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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보드 게임으로 보는 신라인 청나라 조상설

유목사

청나라 황제 건륭제는 자기가 신라인의 후손이라고 했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통일신라 멸망 후 신라인이 중국 북부로 이동해 발해가 있던 지역의 여진족을 통합해 금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후금을 세운 아골타, 12세기>

금나라가 망했다가 17세기 다시 후금을 세웠으니 바로 청나라다. 그렇다면 통일신라 시대까지 왕족만 키울 수 있던 삽살개와 청나라 황족만 키울 수 있던 사자개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황실 개로 보는 통일신라와 금, 청의 관계>


기원전 14세기 키푸로스에서 신성한 개를 믿던 지배 세력이 스키타이와 흉노로 이동했고 흉노는 계속 갈라져 신라와 금, 청나라의 지배층이 되었다는 가설이다. 

모든 기마 유목민이 인종과 언어를 제외하고 같은 문화를 지녔다고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증명을 해보라고? 


<보드 게임을 하는 금나라 여인들, 12세기>

단서는 의외로 사소한 데 있을 수 있다. 보드 게임이다. 12세기 금나라 여인 두 명이 열심히 보드 게임을 하는 모습이 그려진 벽 타일이다. 

이 유물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째, 금나라 여인들의 복식과 배경으로 보아 금나라 지배층은 상당히 발달한 문화를 누렸다는 사실이다.  

<흉노의 보드 게임 판과 말,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적어도 고려와 조선이 욕한 것처럼 개가죽을 뒤집어 쓰고 토굴에 사는 야만인은 아니었다. 두 번 째, 몽골의 흉노 유적에서 발견된 보드 게임 유물로 보아 보드 게임은 적어도 1300년 동안 기마 유목민 사이에서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금나라가 신라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면 통일신라 지배층도 마찬가지로 보드 게임을 하고 놀았을 수 있다. 왜 보드 게임이 기마 유목민의 문화인가? 

<육박 게임을 하는 한나라 여인들, 1~2세기>

흉노와 비슷한 시기 한나라 유물을 보자. 아마도 왕실 여인인 듯한 두 여인이 육박 게임을 하고 있다. 육박은 전한 시대 이후 바둑이 유행하기 전까지 중국 대륙에서 즐긴 게임이다. 


한나라 인은 육박 게임을 하고 흉노인은 보드 게임을 했다. 왜 흉노 사람은 보드 게임을 하고 한나라 사람은 육박 게임을 했을까?   

<중국인이 즐긴 육박과 바둑놀이>

흉노 인이 말을 타고 생활했기 때문이다. 보드 게임은 언제든 탁탁 접어 상자에 넣어 들고 다닐 수 있다. 보통 상류층이 사용하는 바둑판은 귀한 나무에 옻칠을 하거나 옥으로 만들어 매우 무겁다. 

말에는 못 싣고 소가 끄는 수레에나 실어야 한다. 번거롭다. 그래서 기마 유목민이 보드 게임을 즐긴 것 같다. 당나라와 청나라는 기마 유목 왕조가 중국인을 지배한 경우다. 바둑과 보드 게임을 모두 즐겼을 가능성이 있다. 

<에도 시대 바둑판과 바둑알, 일본, 1800~1880년>

사실 보드 게임의 역사는 흉노 시기보다 더 오래되었다. 무려 기원전 13세기에서 11세기 사이 키푸로스에서 보드 게임 상자가 발견된 것이다. 

앞서 소개한 날개달린 개의 변형인 불새가 그려진 게임 상자가 그것이다. 영국 박물관에서 이 게임 상자를 펼쳐서 그려 보니 이렇게 생겼다. 흉노의 보드 판과 같다. 


<키푸로스에서 발견된 보드 게임 상자, 기원전1250~1050년>


키푸로스의 보드 게임판까지 따지면 금나라가 세워진 12세기 현재, 보드 게임의 역사는 무려 2500년이 넘는 것이다. 2500년 동안 기마 유목 문화가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키푸로스에서 발견된 보드 게임 상자 조감도, 기원전 1250~1050년, 영국박물관>


키푸로스와 흉노, 금나라로 이어진 보드 게임의 이동을 지도로 그려보면 이렇게 된다. 보드 게임으로 대변되는 기마 유목 문화가 소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 한반도와 만주로 이어진 것이다. 


<보드 게임으로 보는 기마 유목 문화의 이동 경로>


키푸로스의 게임 상자에 그려진 불새는 날개 달린 개다. 보드 게임의 이동 경로는 신성한 개를 믿는 신앙의 이동 경로와도 일치한다. 청나라 시조가 뜬금없이 왜 개가 자기 목숨을 구해줬다고 동네 방네 떠들고 다녔을까

<사자 개를 조각한 수정 인장, 청, 17세기>


보드 게임 문화권에서 날개 달린 개는 신의 대리인이나 신 그 자체 혹은 지상의 왕을 의미했다. 개 즉 하늘이 자신을 지상의 왕을 정했다고 소문낸 것이다. 신라와 청나라 황실에서 황실 개를 키운 이유다. 황실 개는 옥새였다. 


58. 백제는 일본을 지배했나? 만주는?

한국 속 유목사

임나일본부설, 한반도 일본 지배설은 별 의미 없다고 본다. 아마 당시 한반도와 일본을 지배한 계층은 기마 유목 왕조인 제 3의 세력이었을 것이다.  기마 유목 왕조의 국제 커넥션이 6~7세기 중국 선비족 왕조와 백제, 신라, 일본을 반가사유상으로 연결해주었을 수 있다. 

특유의 기마 유목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신성한 개를 믿는 관념이다. 신성한 개는 고대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믿은 알타이 샤먼 즉 텡그리 신앙에서 시작되었다. 

 <날개 달린 개 신앙과 한민족의 치우 신앙>


텡그리 신앙은 빛을 믿는 신앙이다. 빛의 종교에서 개는 신의 사자이거나 신 그 자체, 혹은 지상의 왕을 상징한다. 하늘에 있는 신이므로 개에게는 날개가 있다. 날개 달린 개는 곧 신이다. 날개 달린 신성한 개를 믿은 지역을 보자. 

중앙아시아 대륙으로 국한해서 봤을 때 고대 중국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포함된다. 이 고대 빛의 종교는 고대 4대 문명권에서 각자 다른 신앙으로 발전했다. 중국 황하 문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개와 개고기로 보는 세계 5대 문명권>

패권을 장악한 기마 유목 왕조에게는 왕조를 상징하는 신성한 개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집트, 인더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지배층에게도 신성한 개가 있었다. 그 신성한 개가 티베트탄 마스티프에서 유래되는 마스티프 계열의 사자 개다.

신라 왕조에서 왕족만 키울 수 있던 삽살개는 단군과 함께 제단에 모셔진 신성한 개였다. 그 신성한 삽살개를 일본 만주군은 개 가죽 군복으로 만들어 멸종시켰다. 그런데도 현재 한국인은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산수도깨비 문양 벽돌, 백제, 6세기 추정>

또 삽살개가 단군과 함께 할 정도로 신성했다는 사실과 신라 왕족들만 키울 수 있었다는 사실도 모른다.  삽살개든 뭐든 한국에 사는 모든 개는 언제든 때려잡아 먹을 수 있는 식자재라고 보기 때문이다. 심한 비약이라고?

애지중지 키우던 내 개를 이웃이 납치해 때려죽여 먹어도 고작 벌금 몇 푼만 내면 되는 되는 것이 현재 한국 실정이다. 신성한 개를 둘러싼 고대 기마 유목 왕조와 한반도, 일본의 역학 관계는 당나라가 멸망 하면서 깨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 시조 김알지의 탄생 설화>


신라 성골 시대가 막을 내리고 진골 시대를 연 통일신라가 국풍(신라 문화)를 버리고 화풍(중국 문화)를 따르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한반도의 중국화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망한 왕조의 왕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낙랑과 마찬가지로 한국 고대사 학계는 고구려, 신라, 백제 영토가 정확히 어디인지조차 속 시원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백제 금동대향로, 국립부여박물관, 520~534년, 국보>

홍산문명권에서 고도로 발달된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면서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 한국 왕조 영토에 만주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제기 되었지만 국뽕이라고 비난받았다.

정작 국뽕 한 사발 마신 건 중화사상을 발전시킨 고대 중국인인데 말이다. 분명한 것은 통일신라 영토가 고구려, 백제, 신라 땅을 합친 것보다 훨씬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고구려 땅은 그대로 발해가 가져갔다. 그럼 백제 영토는?

 <7세 통일신라 이후 국제 관계와 개에 대한 개념

663년 백제가 멸망하고 그 지배층은 어디로 갔을까? 의자왕과 삼천궁녀처럼 전부 다 물에 퐁당했을까? 나라를 잃으면 왕이 목을 잘리는 것은 중국 농경민적인 관점이다. 

말 타고 배 타고 이동하는 것이 업인 유목민은 여차하면 튈 수 있다. 백제의 경우 중국 대륙과 요서 지방,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 교역 커넥션을 가지고 있었다. 기존의 국제 교역로를 따라 배 타고 도망쳤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매 사냥하는 거란 혹은 몽골 족, 9~10세기>

전 왕조의 모든 왕족을 다 잡아 죽일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전 왕족을 전멸시킨 것은 조선이 유일하다. 튈 놈은 튀고 남을 놈은 남고 잡힐 놈은 잡히는 것이 유목 왕조의 특성이다. 

도망치는 전 왕조의 왕족은 언제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 백제, 통일신라, 발해가 멸망한 후에도 끊임없이 왕조 부흥 운동을 일으킬 수 있었다. 전 왕조 부흥 운동을 일으키지 않은 건 고려가 유일했다. 왜? 이성계가 다 죽였으니까. 


<날개 달린 개와 피닉스 신앙 지역>

자, 그럼 어디로 튀었나? 우리 역사학계는 멸망한 백제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을 지배했다는 가설은 신나게 떠든다. 그런데 중국 대륙이나 요서 지방으로 갔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또 입을 다문다. 

중국으로 튀어서 거기를 휘젖고 다녔을 가능성 자체가 국뽕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중국만 나오면 국뽕이라는 이름으로 입을 틀어막는지 모르겠다. (중국 뽕을 말아 드셨나?)

<백제의 산수봉황무늬 벽돌, 6세기 추정>

백제 지배층이 중국 북부나 만주 지역으로 갔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기존 기마 유목 왕조와 합류하거나 또 다른 왕조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존 왕조에 합류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결혼이다. 같은 기마 유목 왕족이니 적어도 결혼 상대는 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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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한 큐에 신선이 될 수 있던 한국 도교

한국 속 유목사

고려 유물을 보면 유독 청동 거울이 많다. 잘 닦으면 또렷이 보이는 은제 거울도 아니고 청동 거울이다. 청동기 시대부터 거울은 왕을 상징하거나 제사에 사용했다.

교역을 많이 한 고려 시대 청동 거울도 제사에 사용했다. 배를 타기 전 무사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반드시 청동 거울을 바다에 던졌다. 청동 거울을 던지던 고려의 제사는 조선 시대 제사와는 다르다.

<황비창천명형 청동 거울,  고려, 918~1392>

유교가 한반도에 들어오기 이전 고대부터 존재한 한민족 고유의 도교와 무교, 불교가 합쳐진 형태의 제사라고 본다. 조선 지배층은 전통 도교 뿐 아니라 1392년 조선 건국 이전의 역사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조선 지배층에게 반만 년 역사 중에 단군은 중국에게 가르침을 받은 기자 조선부터 시작된다. 고구려·백제·신라·통일신라는 존재조차 하지 않은 역사이고 고려는 역사에서 지워버릴 만큼 형편없는 나라였다.

<은제 신선 경치 무늬 화장품 그릇, 고려, 숙신공주 묘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이런 식으로 4,500년을 날려먹고 개고기는 전통이니까 먹으라는 헛소리를 했다. 열에 서넛이 굶어죽는 흉년에 소작료는 70%나 받아서 챙긴 돈으로 화로에 소고기 구워 먹으면서 말이다. 소시오패스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다수 굶주린 조선 백성들은 기꺼이 개고기를 먹었을까? 고려의 문화와 종교를 보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개고기는 4,500년 우리 역사 내내 강력한 금기였다. 500년 조선 역사 중 극히 일부만이 개고기를 먹었다.

<쌍용문 청동거울, 고려, 918~1392>

대놓고 못 먹으니 복날이면 으슥한 산으로 개를 끌고 가 고대 중국인을 흉내 잡아 먹었다. 그러나 조선 백성은 곧 고려 백성이었다. 인간이란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다.

특히 문화와 금기는 잘 바뀌지 않는다. 작정하고 금기를 버린 조선 지배층이나 1945년 이후 북한, 197·80년대 이후 남한 내 운동권 세력을 제외하고 말이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중국을 추종했다.

<무덤 화상석 중 부엌 그림, 한, 2세기>

1907년 고종의 특사인 헐버트가 남긴 책을 봐도 조선 말기까지 개고기는 가장 비천한 계층이 먹는 음식이었다. 예를 들어 복날 머슴이 개고기를 먹거나 산속에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이 개고기를 먹었다.

조선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다고 외국에 알린 사람들은 산 속에 숨어 있던 외국 천주교 신부들이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조선 중 극히 일부인 천주교 사회에서 개고기 먹는 모습을 본 것이다.  

<개고기를 금지하는 산신도, 조선, 1900~1925년>


조선의 실제 모습은 고려 사회를 참고해 유추해야 하지만 고려는 물론 통일신라와 삼국 시대에 대해서도 제한적인 정보 밖에 얻을 수 없다. 일제가 없애기 전에 조선이 먼저 다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고려에 대한 대표적인 기록은 1123년 송나라 사신 일행으로 고려를 다녀간 서긍이 남긴『선화봉사고려도경』이다. 나는 서긍이 일개 수행원이 아닌 송나라 파견한 스파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정도로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매와 같이 날카로운 눈으로 고려 구석구석을 관찰했다. 고려에는 개고기 문화가 존재할 수 없었다.

마니교를 국교로 믿은 위그르가 채식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고려도 채식을 했다. 불교의 영향이다. 정확히는 양나라 무제 식 중국 불교의 영향이다.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 청 왕조 인쇄>

 

불교는 고려의 국교였다. 백제와 마찬가지로 고려에도 살생금지법이 있었다. 왕은 뭔 일만 터지면 살생금지법을 강화했다. 오직 사신이 올 때만 대비해 가축을 키웠다.

짐승을 죽여본 적이 없으니 도살 기술이 엉망이었다. 고기 해체도 못해 내장이 터져 고기 맛이 끔찍했다고 한다. 불교를 믿었고 도살하는 법도 모를 정도로 채식을 하던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었다고 믿기 힘들다.

  

< 신선이 되는 과정을 그린 유송년의 삼생도,남송,12~13세기>

개를 많이 키운 사실 자체가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근거라는 모 논문이 있다. 그 논문이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은 증거랍시고 거론된다. 이게 한국 지식인 수준이다.  

개고기를 금지한 불교를 국교로 믿은 것 외에 고려에는 고구려·백제·신라와 통일신라를 거쳐 발달해온 전통적인 도교가 존재했다. 고려 도교는 조선이 기형적으로 받아들인 중국 도교와 달랐다.

 

불교와 도교의 신 토기, 당, 728년>

고려 도교는 무교(알타이 샤먼)와 불교가 섞인 독특한 종교였다고 생각된다.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시작된 ‘날개 달린 개’를 믿는 빛의 종교가 중국에 도교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중국 도교에서는 신선이 사는 세계는 빛의 세계에 들어가야 영원히 살 수 있었다. ‘날개 달린 새’를 믿는 종교는 중앙아시아 기마 유목 왕조의 종교였다. 고구려·백제·신라는 기마 유목 왕조였다.  

<극락에 있는 부처님을 둘러싼 불새,위그르, 9세기>

이들 왕조가 농경민을 정복해 수 천 년 동안 기마 유목 문화를 정착시켰다. ‘날개 달린 새’를 믿는 빛의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였고 아후라 마즈다 교였으며 마니교였고 경교였다

이름만 다르고 종교는 같다. 아후라 마즈다 교는 몽골의 전통 신앙이다. 고구려인이 시조로 믿은 주몽은 동명왕이다. 주몽(朱蒙)은 명 궁수라는 뜻이다. 동명왕 석상은 몽골 초원에도 우뚝 서 있었다.

 

<몽고 원의 동명왕 추정 석상, 주채혁 교수 제공>


몽골 영토에 존재한 흉노와 돌궐의 태조 이름도 투멘(T’umen), 즉 주몽이다. 개와 늑대 시조 신화를 제외하고도 고구려와 몽골, 흉노와 돌궐, 위그르는 같은 뿌리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즉, 이들은 굳이 신선 세계라는 귀찮은(그러나 아주 흥미진진한) 개념을 추가해서 대중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고구려가 ‘날개 달린 개’를 믿는 빛의 종교의 적자였기 때문이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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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주나라 왕비가 흉노족인데 웬 중화사상 뽕?

중국 속 유목사

비단 찢을 때마다 왕을 홀리는 웃음을 지어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포사는 결국 왕비 자리를 꿰찼다. 그러자 열 받은 전직 왕비가 북방 기마 유목민인 견융을 끌어들여 주 왕조를 멸망시켰다.


여자 하나 잘못 만나 나라가 망한 건 맞지만 정확히는 비단 찢다 망한 게 아니라 흉노의 침입으로 망한 것이다. 견융, 개 견 자를 쓰는 것부터 범상치 않다. 개를 섬기는 오랑캐, 즉 흉노다.

 

<흉노 혹은 선비족 인형, 기원전 4~3세기>


여불위와 진시황의 민족인 초나라 묘족도 조상이 개였다. 주 나라 마지막 왕이 쫓아낸 왕비 역시 흉노족일 가능성이 높다. 고대 중국 유물에 개와 불새와 같은 북방 기마 유목 왕조의 상징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주나라부터 따지자면 모든 고대 중국 왕조가 북방 기마 유목민과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는 셈이다. 날개달린 말과 신성한 나무, 그리고 불새는 전형적인 북방 기마 유목민의 상징이다. 

<불새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불새는 개 머리를 한 새 혹은 사자나 남자 얼굴을 한 새로도 변한다. 즉 신성한 나무와 빛의 왕국을 믿는 기마 유목 민족의 종교다.


한 왕조 유물 중에 신성한 나무 위에 앉은 불새를 활로 쏘는 남자 모습이 있는 걸로 봐서는 키푸로스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 내부에 잔존한 흉노 세력을 마침내 몰아냈다고 선포한 것 같다. 

<한 왕조의 천마와 기원전 1세기 흉노의 천마>



쫓겨난 왕비의 한풀이로 주나라가 망하자 무려 550년 간 중국은 내전에 휩싸였다. 하루아침에 나라가 세워졌다 망했다는 춘추전국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약 3년 여간 이어졌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한국 국민이 얼마나 배고팠는지 떠올려 보자.

<불새를 겨냥하는 궁수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최소 그 상태로 550년을 서로 죽이며 지냈다면 살아남은 사람들 상태가 정상일 수 있을까? 재물 가진 지배층이야 살 길이 있다 쳐도 백성들은 달랐다.

육체적인 고통과 당장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처절한 배고픔 속에 지배층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 당연했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 

 

<중화사상 개념도>

그래서인지 이 시기 학자들은 중화사상을 퍼트렸다. “중국인 외의 모든 인간은 모두 짐승(오랑캐)! 그러니까 우리 중국 최고!” 라는 믿음이다. 이집트는 앗시리아와 싸웠고 고구려도 당나라와 싸웠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외교도 하고 교역도 했다. 중국 안은 인간 세계, 중국 밖은 짐승 세계라는 이분법적 믿음은 굶어 죽는 백성들에게 뽕 맞은 거 같은 정신적 만족감을 줄 수는 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우리는 중국인이니까 훗, 그나마 짐승 같은 저 놈들보다는 백 번 나아.”라고 자뻑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주나라 마지막 왕비가 정말 흉노족이라면 이 중화사상 뽕은 완전 헛소리다.

이런 선전·선동을 학문으로 승화시킨 것이 유교였고 그 대표 주자가 맹자와 공자였다. 늙어 죽을 때까지 떠돌이 생활을 한 공자는 한나라 유방이 유교를 국가 정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공자의 일생을 그린 책, 청,  17~20세기>


중화사상 역시 20세기 모택동이 국가정책으로 이용하지 않았다면 잊혀졌을 것이다. 한편, 중화사상 뽕으로 버티던 550년의 춘추전국 시대를 흉노설이 떠도는 진시황이 통일 했지만 얼마 안 가 내란이 터졌다.

고대 중국 역사는 계속 이런 식이었다. 내란 아니면 북방기마유목민이 쳐들어왔다. 결론은 중화사상 뽕이든 뭐든 백성들은 마음 편히 농사조차 짓지 못했다. 그래서? 또 굶어죽었다. 계속 굶어죽었다.

<부엌 목매달아 잡은 개 추정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여차하면 짐 싸 짊어지고 멀리 떠날 수 있는 유목민과 달리 농경민인 중국인 농사를 못 지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식량이 부족하면 뭐든 먹는다.

쥐 고기도 먹고 개고기도 먹고 사람 고기도 먹는다. 산둥성에서는 책상 다리 빼고 다 먹는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다. 중국 역사에는 가뭄이나 전쟁으로 성 안 인구가 반으로 줄었다는 기록이 끝도 없이 등장한다. 

<유민도, 명, 16~17세기>

 

시체를 먹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사냥해 잡아먹어 인구가 반으로  준 것이다. 한나라 유방이 적장의 고기를 먹거나 공자가 사람 고기로 만든 젓갈을 즐긴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당시 법 상 반드시 개고기를 먹어야 하는 피지배층이었다. 다행히 두 사람 다 사람고기도 좋아했고 개고기도 좋아했다. (모택동도 개고기는 좋아했다)

<장막 안에서 여인과 함께 있는 황제, 한, 기원전 232 경 추정>

백성들은 미국 드라마 ‘워킹데이’ 속 좀비들처럼 서로를 잡아먹고 먹혔지만 지배층은 달랐다황금과 권력을 쥔 그들은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지금과 같은 안락한 삶을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아 헤맸고 황제들은 금단을 먹거나 한식산을 먹었다. 초기 도교 도사들의 주요 고객도 이 황제, 귀족, 부호들이었다. 일반 백성들은 치료를 할 때나 만났다. 한의사도 겸한 그들은 개고기를 약으로 썼다. 

<목줄한 개 석상, 한, 1~2세기>

 

고대 개고기를 약으로 쓴 건 중국 한족만이 아니었다. 앞서 살펴봤듯 ‘개 새’를 믿은 지역 즉 개를 죽음의 신 아누비스로 숭배한 이집트, 여신 굴라와 신성한 개를 믿은 바빌로니아에서도 개고기를 약으로 썼다.

그러나 중국인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신전의 관리 하에 아주 엄격히 개고기를 약으로 사용했다. 중국에서는 아무런 제제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개를 잡아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신농'의 처방대로 약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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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중국의 식인풍습과 빛의 종교 '개 새'

종교

빛의 종교 속 ‘개 새’ 개념은 진· 한 시대 중국 대륙에도 전해졌다. 그게 중국 도교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에 단절되어 있었어도 중국 한족 지배층은 끊임없이 중국 외부와 전쟁 혹은 교류를 해야 했다. 

<불새와 지팡이 든 노인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문화와 종교도 그렇게 조금씩 중국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기원전 7세기 『도덕경』이란 글은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났을까? 노자조차 실제 인물인지, 아닌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확실치 않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중국 도교도 고통스러운 인생을 사는 인간들에게 돌파구를 마련해주었다. 그 돌파구는 신선이 되어 신선세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불새와 함께 있는 도교 여신, 명, 15~16세기, 영박>

‘개 새’를 믿는 빛의 종교는 고통과 죽음이 없는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있고 결국 마침내 빛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 주요 교리였다.

이것을 중국 도교는 신선 세계로 받아들인 것 같다. 신선이 되는 방법은 불로장생 약을 먹고 한 방에 신선이 되는 방법과 힘든 수련을 통해 되는 방법이 있었다. 

<불새와 날개달린 개, 생명의 나무가 새겨진 타일, 한, 기원전 206년~서기200년>

 

‘개머리를 한 새’를 믿은 지역에서는 당연히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은 좀 다르다. 초기에는 믿음이 약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당 이전까지 중국에는 식인 풍습이 만연했다.

2세기 중국 무덤 벽화 화상석을 보면 한나라 상류층 부엌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리에 걸린 죽은 물고기와 새 두 마리가 있고 도살하러 끌고 들어오는 소와 도살될 차례를 기다리는 개가 있다. 

<무덤  화상석 중  부엌 그림, 한, 2세기>

 

굶어죽기 직전의 좀비 상태인 백성들에게 백날 빛의 종교 ‘개 새’와 신성한 개에 대해 설명해 봐야 입 만 아프다. 21세기 베네수엘라와 북한처럼 굶어죽기 직전이라면 눈앞에 개를 잡아먹기 마련이다. 

이게 당 나라 이전 중국 백성들의 문화였다. 개고기를 좋아했다고 역사에 기록된 공자, 유방, 번쾌 모두 선비와 농민, 천민이다.


<공자의 초상, 당, 8세기>

 

당시 중국 법령 상 반드시 개고기를 먹어야만 하는 계층이었다. 그런데 공자가 개고기를 먹었으니 앞뒤 따지지 말고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 조선 지배층의 논리였다.

그 기록들이 조선 시대 개고기 역사로 남아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개고기를 먹은 근거가 되었다. 역사에 무지한데다 성의도 없는 이 주장을 21세기 대한민국도 따르고 있다.


한편, 사람이라도 잡아먹어야 하던 고대 중국 백성들은 물론 중국 지배층도 빛의 종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낯선 이방인이 종교인이랍시고 신의 말씀 어쩌구 하고 다니면 궁금하고 수상해서라도 잡아다 심문을 하기 마련이다. “그래, 네가 말하는 신의 섭리(도)란 뭔가?”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마니교 예배 장면, 광명왕국의 생명의 나무, 위그르  8~9세기>

 “태초에 개 새가 있었는데요. 빛이 있고 어둠이 있어요. 어둠이 빛을 몰아내서 빛의 세계로 들어가면 그 곳이 천당이고 어쩌구 저쩌구”하다 보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

“이 쉑히 사기꾼 아니야? 그래서 요점이 뭐야?!” 수 천 년 동안 조상 대대로 믿어온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황당하게 들린다. 일단 짧고 강렬하게 “한 마디로 영원히 잘 사는 겁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김홍도의 풍속화첩 속 신선 무리, 조선, 19세기~20세기 초>

 

“영원히 잘 산다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지배층은 귀가 번쩍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궁궐 기와에 사신도를 그려 넣었고 악착같이 불로초, 금단, 한식산을 찾아 먹다 비명 횡사했다.  

원래 신의 말씀과는 달라지는 것은 중국 도교 뿐 아니다. 중국 불교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부처님이 말씀하신 공의 세계는 고통도 없고 번뇌도 없는 세계를 말한다. 

 <공자, 노자, 부처가 그려진 청화백자, 청, 1780-1830>

 

이걸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 극락으로 해석했다. 열심히 수행을 하면 공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교리는 부처님 불단에 쌀과 꽃을 바치면 다음 생에 미남미녀로 태어난다는 식으로 해석되었다.

설법을 듣는 중생이 무식해서일 수도 있고 쌀과 꽃을 노린 땡중의 의도일 수도 있다. 중국 도교 역시 시대와 계파에 따라 달라졌다.

 

 < 불멸의 신과 신선들과 함께 하는 새, 청, 17세기>

 

진시황처럼 불로장생 약을 먹고 영원히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교가 있는가 하면, 노자처럼 도를 논하며 물 흐르듯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교도 있다. 현세에서 로또나 맞게 해달라고 비는 도교도 있다.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인 쿠샨 왕조처럼 ‘개 새’ 신앙을 비롯해 그 때까지 중국에 존재한 여러 잡다한 종교들이 골고루 섞인 것이 중국 도교 같다. 이 중 불로장생 약은 일반 백성들과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 연못과 새, 신비한 풀 혹은 나무가 묘사된 무덤 부장품,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마치 초호화 개인용 제트기 값이 얼마인지 우리같은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관계없는 것과 같다. 불로초, 금단, 한식산을 먹으면 영원히 산다는 말도 사는 게 지옥인 백성들 입장에서는 저주였다.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농경민이 농사를 못 짓는다는 건 굶어 죽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대로 영원히 살라는 건 영원히 배고프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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