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속 유목사

30. 양귀비와 신발 물어뜯는 당나라 황실 개

AnDant 2019. 1. 12. 12:00

신라와 밀접한 관계인 당나라에는 개 전용 사원이 있었다고 했다. 이 시기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 양귀비일 것이다. 지난 갑자기 실종이 되어 세계의 관심을 받은 판빙빙이 주연한 양귀비를 보면 궁정 여인이 나오는 장면은 쇄골 아래부터 화면이 잘려있다


제작진은 나름 충실하게 당나라 시대 의복을 고증 했는데 결과물이 너무 외설스러워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거액을 투자한 제작진 측은 화면에서 여성의 가슴 바로 위를 자르는 방법을 택했다

<바둑 두는 당나라 미인, 7~10세기>

따지고 보면 가녀린 판빙빙 몸매 자체가 고증 실패다당나라 시대 여성 복식은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항아리처럼 둥근 몸매와 터질듯이 풍만한 가슴, 통통한 볼을 가진 여인이 미인이었다

당 대 최고 미인 양귀비 자태는 아마 많이 포동포동 했 것이다말타는 양귀비 그림만 봐도 육중하다. 현종이 양귀비에게 푹 빠진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송 시대 그려진 당 황실 연회 그림을 보자.

<양귀비와 현종의 연애를 그린 오대 혹은 북송 시대 그림 10~12세기 >

다른 궁정 여인들은 사랑이 이뤄지길 기원하며 칠월칠석 연회를 즐기고 있는데 양귀비로 추정되는 여주인은 자고 있다. 저 위로 살짝 문을 열어주는 시종들이 보인다. 

한밤중에 현종이 몰래 찾아와 자는 양귀비를 시녀가 깨우는 장면이다. 이렇게 역사에 남을 만큼 티 나게 물고 빨던 현종은 반란군을 피해 도망치던 중에 제 손으로 양귀비를 죽였다

<말 타는 양귀비와 지켜보는 현종, 13세기>

호위부대가 저 여자 안 죽이면 당신 안 데려간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755 도망치던 현종 행렬 그림을 보면 행렬 뒤쪽에 죽은 모습의 현종이 보인다. 방금 양귀비를 죽인 현종이다

행렬 앞에는 주인 없이 빈 안장을 태운 말 한 마리가 있다. 양귀비가 타던 말이다. 호위부대가 결사거부할 만큼 양귀비는 현종 말년에 나라를 망하게 요물로 욕을 먹었다.  

<755년 피난길에 양귀비를 죽이고 도망치는 현종,  남송(1127–1279)>

그런데 정말 나라를 망칠 만큼 사랑했는지 의심스럽다. 그랬다면 가차없이 죽이는 대신 호위부대를 죽이든지(불가능) 양귀비와 같이 자살을 했을 것 같다. 또 만약 그랬다 해도 당나라가 망한 건 양귀비 탓이 아니다

책임은 오너가 지는 법이다. 현종은 무능했고 뒷배인 위그르가 약해지자 국방과 경제가 무너지면서 나라가 망했다신라 선덕여왕에게 나비없는 모란 꽃 그림을 보내 모욕했다는 태종 이세민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소용 없었을 것이다

당나라 전체가 총체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그르와 왕조는 쌍둥이 같은 관계였다당나라 군사는 위그르 기마 부대가 맡았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 군대도 위그르 군대가 주축이 되었을 것이다

경제는 위그르와 한팀인 소그드 상인이 맡았다. 위그르의 거점은 당시 실크로드를 장악한 쿠차왕국과 호탄 왕국이었다. 즉, 당나라의 군사와 경제 거점이 위그르 제국의 수도였다. 당나라는 시작부터 위그르 돌궐 기마부대 도움을 받았다

<실크로드 쿠차와 호탄 왕국에서 활약한 귀족 기마 무사, 6~7세기)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위그르는  왕조를 도와 줬을까? 학자들은 건국 초기 당 황실 세력이 투르크 계 유목 왕족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 왕조에는 황족만 키울 수 있던 사자개가 있었다. 8세기 자유로운 모습의 당 황실 여인을 보자.  

풍만한 자태에 편안한 모습이다. 한 쪽 신발을 벗어 무릎에 걸치고 있다. 자세히 보면 벗어 놓은 신발 옆에 강아지 한 마리가 있고 강아지는 주인 신발을 신나게 물어뜯고 있다. 1300년 전에도 개는 주인 신발 물어 뜯기를 좋아했나 보다. 

<편안한 자세로 앉은 황실 여인과 개, 8세기>

이런 작은 개를 소매 속에 넣을 수 있는 개라 하여 랩독(Lapdog : 소매 개)이라 한다. 당나라 시대 황실 여인 소매 속에서 자란 이 개들은 페키니즈로 추정되는 사자개다. 사자개는 유목 왕조들 사이에서 마치 옥새와 같다 했다. 

당 건국 세력이 사자개를 키울 수 있던 유목 왕족인 것이다.  늑대 머리 깃발 휘날리던 돌궐이 망하고 역시 늑대머리 깃발 휘날리던 위그르가 초원의 패권을 장악하자 당나라도 위그르 밑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당 황실 여인의 신발을 물어뜯는 강아지,  8세기>

변한 것은 종교 외에 거의 없었다현종 들어 당나라는 망하기 직전까지 적이 있다. 때마다 위구르 기마 부대가 출동해 구사일생 살아났다. 대가는 2 필의 비단과 당나라 공주였다.  

시기 강대국이던 티베트가 당나라 장안까지 쳐들어왔을 때도 위그르 기마 부대가 출동해 구해주었다. 대가는 역시 당나라 공주와 비단이었다 밖에도 위그르는 견마무역을 통해 돈을 벌었다

<실크로드의 중심지 고창 왕국 지역을 지나는 당나라 상인 행진 7~8세기  추정>

견마무역은 중국 비단과 초원의 말을 교환하는 무역이다. 장사를 누가 했다? 소그드 상인. 소그드 상인은 누구다? 마니교도. 위그르 국교는 뭐다? 마니교마니교의 근거지는 어디다? 위그르 제국인 쿠차와 호탄. 

당나라 비단은 거미줄처럼 촘촘한 소그드 유통 망을 타고 중앙아시아와 유럽(비잔틴 제국)으로 팔려나갔다 왕조의 모든 국가 시스템이 위그르, 소그드와 얽혀있었다하나가 무너졌고 나머지도 우르르 망했을 뿐이다.  양귀비 탓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