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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왜 성모 마리아는 개를 안고 있었을까?

유럽사

한국 천주교는 천주교 역사 상 유일하게 개고기를 전통으로 인정하며 적극적으로 먹는 조직이다. 원래 천주교에서는 개를 신성하게 여겼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용과 싸우는 개가 그려진 메달 형태의 성체함, 프랑스, 1420년>

유럽사는 곧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역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종교 개혁 이전의 천주교와 종교 개혁 후의 개신교를 설명하면서 유럽사도 함께 알아볼 것이다.

<개고기를 모두 금지하는 세계 5대 종교>

유럽사는 곧 이슬람사, 미국사와도 이어진다. 복잡다단한 이 역사들 속에서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개고기 안 먹는다. 한국 기독교만 먹는다.”


<성모마리아와 예수와 개, 1590년, 독일>

유럽 예술에서는 성모마리아와 개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종교 개혁 전과 후 형식이 조금 달라진다. 종교 개혁 전에는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혹은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와 강아지 혹은 성모마리아와 개가 함께 묘사되었다.


<개를 안은 성모마리아 청동상, 14세기(처음에는 15세기로 알려졌으나 14세기), 프랑스>

이 성모마리아 상은 아예 개를 안고 있다. 어린 양이 아니라 당나라 황실 여인 신발을 물어뜯던 것처럼 작은 랩독이다. 심지어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성모 마리아는 임신을 한 상태다


<개를 안은 마리아 청동상 측면, 14세기, 프랑스>

다른 방향 옆모습을 보면 옷 주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주름이 없는 쪽은 확실히 그렇다. 앞서 설명했듯 중세 시대는 카톨릭 독재시대였다. 그 날 입은 옷 색깔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잡혀가 화형을 당할 수 있을 정도로 엄격했다. 


<개를 안은 여자와 왕이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프랑스, 14세기,>

그런 중세 시대에 성모마리아가 개를 안고 있다는 것은 개와 성모마리아의 연관성을 카톨릭 교황청이 인정했다는 의미다. 개는 중세 시대 거울 케이스에도 자주 등장했다


<개들과 승마하는 여인이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14세기, 프랑스>

보통 구도는 비슷하다개를 안고 있는 여인과 그 여인을 에스코트 하는 듯한 남자가 있다. 중세 시대 피터지는 왕위 계승 싸움 속에서 교황이 인정하는 자만이 왕이 될 수 있었다.  


<개를 안은 여자와 남자가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프랑스, 14세기

개가 새겨진 성체함을 가진 일족은 우위를 차지했다. 여기까지 정리하자면 중세 시대 개가 예수님(신)과 지상의 왕을 상징한 것이다. 교황이 인정한 개의 신성성은 교황의 힘이 몰락한 종교 개혁 후 달라진다. 


<팔 모양 성체함 중 날개달린 개, 1230년,프랑스>

노골적으로 왕의 후견인임을 의미하던 개의 상징성은 친근함으로 바뀌었다. 왕의 대관식에 참여하던 개는 왕과 일상을 함께 하는 반려견으로 그려졌다. 개는 개지만 역할이 조금 달라졌진 것이다.

 

<1515년 즉위한 프랑수와 1세와 여동생 마가레트(여왕 마고) 1827~30년 작품, 영국>

마찬가지로 성모마리아와 개의 관계도 달라졌다. 아기 예수를 낳거나 어린 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 발치에 개가 함께 하는 구도에서 점차 젊은 아가씨와 개 한 마리를 그리는 구도로 바뀌기도 했다


보통 그럴 경우 초상화 제목은 마리아일 경우가 많았다.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실제 여성의 초상화일수도 있고 성모 마리아의 마리아일 수도 있다.


<개를 안은 마리아, 영국,  1777년>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강아지는 너무 많이 알려진 카톨릭의 상징이라 아기 예수를 빼는 방식으로 카톨릭의 종교 색을 없앤 듯하다. 그렇다고 개신교와 동방정교회 등의 기독교에서 개를 무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기독교에서 개는 신성하다. 

 

<Marie Émilie Coignet de Courson와 개, 프랑스, 1769년>

그 이유가 나는 유럽 기독교 문화의 바탕이 된 에트루리안 문화에 있다고 본다. 에트루라인은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개 숭배 신앙을 유럽으로 이어준 아주 중요한 연결 고리다. 


<손에 뱀을 든 날개 달린 천사 혹은 악마, 에트루리안, 기원전425~400년>


중세 시대 성모마리아와 개를 새긴 거울 케이스를 다시 보자. 이와 비슷한 거울 케이스가 에트루리안 시대에도 있었다. 에트루리안 시기의 거울 케이스에도 개가 등장한다.


<신을 경배하는 개가 새겨진 거울 케이스, 에트루리안, 6세기 추정> 

기원전 6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에트루리안 거울 케이스 중앙에는 신을 향해 뛰어오르는 개가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남자는 지팡이를 들고 있다. 지팡이를 든 남자? 성 크리스토퍼이다. 


<성 크리스토퍼를 조각한 성체함, 프랑스, 1375–1425년>

성 크리스토퍼는 보통 예수님를 어깨에 메고 지팡이를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로마 로물루스 형제에 의해 지배되기 전 그리스와 로마 지역에 제국을 세운 에트루리안의 기원은 시프러스인 듯 하다


<날개 달린 개 신앙이 유럽에 유입된 과정>

나중에 그리스로마 신화를 설명하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 중 개와 함께 묘사되는 신은 모두 시프러스 섬에서 출신이다.  


<거울 뒷면에 새겨진 에로스와 테우트라스 왕의 화해, 에트루리안, 기원전 4세기 추정>


에트루리안 지배층은 또한 터키(소아시아) 지역에서 믿은 낭두독(개 머리 깃발, 날개달린 개)을 믿었다. 낭두독은 지금의 터키와 당나라 시대 돌궐과 위그르에서 왕을 상징했다. 지상의 왕은 날개달린 개였다.


39. 아르미안의 네 딸들 속 '개 머리 새'

종교

여불위가 진시황 아버지라면 진시황도 흉노족일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문란한 성생활으로 악명 높은 진시황 엄마는 억울하다. 

왕성한 성생활을 통해 자손을 많이 남기는 것은 기마유목민의 미덕이었다. 그래서인지 진시황 시대 유물을 보면 티베트탄 마스티프 석상이 있다.

 <진 왕조 마스티프 석상>

사자개는 유목 왕조에게는 마치 옥새와도 같다 했다. 이런 개 석상이 중국 진왕조 유적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생뚱맞다.

 
진 왕조가 받은 석상이거나 과거 초나라 영토 안에 사자 개 석상을 가진 유목 왕족이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어느 쪽이든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자마자 만리장성을 쌓아 흉노를 열 받게 했다.

 <만리장성>

흉노를 막기 위해 쌓은 만리장성이 흉노의 침입을 더 초래했다. 그 전까지는 겨울이 되어 천랑성(늑대의별 혹은 개의 별)이 뜨면 풀이 얼어 죽어 양 떼가 굶주린 흉노족이 남쪽으로 이동했다.

양을 몰고 이동하다 보니 거기가 중원이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중원을 노리고 양떼를 몰고 내려왔는지 모르지만 흉노는 계절에 따라 초지를 이동하듯 중국을 침입했다.

 

 <청동기 개 머리 새  추정 장식, 한,  기원전 206~서기 220년>

그런데 어느 날 진시황이 장성을 쌓아 길을 딱 막아버린 것이다. 흉노는 만리장성 건설 후 더 기를 쓰고 중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지 못한 중국인은 개와 사람을 잡아먹었다. 빛의 종교 ‘개 새’와 신성한 개에 대해 백날 떠들어 봐야 중국인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은 이유다.
  

<청동기 도끼에 새겨진 개, 세베로오세티아 공화국, 기원전 11세기~7세기>

중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달랐다. 빛의 종교에서 ‘개머리를 한 새’ 는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신이나 신의 대리인, 혹은 왕을 상징한다. 당연히 영원불멸한 존재다.

‘개 새’ 양식이 나타난 지역은 조로아스터교를 믿었거나 영향을 받았다는 의미다. 그 중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지역에서는 불새라는 개념으로 토착화된다.

<날개 달린 남자와 불새가 새겨진 점토 문양, 아케메니아 페르시아 추정, 영국박물관>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라는 순정 만화를 보면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영원불멸의 신인 불새를 믿는다. 실제 페르시아 바빌론에서 발견된 점토를 보면 개 새와 피닉스가 만난다.

고대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지역에서 믿은 불새는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에 한 번씩 인간들 앞에 나타났다가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죽었다 부활하니 영원불멸한 신이다. 조로아스터교의 ‘개 머리를 한 새’는 중앙아시아의 북방기마 유목민에게도 아주 중요한 신이었다.

흑해 연안은 중앙아시아 북방 기마 유목민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다. 늑대 머리를 한 인간을 그린 암석화도 이 지역에서 출토되었다.

<기원전 11세기 개 문양 도끼 출토 지역과 조로아스터 출생 지역>

아마도 이 곳에서 기마 유목민의 모든 역사가 시작된 것 같다. 11세기 흑해 연안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물에는 개가 새겨져 있다. 날개만 없다 뿐이지 개 머리 새와 같은 문양이다. 

개 머리를 한 새를 믿는 조로아스터교와 몽골의 전통 종교는 같았다. 같은 신을 믿었다. 조로아스터교의 최고 신인 아후라 마즈다(개 새)는 몽골의 최고 신인 호르마스트 텡게르다.

<불새가 그려진 직물 일부, 위그르 지역, 8~9세기>

조로아스터는 몽골의 서쪽 지역에서 태어났다. 선비족, 고구려, 돌궐, 위그르 등이 '개 새'(주작)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유다.

한 집안 신이었다가 갈라져 저 쪽으로 가더니 세련된 ‘개 새’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돌궐과 위그르에서는 ‘개 새’를 왕의 깃발로 사용했다. 그게 늑대 머리 깃발이다.

<불새와 함께 하는 부처 입상, 북위, 471년>

왜 뜬금없이 늑대 머리를 깃발로 사용했을까?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이 마치 날개 달린 개(늑대)같다. 투르크의 늑대 머리 깃발은 현재 터키로 이어지고 있다.

스키타이, 흉노, 돌궐, 위그르, 몽골 등이 기록을 남기지 않은데 비해 소아시아와 이란으로 진출한 기마 유목민은 조로아스터교와 ‘개 새’라는 형태로 만들어 유물을 남긴 것이다.

<개 머리 성인 크리스토퍼, 19세기>

로마 제국 시대 시리아에서 예수를 구해준 성 크리스터퍼가 왜 개 머리를 하고 있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소아시아 지역 최고 토착 신인 ‘개 새’가 아기 예수를 구해줬다고 나름 풀어서 설명한 것이다.

‘개 새’로 표현되는 치열한 권력 투쟁도 시리아 바로 앞 바다에 있는 키푸로스 섬의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리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 키푸로스는 현재 터키계와 그리스 계로 분단된 상태다.

<마스티프와 황소 청동기 조각, 키푸로스, 기원전 1340~1200년>

현대도 이렇게 피터지는데 고대에는 더했을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지중해 교역의 중심지인 만큼 키푸로스를 차지하려는 세력들이 많았다.

히타이트, 앗시리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 지중해 패권을 차지한 국가는 반드시 키푸로스를 차지했다. 마치 중앙아시아 비단길에 위치한 호탄과 쿠차 왕국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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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양귀비와 신발 물어뜯는 당나라 황실 개

중국 속 유목사

신라와 밀접한 관계인 당나라에는 개 전용 사원이 있었다고 했다. 이 시기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 양귀비일 것이다. 지난 갑자기 실종이 되어 세계의 관심을 받은 판빙빙이 주연한 양귀비를 보면 궁정 여인이 나오는 장면은 쇄골 아래부터 화면이 잘려있다


제작진은 나름 충실하게 당나라 시대 의복을 고증 했는데 결과물이 너무 외설스러워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거액을 투자한 제작진 측은 화면에서 여성의 가슴 바로 위를 자르는 방법을 택했다

<바둑 두는 당나라 미인, 7~10세기>

따지고 보면 가녀린 판빙빙 몸매 자체가 고증 실패다당나라 시대 여성 복식은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항아리처럼 둥근 몸매와 터질듯이 풍만한 가슴, 통통한 볼을 가진 여인이 미인이었다

당 대 최고 미인 양귀비 자태는 아마 많이 포동포동 했 것이다말타는 양귀비 그림만 봐도 육중하다. 현종이 양귀비에게 푹 빠진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송 시대 그려진 당 황실 연회 그림을 보자.

<양귀비와 현종의 연애를 그린 오대 혹은 북송 시대 그림 10~12세기 >

다른 궁정 여인들은 사랑이 이뤄지길 기원하며 칠월칠석 연회를 즐기고 있는데 양귀비로 추정되는 여주인은 자고 있다. 저 위로 살짝 문을 열어주는 시종들이 보인다. 

한밤중에 현종이 몰래 찾아와 자는 양귀비를 시녀가 깨우는 장면이다. 이렇게 역사에 남을 만큼 티 나게 물고 빨던 현종은 반란군을 피해 도망치던 중에 제 손으로 양귀비를 죽였다

<말 타는 양귀비와 지켜보는 현종, 13세기>

호위부대가 저 여자 안 죽이면 당신 안 데려간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755 도망치던 현종 행렬 그림을 보면 행렬 뒤쪽에 죽은 모습의 현종이 보인다. 방금 양귀비를 죽인 현종이다

행렬 앞에는 주인 없이 빈 안장을 태운 말 한 마리가 있다. 양귀비가 타던 말이다. 호위부대가 결사거부할 만큼 양귀비는 현종 말년에 나라를 망하게 요물로 욕을 먹었다.  

<755년 피난길에 양귀비를 죽이고 도망치는 현종,  남송(1127–1279)>

그런데 정말 나라를 망칠 만큼 사랑했는지 의심스럽다. 그랬다면 가차없이 죽이는 대신 호위부대를 죽이든지(불가능) 양귀비와 같이 자살을 했을 것 같다. 또 만약 그랬다 해도 당나라가 망한 건 양귀비 탓이 아니다

책임은 오너가 지는 법이다. 현종은 무능했고 뒷배인 위그르가 약해지자 국방과 경제가 무너지면서 나라가 망했다신라 선덕여왕에게 나비없는 모란 꽃 그림을 보내 모욕했다는 태종 이세민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소용 없었을 것이다

당나라 전체가 총체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그르와 왕조는 쌍둥이 같은 관계였다당나라 군사는 위그르 기마 부대가 맡았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 군대도 위그르 군대가 주축이 되었을 것이다

경제는 위그르와 한팀인 소그드 상인이 맡았다. 위그르의 거점은 당시 실크로드를 장악한 쿠차왕국과 호탄 왕국이었다. 즉, 당나라의 군사와 경제 거점이 위그르 제국의 수도였다. 당나라는 시작부터 위그르 돌궐 기마부대 도움을 받았다

<실크로드 쿠차와 호탄 왕국에서 활약한 귀족 기마 무사, 6~7세기)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위그르는  왕조를 도와 줬을까? 학자들은 건국 초기 당 황실 세력이 투르크 계 유목 왕족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 왕조에는 황족만 키울 수 있던 사자개가 있었다. 8세기 자유로운 모습의 당 황실 여인을 보자.  

풍만한 자태에 편안한 모습이다. 한 쪽 신발을 벗어 무릎에 걸치고 있다. 자세히 보면 벗어 놓은 신발 옆에 강아지 한 마리가 있고 강아지는 주인 신발을 신나게 물어뜯고 있다. 1300년 전에도 개는 주인 신발 물어 뜯기를 좋아했나 보다. 

<편안한 자세로 앉은 황실 여인과 개, 8세기>

이런 작은 개를 소매 속에 넣을 수 있는 개라 하여 랩독(Lapdog : 소매 개)이라 한다. 당나라 시대 황실 여인 소매 속에서 자란 이 개들은 페키니즈로 추정되는 사자개다. 사자개는 유목 왕조들 사이에서 마치 옥새와 같다 했다. 

당 건국 세력이 사자개를 키울 수 있던 유목 왕족인 것이다.  늑대 머리 깃발 휘날리던 돌궐이 망하고 역시 늑대머리 깃발 휘날리던 위그르가 초원의 패권을 장악하자 당나라도 위그르 밑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당 황실 여인의 신발을 물어뜯는 강아지,  8세기>

변한 것은 종교 외에 거의 없었다현종 들어 당나라는 망하기 직전까지 적이 있다. 때마다 위구르 기마 부대가 출동해 구사일생 살아났다. 대가는 2 필의 비단과 당나라 공주였다.  

시기 강대국이던 티베트가 당나라 장안까지 쳐들어왔을 때도 위그르 기마 부대가 출동해 구해주었다. 대가는 역시 당나라 공주와 비단이었다 밖에도 위그르는 견마무역을 통해 돈을 벌었다

<실크로드의 중심지 고창 왕국 지역을 지나는 당나라 상인 행진 7~8세기  추정>

견마무역은 중국 비단과 초원의 말을 교환하는 무역이다. 장사를 누가 했다? 소그드 상인. 소그드 상인은 누구다? 마니교도. 위그르 국교는 뭐다? 마니교마니교의 근거지는 어디다? 위그르 제국인 쿠차와 호탄. 

당나라 비단은 거미줄처럼 촘촘한 소그드 유통 망을 타고 중앙아시아와 유럽(비잔틴 제국)으로 팔려나갔다 왕조의 모든 국가 시스템이 위그르, 소그드와 얽혀있었다하나가 무너졌고 나머지도 우르르 망했을 뿐이다.  양귀비 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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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위구르의 늑대 머리 깃발과 개고기

유목사

투르크 족이 세운 제국인 돌궐과 위그르 군대는 늑대머리 깃발을 사용했다. 사나운 늑대가 입을 크게 벌리며 포효하는 머리에 술이 늘어져 있어 바람이 불면  마치 용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이는 깃발이다. 


왕들 역시 늑대 머리 깃발을 사용해 자신의 권위를 나타냈다. 유목민들의 거주지인 게르 앞에 늑대 머리 깃발이 꽂혀 있다면 그 게르 안에는 왕이 있다는 의미였다. 


<늑대 머리 깃발 by Omer Toy>


그러므로 늑대 머리 문양이 새겨진 유물은 투르크 계 지배층이 사용했던 것일 가능성이 크다. 늑대 머리 양식은 사자머리를 한 용으로 변형 되기도 한다.

이것이 동양에서는 하늘을 나는 용 문양으로 발전한 듯 하고 서양에서는 투르크 계인 에트루리안이 로마 제국에 지배된 후 사자 문양으로 발전된 듯 하다. 모든 투르크 계에게 늑대와 개는 특별했다. 

<에트루리안 테라코타 주전자 늑대 머리 기원전 550년>

시작은 역시 늑대가 자신들의 시조와 관련되었다는 신화이다. 이 이야기는 최소한 기원전 6세기 경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기원전 2세기 경 오손 왕 곤막이 갓난 아기였을 때 암늑대가 젖을 물려 키웠다는 이야기가 생기기 훨씬 전인 기원전 6세기 경부터 이탈리아 반도의 에트루리안은 늑대 머리 깃발과 동일한 문양을 사용했다. 


돌궐의 부민 카간(Vusun kagan 522) 막내 아들도 오손의 곤막처럼 암컷 늑대가 젖을 먹여 키웠다 흉노에 의해 왕국이 멸망한 홀로 버려진 막내 아들을 암컷 늑대가 구해 젖을 먹여 키웠다

이를 보고 감동한 흉노 왕이 막내 아들을 데려와 빼앗은 부민 카간의 제국을 돌려주었다. 흉노가 멸망시킨 오손의 곡막을 흉노 왕이 거둬준 것과 같은 이야기 구조다. 

<개 혹은 늑대 머리 모양 장식, 흉노, 기원전 3~2세기>

역시 투르크 계인 키르기스 족에게도 늑대 시조 신화가 있다. 사지가 마비된 아이를 부모가 황야에 버리자 암컷 늑대가 데려다 젖을 먹여 키웠다. 아이가 지금의 키르기스 카바 씨족의 선조이다.

카자흐족과 혈연 관계인 나이만족에도 늑대 시조 신화가 있다. 다른 부족의 침입으로 모두 죽고 늙은 남자 혼자만 살아 남았는데 암늑대가 그를 동굴로 데려가 살려주었다.

<터키 종신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1934>

러시아에 사는 투르크 민족인 바르키시 (Bashkirs) 또한 그들이 늑대에서 유래했다고 믿는다. 이처럼 모든 투르크 민족은 늑대 신앙을 믿었고 지금도 여전히 믿고 있다터키의 아버지 스타파파 케말도  ‘푸른 늑대라고 불렸다. 


투르크는 모든 면에서 늑대를 숭배했다. 투르크 인에게 늑대는 수호자인 동시에 다른 세상으로 안내하는 안내자였다위그르의 영웅 오구즈 칸이 원정을 갔을 신비로운 청회색 갈기를 가진 푸른 늑대가 나타나 길을 안내해 주어 승리했다. 

<자니베크 칸.  1375년>

전쟁터에서 패한 위그르 인들이 오도가도 못하고 있을 늑대 마리가 나타나 동굴 안으로 안내했다. 복잡한 동굴 끝에는  드넓은 초지가 있어 위그르 인들은 있었다


몽골 제국 킵차크 칸국의 10대 칸인 자니베크 칸은 늑대 덕분에 카자흐 칸국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늑대가 자니베크 칸의 가슴을 뛰어넘어 늑대의 신통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위그르와 돌궐 군대 깃발에는 항상 늑대 머리가 올라가 있다. 늑대머리 깃발이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조상이 늑대 머리를 하고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늑대 인간은 고대 알타이 지역의 암각화에 등장한다. 

<늑대인간 암각화 by tarihvearkeoloji.blogpost.com >


물론 늑대를 죽이거나 학대하는 인간들도 있지만 늑대가 가지는 신성성은 지금도 투르크 인에게 유효하다.늑대 머리나 늑대 가죽을 뒤집어 쓰는 건 늑대의 힘을 갖고자 하는 행위다. 

위그르 족과 카자흐 족은 늑대의 이빨과 뼈를 호신 부적으로 지니며 삿된 것을 쫓고자 갓난아이 곁에 늑대 이빨과 뼈를 걸어두기도 한다. 

<흉노, 늑대 모양 허리띠, 기원전 3세기>

키르기스 족은 아이가 늑대처럼 건강하고 용감하기를 바라며 태어난 아기를 박제한 늑대 입에 넣었다 꺼낸다. 위그르 임산부는 늑대 가죽 위에서 분만한다. 아이가 용감하게 자란다는 것이다

카자흐 족은 가축을 잃어버렸을  늑대 힘줄을 태우면 도둑이  사지에 경련을 일으켜 잡을  있다고 한다그런데 늑대를 신으로 숭배한  지역에서도 개고기를 먹는다는 신문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다

 

<과거 투르크 문화권인 아제르바이잔 우표.1996>


역사 이래 늑대 신앙을 믿고 창세기 신화에 개가 인간의 생명의 은인으로 등장하는 투르크 문화권에 개고기를 먹는 문화는 존재할 없다. 곳에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스탈린 시대 강제 이주를 당하고 혹독한 기아를 경험한 고려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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