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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일루미나티의 몰록? 고대 중동 다문화 짝퉁 악마

유목사

산타클로스가 악마 몰록?


음모론자들 주장에 의하면 일루미나티 모임에서 사용하는 마약은 고문한 신생아 피라고 한다. 또 그들은 몰록이라는 뿔 달린 악마를 숭배한다. 몰록은 숫소와 인간을 합친 형상이다. 읭? 어디서 들어봤다. 머리에 뿔이 있고 수소의 신이야. 그래, 치스 칸. 시베리아 종교권의 산타클로스.


<어린아기를 불 구덩이 속에 집어 넣는 몰록 숭배>


그런데 왜 시베리아에서는 위대한 숲의 신이던 치스 칸이 중동 사막 쪽으로 가서는 아기들 잡아먹는 악마가 되었냐? 결국은 뽕이 아니었을까? 일루미나티라는 사람들이 아기 피에 섞인 마약을 드링킹하는 것처럼 중동 사막 지대로 이동한 유목민에게는 부작용 없는 순록 오줌 마약이 없던 거지. 


<중동에 가서 악마화 되기 이전 시베리아의 대샤먼 치스 칸은 수소의 신이었다>


일루미나티가 짝퉁 지배자인 것처럼 몰록도 짝퉁 지배자다. 짝퉁이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동 사막 악마도 다문화야. 섞였어. 앞서 순록 먹이가 줄어들자 툰드라 유목민은 아래로 이동을 했고 거기가 시베이라 침엽수림이라고 했다. 왕은 여전히 샤먼이었다. 샤먼은? 


고대 다문화 짝퉁 악마 몰록


순록 오줌에 섞인 마약을 먹고 뿅 간 상태에서 신을 만나 모든 일을 정해. 근데 순록이 없어. 그래서?  순록 뿔이라도 머리에 쓰고 왕권을 과시했다. 신라금관처럼 말이다. 스키타이 양식도 순록 뿔에서 나왔다고 본다. 자, 그래, 순록 뿔은 어떻게 왕관으로 커버친다 쳐. 


<순록 뿔을 닮은 신라 금관은 왕비가 썼다>


근데 마약은 어떻게 해?  마약을 먹어야 신을 만나는데? 시베리아 지대에서는 그나마 수월했어. 광대 버섯으로 대체할 수 있었으니까. 순록 오줌은 없었어도 빨간 광대버섯이 있었다. 애초에 순록이 하얀 이끼에 섞인 광대버섯을 먹고 싼 오줌에 마약 성분이 섞였다는 설이 있다. 


<광대버섯을 먹고 가사 상태에 빠져 신을 만나는 시베리아 샤먼>


이 사진은 시베리아 지역 샤먼(무당)이 광대버섯을 먹고 가사 상태에 빠지는 모습이다. 광대버섯은 시베리아 침엽수림에서 주로 자생한다. 샤먼은 광대버섯을 먹고 뿅 간 상태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다.  산타클로스가 왜 빨간 모자를 썼을까? 


산타클로스는 왜 빨간 모자를 썼을까? 


얘들아, 산타클로스 환상을 깨서 미안.  빨간 광대버섯 먹고 뾰로롱 간 상태에서 순록을 타고 하늘을 둥실 나는 환상을 본 게 아닐까? 아주 강력한 치스 칸을 믿던 시베리아에서 그 아래 스텝 지대로 이동하면서 순록 유목 역사가 확 바뀌었을 거다. 왜냐? 



<시베리아 산 광대버섯에는 마약 성분이 있다고 한다>


쨔잔~거기부터  순록 유목민에서 기마 유목민으로 바뀌었거든. 비옥한 스텝 지대에는 야생마들이 떼로 살고 있었어. 그 옆에는 양 떼도 뛰놀고 있었겠지. 풀이 있는 곳에는 말과 양이 살아. 말과 양을 노리는 늑대도 살겠지. 늑대는 툰드라 문화권의 곰처럼 신으로 추앙돼. 


<스키타이를 제외한 모든 기마 유목민의 본거지인 몽골의 오논 강변은 말을 방목하기 최적의 조건이다, 출처 : 주채혁 교수>


늑대가 있는 곳에는 개도 있어. 말과 양을 치려면 개가 필요하잖아. 늑대와 개는 거의 같은 취급을 받았고(유전자가 거의 같으니까) 특정 개는 특정 부족의 상징이 된다. 그 부족이 패권을 잡으면? 신성한 왕권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티베트탄 마스티프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말 떼만 차지하면 양 떼(식량)와 티베트탄 마스티프는 그냥 다 따라온다. 왜? 말 떼를 장악해서 권력(무력)을 가지면 부(양 떼)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야. 말이 곧 군사력이야. 유목 문화에서는 무조건 힘센 놈이 진리거든. 그래서 적과 친구를 나누는 게 중요한 거다. 


말 떼만 잡으면 천하를 얻는다


동맹을 맺은 특정 부족과 부족만 결혼하는 근친혼이 발달한 이유다. 아무튼 어떻게 돼?스텝 지대를 두고 쟁탈전이 벌어져. 하고 많은 유목 부족 중 이 스텝 지대를 차지하는 부족이 유목 왕국을 건설하게 되니까. 시베리아 아래로 고산 사막지대, 중동 사막 지대 일부까지 다 먹는다고 보면 돼


<흉노가 개와 함께 말 달리던 시절, 중국 한나라는 개를 잡아먹었다, 2세기>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개고기 먹는 중국까지 먹을 수 있어. 동서 물류의 통로를 딱 먹는 거니까. 요새로 따지면 석유 수송로를 먹는 거나 마찬가지. 중국과 로마의 비단 교역을 중간에서 딱 흉노가 관리한 거만 봐도 이 스텝 지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지? 


<개 머리를 한  새를 새긴 청동기 도끼가 나온 지역은 스키타이의 활동무대,  기원전 11~7세기>


여기를 차지한 역대 부족, 즉 스키타이, 흉노 등 부족 이름이 거대한 유목 왕국 이름이 되는 거다. 당연히 개의 가치도 올라가지. 말을 잘 쳐야 군사력이 좋아지고 군사력이 좋아져야 모든 걸 가질 수 있는데 말은 누가 쳐? 개. 말과 개는 한 세트. 말은 유목 귀족의 상징. 마스티프가 유목 왕조에서 옥새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 이유다. 


<스키타이, 흉노, 투르크, 에트루리안의 이동>


주채혁 교수님의 지도를 다시 보자. 시베리아에서 내려와서 서쪽 스텝 지대가 스키타이, 동쪽 스텝 지대가 흉노의 본거지다. 자세히 족보를 파고들면 48색 연필로도 모자라니 대충 크게 네 가지 색으로 분류해 보자. 빨간색 화살표를 스키타이, 파란색 화살표가 흉노. 보라색은? 빨간색 찍고 유턴해서 파란색으로 향하는 투르크. 


말, 교역, 개는 귀족의 상징 


노란색은? 빨간색 찍고 중동 사막으로 갔다가 그리스- 로마에 진출한 에트루리안. 그러니까 같은 툰드라-시베리아 조상에서 나왔는데 스키타이, 흉노, 투르크는 기마 유목민이 된 거고 에트루리안은 해양 유목민이 된 거다. 결국 같은 유목민이고 같은 특징을 지닌다. 


<그리스 신을 새긴 은제 장식물이 흉노 세력권에서 나왔다,  기원전 1세기~ 기원후 1세기>


그렇기 때문에 중앙아시아와 중동,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 지역에서 말, 교역, 개는 왕족(혹은 귀족)의 상징이자 때로는 신의 대리인이다. 당연히 이 지역과 이 지역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럼 중동 사막 지역과 카르타고, 미노스 등에서 짝퉁 산타클로스 몰록은 왜 생겼느냐? 


<암소를 태운 배,  이집트 혹은 시프러스, 혹은 페키니아, 기원전 1340-1200년>


해양 유목민 에트루리안이 현지 토착민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광대버섯을 조달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부작용 없는 신성한 마약을 구할 수 없으니 일단 짝퉁 마약이라도 먹어야 했고 그게 아이들 피가 아니었을까 싶다. 결론은? 일루미나티가 섬긴다는 악마 몰록이 그 몰록이라면 짝퉁이다. 


47. 한 큐에 신선이 될 수 있던 한국 도교

한국 속 유목사

고려 유물을 보면 유독 청동 거울이 많다. 잘 닦으면 또렷이 보이는 은제 거울도 아니고 청동 거울이다. 청동기 시대부터 거울은 왕을 상징하거나 제사에 사용했다.

교역을 많이 한 고려 시대 청동 거울도 제사에 사용했다. 배를 타기 전 무사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반드시 청동 거울을 바다에 던졌다. 청동 거울을 던지던 고려의 제사는 조선 시대 제사와는 다르다.

<황비창천명형 청동 거울,  고려, 918~1392>

유교가 한반도에 들어오기 이전 고대부터 존재한 한민족 고유의 도교와 무교, 불교가 합쳐진 형태의 제사라고 본다. 조선 지배층은 전통 도교 뿐 아니라 1392년 조선 건국 이전의 역사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조선 지배층에게 반만 년 역사 중에 단군은 중국에게 가르침을 받은 기자 조선부터 시작된다. 고구려·백제·신라·통일신라는 존재조차 하지 않은 역사이고 고려는 역사에서 지워버릴 만큼 형편없는 나라였다.

<은제 신선 경치 무늬 화장품 그릇, 고려, 숙신공주 묘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이런 식으로 4,500년을 날려먹고 개고기는 전통이니까 먹으라는 헛소리를 했다. 열에 서넛이 굶어죽는 흉년에 소작료는 70%나 받아서 챙긴 돈으로 화로에 소고기 구워 먹으면서 말이다. 소시오패스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다수 굶주린 조선 백성들은 기꺼이 개고기를 먹었을까? 고려의 문화와 종교를 보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개고기는 4,500년 우리 역사 내내 강력한 금기였다. 500년 조선 역사 중 극히 일부만이 개고기를 먹었다.

<쌍용문 청동거울, 고려, 918~1392>

대놓고 못 먹으니 복날이면 으슥한 산으로 개를 끌고 가 고대 중국인을 흉내 잡아 먹었다. 그러나 조선 백성은 곧 고려 백성이었다. 인간이란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다.

특히 문화와 금기는 잘 바뀌지 않는다. 작정하고 금기를 버린 조선 지배층이나 1945년 이후 북한, 197·80년대 이후 남한 내 운동권 세력을 제외하고 말이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중국을 추종했다.

<무덤 화상석 중 부엌 그림, 한, 2세기>

1907년 고종의 특사인 헐버트가 남긴 책을 봐도 조선 말기까지 개고기는 가장 비천한 계층이 먹는 음식이었다. 예를 들어 복날 머슴이 개고기를 먹거나 산속에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이 개고기를 먹었다.

조선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다고 외국에 알린 사람들은 산 속에 숨어 있던 외국 천주교 신부들이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조선 중 극히 일부인 천주교 사회에서 개고기 먹는 모습을 본 것이다.  

<개고기를 금지하는 산신도, 조선, 1900~1925년>


조선의 실제 모습은 고려 사회를 참고해 유추해야 하지만 고려는 물론 통일신라와 삼국 시대에 대해서도 제한적인 정보 밖에 얻을 수 없다. 일제가 없애기 전에 조선이 먼저 다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고려에 대한 대표적인 기록은 1123년 송나라 사신 일행으로 고려를 다녀간 서긍이 남긴『선화봉사고려도경』이다. 나는 서긍이 일개 수행원이 아닌 송나라 파견한 스파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정도로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매와 같이 날카로운 눈으로 고려 구석구석을 관찰했다. 고려에는 개고기 문화가 존재할 수 없었다.

마니교를 국교로 믿은 위그르가 채식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고려도 채식을 했다. 불교의 영향이다. 정확히는 양나라 무제 식 중국 불교의 영향이다.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 청 왕조 인쇄>

 

불교는 고려의 국교였다. 백제와 마찬가지로 고려에도 살생금지법이 있었다. 왕은 뭔 일만 터지면 살생금지법을 강화했다. 오직 사신이 올 때만 대비해 가축을 키웠다.

짐승을 죽여본 적이 없으니 도살 기술이 엉망이었다. 고기 해체도 못해 내장이 터져 고기 맛이 끔찍했다고 한다. 불교를 믿었고 도살하는 법도 모를 정도로 채식을 하던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었다고 믿기 힘들다.

  

< 신선이 되는 과정을 그린 유송년의 삼생도,남송,12~13세기>

개를 많이 키운 사실 자체가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근거라는 모 논문이 있다. 그 논문이 고려인이 개고기를 먹은 증거랍시고 거론된다. 이게 한국 지식인 수준이다.  

개고기를 금지한 불교를 국교로 믿은 것 외에 고려에는 고구려·백제·신라와 통일신라를 거쳐 발달해온 전통적인 도교가 존재했다. 고려 도교는 조선이 기형적으로 받아들인 중국 도교와 달랐다.

 

불교와 도교의 신 토기, 당, 728년>

고려 도교는 무교(알타이 샤먼)와 불교가 섞인 독특한 종교였다고 생각된다.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시작된 ‘날개 달린 개’를 믿는 빛의 종교가 중국에 도교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중국 도교에서는 신선이 사는 세계는 빛의 세계에 들어가야 영원히 살 수 있었다. ‘날개 달린 새’를 믿는 종교는 중앙아시아 기마 유목 왕조의 종교였다. 고구려·백제·신라는 기마 유목 왕조였다.  

<극락에 있는 부처님을 둘러싼 불새,위그르, 9세기>

이들 왕조가 농경민을 정복해 수 천 년 동안 기마 유목 문화를 정착시켰다. ‘날개 달린 새’를 믿는 빛의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였고 아후라 마즈다 교였으며 마니교였고 경교였다

이름만 다르고 종교는 같다. 아후라 마즈다 교는 몽골의 전통 신앙이다. 고구려인이 시조로 믿은 주몽은 동명왕이다. 주몽(朱蒙)은 명 궁수라는 뜻이다. 동명왕 석상은 몽골 초원에도 우뚝 서 있었다.

 

<몽고 원의 동명왕 추정 석상, 주채혁 교수 제공>


몽골 영토에 존재한 흉노와 돌궐의 태조 이름도 투멘(T’umen), 즉 주몽이다. 개와 늑대 시조 신화를 제외하고도 고구려와 몽골, 흉노와 돌궐, 위그르는 같은 뿌리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즉, 이들은 굳이 신선 세계라는 귀찮은(그러나 아주 흥미진진한) 개념을 추가해서 대중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고구려가 ‘날개 달린 개’를 믿는 빛의 종교의 적자였기 때문이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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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신라가 일본에 개고기를 수출했다고?

한국 속 유목사

2001 개고기 불간섭 선언 이후 한겨레, 오마이뉴스, 중앙일보, MBC 언론이 하나가 되어 주장한 것처럼 우리 조상이 농경민이라면 신라 토우 인형에게는 고대 애니미즘적 의미밖에 부여할 없다


다복을 기원하는 고대 토속 신앙의 상징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신라가 유목 왕조였다면 실제 신라의 문화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행위는 신성한 혈통을 계승하기 위한 신성한 의식이었다. 유목민의 도덕은 농경민과 달랐다


<지난 천 년 간 가장 위대한 인물로 뽑힌 칭기즈칸>


유목민은 일상이 전쟁이었다. 약탈혼도 흔했다. 태어난 아이를 두고 애가 맞아?”라고 따지는 불가능했다. 칭기즈칸 아들 이름은 주치다. 손님이라는 뜻이다. 칭기즈칸 부인이 납치당한 기간에 생긴 아이였다. 


조선 시대처럼 정절을 잃었다고 여자를 죽이고 열녀문을 세워댔다가는 가문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귀한 늑대 피를 이어받은 초원의 왕족이라면 더욱 그랬다그래서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따지기 전에 누가 애를 낳았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수렵도 속 고구려 기마 무사와 개>


부족이 있으면 반드시 왕비 부족이 있는 이유다. 농경민족적 관점에서 보면 용납할 없겠지만 신라는 유목 왕조였다. 신라 아니라 고구려, 백제  지배층은 유목 민족이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왕조가 들어서기  땅에 살았던 원주민은 반농반유목민이거나 농경민이었을 것이다. 신석기 한반도 유적에서 뼈와 돼지 뼈가 발견된것으로 보아  한반도 사람들은 중국 한족처럼 개를 키워 잡아먹을 있다


<경기도 출토 돌도끼, 신석기 시대,국립중앙박물관>


그러나 청동기와 철기 시대가 되면서 북방에서 쓸고 내려온 사람들, 즉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배층은 중앙아시아의 기마 유목민이었다. 스키타이 이래 모든 기마 유목 국가에서 지배층은 말을 타고 전쟁을 하며 노예 계층은 농사를 지었다


돌로 농기구로 농사를 짓던 사람들 눈에는 청동기 무기를 지닌 기마 무사가 전쟁의 신으로 보였을 것이다. 압도적인 군사적 열세에 신석기 농경민은 피지배계층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청동 도끼. 흉노, 기원전 13~10세기>


흉노, 고구려에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존재했다노예층이었다. 지배층은 말타는 무사였다. 말과 개는 세트다. 권력을 동원해야 지을 수 있는 고구려 고분에는 기마 무사와 함께 하는 개가 그려져 있다


 개가 저승가서 먹을 개고기라는 헛소리가 마치 정설처럼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한나라 한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자 고구려가 건국되었다. 고구려 군대 이름은 ‘다물’이다. 옛 땅인 고조선을 찾는다는 뜻이다. 


고구려의 원수인 한무제 눈에는 고구려 무덤 속 개가 도시락처럼 보였겠지만 고구려 고분 주인은 기마 유목민이었다. 들은 반려견이 저승에서 자신들을 지켜주는 보호자라고 여겼다. 


기원전 1세기 경상남도 늑도에서 인간과 나란히 묻힌 무덤이 발견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늑도는 고대 무역항이었다유목민은 육로든 해로든 무역을 한다


<늑도에서 발견된 개 무덤 속  뼈, 한국일보 2016.07.27>


중앙아시아 초원에서는 말을 타고 해상에서는 배를 탄다. 신라의 해상왕 장보고가 해상 무역로를 장악할 수 있던 이유다. 청동기 시대 이후 지배층이 바뀌었고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개숭(배하는)파였다. 


늑대의 피를 받고 신성한 개를 키우는 지배자 앞에서 전처럼 개를 잡아먹을  있을까앞서 신라 왕실은 성골 시대까지 모계 사회였다가 성골 시대가 끝나면서 부계 사회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신라의 유목 전통이 사라지고 중국화가 시작된 것이다


<개고기를 식량과 약으로 먹은 한나라 무제>


신라 왕조는 거의 동안 유지되었다고려까지 따지면 거의 오백년 세월 동안 지배층인 유목 왕조가 지킨  전통을 따랐다. 기마 유목민에게 개는 반려견일 뿐 아니라 죽음을 안내하는 영물이다. 절대 먹어서는 된다


개고기 금기는 동안 우리 민족의 전통으로 전해졌다. 천 세월이다로마 기독교를 제외하고 서양문화를 없듯이 알타이 샤먼을 제외하고 한국문화를 논할 없다. 적어도 신라 천 년 동안 개고기는 먹을 수 없었다. 


<이승만 시대 존재한 개고기 금지법>


역사적 사실이 이런데도 우리 학계와 언론은 마치 뇌수술을 당한 사람처럼 신라에서 개고기를 먹었다는 말만 반복한다. 신라가 일본과 당에 개를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다. 


개는 먹는 외에 다른 용도가 없기 때문에 개를 배에 태워 보낸 신선한 개고기를 배달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단지 개가 배를 탔기  때문에 배의 종착지에서는 개고기를 먹었다는 논리다. 하도 어이가 없어 신라, , 일본, 대표를 모아놓고 삼자 대면을 해야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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