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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조폭 개고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97.조선족 개고기 밀수로 뻥 뚫린 한국 해상 국경
  2. 54. 왜 조선족은 개고기를 먹게 되었나?(1)

97.조선족 개고기 밀수로 뻥 뚫린 한국 해상 국경

개고기 문제

내가 개고기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불합리였다. 감정적인 면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따져 봐도 한국의 개고기 산업은 불합리 그 자체다

한국의 개고기 문제는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불합리와 불법, 편법, 비민주, 비이성, 무논리를 모두 응축시켜 놓은 듯하다. 한국을 망치는 원흉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중국(과 중국 공산당)이 있다


<청산가리 개고기를 한국에 밀수출한 조선족 조폭, KBS, 2003년 8월 14일>

? 1997~8년 이후 한국 개고기 산업은 조선족이 선도하고 있고 조선족의 정체성은 중국 공산당이니까조선족은 한 때 청산가리로 한국인을 독살하려 한 적도 있다

1998년에서 1999년부터 중국 연변의 조선족은 한국에 개고기를 밀수출했다는 보도가 2003년 있었다. 적어도 2003년부터 한국 정부는 조선족이 중국에서 살아있는 개나 혹은 죽은 개의 고기를 밀수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중국과 한국에서 개고기 벨트를 형성하는 조선족, 미디어 오늘, 2004년5월 27일>

그 개고기에는 무려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다청산가리를 소량씩 지속적으로 먹으면 시름시름 앓다 죽게 된다조선족이 수출한 청산가리 개고기를 먹고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은 없다.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역학 조사나 추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청산가리 개고기 밀수입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은 현재 개고기 산업의 불법을 방치하는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남북한, 조선족 공통의 전통요리라고 주장하는 개고기, 통일뉴스, 2015년 9월 14일>

한국 정부는 조선족에 의해 한국인이 독살당하든 말든 적극적인 단속을 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 정부는 중국에서 수입되는 개고기 양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검역이 전산화되기 이전 수출입 자료는 아예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적어도 2009년 이전 개고기 수출입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검역이나 통관 모두 개고기는 프리패스였는데도 담당 공무원들은 공통적으로 개고기가 불법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1조원 규모의 환치기를 한 연변 조직 폭력배, 연합뉴스, 2008년 11월 2일>

보통 국가의 역할이란 불법적인 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범죄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다. 검역 담당 직원은 개고기가 불법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수출과 수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건 그냥 공식적으로 문서로 남기기 싫다는 소리였다. 2003년 방송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아니 왜 모르냐고요? 담당 부서인데!!” 담당자가 보직 이동을 했어도 자료는 남았어야 하지만 역시 없다고 했다

없다고 하면 없는 게 한국 정부다. . 이렇게 사람 복장 터지게 하기도 쉽지 않다. 이게 현재 한국의 개고기 문제다. 개고기 문제 뒤에는 한국 정부가 있고 그 뒤에는 조선족이 있다. 


공식적으로 오고 간 개가 없다면 밀수 아니냐? 해상 국경을 통해 밀수업자가 날뛰고 있으니 더 적극적으로 적발해야 하지 않느냐는 내 질문에 그것도 역시 자신들의 업무는 아니라고 했다.

<해상으로 밀수되는 개들을 적발하는 태국, 한국일보, 2018년 6월 25일>

왜냐하면 밀수는 세관에서 담당하기 때문이다. ...세관에서는 명품 짝퉁 밀수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개고기 밀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전~혀 없었다태국조차 정부가 나서서 해상경비대를 파견해 횡행하는 개 밀수를 막는데 말이다.

정리를 하자면 2008년까지 농림부 검역 당국은 개고기 수출입을 공식적인 문서로 남기기 싫어서 아예 문서조차 남기지 않았고 세관 당국은 개고기 밀수 적발은 하고 싶지 않아서 안하고 있었다.

<1997년부터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입국한 조선족 조폭들 ,국민일보, 2002년 4월 25일>

그럼 식약청은? 환경부는? 한국 정부 어느 기관에서도 중국 조선족의 개고기 밀수출입을 적발하지 않았다. 아무도 청산가리로 죽인 개고기가 한국에서 얼마나 유통되고 있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과연 중국과 한국 사이로 개만 오갈까? 살아있는 개를 수백 만 마리 밀수출 해도 프리패스라면 당연히 개들 속에 마약을 숨겨서 운반할 수도 있다. 뜬장 속에 갇힌 개들 속에 사람 하나 둘 구겨 넣는 것도 가능하다

<개장사 조선족 조폭이 주인공인 영화 황해, 2010년>

개고기와 함께 마약, 밀항자들을 자유롭게 운반할 수 있는 것이다. , 개고기 밀수업자 손에 의해 한국 해상 국경은 뻥 뚫린 것이다이제 영화 황해에서 조선족 조폭이 개장사를 하는 이유가 이해될 것이다

개고기를 밀수출하면 마약운반과 밀항도 덤으로 할 수 있다. 완전 개 이득이다. 당연히 중국 연변 조선족 조폭들은 개고기 밀수에 열을 올릴 수 밖에 없다.

<히로뽕 밀반입한 조선족 여성들, 연합뉴스, 2005년 6월 13일>

밀항을 하든 마약을 운반하든 개고기를 운반하든 방관하는 한국 정부의 침묵 속에 오직 한국 언론들만 신이 났다. 한국의 언론과 (인터넷)여론은 중국의 청산가리 개고기 수출을 기회로 개고기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지....?이봐, 개고기와 함께 한국 해상 국경이 뚫렸다고! 지금 개고기 합법화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라고 지적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국가일까? 

 

54. 왜 조선족은 개고기를 먹게 되었나?(1)

중국 공산당

조선족은 현재 중국에서 개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집단이다. 그들이  언제부터 개고기를 먹게 되었는지, 조선족과 한국의 개고기 식용 문화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1. 청 왕조에는 개 도살 금지법이 있었다. ? 청 시조 누르하치의 생명의 은인이 개였다.

<도광제(1820~1850년)의 정귀비와 육황자, 청>

2. 중국 역사 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지배한 만주족은 채 백만 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인원만 만주에 남겨두고 중국 대륙으로 모두 이동해 중국을 다스렸다.

3. 청 왕조의 성지인 만주는 사람이 살지 않는 보호 구역이 되었다만주 출입 금지가 풀린 것은 1911년 청 왕조가 망한 후였다그전까지 만주는 허허벌판이었다.

<조선의 고종, 청의 서태후, 일본의 메이지 천황, 1905~1909년>

4.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청나라가 조선의 지배력을 상실했다. 일부 조선인 독립문을 세워 일제의 승리를 축하했다.


5. 1910년 한·일병합으로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조선인은 조선 계 일본인,  일본인이 되었다.

<독립문, 조선, 1904년>

 

6. 1911년 청 왕조 멸망하자 영국은 청 황실 개를 납치해 품종개량을 해서 지금의 시추와 페키니즈, 라사압소로 만들었다.  만주족도 고향인 만주로 돌아갔지만 보호자(지배층)가 없었다

 

7. 만주족과 조선인(주로 독립운동가), 조선 계 일본인(조선인), 일본인(주로 독립군 잡는 순사), 중국 공산당, 중국 국민당 등이 섞여 있는 만주는 무법천지였고 언제든 갈등이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세 살 무렵 푸이의 사진, 청, 1909년>


8. 조선의 독립운동가는 만주를 거점으로 중국에서 독립운동 했다. 일제를 피해 혹은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조선백성들 중 일부도 만주로 이동했다.


9. 청 멸망 후 중국에서는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싸우는 내전이 발생했다만주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만주는 여전히 무법천지였다.

<도광제와 황실 가족들과 노는 페키니즈, 청, 1899년 11월 30일>


10. 중국공산당, 국민당 모두 청 왕조를 증오했다. 그래서인지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 개고기를 먹었다모택동의 붉은 군대(공산당)의 경우 부족한 군량미 대신 먹였을 가능이 높다. 얘네들은 중국 내륙 산악 지대로 쫓겨가 아주 생고생을 하며 국민당과 싸웠다. 자금과 군수품이 풍부한 국민당 군대까지 개고기를 먹은 건 청 왕조에 대한 반발심이 크다.


11. ·송 이후 이후 중국 대륙에서 개고기는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그 많은 중국인 중 개고기는 거지나 먹는 음식이었지만 청 왕조 멸망을 계기로 중국에서 개고기 식용 문화가 되살아났다.  

<대만 원주민의 사냥 모습, 1750년>

12. 중국 공산당에 패해 중국에서 쫓겨나 정착한 대만을 점령한 중국 국민당은 대만에서도 개고기를 먹었다. 국민당이 학살한 대만 원주민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 같다. 대만에서 개고기가 금지된 것은 국민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후이다. 대만은 현재 아주 강력한 개고기 금지법을 실행하고 있다

13. 1931 여전히 무주공산으로 남아 있는 만주를 지배하기 위해 일제가 일으킨 자작극이 남만주 철도 사변이다. 일제의 주력부대인 관동군은 만주 사변을 계기로 만주 지역을 점령한다

<남만주 철도 사태를 조사하는 일본 전문가들, 1931년 9월>

 
14. 만주는 더럽게 춥다. 추위에 약한 일본군이 만주에서 견딜 수 있도록 일본군은  방한용 군복을 만들어야 했다일제는 조선 개의 가죽을 이용하기로 한다. 견피주식회사를 통해 묶어 놓은 개와 진돗개 외의 조선의 모든 개는 학살되었다. 이 때부터 한국인에게는 개를 묶어 놓아야 살릴 수 있다는 트라우마가 생긴다.

15. 신라시대 왕족만 키울 수 있던 신성한 삽살개는 만주 일본군 군복이 되어 멸종되었다

<일제에 의해 도살되기 직전의 조선 토종 개, 1941년>

16. 1932년 청 왕조 마지막 황제 푸이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운 일제가 만주에 만주국을 세웠다괴뢰국이라는 비웃음을 당했지만 어쨌든 법적으로 만주는 청 황실 소유였고 볶아 먹든 지져먹든 푸이 마음이었다. 이때부터 만주인은 일본인이었고 일본인은 조선인이었다. , 만주족 = 일본인 = 조선인 이 된다.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이들과 싸웠다.


17.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일제는 만주국에 일본인과 조선인을 대규모로 이주시켰다. 조선인은 일본인이었으니 공식적으로 만주로 이주해 간 사람들은 모두 일본인이다. 주로 조선 계 일본인이 조선족의 조상이다.

<광복군의 이범석 장군과 개, 1920년>


18. 조선족 즉, 일제 시대 조선계 일본인은 왜 개고기를 먹게 되었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평안도나 황해도 지역 조선인이 만주로 많이 이동했다. 열명에 한 명이 굶어죽던 조선 시대에도 가장 가난하고 척박한 지역으로 악명높은 이 지역은 양반조차 개가죽으로 갓을 만들어 쓴다고 조롱을 당했다. 조선에서도 가장 개고기 친화적인 지역이기는 했다.

19. 하지만 만주의 조선족이 본격적으로 개고기를 먹게 된 것은 중국공산당과 관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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