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는 중국 문화이다. 『동국세시기』 저자 말처럼 복날 개장국을 먹는 것은 중국 한족 전통이다. 복날 보신탕의 출처는 『사기』이다. 개고기가 우리 전통문화라고 말하는 사람은 중국인이다. 우리나라에 개고기 먹는 문화는 없었다.
조선 시기부터 일제시대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에 이르기까지 남한에서 개고기를 먹은 집단은 조선 후기 굶어 죽기 직전의 일부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 천주교 지도자들과 신자들, 일부 개신교 세력, 해방 후 일부 운동권 세력 뿐이다.
<신성한 개와 개고기로 보는 세계 5대 문명권>
그 외는 정말 가난한고 굶주린 사람들이 굶어죽기 전에야 몰래 먹었다. 조선은 중국이며 개고기는 우리 음식이라고 백성들을 선동한 지배층조차 개고기는 먹지 않았다. 개고기를 먹었다고 역사에 남은 지배층에 관한 기록은 극히 소수였다.
오 천 년 한민족 역사 속에 개고기는 절대 금기였기 때문이다. 개고기는 숨겨진 하층 문화였다. 개고기가 주류 문화에 편입된 곳은 해방 후 김일성이 지배한 북한과 중국 한족 국가 뿐이다. 중국 문화의 기원인 중국 황하 문명은 세계 4 대 문명 중 개고기를 먹은 유일한 문명이기도 하다. 개고기 문명이다.
<중국 한나라 무덤에서 나온 벽화 그림 중 개잡는 모습>
무려 6500년 전부터 황하 강 중·상류는 물론 양쯔 강 중·하류 지역에 살던 고대 중국인은 개를 키워 잡아먹었다. 고대 중국인에게 개는 가축이었다. 문명을 제외한 나머지 문명에서 개는 특별하고 신성한 존재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이집트 문명은 공통점이 있었다.
개를 신성하게 여기는 믿음 혹은 신앙이다. 개를 신성하게 여기는 이들 세 문명은 서로 연결되어 활발한 교역을 했다. 교역을 한다는 건 식량을 교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왕조 상인들은 기원전 3500년경부터 페르시아 만을 통해 인더스 강 유역의 도시들과 식량을 거래했다.
<1941년 Herbert M Herget이 그린 고대 이집트인 생활 상>
국가 간 식량을 교역하는 한 적어도 일시에 대량의 아사자가 생기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마오쩌둥 지배기 중국이나 조선 후기와 같이 한 번에 수 백 만 혹은 수 천만 명이 굶어죽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 지도에서 위그르와 티베트를 제외하면 중국 영토는 황하 강 유역과 양쯔 강 중·하류 정도 밖에 남지 않는다. 정확히 개고기 유적이 발견된 지역이다. 위그르와 티베트, 내몽골은 정확히 중국 땅이 아니다.
<위그르인 백 만 명을 감금한 중국 공산당>
1955년 위그르를 침공한 중국 공산당은 수 백 만 명의 위그리 인들을 학살했으며 아직도 백 만 명 이상의 위그르 인을 불법 감금하고 있다. 티베트와 내몽골에서도 비슷한 학살과 고문을 자행했다.
위그르와 티베트, 내몽골에서 중국 공산당에 대한 저항 운동이 일어난 것은 역사적으로 이들 지역이 중국 공산당과 아무런 인연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청 왕조와 연합한 것이지 중국 공산당에게 나라를 넘긴 것이 아니었다. 내몽골은 고비사막이다.
<폐허 속에서 개를 끌어안고 우는 티베트 어린이>
알타이 산맥과 천산 산맥, 티베트 고원에서 주요 이동 수단은 말이었다. 한 왕조 대 장건이 서역에 가서 한혈마를 가져오기 전까지 중국에는 말이 없었다. 중국군은 보병이었다. 북방 기마 유목민족과 달리 고대 중국인은 험준한 산맥을 넘어 이동하는 방법 자체를 몰랐다.
중국 한족은 고립되어 있었다. 자발적 쇄국을 한 조선과 달리 타의적 쇄국이다. 황하 강 유역과 양쯔강 유역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농경민인 그들은 전쟁이 나거나 흉년이 들면 앉아서 굶어죽었다. 그나마 세월이 좋을 때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여 키운 개와 돼지, 닭 등을 가끔 잡아먹었다.
<고대 중국에서 선비가 개고기로 제사 지내는 모습>
고대 중국인이 섭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농사일에 꼭 필요한 소는 왕족을 제외하고는 감히 먹지 못했다. 이와 달리 유목민은 고기가 주식이었다. 그들은 말, 소, 산양, 낙타, 염소 등을 가축으로 키웠다.
말은 곧 군사력이었다. 압도적인 군사력의 차이는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리장성이 유목민의 이동을 방해해 결과적으로 침략을 더 초래했다는 설이 있다. 중국 국경 밖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북방 기마 유목민이 전쟁을 걸어왔다.
<흉노의 은제 산양머리 모양 장식 BC1세기~ AD1세기>
진 왕조부터 명 왕조에 이르기까지 사실 상 중국은 북방 기마 유목민의 속국이었다. 왕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주를 포함한 조공을 해야 했다. 중국 국경 안에서는 왕조의 몰락, 정변, 가뭄 등이 기승을 부렸다. 여차하면 짐 싣고 떠날 수 있는 유목민과 달리 농경민은 농사를 못 지으면 굶어죽었다.
중국 역사에는 유난히 사람을 잡아먹는 이야기가 많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어 성 안 인구가 반으로 줄어들었다는 기록은 끝도 없이 나온다. 배고프면 사람도 잡아먹는데 개라고 못 잡아먹을 이유가 없었다.
<2018년 굶주림에 인육을 먹은 베네수엘라인>
인도의 불가촉천민, 일본의 에타족, 조선의 가장 비천한 계층, 스위스 산간 지방의 가난한 사람들, 보불 전쟁 당시 파리 시민들은 개고기를 먹었다. 21세기인 2018년 2월 식량난이 극심한 베네수엘라에서도 17세 소년을 죽여서 인육을 먹은 사건이 있었다. 고립된 인간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되면 개든 사람이든 잡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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