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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중국의 식인풍습과 빛의 종교 '개 새'

종교

빛의 종교 속 ‘개 새’ 개념은 진· 한 시대 중국 대륙에도 전해졌다. 그게 중국 도교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에 단절되어 있었어도 중국 한족 지배층은 끊임없이 중국 외부와 전쟁 혹은 교류를 해야 했다. 

<불새와 지팡이 든 노인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문화와 종교도 그렇게 조금씩 중국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기원전 7세기 『도덕경』이란 글은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났을까? 노자조차 실제 인물인지, 아닌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확실치 않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중국 도교도 고통스러운 인생을 사는 인간들에게 돌파구를 마련해주었다. 그 돌파구는 신선이 되어 신선세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불새와 함께 있는 도교 여신, 명, 15~16세기, 영박>

‘개 새’를 믿는 빛의 종교는 고통과 죽음이 없는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있고 결국 마침내 빛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 주요 교리였다.

이것을 중국 도교는 신선 세계로 받아들인 것 같다. 신선이 되는 방법은 불로장생 약을 먹고 한 방에 신선이 되는 방법과 힘든 수련을 통해 되는 방법이 있었다. 

<불새와 날개달린 개, 생명의 나무가 새겨진 타일, 한, 기원전 206년~서기200년>

 

‘개머리를 한 새’를 믿은 지역에서는 당연히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은 좀 다르다. 초기에는 믿음이 약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당 이전까지 중국에는 식인 풍습이 만연했다.

2세기 중국 무덤 벽화 화상석을 보면 한나라 상류층 부엌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리에 걸린 죽은 물고기와 새 두 마리가 있고 도살하러 끌고 들어오는 소와 도살될 차례를 기다리는 개가 있다. 

<무덤  화상석 중  부엌 그림, 한, 2세기>

 

굶어죽기 직전의 좀비 상태인 백성들에게 백날 빛의 종교 ‘개 새’와 신성한 개에 대해 설명해 봐야 입 만 아프다. 21세기 베네수엘라와 북한처럼 굶어죽기 직전이라면 눈앞에 개를 잡아먹기 마련이다. 

이게 당 나라 이전 중국 백성들의 문화였다. 개고기를 좋아했다고 역사에 기록된 공자, 유방, 번쾌 모두 선비와 농민, 천민이다.


<공자의 초상, 당, 8세기>

 

당시 중국 법령 상 반드시 개고기를 먹어야만 하는 계층이었다. 그런데 공자가 개고기를 먹었으니 앞뒤 따지지 말고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 조선 지배층의 논리였다.

그 기록들이 조선 시대 개고기 역사로 남아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개고기를 먹은 근거가 되었다. 역사에 무지한데다 성의도 없는 이 주장을 21세기 대한민국도 따르고 있다.


한편, 사람이라도 잡아먹어야 하던 고대 중국 백성들은 물론 중국 지배층도 빛의 종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낯선 이방인이 종교인이랍시고 신의 말씀 어쩌구 하고 다니면 궁금하고 수상해서라도 잡아다 심문을 하기 마련이다. “그래, 네가 말하는 신의 섭리(도)란 뭔가?”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마니교 예배 장면, 광명왕국의 생명의 나무, 위그르  8~9세기>

 “태초에 개 새가 있었는데요. 빛이 있고 어둠이 있어요. 어둠이 빛을 몰아내서 빛의 세계로 들어가면 그 곳이 천당이고 어쩌구 저쩌구”하다 보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

“이 쉑히 사기꾼 아니야? 그래서 요점이 뭐야?!” 수 천 년 동안 조상 대대로 믿어온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황당하게 들린다. 일단 짧고 강렬하게 “한 마디로 영원히 잘 사는 겁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김홍도의 풍속화첩 속 신선 무리, 조선, 19세기~20세기 초>

 

“영원히 잘 산다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지배층은 귀가 번쩍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궁궐 기와에 사신도를 그려 넣었고 악착같이 불로초, 금단, 한식산을 찾아 먹다 비명 횡사했다.  

원래 신의 말씀과는 달라지는 것은 중국 도교 뿐 아니다. 중국 불교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부처님이 말씀하신 공의 세계는 고통도 없고 번뇌도 없는 세계를 말한다. 

 <공자, 노자, 부처가 그려진 청화백자, 청, 1780-1830>

 

이걸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 극락으로 해석했다. 열심히 수행을 하면 공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교리는 부처님 불단에 쌀과 꽃을 바치면 다음 생에 미남미녀로 태어난다는 식으로 해석되었다.

설법을 듣는 중생이 무식해서일 수도 있고 쌀과 꽃을 노린 땡중의 의도일 수도 있다. 중국 도교 역시 시대와 계파에 따라 달라졌다.

 

 < 불멸의 신과 신선들과 함께 하는 새, 청, 17세기>

 

진시황처럼 불로장생 약을 먹고 영원히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교가 있는가 하면, 노자처럼 도를 논하며 물 흐르듯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교도 있다. 현세에서 로또나 맞게 해달라고 비는 도교도 있다.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인 쿠샨 왕조처럼 ‘개 새’ 신앙을 비롯해 그 때까지 중국에 존재한 여러 잡다한 종교들이 골고루 섞인 것이 중국 도교 같다. 이 중 불로장생 약은 일반 백성들과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 연못과 새, 신비한 풀 혹은 나무가 묘사된 무덤 부장품,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마치 초호화 개인용 제트기 값이 얼마인지 우리같은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관계없는 것과 같다. 불로초, 금단, 한식산을 먹으면 영원히 산다는 말도 사는 게 지옥인 백성들 입장에서는 저주였다.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농경민이 농사를 못 짓는다는 건 굶어 죽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대로 영원히 살라는 건 영원히 배고프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28. 개 전용 사원이 있던 당나라

한국 속 유목사

삼국 유목 전통을 가장 충실히 지켰고 신라 왕족만 키울 있는 삽살개가 있던 것으로 보아 신라는 명백히 개숭(배하는)파였다. 성골이 끝나는 시점인 7세기까지는 개고기 먹을 일이 없었다.  


통일신라의 국교는 불교였다. 10세기에 세워진 고려도 불교였다. 역시 개 먹을 일이 없다. 가끔 선승인 뭐니 하며 개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하는 땡중이 있다. 헛소리다. 부처님이 콕 찝어 개는 절대 먹지 말라고 하셨다.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국보, 통일신라, 719년 , 국립중앙박물관>


적어도 14세기 건국된 조선 시대 전까지 우리 민족에게 개고기라는 단어는 불길한 단어였다그렇다면 신라는 당나라와 일본에 굳이 개를 배에 실어 보냈을까?  


신라 계림로 황금 보검처럼 국교 차원에서 나라 왕족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정세 공식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신라 황금보검과 유사한 황금장식이 발견된 카자흐스탄>


신라 황금 보검과 같은 양식은  세계에서 극소수 지역에서만 출토된다. 신라, 로마이집트흉노서아시아중앙아시아 등이다특히 지금의 카자흐스탄에서는 신라 계림로 보검 손잡이 장식과 똑같은 장식이 발견되었다


일단 신라와 카자흐스탄이 관련 있다는 얘기다극동의 신라 수도 경주에서  중앙아시아와 흉노가 사용하던 황금보검이 발굴 되었는지 몰라 한국사 최대의 수수께끼라고 한다뭐가 수수께끼라는 건지 모르겠다.  


<기마 인물 모양 토기, 신라, 국보, 5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계림로 황금보검이 발견된 무덤에서는 기마 인물형 토기와 수레 모양 토기도 같이 나왔다. 신라 왕조가 유목 왕조인 것이다. 고대부터 카자흐스탄 지역은 투르크와 관계 깊다한나라 유방이 흉노에게 공주를 바치던 기원전 2세기에는 오손이 지배했다. 


오손  곤막은 늑대가 키운 아이였다돌궐과 위그르에서는 늑대가 신이었다왕은 늑대머리 깃발을 휘날렸다. 투르크 인은 개가 인간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믿었다유목민은 조상이 누구냐에 따라 적과 친구가 분명하게 나뉜다고 했다



기마유목 왕조에는 마치 옥새와도 같은 신성한 개가 있었다삽살개는 신라 왕족의 상징이다. 8세기 신라 김교각 스님이 당나라 건너갈 삽살개를 데려간 이유는 그가 왕족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국(당나라 중심지인 안휘성)에서 김교각 스님은 삽살개와 함께 추앙받는다같은 숭배 문화권에 같은 늑대 혈통 왕족이니 친선의 의미로 쪽에서는 황금보검을, 저 쪽에는 개를 보낸 것이다


<당나라 황실을 그린 당인궁악도 속 페키니즈, 836~907년>


신라와 마찬가지로 당나라도 황실에서만 키울 수 있는 사자 개가 있었다. 페키니즈다. 신성한 개 개념과 유물의 유사성 외에도 신라 자체가 투르크 계라는 설이 있다. 당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봤을 그럴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청나라 황제 건륭제도 청 왕조 조상은 신라인이라고 했다. 사실 신라가 흉노 계인지 투르크 계인지 따지는   숭배 문명권에서 봤을  무의미하다어차피 형이냐 동생이냐 차이다. 

<조상이 신라인이라고 한 청나라 황제 건륭제 (1735-1796)>



수컷 늑대와 인간 여자가 결혼을 해서 낳은 아이들이 흉노다반이 늑대다.  흉노인 남자가 다시 암컷 늑대와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 투르크다. 4분의 3 늑대 혈통이다. 더 신성하다


흉노와 투르크는 누가  잘났냐 피터지게 싸웠겠지만 이리 메치나 저리 메치나 어차피 둘 다 개숭(배하는)파다신라가 황금 보검을 주고 받은 6세기~8세기 카자흐스탄은 투르크인 돌궐과 위그르가 지배했다

<당나라에서 활동한 중앙아시아 사람들, 7세기~10세기>


돌궐과 위그르는 당시 사실 당나라를 지배했다당나라는 왕조 시작부터 돌궐과 함께 했다늑대 머리 깃발을 휘날리던 돌궐이 망한 후에는 역시 늑대 머리 깃발을 휘날린 위그르 군대가 왕조를 지켜주었다. 


왕조와 돌궐-위그르는 마치 바지사장과 주인 같은 관계였던 것 같다돌궐의 도움으로 시작된 왕조는 위그르의 멸망과 함께 사라졌다당 궁정에서는 지금의 폴로 게임을 즐겼다. 


당나라 유물 중에는 유독 중앙아시아 서역인 상이 많이 남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당나라에는  10  정도의 마니교도 살았다. 소그드 상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서역인이다


<폴로 게임을 즐기는 당나라 귀족들>


마니교는 조로아스터교와 기독교가 합쳐진 종교다. 개를 신으로 받드는 조로아스터교와 당시 머리 성인을 믿은 기독교가 만났다 정신으로 개고기를 먹었을까? 마니교 수장은 돌궐과 위그르를 움직여 당나라 황제를 쥐락펴락했다


마니 교도가 아니더라도 당시 당나라에는 개 먹는 중국 한족 풍습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수행 중심의 불교와 도교가 유행하면서 채식을 권장했기 때문이다마니교불교도교 모두 개고기를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도교의 권선서 내용을 조각한 당나라 시대 주택 난간, 7세기~10세기>



베이징에는 병든 반려견의 건강을 기원하는 전용 도교 사원이 있었다이런 당나라에 개고기 개를 비싼 배에 실어 수출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당시 일본 역시 개고기 시장이 존재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6~8세기 일본은 아스카 시대였다


일본의 국가 체제를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쇼토쿠 태자가 야심차게 불교를 국가 정책으로 밀고 있었다국가의 인재를 모아 당나라 불교를 배우러 보내던 일본 황실에서 개고기  개를 굳이 배로 수입 했을까? 


<호류지에서 강의하는 일본 쇼토쿠 태자>


먹을 널린 황족이 일본 역사를 통틀어 개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신석기인인 조몬인과 에타 족밖에 없다에타 족은 일본 불가촉천민이다. 신라의 개고기 일본 수출설은 뇌수술을 당한 중화사대주의자가 아니라면 생각할 없는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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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주인의 영혼을 지키는 개

유목사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정체성을  마디로 표현한다면 '텡그리(하늘)'라고    있다. 텡그리는 하늘이자 신이자 자연의 섭리이며 왕이며 늑대이다.  텡그리 신앙은 신성한  신앙과도 연결된다하늘의 아들 자격으로 지상을 다스리는 지배자는 신성한 품종의 개를 키울 자격이 있었다

 개가 티베트탄 마스티프바빌로니안 마스티프페르시안 마스티프몽골리안 마스티프파사구삽살개이다 개들은 이름은 다르지만 유전자는 일치한다티베트탄 마스티프는 사자개란 의미이다.


< 왕조의 티베트탄 마스티프 은 조각. 17세기>


티베트의 라사압소페키니즈티베트탄 테리어시추와 역시 티베트  개로 사자개라는 의미이다신라 시대 왕족만이 삽살개를 키울  있던 이유이다신성한 개와 신성한 유목 왕조의 혈통이 만난 것이다


신성한 품종의 개를 키울  없던 평민 유목민들도 개를 신성하게 여겼다고향으로 보내주는 존재가 개라고 믿은 것이다그들이 믿은 고향은 주로 신성한 산으로 구현된다. 신성한 산은 실재하는 산일수도 있고 죽어서 가는 북망산일 수도 있다


<타지키스탄의 파미르 고원>


죽어서 가는 산까지 안내하는 안내자가 개이다. 그런 개를 먹을 수가 없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에게 고향과 조상은 그들의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였다. 왕족이든 평민이든 간에  이동을 했고 몇일을 말을 달려야 가족이 아닌 타인을 만날  있었다


고향이 어디인가 묻는 것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었다초원  신분 확인법이었다. 10대조 조상까지 기본으로 외웠다옆집에 누가 살고 뒷집에 누가 사는지  아는 농경민이라면 이해할  없겠지만 유목민에게는 그게 상식이었다


<몽골 샤먼 도구인 북에 그려진 붉은 산과 늑대>


유목민들은 절대 조상과 고향을 잊지 않았다티베트 고원에 실재했다는 파미르 문명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성한 산이 그 고향이 파미르 고원일  .  직접 10대조 할아버지를 물어 고향을 확인하는 것만큼이나 정신적인 고향도 중요했다


언젠가 죽어서라도 돌아갈 고향은 신성한 산이기도 했다고구려와 거의 같았다는 오환은 죽어서 붉은 산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몽골도 울란하드 즉 붉은  신성하게 여겼다붉은 산은 문명 이름이기도 하다


<고구려 고분 각저총  영혼인도견. 5세기 초반>


황하 문명이 발달하던 시기 혹은 그보다 훨씬  중국 화북 지방에서 발달한 문명에서 고도로 발달한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 유물이 쏟아져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중국의 황하 문명과 전혀 다른  문명을 홍산 문화라고 한다.  '붉은 '  문명이다



붉은 산은 이슬람 세력이 멸망시킨 페르시아와도 관련 있다. 페르시아 제국의 국교인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죽으면 알부르즈 산으로 간다고 믿었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믿은 신성한 산은  텐산 산맥의 ' 텡그리봉우리처럼 실제 존재하는 산일 수도 있고 죽어서 가게  저승이기도 했다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장례를 지낸 >


 길을 개가 함께 했다중아아시아 알타이 문명권에서 개는 살아서는 악마로부터 주인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고 죽어서는 주인의 영혼을 신성한 산으로 안내했다. 알부르즈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네눈박이 개가 지키고 있다가 죽은 영혼을 천당으로 보낼지 지옥으로 떨어뜨릴지 결정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많은 개들이 무덤 주인과 함께 그려진 이유이다. 생전에 키우던 반려견을 영혼의 수호자로 그린 것이다 .고구려가 중국 황하 문명이 아닌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과 비슷한 이유이다.  식품영양학과 교수의 말처럼 살아 생전 잡아먹은 개를 식량 삼아 무덤에 그려넣은  아니라는 소리이다


<고구려 연가칠년명금동불입상. 539년.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 


조선 시대 이후 우리나라 고대왕조에 대한 기록은 거의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고구려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중국 대륙에 정착한 선비족 왕조를 참고하면 된다선비족은 5 16 시대 이후 본격적으로 북부 중국을 지배했다. 


선비족 왕조 계보는 북위에서 서위( 서위→ 북주), 동위(동위→북제)로 이어졌다. 선비족 왕조가 짧고 강렬하게 중국을 지배하면서 중국 대륙 내에서는 개고기 식용 문화가 점차 사라지게 된다. 중국 역사에 파사구(페르시아 마스티프)가 등장하는 시기다. 


<중국 선비족 왕조 북위. 금동불입상.386–534년>


선비족 지배층은 고구려 지배층과 같았다고 한다.  선비족 왕조는 서역에서 전해진 불교를 믿었는데 북방 기마 유목민 특유의 불상에는 사자개가 단골로 등장한다. 선비족이 세운 중국 왕조인 북위((386–534)의 불상은 우리나라 국보인  연가7년명여래입상(539년)과 양식이 동일하다. 

  

선비족 왕조인 북위 혹은 북제 지배층 무덤에서는 무덤을 지키는 문지기 역할을  개가 출토되었다. 고구려 인이 믿은 사후 세계를 지키는 영혼인도견과 같은 역할로 한 것이다. 사자처럼 보이는 갈기로 인해 서양 학자들은 이 동물의 정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개인적으로 이 동물이 개라고 생각한다. 


<중국 선비족 왕조인 북위 혹은 북제. 무덤을 지키는 . 6세기>


유목 왕조에서 키우던 티베트 산 개는 모두 사자개로 불렸다. 앙증맞은 시추조차 사자개였다. 투르크 계 왕조가 사용한 국기인 늑대 머리 깃발 속 늑대가 후대에 사자머리를 한 용으로 변형되는 것과  같은 이유로 개에게 신성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자 모양을 합성한 것이다. 


티베트탄 마스티프로 보이는 개들은 중국 역사에서 파사구(페르시안 )라고 불렸다부처님 세계(저 세상)로 들어가는 문을 지키는 역할을 하다당시 비단 필을 호가한 먹이로 북제의 어느 미친 왕족은  살아있는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던져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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