원을 미국으로 이주한 차종환, 서경석 등 좌파 교민들이 맡았다.

 ‘한민족, 통일. 인권이라는 뽕을 맞으면서 신바람 나게 말이다.한민족, 통일, 인권이라는 뽕을 맞은 이들은 먼저 한국과 중국은 같다는 논리부터 폈다. 그 근거 중 하나가 개고기였다.


<조선족, 한국과 미국의 친중국 세력은 개고기는 한국 전통이라고 주장한다>


한국과 중국은 역사적으로 같으며 사이좋게 같이 개고기를 먹던 사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중국이라는 의미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승냥이 같은 미국 놈들보다는 조선시대 상국으로 모신 중국이 낫다는 의미다.

1945년 이후 생긴 한국의 반미 정서의 근원에는 이런 친중국 논리가 있다. “미국보단 중국이 나아!” 미국 버리고 중국을 택해 통일을 이룩해 한민족의 번영을 이뤄내자는 논리가 친중국 세력에서 나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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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개 먹는 민주화 운동과 미국 교포 사회의 좌경화

정치

이상하게도 한국 민주화 운동 세력은 개고기에 호의적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개고기는 우리 전통이라고 주장한다. 그 결과를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김일성은 위인이라고 찬양하고 중공 건국 70주년 축하 행사를 당당히 여는 것이 현재 한국의 현실이다.   

또 그들은 기본적으로 반 제국주의를 주장한다. 반 제국주의란 일본과 미국, 서양 강대국에 반대하는 것이다. 모두 개고기를 반대하는 국가들이다. 따라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혹은 그 후손들은 개고기가 한국 전통이라고 믿는다.


<김정은 찬양한 대학생 단체가 미군철수를 외치며 미대사관저에 침입하고 있다, 조선일보, 2019년 10월 19일>


그래서인지 한국의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 학생 운동, 종교 운동 등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개고기 식용에 호의적이다. 조선족에 호의적이다. 조선족이 한국 독립운동사를 대표한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독립운동을 하는 건 좋다. 하지만 일제에게 독립을 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분열되었다. 조선으로 돌아갈 것인가? 새로운 조선이 될 것인가새로운 조선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개고기 안 먹으면 변절하기 쉽다는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 백기완, 초이스경제, 2014년>


새로운 조선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따라야 한다는 쪽은 이승만 계열 독립운동단체였다. 중국식 공산주의가 되어야한다는 쪽이 중국 공산당 계열 독립운동단체였다 

중국식 공산주의 주도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한 곳이 중국 만주였다. 이들이 조선족 독립운동가들이다. 조선족 독립운동가들은 개고기를 전통이자 공산주의의 상징으로 여기며 열심히 먹었다. 조선족 독립운동가들은 조선이 곧 중국이라고 믿었다.


 <한국은 중국 일부라는 중화사상은 1921년 이후 중국 공산화 운동이 되었다>


1954년 이승만 정권에서 개고기를 금지한 이유는 개고기로 대변되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역사 왜곡 문제를 정확히 인지했기 때문이다. 1921년 이후 중국식 독립운동가들이 개고기를 열심히 먹으며 개고기는 전통, 개고기는 전통이라고 노래를 부른 이유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을 중국인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중국 공산당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도 한국 공산당이 되어야 한다. 북한은 중국 공산당의 의도에 충실히 따라 김일성 주도로 개고기를 민족 음식으로 받아들였지만 남한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까지 개고기를 금지했다.


<독재자의 탄압으로 80년대 보신탕을 못 먹어 서러웠다는 기사, 한겨레21, 2002년 7월>


공통적으로 이들은 강력한 반공정책을 펴며 한국 내 중국 세력 확장을 경계했다. 이에 반대한 세력들은? 음지에서 열심히 개고기를 먹었다.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 학생 운동, 천주교, 일부 개신교 세력이 개를 때려잡아 먹는 행위는 결국 중국 공산화 운동이었다.  

그리고 중국 공산화 운동은 현재 성공단계에 있다. 1980년대까지 전무하던 차이나 타운 숫자가 전국적으로 수 십 개에에 이른다. 미국, 캐나다의 차이나타운과 달리 한국 차이나타운에는 반드시 개고기 시장이 존재한다.


<대림동 차이나 타운 >


한국 차이나타운은 조선족이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족은 제사에도 개고기를 올리고 추석날에도 개고기를 먹는다. 조선족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개고기 집이 있다. 


그러면 왜 이 꼴이 되었는가? 왜 한국은 개고기 천국, 조선족 천국이 됐는가? 미국 교포 사회가 원흉이다. '한국의 조선족 천국 = 개고기 천국'이고 그 뒤에는 미국 교포 사회의 좌경화가 있다. 한국의 공산화에는? 중국 공산당이 있다. 


<중국공산당이 개고기로 한민족의 역사를 지배하는 매커니즘 > 


종전 후 그 많던 공산주의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한국 땅 어디선가에서 장장 60년 넘게 살고 있었다. 우리 곁에서 우리 이웃으로 말이다. 뭘 하고 살았나? 사회 각계 각층에서 끊임없이 독재에 반대해 민주화 운동을 했다. 

1954년 이후 외국의 천주교 신부와 미국 개신교 목사가 각각 한국에 입국했다. 이들은 학생운동가와 노동운동가를 지도하며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가 되었다. 외국인 천주교 신부는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을 만들었고 개신교 목사는 한국 노동운동의 스승이 되었다. 


<개 식용은 중국 공산화 운동 한국전쟁 후 개고기 적화 과정>


그들의 제자들은? 개를 때려잡아 먹으며 민주화 운동을 했다. 장장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말이다. 서울대학교 출신 차종환은 박정희 독재 정부에 항거하다 해직된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몰몬교 신자인 그는 마침내 미국 한인 사회의 대표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뭘 했나? 미국 동포 사회 대표 자격으로 청와대를 방문해 전두환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그가 한 요구는 '재외동포법 제정'이었다. 


<1921년부터 1980년 대까지 한국의 좌파 운동과 개고기 전통론>


그렇다. 바로 지금 조선족을 한국의 특권층으로 만들어 준 재외동포법은 차종환이 만들었다. 수 십년 미국 교민 사회의 숙원인 이중국적을 포기하면서까지 말이다. 차종환이 만든 제외동포법은 철저히 조선족을위한 법이었다. 

모양새로 보면 한국에 조선족을 풀어놓은 재외동포법을 미국 교민이 만든 셈이지만 실상을 따지고 보면 중국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전 한국 공산주의자가 중국인인 조선족을 한국에 집단 거주시키는 법안을 만든 것이다. 


<위조 여권 사용 및 불법을 저지른 조선족 추방에 항의해 7번째 무기한 단식을 한 서경석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2013년 5월 20일>


쿵짝쿵짝 뒤에서 말이다. 차종환은 전세계에 퍼져 사는 한국인의 특징이 '개고기'라고 했다. 중국공산당이 정의한 대로 한국인을 정의한 것이다. 자, 급한대로 재외동포법은 만들어졌다. 

이제 문제는 한국에 떼거지로 들어온 조선족이 어떻게 정착해서 밥을 벌어먹고 살 것인가였다. 정착을 하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밥을 먹고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미국 교민사회가 나섰다. 누가? 서경석 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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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요약] 한국전쟁 후 좌파의 개고기 적화 운동

중국 공산당

현재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먹는 국가는 한국이다. 그 한국인의 대표는 조선족이다. 재외동포법으로 인해 조선족이 모든 한국인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족은 중국인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중국인이 되었다. 황당하지만 외부에서 보기엔 그렇다. 중국인인 조선족이 한국인의 대표가 되는 근현대사의 과정은 고구마 백 개 쯤 먹은 것같은 답답함의 연속이다. 이 황당한 일의 원인은 개고기 전통론이다.

<개를 사랑한 청 왕조는 개 도살금지법을 시행했다>

개고기로 조선족과 한국인이 하나되어 중국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1911년까지 중국과 한반도에 대중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현상은 없었다. 중국과 한반도 모두 개는 그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몰래 숨어서 먹는 불결한 음식이었다. 

모든 것은 개를 사랑한 청 왕조가 멸망하면서 시작되었다. 중국 공산당은 개고기를 공산혁명의 상징으로 삼았다. 여기에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참여하면서 한국은 완전히 중국화 되기 시작했다. 


<1921년 이후 중국공산당의 개고기 역사 공정 >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은 조선에는 죽어도 왜놈 지배만은 받을 수 없다는 정서가 존재했다. "일본 지배를 받을래? 중국 지배를 받을래?"라고 물으면 중국이라도 답할 조선인이 훨씬 많았다.  

반일정서로 지배층, 피지배층 모두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러자 조선 왕조 내내 존재한 피지배층의 반중 정서도 희석되었다. 독립운동을 하느라 바빠서 민족 의식이니 정체성이니 하는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1925년 청요리집에서 창당한 조선공산>

그 틈을 정확히 파고 든 게 중국 공산당이다. '일제 식민지 해방 = 조선 독립 = 만주 독립운동'이 최고 선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었고 만주 독립운동가들이 민족 지도자 자리를 꿰차자 그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만주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공산당 지원을 받았다. 처음에는 국민당 지원을 받은 독립운동가들도 나중에는 공산당 지원을 받았다. 곧 '중국 공산당 = 항일운동 = 독립운동 = 최고 선'이라는 개념도 생겼다. 


<김원봉 김일성 중국 공산주의 독립운동의 개고기 남침 관계도>


중국 공산당은 뭐를 먹는다? 개고기. 개고기 먹는 중국 공산당이 조선 독립을 지원해주는데 거기에 대고 토를 달수는 없다. 중국 공산당이 개고기를 먹으면? 독립을 원하는 조선인도 따라 먹어야 했다.  


개고기 식용은? 중국 공산화 운동. 이렇게 해서 1920년 대 이후 개고기 식용은 중국 공산화 운동이 되었다. 이 개고기 공산 혁명을 가장 열렬히 수행한 사람이 조선족과 김일성이다. 

 

<개고기 식용으로 본 북한과 중공의 한국 침략>

만주 독립운동가들은 완전히 공산화되어 개고기를 먹으며 북한과 남한을 공산화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물론 여기에 저항한 민족 세력도 있었다.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 세력이다. 

천도교는 일제 시대 가장 강력한 일제 저항 세력이었다. 천도교는? 개고기를 아주 강력히 금지했다. 1920년대 이후 1945년까지 한반도는 중국 공산화 운동과 천도교로 대표되는 민족운동, 독립운동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개고기 전통론 침투로 보는 한국전 양상 사진 >


이런 와중에 천도교는 일제와 중국 공산당의 공격을 동시에 받았다. 그 적나라한 결과를 우리는 북한에서 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출신 김일성은 천도교 세력을 모두 없애버렸다. 

김일성은 천도교 정신 대신 개고기는 민족음식이라는 세뇌를 북한 인민에게 주입했다. 북한은 세계 최악의 노예 국가이자 유사 종교 국가가 되었다. 일제 패망 후 해방된 한반도는 여전히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었다. 


<김원봉 김일성 중국 공산주의 독립운동의 개고기 남침 관계도>

미국(자유 진영)과 소련(중공을 포함한 공산 진영)은 어느날 갑자기 한반도에 38선을 긋고 남한과 북한으로 나눴다. 남한은 이승만, 북한은 김일성이 등장해 미국과 소련(중공) 대표해서 남한과 북한을 지배했다. 

38선이 그어진 순간 북한은 적화된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남한으로 피신했다. 조선족으로 추정되는 김일성은 빠르게 북한을 공산화 했다. 하루 하루 두 끼 개고기를 먹으면서 말이다. 그 결과 지금 북한에서 개고기는 민족의 음식이 되었다. 


<조선족의  625남침과 개고기 침략 과정  >


북한과 달리 자유민주국가 남한에서는 개고기 공산화 운동이 쉽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개고기 금지법을 만들어 남한이 개고기로 적화되는 것을 막았다. 이 와중에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중국 공산당의 영향을 받아 고기로 무장한 김일성과 김원봉이 개고기 금지법이 있던 남한을 공격했다. 개고기 먹는 조선족 군대의 지원을 받아서 말이다. 문제는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다. 휴전 후 남한 측이 잡은 수많은 전쟁 포로는 모두 북한인과 조선족이었다. 

 

<개 식용은 중국 공산화 운동 한국전쟁 후 개고기 적화 과정 >


북한과 중국으로 복귀하지 못한 북한인과 조선족은 파악조차 안 된다. 남한, 북한, 조선족은 같은 말을 쓰는 같은 민족이다.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한국 전쟁 후 남한에는 수많은 북한인과 조선족이 스며들어 숨죽이고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반공 정책을 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부는 독재 정치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대한 민주화 운동을 했다.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은 반공 정책에 반대했다. 즉, 친공산주의를 주장했다. 개고기를 먹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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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샐러드 볼 이민 정책과 친중파의 개고기 왜곡

중국 공산당

이민자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금지한 미국의 용광로 이민 정책을 뒤집은 것이 샐러드 볼(Salad Bawl) 이론이었다. 샐러드 그릇에 들어있는 야채와 과일처럼 각자의 개성을 유지한 채 하나의 근사한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미국의 샐러드 볼 이론이 현재 한국에서 만연하고 있는 다문화주의의 이론적 근거다1972년 이후 미국의 이민 정책은 완전히 달라졌다. 남미 이민자들도 종교 의식 때 마약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재료 선택과 손질에 신경 써야 하는 샐러드 요리>

그들이 빠는 것은 마약이 아니라 문화전통이었기 때문이다. 다문화주의에 의해 일부 마약은 합법이었다. 같은 논리로 다문화주의에 의해 개고기도 합법이었다.

미국에 한해 1970년대까지 개고기 문제는 없었다. 학살에서 겨우 살아남은 인디언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멸종보호 종으로서 살아가야 했다보호구역은 미국 정부에 의해 강력히 통제되었다


<The Smoke Signal, 프레데릭 레밍턴, 미국, 1905년>

살아남은 인디언들은 개고기를 먹을 수도 없었고 먹을 필요도 없었다. 미국 정부가 넘치도록 먹을 것(주로 술과 돈)을 주었기 때문에 굳이 개를 잡아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어떤 아메리칸 인디언도 개고기는 인디언의 전통이니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미국 땅에서 코요테 고기라고 뻥을 치며 개고기를 먹는 인간이 나타난 건 1970년대 이후였다


<워싱턴 평화운동, 미국, 1963년>

베트남 전쟁 후 미국으로 이주한 많은 베트남인은 개고기를 먹었다. 1970년대 한국인의 미국 이민이 허용된 후 미국으로 들어간 한국인들 중 일부도 개고기를 먹었다

개고기 먹는 베트남인과 한국인이 미국에서 그나마 숨어서 개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바뀐 미국의 이민 정책 덕분이었다

<한국인의 특징인 보신탕은 문제될 거 없다고 한 차종환, 교포 정책 포럼, 1999,>

베트남 이민자 대표는 뭐라고 했는지 몰라도 한국의 미국 이민자 대표자는 개고기 식용이 한국인을 구분 짓는 민족적 특징이라고 했다. 적어도 조선족과 관련된 재외동포법을 추진한 미국 한인사회 대표는 그렇게 말했다.   

조선 왕조에 대항해 죽창가를 부르며 내전을 일으킨 동학신자들은 절대 개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1920년대 후반 전국 동맹 학생 독립운동을 일으킨 학생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1960년대 후반까지 개고기 금지법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말이다.


몰몬교 신자이며 운동권, 지식인, 친조선족, 친북 성향을 가진 한 인간이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미국에서 수 백 권의 책을 저술한 그의 말은 미국 지식 사회에 진실처럼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정확히 조선 시대와 같은 상황이 1970년대 이후 미국과 국제사회에서 펼쳐진 것이다.


<한국어를 하는 중국 시민이 말하는 개고기와 서양제국주의 , 자주시보 2014년 8월 24일>

조선 시대 대다수 한국 백성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 개고기는 저주받은 음식이었으니까. 이것이 사실이다. 사실과 반대는 거짓이다. 조선시대 유일하게 책을 쓸 수 있는 권리가 있던 지배층은 개고기가 조선의 전통 음식이라는 책을 썼다

수 천, 수 만, 수 십 만권을 썼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쌓인 개고기 관련 책은 거짓이었다. 일부 천주교 신자 사례와 음식디미방등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 조선 시대 발행된 개고기에 관한 모든 기록은 신농본초가 원 출처였다

<조선 왕조, 중국공산당이 주장하는 개고기 전통론의 근거인 신농, 1503년>

그러므로 조선 시대 그 많은 개고기 기록은 거짓이다1970년대 대다수 한국인도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 저주받은 음식인 개고기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으니까. 조선족(중국 공산당)과 김일성, 미국 한인 사회(차종환 등)가 개고기는 우리 전통이라고 한 말은 거짓이다

그들의 근거는 거짓인 조선 시대 기록이다. 거짓을 기반으로 한 주장은 거짓이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한국을 세계에 소개한 대표적인 집단인 미국 한인 사회는 개고기가 우리 민족의 전통이자 정체성이라는 거짓말을 했다.

<중국공산당의 개고기 식용에대한 개념도> 

이 쯤 되면 궁금해진다. 조선족, 김일성, 미국 한인 사회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그들은 왜 개를 잡아먹었을까? 그들 뒤에는 중궁공산당이 있다. 정확히는 중국 공산당의 건국이념에 있다. 중국 공산당은 청 왕조를 증오했다. 일본과 미국을 증오했다

청 왕조, 일본(제국주의), 미국(제국주의)을 죽여 없애야 한다는 명분으로 세워진 국가가 중국 공산당이다. 청 왕조, 일본, 미국에서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개를 죽이는 것은 사회 통념상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청 왕조, 일본, 미국에 반대하는 것이 진정한 중국 공산당 운동이었다


<독재자가 금지하는 개고기를 판 1980년대 학생 민주화 운동, 한겨레21, 200207>

1980년대 주사파 학생 운동가들이 독재자(전두환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화 운동이라며 개 뒷다리를 뜯어 먹었다이 단순한 논리를 가장 먼저 편 것이 중국 공산당이었다

1911년 이후 중국 공산당은 개가 마치 청 왕조와 일본 제국주의, 미국 제국주의의 상징이라도 되는 것처럼 열심히 때려죽였다. 그 중 제일 열심히 때려죽인 인간들이 조선족이었다. 지금도 조선족은 중국에서 가장 많이 개를 죽이는 사람들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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