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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137. [요약] 한국전쟁 후 좌파의 개고기 적화 운동

중국 공산당

현재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먹는 국가는 한국이다. 그 한국인의 대표는 조선족이다. 재외동포법으로 인해 조선족이 모든 한국인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족은 중국인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중국인이 되었다. 황당하지만 외부에서 보기엔 그렇다. 중국인인 조선족이 한국인의 대표가 되는 근현대사의 과정은 고구마 백 개 쯤 먹은 것같은 답답함의 연속이다. 이 황당한 일의 원인은 개고기 전통론이다.

<개를 사랑한 청 왕조는 개 도살금지법을 시행했다>

개고기로 조선족과 한국인이 하나되어 중국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1911년까지 중국과 한반도에 대중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현상은 없었다. 중국과 한반도 모두 개는 그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몰래 숨어서 먹는 불결한 음식이었다. 

모든 것은 개를 사랑한 청 왕조가 멸망하면서 시작되었다. 중국 공산당은 개고기를 공산혁명의 상징으로 삼았다. 여기에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참여하면서 한국은 완전히 중국화 되기 시작했다. 


<1921년 이후 중국공산당의 개고기 역사 공정 >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은 조선에는 죽어도 왜놈 지배만은 받을 수 없다는 정서가 존재했다. "일본 지배를 받을래? 중국 지배를 받을래?"라고 물으면 중국이라도 답할 조선인이 훨씬 많았다.  

반일정서로 지배층, 피지배층 모두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러자 조선 왕조 내내 존재한 피지배층의 반중 정서도 희석되었다. 독립운동을 하느라 바빠서 민족 의식이니 정체성이니 하는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1925년 청요리집에서 창당한 조선공산>

그 틈을 정확히 파고 든 게 중국 공산당이다. '일제 식민지 해방 = 조선 독립 = 만주 독립운동'이 최고 선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었고 만주 독립운동가들이 민족 지도자 자리를 꿰차자 그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만주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공산당 지원을 받았다. 처음에는 국민당 지원을 받은 독립운동가들도 나중에는 공산당 지원을 받았다. 곧 '중국 공산당 = 항일운동 = 독립운동 = 최고 선'이라는 개념도 생겼다. 


<김원봉 김일성 중국 공산주의 독립운동의 개고기 남침 관계도>


중국 공산당은 뭐를 먹는다? 개고기. 개고기 먹는 중국 공산당이 조선 독립을 지원해주는데 거기에 대고 토를 달수는 없다. 중국 공산당이 개고기를 먹으면? 독립을 원하는 조선인도 따라 먹어야 했다.  


개고기 식용은? 중국 공산화 운동. 이렇게 해서 1920년 대 이후 개고기 식용은 중국 공산화 운동이 되었다. 이 개고기 공산 혁명을 가장 열렬히 수행한 사람이 조선족과 김일성이다. 

 

<개고기 식용으로 본 북한과 중공의 한국 침략>

만주 독립운동가들은 완전히 공산화되어 개고기를 먹으며 북한과 남한을 공산화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물론 여기에 저항한 민족 세력도 있었다.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 세력이다. 

천도교는 일제 시대 가장 강력한 일제 저항 세력이었다. 천도교는? 개고기를 아주 강력히 금지했다. 1920년대 이후 1945년까지 한반도는 중국 공산화 운동과 천도교로 대표되는 민족운동, 독립운동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개고기 전통론 침투로 보는 한국전 양상 사진 >


이런 와중에 천도교는 일제와 중국 공산당의 공격을 동시에 받았다. 그 적나라한 결과를 우리는 북한에서 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출신 김일성은 천도교 세력을 모두 없애버렸다. 

김일성은 천도교 정신 대신 개고기는 민족음식이라는 세뇌를 북한 인민에게 주입했다. 북한은 세계 최악의 노예 국가이자 유사 종교 국가가 되었다. 일제 패망 후 해방된 한반도는 여전히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었다. 


<김원봉 김일성 중국 공산주의 독립운동의 개고기 남침 관계도>

미국(자유 진영)과 소련(중공을 포함한 공산 진영)은 어느날 갑자기 한반도에 38선을 긋고 남한과 북한으로 나눴다. 남한은 이승만, 북한은 김일성이 등장해 미국과 소련(중공) 대표해서 남한과 북한을 지배했다. 

38선이 그어진 순간 북한은 적화된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남한으로 피신했다. 조선족으로 추정되는 김일성은 빠르게 북한을 공산화 했다. 하루 하루 두 끼 개고기를 먹으면서 말이다. 그 결과 지금 북한에서 개고기는 민족의 음식이 되었다. 


<조선족의  625남침과 개고기 침략 과정  >


북한과 달리 자유민주국가 남한에서는 개고기 공산화 운동이 쉽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개고기 금지법을 만들어 남한이 개고기로 적화되는 것을 막았다. 이 와중에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중국 공산당의 영향을 받아 고기로 무장한 김일성과 김원봉이 개고기 금지법이 있던 남한을 공격했다. 개고기 먹는 조선족 군대의 지원을 받아서 말이다. 문제는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다. 휴전 후 남한 측이 잡은 수많은 전쟁 포로는 모두 북한인과 조선족이었다. 

 

<개 식용은 중국 공산화 운동 한국전쟁 후 개고기 적화 과정 >


북한과 중국으로 복귀하지 못한 북한인과 조선족은 파악조차 안 된다. 남한, 북한, 조선족은 같은 말을 쓰는 같은 민족이다.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한국 전쟁 후 남한에는 수많은 북한인과 조선족이 스며들어 숨죽이고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반공 정책을 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부는 독재 정치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대한 민주화 운동을 했다.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은 반공 정책에 반대했다. 즉, 친공산주의를 주장했다. 개고기를 먹으면서 말이다.  

116. 18세기 고양이 대학살과 개소주 이황

조선

조선 시대 양반은 개고기를 먹지 않고 일부 굶주린 노비는 개고기를 먹었다. 인공위성 파편에 맞아 죽을 확률로 말이다. 이 역사적 사실을 일부 한국인들이 왜곡하여 개고기 식용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복날, 가난한 농민, 개고기는 선한 전통이고 부자, 양반, 친일파, 독재자는 악이라는 단순 무식한 대립 구도로 몬 것이다

복날 개고기 식용을 통해 가난한 노비(노동자, 프롤레테리아)와 양반(부자, 부르주아)의 대립을 극대화시키는 그들의 해석에 의하면 조선 시대 개를 때려잡아 개고기를 먹은 것은 개를 조상신으로 여긴 양반에 대한 증오의 표출이다

<웃는 사자 개는 청나라에서 행운의 상징, 청, 1662-1722년>

이는 개를 청 왕조의 상징으로 여겨 개를 때려잡아 먹는 고대 중국 식습관을 되살린 중국공산당과 같은 논리다. 또한 18세기 프랑스 방직공장에서 일어난 고양이 대학살과 동일한 형태의 증오범죄다

방직기계 발명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 유럽에서는 자본가는 더 부자가 되고 노동자는 더 가난해지는 자본주의의 폐해가 심각했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고 고양이는 고양이인데 방직공장에서 착취당하며 뺑뺑이를 돌던 노동자들은 고양이를 자본가(방직 공장 주인)의 상징으로 보았다

<고양이 대학살, 문학과지성사>

어느 날 그들은 사모님이 물고 빨던 고양이를 때려죽였다. 그렇다면 프랑스 좌파는 사랑하는고양이가 죽어서 슬퍼한 부자(사모님)를 보고 고소해하던 방직공장 노동자들의 전통을 본받아 해마다 고양이 기일이 되면 고양이들을 때려죽이는 퍼포먼스를 벌일까

그런 미친 짓은 하지 않았다. 오직 한국 좌파만 복날이면 개고기를 먹은 가난한 조선의 노비를 기린다. 개고기를 먹음으로써 말이다. 프랑스 인들에게 18세기 방직 공장 노동자들은 자기보다 약한 고양이를 죽여 복수를 한 비열한 인간들일 뿐이다. 


<개고기를 금지한 청 왕조와 달리 한국은 개고기를 지켜 정체성을 살렸다는 기사, 미디어오늘, 2004년 5월 27일>

마찬가지로 조선 후기 복날 개고기를 먹어야 했던 가난한 농민들은 저주받은 음식인 개고기라도 먹고 살아남아야 했던 불쌍한 인간들이다. 불쌍한 우리 조상들을 핑계로 전통 운운하며 개고기를 먹는 인간들 역시 비열한 인간일 뿐이다.


1980년대 일부 운동권이 적나라하게 보여준 개에 대한 증오심 역시 비열하기 그지없었다. 주사파로 분류되는 그들은 독재자인 전두환 대통령이 개고기를 금지한다는 이유로 더 열심히 개고기를 먹었다


<독재가가 금지하여 80년대 보신탕은 울었다는 기사(보신탕으로 도살되지 않아 개가 슬퍼했을까?), 한겨레21, 2002년 7월 16일>

개는 개고 독재자는 독재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들은 기득권에 대한 극도의 분노를 보였다기득권, 부자에 대한 그들의 분노는 어디에서 왔을까? 친일파? 아니, 근원적으로 따지고 보면 친일파 이전의 조선 시대 양반이다

그런데 개고기를 부자와 노동자의 대립으로 본 일부 한국 좌파는 기득권과 친일파, 부자에 대한 증오도 선택적으로 했다같은 기득권, 같은 양반인데 조선 시대 이황은 존경하면서 일제 시대 친일파는 증오한다.


<개고기 안 먹으면 변절하기 쉽단느 민주화 운동의 대부 백기완, 초이스경제, 2014년>

그러면서 복날이면 전통이랍시고 개고기를 열심히 먹는다. 조선 시대 복날 개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노비가 유일하고 노비들에게 개고기를 먹인 양반의 대표가 이황인데도 말이다

앞뒤가 맞지 않고 표리부동한 것은 조선시대 양반 대표인 이황이나 개고기 전통론을 주장하는 한국 좌파나 똑같다. 개고기에 있어서는 말이다. "중국에 공자가 있다면 조선에는 이황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황은 추앙을 받는다


<조선 시대 세금을 내지 않은 도산서원, 중앙일보, 2018년 9월 15일>

공자와 이황은 개고기를 좋아한 것도 닮았다. 어느 날 이황은 신비한 효능을 가진 개고기 술이 등장하는 명나라 왕자가 쓴 책을 제목만 바꾸어 출판했다. 제목은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그 신비한 개고기 술에 대한 효능의 원 출처가 '어느 신석기 인이 남긴 기록'신농본초라는 사실이다.

이황이 표지갈이만 해서 출판한 활인심방16세기 이후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조선에서 개고기와 약재를 넣은 술도 유명해졌다. 이황은 개소주의 시초다지금도 도산서원에서는 이황을 기리는 의미에서 활인심방을 재연하는 행사를 한다


<한국 개소주의 시조인 이황, 조선닷컴,  2018년 8월 15일>

더 황당한 것은 이황의 후학들은 옛 방식 대로 개고기 술을 담그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그러면 이 후학들은 누구일까? 그들의 조상을 알아보자. 이황은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류성룡과 김성일이 이황의 대표적인 제자다


이 두 양반은 또 수도 없이 많은 제자들을 두었다. 족보를 따져보면 안동 및 영남지역 유력가 자손들은 다 이황의 제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퇴계 이황을 조상으로 하는 퇴계 학파는 혼맥으로도 안동 및 영남지방을 꽉 잡았다그 유력가 자손들이 혼맥으로 또 다른 유력가와 연결된다.

조선 후기 세도정치로 백성들 고혈을 빤 안동 김 씨, 이황의 두 번 째 부인 집안인 안동 권 씨, 음식디미방을 만들어 양반가의 유일한 개고기 요리법을 전한 안동 장 씨 등등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한 조선 시대 양반들의 개고기 역사는 퇴계 이황으로 귀결된다


<조선 시대 양반가에서 남긴 유일한 개고기 조리법, 음식디미방, 1670년>

그 제자들과 후손들이 지금도 도산서원에서 모여 옛 모습 그대로 개소주 만드는 활인심방을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자랑스러운가? 성리학을 연구하고 조선에 개소주를 남겨줘서?

개소주를 한국에 널리 퍼트린 것 외에 이황은 임진왜란으로 농지의 반이 날아간 상황에서 노비제도를 더 철저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간이기도 하다원래 노비 장사로 재산을 불리던 인간이기 때문이다


<도산서원의 선비문화수련원, 중앙일보, 2018년 9월 15일>


노비 장사로 돈을 벌면 땅을 사 더 부자가 되고 더 많은 노비를 사는 선순환구조로 이황은 치부를 했다. 이황의 무술주를 자랑스러워하며 복날이면 노비들이 먹던 개고기를 전통이랍시고 먹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노비들은 불쌍해삼복더위에 죽도록 일만 하고노비들이 복날 개고기를 먹었으니까 우리도 개고기 먹어야해전통이니까우리는 개소주를 만든 이황도 존경해. 성리학의 대가니까. ...야! 근데 그 이황이 노비장사로 돈 벌었잖아?!!”


<약 36만 평의 땅과 367명의 노비를 소유한 이황,  중앙일보, 2018년 9월 15일>


이거다. 조선 시대 가장 가난한 노동자이 먹던 음식이 개고기라며? 개고기를 부자와 가난한 자, 브루아와 프롤레테리아의 대립의 상징으로 찬양할 거면 이황도 같이 욕해야지. 왜 친일파, 기득권, 독재자만 욕을 하나

조선 시대 노비 제도를 찬양하고 강화한 이 황을 존경하며 개소주를 먹든지 복날 개고기 먹던 노비를 추모하며 노비들의 전통에 따라 해마다 복날이면 개고기를 먹든지 둘 중 하나만 하라는 소리다. 이황을 존경하면서 복날 개고기를 먹는 사람은 노비가 불쌍하다느니 하는 가식은 떨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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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황하 문명은 개고기 문명

중국 공산당

 

개고기는 중국 문화이다동국세시기』 저자 말처럼 복날 개장국을 먹는 것은 중국 한족 전통이다. 복날 보신탕의 출처는 사기』이다개고기가 우리 전통문화라고 말하는 사람은 중국인이다.  우리나라에 개고기 먹는 문화는 없었다. 


조선 시기부터 일제시대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에 이르기까지 남한에서 개고기를 먹은 집단은 조선 후기 굶어 죽기 직전의 일부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 천주교 지도자들과 신자들, 일부 개신교 세력, 해방 후 일부 운동권 세력 뿐이다.




<신성한 개와 개고기로 보는 세계 5대 문명권>


그 외는 정말 가난한고 굶주린 사람들이 굶어죽기 전에야 몰래 먹었다. 조선은 중국이며 개고기는 우리 음식이라고 백성들을 선동한 지배층조차 개고기는 먹지 않았다. 개고기를 먹었다고 역사에 남은 지배층에 관한 기록은 극히 소수였다. 


오 천 년 한민족 역사 속에 개고기는 절대 금기였기 때문이다. 개고기는 숨겨진 하층 문화였다. 개고기가 주류 문화에 편입된 곳은 해방 후 김일성이 지배한 북한과 중국 한족 국가 뿐이다. 중국 문화의 기원인 중국 황하 문명은 세계 4  문명  개고기를 먹은 유일한 문명이기도 하다개고기 문명이다. 


<중국 한나라 무덤에서 나온 벽화 그림 중 개잡는 모습>



무려 6500 전부터 황하  ·상류는 물론 양쯔  ·하류 지역에 살던 고대 중국인은 개를 키워 잡아먹었다고대 중국인에게 개는 가축이었다. 문명을 제외한 나머지 문명에서 개는 특별하고 신성한 존재였다메소포타미아 문명인더스 문명이집트 문명은 공통점이 있었다





개를 신성하게 여기는 믿음 혹은 신앙이다. 개를 신성하게 여기는 이들  문명은 서로 연결되어 활발한 교역을 했다교역을 한다는  식량을 교환할  있다는 의미이다 메소포타미아 왕조 상인들은 기원전 3500년경부터 페르시아 만을 통해 인더스  유역의 도시들과 식량을 거래했다


<1941년 Herbert M Herget이 그린 고대 이집트인 생활 상>


국가 간 식량을 교역하는  적어도 일시에 대량의 아사자가 생기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는다마오쩌둥 지배 중국이나 조선 후기와 같이 한 번에   만 혹은  천만 명이 굶어죽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 지도에서 위그르와 티베트를 제외하면 중국 영토는 황하  유역과 양쯔  ·하류 정도 밖에 남지 않는다정확히 개고기 유적이 발견된 지역이다위그르와 티베트내몽골은 정확히 중국 땅이 아니다



<위그르인 백 만 명을 감금한 중국 공산당>



1955년 위그르를 침공한 중국 공산당은 수 백 만 명의 위그리 인들을 학살했으며 아직도 백 만 명 이상의 위그르 인을 불법 감금하고 있다. 베트와 내몽골에서도 비슷한 학살과 고문을 자행했다. 


위그르와 티베트, 내몽골에서 중국 공산당에 대한 저항 운동이 일어난 것은 역사적으로 이들 지역이 중국 공산당과 아무런 인연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청 왕조와 연합한 것이지 중국 공산당에게 나라를 넘긴 것이 아니었다. 내몽골은 고비사막이다

<폐허 속에서 개를 끌어안고 우는 티베트 어린이>


알타이 산맥과 천산 산맥티베트 고원에서 주요 이동 수단은 말이었다 왕조  장건이 서역에 가서 한혈마를 가져오기 전까지 중국에는 말이 없었다중국군은 보병이었다북방 기마 유목민족과 달리 고대 중국인은 험준한 산맥을 넘어 이동하는 방법 자체를 몰랐다





중국 한족은 고립되어 있었다자발적 쇄국을 한 조선과 달리 타의적 쇄국이다. 황하  유역과 양쯔강 유역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농경민인 그들은 전쟁이 나거나 흉년이 들면 앉아서 굶어죽었다그나마 세월이 좋을 때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여 키운 개와 돼지 등을 가끔 잡아먹었다


<고대 중국에서 선비가 개고기로 제사 지내는 모습>


고대 중국인이 섭취할  있는 가장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었다농사일에  필요한 소는 왕족을 제외하고는 감히 먹지 못했다. 이와 달리 유목민은 고기가 주식이었다. 그들은 말, 소, 산양, 낙타, 염소 등을 가축으로 키웠다. 


말은 곧 군사력이었다. 압도적인 군사력의 차이는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리장성이 유목민의 이동을 방해해 결과적으로 침략을 더 초래했다는 설이 있다. 중국 국경 밖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북방 기마 유목민이 전쟁을 걸어왔다


<흉노의 은제 산양머리 모양 장식  BC1세기~ AD1세기>


진 왕조부터 명 왕조에 이르기까지 사실 상 중국은 북방 기마 유목민의 속국이었다. 왕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주를 포함한 조공을 해야 했다. 중국 국경 안에서는 왕조의 몰락정변가뭄 등이 기승을 부렸다여차하면  싣고 떠날  있는 유목민과 달리 농경민은 농사를  지으면 굶어죽었다.


중국 역사에는 유난히 사람을 잡아먹는 이야기가 많다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어   인구가 반으로 줄어들었다는 기록은 끝도 없이 나온다배고프면 사람도 잡아먹는데 개라고  잡아먹을 이유가 없었다.



<2018년 굶주림에 인육을 먹은 베네수엘라인>



인도의 불가촉천민일본의 에타족조선의 가장 비천한 계층스위스 산간 지방의 가난한 사람들보불 전쟁 당시 파리 시민들은 개고기를 먹었다. 21세기인 2018 2 식량난이 극심한 베네수엘라에서도 17 소년을 죽여서 인육을 먹은 사건이 있었다고립된 인간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되면 개든 사람이든 잡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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