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유목사

27.신라가 일본에 개고기를 수출했다고?

AnDant 2019. 1. 1. 12:00

2001 개고기 불간섭 선언 이후 한겨레, 오마이뉴스, 중앙일보, MBC 언론이 하나가 되어 주장한 것처럼 우리 조상이 농경민이라면 신라 토우 인형에게는 고대 애니미즘적 의미밖에 부여할 없다


다복을 기원하는 고대 토속 신앙의 상징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신라가 유목 왕조였다면 실제 신라의 문화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행위는 신성한 혈통을 계승하기 위한 신성한 의식이었다. 유목민의 도덕은 농경민과 달랐다


<지난 천 년 간 가장 위대한 인물로 뽑힌 칭기즈칸>


유목민은 일상이 전쟁이었다. 약탈혼도 흔했다. 태어난 아이를 두고 애가 맞아?”라고 따지는 불가능했다. 칭기즈칸 아들 이름은 주치다. 손님이라는 뜻이다. 칭기즈칸 부인이 납치당한 기간에 생긴 아이였다. 


조선 시대처럼 정절을 잃었다고 여자를 죽이고 열녀문을 세워댔다가는 가문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귀한 늑대 피를 이어받은 초원의 왕족이라면 더욱 그랬다그래서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따지기 전에 누가 애를 낳았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수렵도 속 고구려 기마 무사와 개>


부족이 있으면 반드시 왕비 부족이 있는 이유다. 농경민족적 관점에서 보면 용납할 없겠지만 신라는 유목 왕조였다. 신라 아니라 고구려, 백제  지배층은 유목 민족이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왕조가 들어서기  땅에 살았던 원주민은 반농반유목민이거나 농경민이었을 것이다. 신석기 한반도 유적에서 뼈와 돼지 뼈가 발견된것으로 보아  한반도 사람들은 중국 한족처럼 개를 키워 잡아먹을 있다


<경기도 출토 돌도끼, 신석기 시대,국립중앙박물관>


그러나 청동기와 철기 시대가 되면서 북방에서 쓸고 내려온 사람들, 즉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배층은 중앙아시아의 기마 유목민이었다. 스키타이 이래 모든 기마 유목 국가에서 지배층은 말을 타고 전쟁을 하며 노예 계층은 농사를 지었다


돌로 농기구로 농사를 짓던 사람들 눈에는 청동기 무기를 지닌 기마 무사가 전쟁의 신으로 보였을 것이다. 압도적인 군사적 열세에 신석기 농경민은 피지배계층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청동 도끼. 흉노, 기원전 13~10세기>


흉노, 고구려에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존재했다노예층이었다. 지배층은 말타는 무사였다. 말과 개는 세트다. 권력을 동원해야 지을 수 있는 고구려 고분에는 기마 무사와 함께 하는 개가 그려져 있다


 개가 저승가서 먹을 개고기라는 헛소리가 마치 정설처럼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한나라 한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자 고구려가 건국되었다. 고구려 군대 이름은 ‘다물’이다. 옛 땅인 고조선을 찾는다는 뜻이다. 


고구려의 원수인 한무제 눈에는 고구려 무덤 속 개가 도시락처럼 보였겠지만 고구려 고분 주인은 기마 유목민이었다. 들은 반려견이 저승에서 자신들을 지켜주는 보호자라고 여겼다. 


기원전 1세기 경상남도 늑도에서 인간과 나란히 묻힌 무덤이 발견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늑도는 고대 무역항이었다유목민은 육로든 해로든 무역을 한다


<늑도에서 발견된 개 무덤 속  뼈, 한국일보 2016.07.27>


중앙아시아 초원에서는 말을 타고 해상에서는 배를 탄다. 신라의 해상왕 장보고가 해상 무역로를 장악할 수 있던 이유다. 청동기 시대 이후 지배층이 바뀌었고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개숭(배하는)파였다. 


늑대의 피를 받고 신성한 개를 키우는 지배자 앞에서 전처럼 개를 잡아먹을  있을까앞서 신라 왕실은 성골 시대까지 모계 사회였다가 성골 시대가 끝나면서 부계 사회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신라의 유목 전통이 사라지고 중국화가 시작된 것이다


<개고기를 식량과 약으로 먹은 한나라 무제>


신라 왕조는 거의 동안 유지되었다고려까지 따지면 거의 오백년 세월 동안 지배층인 유목 왕조가 지킨  전통을 따랐다. 기마 유목민에게 개는 반려견일 뿐 아니라 죽음을 안내하는 영물이다. 절대 먹어서는 된다


개고기 금기는 동안 우리 민족의 전통으로 전해졌다. 천 세월이다로마 기독교를 제외하고 서양문화를 없듯이 알타이 샤먼을 제외하고 한국문화를 논할 없다. 적어도 신라 천 년 동안 개고기는 먹을 수 없었다. 


<이승만 시대 존재한 개고기 금지법>


역사적 사실이 이런데도 우리 학계와 언론은 마치 뇌수술을 당한 사람처럼 신라에서 개고기를 먹었다는 말만 반복한다. 신라가 일본과 당에 개를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다. 


개는 먹는 외에 다른 용도가 없기 때문에 개를 배에 태워 보낸 신선한 개고기를 배달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단지 개가 배를 탔기  때문에 배의 종착지에서는 개고기를 먹었다는 논리다. 하도 어이가 없어 신라, , 일본, 대표를 모아놓고 삼자 대면을 해야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