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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그리스-로마 인은 개고기를 먹었을까?

유목사

그리스-로마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이는 큐피트 조각을 보면 발밑에 랩독으로 보이는 강아지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 중 키프로스에서 태어난 신들은 항상 개와 함께 등장한다. 

그 중 하나가 큐피트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서 개고기를 먹었다는 주장이 있다. 일부 고대 유적에서 출토된 개 뼈 유적으로 보아 고대 그리스인이 개고기를 먹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사랑의 신 큐피트와 개 조각, 그리스 로마 지역 추정, 1~2세기>


고대 한반도 유적에서 나온 개 뼈 유적을 근거로 한국인은 고대부터 개고기를 먹었다고 하는 주장과 비슷하다. 분명한 사실은 고대 그리스와 한반도에서 특정 시기 이후 개 식용 문화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를 숭배하는 세력이 강력한 군사력(청동기)과 자금(황금)을 바탕으로 침략해 눌러앉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경우 고구려, 백제, 신라였으며 그리스의 경우 에트루리안(페키니아)이었다. 


<장천1호 분 에불도 중 단군과 삽살개, 고구려, 5세기 후반>

이 시기부터 그리스와 한반도에서는 개를 숭배하는 문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개로 대표되는 상층 문화와 하층 문화가 충돌했다고 볼 수 있다. 

개고기에 관한 진리는 간단하다. "인간은 배가 고프면 개를 잡아 먹는다" . 역사를 통틀어 식량과 고기가 부족한 곳에서는 개고기 (사람 고기 포함)를 먹었다.


<큐피트로 추정되는 젊은남자와 개가 그려진 그릇(그리스 양식) 이탈리아, 기원전300~280년> 

개 먹(는) 파인 그들은 그리스와 한반도의 고대 정주민이었다. 해양 무역과 기마 교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외부 세력이 이들 지역을 침입했다. 새로운 지배층인 교역 세력은 딱히 개고기를 먹을 필요가 없었다. 


개고기에 대한 또 하나의 진리는 역사적으로 돈 많은 인간들은 개보다 질 좋은 단백질(소, 돼지, 양, 닭)을 먹는다는 것이다. 기마 무역 세력의 대표는 흉노였으며 해양 무역 세력의 대표는 페키니아(에트루라인)였다.

흉노(스키타이 이하 모든 기마 유목 왕조)와 페키니아 모두 양고기가 주식이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지배층도 불교 이전까지는 육식을 했을 것이다. 양을 치려면 양치기 개가 필요하다. 밥벌이 하는 개를 굳이 잡아먹을 필요가 없다. 


<스피츠 하운드 개 조각, 키푸로스 혹인 이집트, 1~2세기>


돼지나 먹던 감자를 가장 빨리 받아들인 스위스 산간 지대 양치기(사실은 염소치기)를 제외하고 양치기가 개고기를 먹은 예는 없다. 개는 인간의 친구였다. 평민은 양을 치고 귀족은 무역을 한 고대 무역 세력도 개고기를 먹을 필요가 없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지배층은 신성한 개를 키웠다. 유물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 지배층도 왕족만 키울 수 있던 개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 지배층이 키우던 개는 사자개인 페르시안 마스티프(티베트탄 마스티프)였다.


<국경 경계석에 새겨진 날개달린 개, 중기 바빌로니아, 기원전 1125~1100년 추정

고구려 지배층은 삽살개를 무덤 벽화에 남겼다. 신라 왕족도 삽살개를 키웠다. 삽살개와 티베트탄 마스티프는 유전자 대부분이 일치한다. 사자개를 키운 고대 그리스의 새로운 지배층은 에트루리안이었다. 

고대 해양 무역 세력은 소아시아(터키), 아라비아 반도, 페르시아, 이란반도, 이집트, 인도로 퍼졌다. 이 광활한 지역을 지배한 무역 세력(지배층)은 개를 숭배하는 고대 종교를 믿었다. 개(를) 숭(배하는) 파다. 


<마스티프가 새겨진 국경 경계석, 중기 바빌로니아, 기원전 1125~1100년 추정>

기원전 12세기 중기 바빌로니아 국경 경계석을 보면 개 혹은 날개 달린 개가 새겨져있다. 개가 왕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날개 달린 개를 믿은 빛의 종교는 몽골의 전통 신앙이었으며 조로아스터교였다. 또 불교와 이집트 전통 신앙 형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조로아스터교는 다시 인도의 힌두교의 기반이 되었다. 고대 빛의 종교와 조로아스터교는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기독교와 조로아스터교의 반동으로 이슬람교가 생겼다. 고대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와 몽골의 전통 종교는 같다. 


<신관으로 추정되는 남자 석상, 키푸로스(페키니아), 기원전 600~575년>

고등 종교로 평가되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도 이리저리 얼키고 설켜 따지고 보면 결국 근원이 같다. 그 근원에 개를 숭배하는 신앙이 있는 것이다. 세계 4대 종교가 모두(한국 제외) 개고기를 금지하는 이유다. 

페르시아와 이란 일부 지역에서 해양무역 세력의 유물(예를 들어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과 기마 무역 세력의 유물(파르티안 기마법 등)이 발굴되는 이유 또한 이 지역이 교차점이었기 때문이다. 


<날개달린 사자(개) 인장,구리합금, 이란 쿠샨 왕조, 1~2세기>

해양무역 세력과 기마 무역 세력의 중개인 역할은 사마르칸드 등을 거점으로 한 소그드 상인이 했을 것이다. 해양 무역 세력인 페키니아(에트루리안)가 그리스를 점령한 이후 그리스에서는 개고기가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왕이 개를 신으로 모시는 종교를 믿는데 백성이 개고기를 먹는다면 그건 신성모독이다. 정확히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청나라 멸망 후 중국 대륙에서 나타났다. 중국 공산당의 모택동은 당시 중국 정서와 달리 개고기를 좋아했다.  


<중국 공산당의 개고기 식용에 대한 개념도>

모든 문화가 그렇듯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문화는 처음에는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가 수 백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점차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흐르듯 이동했을 것이다. 

그것이 한민족의 전통문화가 되었고 그리스-로마 문화가 되었다. 그리스-로마 문화를 받아들인 로마 제국에서 개를 숭배하고 개고기를 먹지 않은 이유다. 안타깝게도 한민족의 전통문화는 조선 시대 이후 변질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 또한 개고기다. 

27.신라가 일본에 개고기를 수출했다고?

한국 속 유목사

2001 개고기 불간섭 선언 이후 한겨레, 오마이뉴스, 중앙일보, MBC 언론이 하나가 되어 주장한 것처럼 우리 조상이 농경민이라면 신라 토우 인형에게는 고대 애니미즘적 의미밖에 부여할 없다


다복을 기원하는 고대 토속 신앙의 상징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신라가 유목 왕조였다면 실제 신라의 문화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행위는 신성한 혈통을 계승하기 위한 신성한 의식이었다. 유목민의 도덕은 농경민과 달랐다


<지난 천 년 간 가장 위대한 인물로 뽑힌 칭기즈칸>


유목민은 일상이 전쟁이었다. 약탈혼도 흔했다. 태어난 아이를 두고 애가 맞아?”라고 따지는 불가능했다. 칭기즈칸 아들 이름은 주치다. 손님이라는 뜻이다. 칭기즈칸 부인이 납치당한 기간에 생긴 아이였다. 


조선 시대처럼 정절을 잃었다고 여자를 죽이고 열녀문을 세워댔다가는 가문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귀한 늑대 피를 이어받은 초원의 왕족이라면 더욱 그랬다그래서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따지기 전에 누가 애를 낳았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수렵도 속 고구려 기마 무사와 개>


부족이 있으면 반드시 왕비 부족이 있는 이유다. 농경민족적 관점에서 보면 용납할 없겠지만 신라는 유목 왕조였다. 신라 아니라 고구려, 백제  지배층은 유목 민족이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왕조가 들어서기  땅에 살았던 원주민은 반농반유목민이거나 농경민이었을 것이다. 신석기 한반도 유적에서 뼈와 돼지 뼈가 발견된것으로 보아  한반도 사람들은 중국 한족처럼 개를 키워 잡아먹을 있다


<경기도 출토 돌도끼, 신석기 시대,국립중앙박물관>


그러나 청동기와 철기 시대가 되면서 북방에서 쓸고 내려온 사람들, 즉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배층은 중앙아시아의 기마 유목민이었다. 스키타이 이래 모든 기마 유목 국가에서 지배층은 말을 타고 전쟁을 하며 노예 계층은 농사를 지었다


돌로 농기구로 농사를 짓던 사람들 눈에는 청동기 무기를 지닌 기마 무사가 전쟁의 신으로 보였을 것이다. 압도적인 군사적 열세에 신석기 농경민은 피지배계층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청동 도끼. 흉노, 기원전 13~10세기>


흉노, 고구려에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존재했다노예층이었다. 지배층은 말타는 무사였다. 말과 개는 세트다. 권력을 동원해야 지을 수 있는 고구려 고분에는 기마 무사와 함께 하는 개가 그려져 있다


 개가 저승가서 먹을 개고기라는 헛소리가 마치 정설처럼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한나라 한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자 고구려가 건국되었다. 고구려 군대 이름은 ‘다물’이다. 옛 땅인 고조선을 찾는다는 뜻이다. 


고구려의 원수인 한무제 눈에는 고구려 무덤 속 개가 도시락처럼 보였겠지만 고구려 고분 주인은 기마 유목민이었다. 들은 반려견이 저승에서 자신들을 지켜주는 보호자라고 여겼다. 


기원전 1세기 경상남도 늑도에서 인간과 나란히 묻힌 무덤이 발견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늑도는 고대 무역항이었다유목민은 육로든 해로든 무역을 한다


<늑도에서 발견된 개 무덤 속  뼈, 한국일보 2016.07.27>


중앙아시아 초원에서는 말을 타고 해상에서는 배를 탄다. 신라의 해상왕 장보고가 해상 무역로를 장악할 수 있던 이유다. 청동기 시대 이후 지배층이 바뀌었고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개숭(배하는)파였다. 


늑대의 피를 받고 신성한 개를 키우는 지배자 앞에서 전처럼 개를 잡아먹을  있을까앞서 신라 왕실은 성골 시대까지 모계 사회였다가 성골 시대가 끝나면서 부계 사회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신라의 유목 전통이 사라지고 중국화가 시작된 것이다


<개고기를 식량과 약으로 먹은 한나라 무제>


신라 왕조는 거의 동안 유지되었다고려까지 따지면 거의 오백년 세월 동안 지배층인 유목 왕조가 지킨  전통을 따랐다. 기마 유목민에게 개는 반려견일 뿐 아니라 죽음을 안내하는 영물이다. 절대 먹어서는 된다


개고기 금기는 동안 우리 민족의 전통으로 전해졌다. 천 세월이다로마 기독교를 제외하고 서양문화를 없듯이 알타이 샤먼을 제외하고 한국문화를 논할 없다. 적어도 신라 천 년 동안 개고기는 먹을 수 없었다. 


<이승만 시대 존재한 개고기 금지법>


역사적 사실이 이런데도 우리 학계와 언론은 마치 뇌수술을 당한 사람처럼 신라에서 개고기를 먹었다는 말만 반복한다. 신라가 일본과 당에 개를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다. 


개는 먹는 외에 다른 용도가 없기 때문에 개를 배에 태워 보낸 신선한 개고기를 배달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단지 개가 배를 탔기  때문에 배의 종착지에서는 개고기를 먹었다는 논리다. 하도 어이가 없어 신라, , 일본, 대표를 모아놓고 삼자 대면을 해야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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