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정체성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텡그리(하늘)'라고 할 수 있다. 텡그리는 하늘이자 신이자 자연의 섭리이며 왕이며 늑대이다. 이 텡그리 신앙은 신성한 개 신앙과도 연결된다. 하늘의 아들 자격으로 지상을 다스리는 지배자는 신성한 품종의 개를 키울 자격이 있었다.
그 개가 티베트탄 마스티프, 바빌로니안 마스티프, 페르시안 마스티프, 몽골리안 마스티프, 파사구, 삽살개이다. 이 개들은 이름은 다르지만 유전자는 일치한다. 티베트탄 마스티프는 사자개란 의미이다.
<청 왕조의 티베트탄 마스티프 은 조각. 17세기>
티베트의 라사압소, 페키니즈, 티베트탄 테리어, 시추와 역시 티베트 산 개로 사자개라는 의미이다. 신라 시대 왕족만이 삽살개를 키울 수 있던 이유이다. 신성한 개와 신성한 유목 왕조의 혈통이 만난 것이다.
신성한 품종의 개를 키울 수 없던 평민 유목민들도 개를 신성하게 여겼다. 고향으로 보내주는 존재가 개라고 믿은 것이다. 그들이 믿은 고향은 주로 신성한 산으로 구현된다. 신성한 산은 실재하는 산일수도 있고 죽어서 가는 북망산일 수도 있다.
<타지키스탄의 파미르 고원>
죽어서 가는 산까지 안내하는 안내자가 개이다. 그런 개를 먹을 수가 없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에게 고향과 조상은 그들의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였다. 왕족이든 평민이든 간에 늘 이동을 했고 몇일을 말을 달려야 가족이 아닌 타인을 만날 수 있었다.
고향이 어디인가? 를 묻는 것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었다. 초원 판 신분 확인법이었다. 10대조 조상까지 기본으로 외웠다. 옆집에 누가 살고 뒷집에 누가 사는지 다 아는 농경민이라면 이해할 수 없겠지만 유목민에게는 그게 상식이었다.
<몽골 샤먼 도구인 북에 그려진 붉은 산과 늑대>
유목민들은 절대 조상과 고향을 잊지 않았다. 티베트 고원에 실재했다는 파미르 문명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성한 산이 그 고향이 파미르 고원일 수 있다. 직접 10대조 할아버지를 물어 고향을 확인하는 것만큼이나 정신적인 고향도 중요했다.
언젠가 죽어서라도 돌아갈 고향은 신성한 산이기도 했다. 고구려와 거의 같았다는 오환은 죽어서 붉은 산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몽골도 울란하드 즉 ‘붉은 산’을 신성하게 여겼다. 붉은 산은 문명 이름이기도 하다.
<고구려 고분 각저총 속 영혼인도견. 5세기 초반>
황하 문명이 발달하던 시기 혹은 그보다 훨씬 전 중국 화북 지방에서 발달한 문명에서 고도로 발달한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 유물이 쏟아져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중국의 황하 문명과 전혀 다른 이 문명을 홍산 문화라고 한다. '붉은 산' 문명이다.
붉은 산은 이슬람 세력이 멸망시킨 페르시아와도 관련 있다. 페르시아 제국의 국교인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죽으면 알부르즈 산으로 간다고 믿었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믿은 신성한 산은 텐산 산맥의 '칸 텡그리' 봉우리처럼 실제 존재하는 산일 수도 있고 죽어서 가게 될 저승이기도 했다.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장례를 지낸 산>
그 길을 개가 함께 했다. 중아아시아 알타이 문명권에서 개는 살아서는 악마로부터 주인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고 죽어서는 주인의 영혼을 신성한 산으로 안내했다. 알부르즈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네눈박이 개가 지키고 있다가 죽은 영혼을 천당으로 보낼지 지옥으로 떨어뜨릴지 결정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 많은 개들이 무덤 주인과 함께 그려진 이유이다. 생전에 키우던 반려견을 영혼의 수호자로 그린 것이다 .고구려가 중국 황하 문명이 아닌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과 비슷한 이유이다. 모 식품영양학과 교수의 말처럼 살아 생전 잡아먹은 개를 식량 삼아 무덤에 그려넣은 게 아니라는 소리이다.
<고구려 연가칠년명금동불입상. 539년.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
조선 시대 이후 우리나라 고대왕조에 대한 기록은 거의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고구려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중국 대륙에 정착한 선비족 왕조를 참고하면 된다. 선비족은 5호 16국 시대 이후 본격적으로 북부 중국을 지배했다.
선비족 왕조 계보는 북위에서 서위( 서위→ 북주), 동위(동위→북제)로 이어졌다. 선비족 왕조가 짧고 강렬하게 중국을 지배하면서 중국 대륙 내에서는 개고기 식용 문화가 점차 사라지게 된다. 중국 역사에 파사구(페르시아 마스티프)가 등장하는 시기다.
<중국 선비족 왕조 북위. 금동불입상.386–534년>
선비족 지배층은 고구려 지배층과 같았다고 한다. 선비족 왕조는 서역에서 전해진 불교를 믿었는데 북방 기마 유목민 특유의 불상에는 사자개가 단골로 등장한다. 선비족이 세운 중국 왕조인 북위((386–534)의 불상은 우리나라 국보인 연가7년명여래입상(539년)과 양식이 동일하다.
선비족 왕조인 북위 혹은 북제 지배층 무덤에서는 무덤을 지키는 문지기 역할을 한 개가 출토되었다. 고구려 인이 믿은 사후 세계를 지키는 영혼인도견과 같은 역할로 한 것이다. 사자처럼 보이는 갈기로 인해 서양 학자들은 이 동물의 정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개인적으로 이 동물이 개라고 생각한다.
<중국 선비족 왕조인 북위 혹은 북제. 무덤을 지키는 개. 6세기>
유목 왕조에서 키우던 티베트 산 개는 모두 사자개로 불렸다. 앙증맞은 시추조차 사자개였다. 투르크 계 왕조가 사용한 국기인 늑대 머리 깃발 속 늑대가 후대에 사자머리를 한 용으로 변형되는 것과 같은 이유로 개에게 신성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자 모양을 합성한 것이다.
티베트탄 마스티프로 보이는 이 개들은 중국 역사에서 파사구(페르시안 개)라고 불렸다. 부처님 세계(저 세상)로 들어가는 문을 지키는 역할을 한 듯 하다. 당시 비단 몇 천 필을 호가한 개 먹이로 북제의 어느 미친 왕족은 살아있는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던져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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