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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54. 왜 조선족은 개고기를 먹게 되었나?(1)

중국 공산당

조선족은 현재 중국에서 개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집단이다. 그들이  언제부터 개고기를 먹게 되었는지, 조선족과 한국의 개고기 식용 문화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1. 청 왕조에는 개 도살 금지법이 있었다. ? 청 시조 누르하치의 생명의 은인이 개였다.

<도광제(1820~1850년)의 정귀비와 육황자, 청>

2. 중국 역사 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지배한 만주족은 채 백만 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인원만 만주에 남겨두고 중국 대륙으로 모두 이동해 중국을 다스렸다.

3. 청 왕조의 성지인 만주는 사람이 살지 않는 보호 구역이 되었다만주 출입 금지가 풀린 것은 1911년 청 왕조가 망한 후였다그전까지 만주는 허허벌판이었다.

<조선의 고종, 청의 서태후, 일본의 메이지 천황, 1905~1909년>

4.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청나라가 조선의 지배력을 상실했다. 일부 조선인 독립문을 세워 일제의 승리를 축하했다.


5. 1910년 한·일병합으로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조선인은 조선 계 일본인,  일본인이 되었다.

<독립문, 조선, 1904년>

 

6. 1911년 청 왕조 멸망하자 영국은 청 황실 개를 납치해 품종개량을 해서 지금의 시추와 페키니즈, 라사압소로 만들었다.  만주족도 고향인 만주로 돌아갔지만 보호자(지배층)가 없었다

 

7. 만주족과 조선인(주로 독립운동가), 조선 계 일본인(조선인), 일본인(주로 독립군 잡는 순사), 중국 공산당, 중국 국민당 등이 섞여 있는 만주는 무법천지였고 언제든 갈등이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세 살 무렵 푸이의 사진, 청, 1909년>


8. 조선의 독립운동가는 만주를 거점으로 중국에서 독립운동 했다. 일제를 피해 혹은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조선백성들 중 일부도 만주로 이동했다.


9. 청 멸망 후 중국에서는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싸우는 내전이 발생했다만주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만주는 여전히 무법천지였다.

<도광제와 황실 가족들과 노는 페키니즈, 청, 1899년 11월 30일>


10. 중국공산당, 국민당 모두 청 왕조를 증오했다. 그래서인지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 개고기를 먹었다모택동의 붉은 군대(공산당)의 경우 부족한 군량미 대신 먹였을 가능이 높다. 얘네들은 중국 내륙 산악 지대로 쫓겨가 아주 생고생을 하며 국민당과 싸웠다. 자금과 군수품이 풍부한 국민당 군대까지 개고기를 먹은 건 청 왕조에 대한 반발심이 크다.


11. ·송 이후 이후 중국 대륙에서 개고기는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그 많은 중국인 중 개고기는 거지나 먹는 음식이었지만 청 왕조 멸망을 계기로 중국에서 개고기 식용 문화가 되살아났다.  

<대만 원주민의 사냥 모습, 1750년>

12. 중국 공산당에 패해 중국에서 쫓겨나 정착한 대만을 점령한 중국 국민당은 대만에서도 개고기를 먹었다. 국민당이 학살한 대만 원주민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 같다. 대만에서 개고기가 금지된 것은 국민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후이다. 대만은 현재 아주 강력한 개고기 금지법을 실행하고 있다

13. 1931 여전히 무주공산으로 남아 있는 만주를 지배하기 위해 일제가 일으킨 자작극이 남만주 철도 사변이다. 일제의 주력부대인 관동군은 만주 사변을 계기로 만주 지역을 점령한다

<남만주 철도 사태를 조사하는 일본 전문가들, 1931년 9월>

 
14. 만주는 더럽게 춥다. 추위에 약한 일본군이 만주에서 견딜 수 있도록 일본군은  방한용 군복을 만들어야 했다일제는 조선 개의 가죽을 이용하기로 한다. 견피주식회사를 통해 묶어 놓은 개와 진돗개 외의 조선의 모든 개는 학살되었다. 이 때부터 한국인에게는 개를 묶어 놓아야 살릴 수 있다는 트라우마가 생긴다.

15. 신라시대 왕족만 키울 수 있던 신성한 삽살개는 만주 일본군 군복이 되어 멸종되었다

<일제에 의해 도살되기 직전의 조선 토종 개, 1941년>

16. 1932년 청 왕조 마지막 황제 푸이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운 일제가 만주에 만주국을 세웠다괴뢰국이라는 비웃음을 당했지만 어쨌든 법적으로 만주는 청 황실 소유였고 볶아 먹든 지져먹든 푸이 마음이었다. 이때부터 만주인은 일본인이었고 일본인은 조선인이었다. , 만주족 = 일본인 = 조선인 이 된다.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이들과 싸웠다.


17.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일제는 만주국에 일본인과 조선인을 대규모로 이주시켰다. 조선인은 일본인이었으니 공식적으로 만주로 이주해 간 사람들은 모두 일본인이다. 주로 조선 계 일본인이 조선족의 조상이다.

<광복군의 이범석 장군과 개, 1920년>


18. 조선족 즉, 일제 시대 조선계 일본인은 왜 개고기를 먹게 되었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평안도나 황해도 지역 조선인이 만주로 많이 이동했다. 열명에 한 명이 굶어죽던 조선 시대에도 가장 가난하고 척박한 지역으로 악명높은 이 지역은 양반조차 개가죽으로 갓을 만들어 쓴다고 조롱을 당했다. 조선에서도 가장 개고기 친화적인 지역이기는 했다.

19. 하지만 만주의 조선족이 본격적으로 개고기를 먹게 된 것은 중국공산당과 관련 있다.

51. 조선 공주, 청 황실의 정비가 되다

조선

효종이 송시열의 바지사장이 된 이유는 조카 대신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약점이 많았다. 그래서 효종이 죽고 대비가 상복입는 기간을 두고 피터지며 싸워야 했다.

광해군이 쫓겨나지 않았다면? 소현세자가 죽지 않았다면? 조선 역사는 달라졌을 테지만 청 왕조 3대 황제가 될 뻔한 섭정 왕 도르곤이 돌연사 하지만 않았다면 조선 역사는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앉은 개를 새긴 인장,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기원전 700~550년>

17세기 망하는 대신 운 좋게 살아난 조선 왕조에게 가장 거슬리는 상대는 역시 청나라였다. 이 시기 청나라와 조선의 가장 큰 차이는 개고기로 대변되는 정체성이었다. 

청 태조 누르하치는 죽을 뻔한 위기에서 개가 목숨을 살려줘 훗날 청 왕조를 세울 수 있었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과 같은 이야기 구조다. 신성한 개가 하늘이 정한 새 지도자(황제)를 선택했다는 소리다.

<당 황실 여인의 신발을 물어뜯는 랩독(소매 개), 8세기>

누르하치는 개를 죽이지 말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개를 사랑했다. 신발 물어뜯은 당나라 황실 개와 마찬가지로 청 황실에도 황족만 만질 수 있는 사자개(페키니즈, 시추, 라사압소 등)가 있었다.

황족 외에 이 개들을 보는 사람은 죽였다. 청나라에서 개를 죽이는 건 불법이었다. 개고기는 당연히 존재할 수 없었다. 똑같이 신농이 쓴 『본초』에서 시작된 한의학이었지만 명나라와 청나라 판 『신농본초』에는 주석이 달려 있었다.

 <개고기 조리법을 쓴 안동 장 씨의 음식디미방, 조선, 1670년>

"고대에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은 먹는 것조차 부끄러워진 개고기" 라고 말이다. 소현세자와 세자빈, 세손들이 줄줄이 죽은 후 효종으로 즉위한 전직 봉림대군은 백성들에게 개고기를 먹으라고 장려했다.

특히 『본초』의 99%를 베낀 『동의보감』에 의하면 개고기는 만병통치약이었다. 이렇게 다른 조선과 청이었지만 알고보면 긴밀하게 엮여 있었다. 청나라에서는 2대 황제 홍타이지의 동생인 도르곤이 섭정을 했다.

<청 태조 누르하치의 초상

누르하치가 가장 사랑한 아들이자 무공이 가장 뛰어났다는 도르곤은 효종에게 조선 공주를 자신의 정비로 맞고 싶다는 청혼을 했다. 효종은 한나라 유방이 양녀를 흉노 왕에게 시집보낸 것처럼 신하의 딸을 양녀 삼아 도르곤에게 보냈다.

한나라 공주는 중전(좌부인)이 될 수 없었다. 아들도 정식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엄마가 왕비족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효종의 양녀는 도르곤의 정실(적복진)이 되었다. 적복진이 되었다는 것은 아들이 정식 후계자가 된다는 의미다.

<건륭제 황후의 초상, 청, 19세기 >

또 역대 청나라 황후와 같이 이런 초상화를 그릴 자격이 있었다는 뜻이다. 모든 기마 유목 왕조에게는 정실부인이 될 수 있는 왕비 부족이 있었다.

‘황제의 딸’이나 ‘미월전’ 같은 청 왕조 시대 드라마를 보면 황제는 끊임없이 수녀를 선발해 후궁을 채워 넣는다. 그 많은 수녀들이 모두 왕비 부족에서 고르고 골라 보낸 여인들이었다.

 

청 왕조 시대 적복진(황후)이 된다는 것은 황후 부족이 권력을 얻는다는 뜻이었다. 도르곤은 조선 공주가 데려간 궁녀까지 측복진(후궁의 품계)으로 삼았다. 

아내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딱 뛸 일이겠지만 황실 내명부의 권력 투쟁 관점에서 본다면 정실의 시녀를 후궁으로 삼는 건 정실에게 힘을 실어주는 배려였다. 같은 부족의 두 여자가 한 편을 먹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사냥감을 모는 사냥 개를 그린 호렵도, 청, 19세기>

그런데 암살을 당했는지 진짜 사냥을 갔다가 말에서 떨어죽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도르곤은 섭정이 된 후 얼마 후 요절했다. 르곤이 장수했다면 17세기 이후 조선에는 고려 말 기황후 일족을 능가하는 새로운 권력층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인조와 조선 지배층에게는 아주 다행스럽게도 도르곤이 죽으면서 조선 공주도 청 황실에서 찬밥이 되었고 조선에 돌아온 후 환향녀 취급을 받으며 아주 비참하게 살다 죽었다.

 

<사자 개를 조각한 수정 인장, 청, 17세기>

누르하치가 처음 후금을 통일하고 조선에  통교를 청했을 때는 형제의 나라로 외교를 맺자고 했다. 병자호란에서 패한 후 외교 관계는 군신 관계로 격하되었다. 

 
명 왕조와 청 왕조의 조공관계는 분명히 다르다. 명 왕조는 조공 관계의 나라를 형제의 관계니, 군신의 관계니 하고 나누지 않았다. 똑같은 황제국과 제후국의 관계였다.

 

<인장 모양 은제 사자 개 조각상, 청  17세기> 

청 왕조가 조공관계에서 형제의 나라라고 한 것은 기마 유목 왕조 파트너라는 의미였다. 조선도 몽골, 티베트, 위그르와 같이 기마 유목 왕조 동료로 끼어준다는 소리다.

청이 위그르를 응징한 것은 일종의 서열 싸움 같은 거였다. 이런 역학 관계를 모른 인조와 조선 지배층은 오랑캐와 강제로 형제가 될 수는 없다며 전쟁을 불사했다.

<자금성으로 돌아오는 강희제 행렬, 청, 1689>

조선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자유로웠던 고려조차 원이 사나운 공주들을 파견해 지배했다고 억울해했으니 조선이 기마 유목 왕조의 외교 관계에 무지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지한 조선을 상대로 청은 인내심을 발휘했다. 배려를 했다. 병자호란 후 포로 끌려간 소현세자는 사실 상 청 황실은 종친 대접을 했다. 조선 공주는 청 황실 섭정의 정실이 되었다.

<김홍도 모구양자도, 조선, 1745-1806>

만주족의 경우 남자는 얼마든지 첩을 둘 수 있었지만 정실은 언제나 만주족이었다. 만주족이 아니면 만주족과 동일한 수준의 부족 여인이어야 했다. 군신관계로 격하되었을지언정 청 왕조에게 조선 왕실이 그랬던 것이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청 황실이 신라인의 후손이기 때문에 한민족과 동질성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 신라에서 통일신라로,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졌으니 결국 한 뿌리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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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요약] 개숭파에서 개먹파로 한국인 뇌 수술

한국 속 유목사

태초에 두 인간이 있었다. 개 먹는 인간과 개 숭배하는 인간. 개 먹(는 인간)파와 개 숭(배하는 인간)파는 단순한 식성 차이가 아니다. 수 천년 전 중앙아시아와 세계 4대 문명권에서 이는 아주 큰 차이였다. 개 먹는 인간과 개 숭배하는 인간은 절대 같을 수 없었다. 


<스키타이, 개 모양 황금 장식, 기원전 4~3세기>

특히 중아아시아와 중국 역사는 개 먹는 인간과 개 숭배하는 인간들의 투쟁이었다. 그 투쟁에서 우리 조상이 어느 편에 섰느냐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뇌 수술을 당하기 전의 진짜 우리 역사이기 때문이다. 개 먹는 인간은 중국 한족이다. 늑대를 증오하는 민족이다. 


<한 왕조의 강아지 옥조각. 기원전 206년~기원후220년>


개 숭배하는 인간은 중국 한족의 적이다. 천랑성이 뜨면 약탈을 하는 기마 유목 민족이다. 늑대를 숭배하는 민족이다. 스키타이,페르시아로마, 흉노단군 조선, 고구려(백제, 신라)선비통일신라, 돌궐위그르고려, 몽골여진거란청이다. 인종과 시대를 초월해 늑대와 개를 숭배한 이들은 수 천 년에 걸쳐 거대한 기마 유목 문명을 이루었다. 


<고구려 무덤 벽화 백희기악도 중 산책하는 개. 5세기>


20세기 역사학자들은 글을 사용하지 않고 도시를 건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앙아시아 기마 유목 민족이 문명을 이루지 못했다고 정의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21세기인 현재, 발굴된 유물로 판단한 결과 중앙아시아 기마 유목민족이 거대한 문명을 이루었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한다. 


<기원전 2세기 경 시집가는 왕소군을 맞이하는 흉노의 개>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기마 유목 문명이라고 칭하기로 하겠다. 중앙아시아 기마 유목 문명은 텡그리 문명이자 늑대 문명, 개 숭배 문명이다. 왜 그런지를 설명하기 위해 지금까지 어려운 유목사를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당 왕조 강아지 도자기. 7~10세기>


◆ 기마유목 문명의 정체성은 텡그리다.  

◆ 텡그리는 단군이다. 알타이 샤먼이다. 하늘 신앙이다.  절대 신이다. 자연의 섭리이다. 하늘의 선택을 받은 왕이다. 늑대다. 

◆ 기마유목 문명권에서 개는 죽음의 세계를 관장한다. 죽음의 신이다. 

◆ 텡그리의 대리자인 왕(족)은 마치 옥새와 같은 사자개를 키울 자격이 있었다.

◆ 사재개는 티베트탄 마스티프, 페르시안 마스티프, 몽골리안 마스티프, 삽살개, 파사구, 페키니즈, 라사압소, 시추이다. 유전자가 같다. 

◆ 인종과 시대를 초월한 개 숭배 문명권이 존재했다. 이집트와 사나이 반도, 페르시아 만과 이란고원, 로마 제국, 인도 대륙 북부, 알타이- 시베리아 지역, 중앙아시아, 티베트, 위그르, 몽골, 한반도에 이르는 지역이 하나의 벨트로 이어졌다.   

◆ 스키타이페르시아흉노, 로마, 단군 조선, 고구려(백제, 신라)선비통일신라, 돌궐위그르고려, 몽골여진거란청은 공통의 개 숭배 문명권을 건설했다. 

◆ 개 숭배 문명권에서 개고기는 강력하게 금지된다. 


<요나라 무덤 벽화 속 티베트탄 테리어. 907~1125년>


조선 이전까지 한민족은 개 숭배 문명권에 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말기 동학 신자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고, 고종의 특사인 헐버트는 개고기가 조선에서 엄격히 제한된 음식이었다고 했으며, 일제의 조선가축통계를 보면 개는 가축이 아니었고, 1954 이승만 정권 당시 개고기 금지법이 있었다. 


 <고려 지장보살삼존도 중 삽살개. 14세기>


우리 조상은 개먹(는 인간)파가 아니었다. 개 숭(배하는 인간)파였다. 그렇다면 누가 ? ? 우리를 개먹파로 만들었을까? 누가 가짜 개고기 전통론을 만들었을까? 


2001년 12월 중국인이 되고싶어 안달이 난 정치인과 각계 각층의 주요 인사들이 뛰쳐나와 ‘개고기 불간섭 선언’을 하기 609년에 이미 범죄는 시작되었다. 


<청 왕조 티베트탄 마스티프 은 조각. 17세기>


1392년 조선 건국 후 우리 역사는 철저하게 파괴되고 조작되었다. 조선인이 스스로 단군은 오랑캐라고 욕을 했다. 교화되어 중국화 된 지배층 외의 모든 조선인은 짐승이었다. 


마치 중국 공산당의 문화혁명과도 같던 파괴적인 역사 조작의 마무리는 세뇌작업이었다. 개고기는 전통 음식이자 약이라고 백성들에게 강요했다. 그렇게 우리는 개먹파가 되었다. 


<닝마파 불교 수도원에서 신으로 모시는 개. 티베트. 18~ 19세기>


자학과 조작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뇌수술 수준의 역사 조작이 있기 전인 진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신라, 고려의 역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 이전의 우리 역사는 유목사로 분류해야 한다. 이제부터 한국 속 유목사를 알아보자.     


개고기 역사, 개식용 역사, 고구려 개, 고구려중국사, 라사압소, 몽골, 사자개, 삽살개, 시추, 신라 개, , 티베트 개, 페키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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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개 숭배 신앙을 가진 세계 3대 문명

유목사

고대 중국인에게 개는 가축이었다. 황하 문명을 제외한 나머지 문명에서 개는 특별하고 신성한 존재였다메소포타미아 문명인더스 문명이집트 문명은 공통점이 있었다개를 신성하게 여기는 믿음 혹은 신앙이다


<기원전 1894-1866. 메소포타미아의 마스티프 유물>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생긴 페르시아 제국은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믿었다메소포타미아 마스티프는 페르시아 제국의 궁전을 지켰다사실 마스티프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세워진 왕국의 궁궐을 지킨  페르시아 제국이 세워지기 훨씬 이전부터였다.  


<메소포타미아 궁궐 터에서 발견된 마스티프, 기원전 645>


기원전 1894-1866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발견된 마스티프 석상이다. 이건 같은 지역인 북부 메소포타미아 왕궁 터에서 발견된 기원전 645 마스티프 석상들이다 개들은 악마와 악귀로부터 주인의 재산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중국 공산당 지배 이후 혈통이 희석되기 , 마스티프란 이름이 붙은 개들은 놀랍도록 똑같이 생겼다. 왕조 시대 발견된 마스티프 석상, 몽골리안 마스티프, 티베트탄 마스티프, 메소포타미안 마스티프는 같은 개다


<1895년  페르시안 마스티프의 스케치>


 

페르시안 마스티프는 페르시안 역사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기 전인 20세기 초반까지 고대 조상과 같은 모습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티베트탄 마스티프는 사자개라는 뜻이다티베트에서 유래된 시추, 페키니즈, 라사압소 역시 사자개라는 뜻이다

 

<진 왕조 시대의 마스티프 석상>


 

파사구(사자개라는 의미)라는 이름으로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시기는 유목 왕조가 중국 대륙을 지배한 시기와 동일하다. 모든 유목 왕조는 왕족만 키울 있는 개가 있었다




고대에는 오직 선택받은 유목 왕족만 마스티프를 키울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왕조의 정체성이 유목 왕조인지 여부는 나중에 중국 역사와 함께 알아보도록 한다. 진 왕조의 정체성과는 별도로 티베트탄 마스티프는 우리 삽살개와 유전자가 동일하다.


<고구려 벽화 장천 1호분 예불도 중 삽살개 5세기>


살개는 몽골 토종개(몽골리안 마스티프)와 99% 유전자가 동일하다통일신라에서는 오직 왕족만이 삽살개를 키울 수 있었다. 통일신라가 멸망한 후 민가에서 너도나도 신성한 삽살개를 키우고 싶어 했기에 일제 시대 조선에서 가장 많은 개는 삽살개가 되었다.  


<이집트 죽음의  아누비스


북방 기마 유목민을 오랑캐로 여기는 중화 사대주의 사상이 남아있는 현재, 삼국 통일을 한 신라 문무왕의 비석에 새겨진 내용은 여전히 논란이다. 문무왕은 자신이 흉노의 후손이라고 밝혔다. 통일신라 왕족 뿐 아니라 고구려 백제 역시 북망기마 유목 왕조였다. 


고구려가 개를 신성하게 여긴 이유다. 마스티프의 혈통을 이은 개는 오직 유목 왕조만이 있었다. 특별한 마스티프 계열의 개를 키운 유목 왕족 뿐 아니라 사실 모든 북방기마 유목민에게 개는 신성했다. 

<파라오 관 위에 그려진 웨트와웨트 즉 아누비스>


이집트 문명에서 죽음의 신은 이집트 토종개 머리를 하고 있다아누비스다.  아누비스는 웨트와웨프(죽음의 ) 그리스어 이름이다일부 학자들은  아누비스가 자칼이라고 주장한다자칼과 이리와 개의 유전자가 거의 동일하다지만 아누비시는 이집트 토종 개다


<이집트 토종 >


이집트 토종 개는 귀가 크고 쫑긋하게 서는 특징을 보인다. 이집트에는 이런 이집트 토종 개를 신으로 모시는 지역이 많았다. 이는 이집트 고유의 신앙이었다. 이집트인들은 동물과 사람이 함께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동물의 능력은 곧 신의 능력이었다. 


<이집트에서 개를 신으로 모시는 지역>


이집트에 동물 얼굴을 한 신이 존재한 이유이다. 동물들은 신 자체로 여겨져 신전에서 길러졌다. 개는 죽음의 신인 아누비스인 동시에 저승 세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집트 인들은 죽은 후 죽음의 세계에서 여러 단계에 걸친 여행을 하게 된다. 



이 중 신들에게 공물을 봉헌하는 의식에서 개는 무덤주인과 함께 등장한다. 고구려 벽화 속에 무덤 주인과 함께 등장하는 반려견과 마찬가지로 주인의 영혼을 지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벽화에 도살된 개를 매달아 놓았다는 논문은 그러므로 엉터리다. 


<죽은 무덤 주인 부부의 봉헌 의식을 함께 하는 이집트 개, 기원전 2000년 경>


개를 죽음과 관련된 신성한 존재로 여기는 신앙은 시나이 반도로 연결된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인더스 지역과 공유 했을 가능성이 있다.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인더스 문명의 인도에서는 칸도바 신앙을 믿었다.


칸도바는 죽음의 신이자 전쟁의 신으로 개로 변한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개와 함께 다닌다개를 신성하게 여기는 이들  문명은 서로 연결되어 활발한 교역을 했다이집트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활발한 교역을 했고 인더스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서로 영향을 받았다


<바이라바와 개. 14-15세기>


고대 메소포타이아 문명권에서 개를 신으로 모셨다는 사실은 페르시아 제국의 조로아스터교를 없애고  자리를 차지한 이슬람교에서 개를 혐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이슬람교에서 개는 악마다. 


같은 유목 문화의 뿌리를 가졌다 해도 이슬람교는 어딘가 좀 이질적이다.  자신의 뿌리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마치 조선 시대 중화사대주의에 빠져 한민족의 전통을 파괴한 지배층을 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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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일의 낭군님 속 개의 고향은 티베트

유목사

중국에서 황실 견을 키운 시기는 당, 청 왕조   

'백일의 낭군님'라는 드라마가 있다. 귀엽고 재미있고 톡톡 튀는 이 드라마에서 박선도 영감은 한양에서 갓 부임한 신임 현감을 찍어 누르기 위한 장치로 개를 이용한다. 


명나라 황실 출신의 귀한 개라고 소개하며 인사를 하라고 한 것이다. '백일의 낭군님'이 퓨전 사극이긴 하지만 이건 명백한 고증 오류이다. 박선도 영감이 안고 있던 개는  페키니즈로 티베트 개이다. 중국 명 나라 개가 아니다. 



<티베트가 고향인 페키니즈>



차이니즈 스패니얼로 잘못 알려진 이 개는 티베트탄 스패니얼로 티베트가 고향이다.  티베트탄 스페니얼, 패키니즈, 시추, 라사압소 모두 티벳 개이다. 사자개라고도 한다. 사자개는 티베트난 마스티프다. 크기는 다르지만 유전자가 같다. 


티베트 개가 왜 중국 개가 되었을까?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를 점령한 후 티베트 개도 중국 개가 되었기 때문이다. 티베트와 중국 공산당은 개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다른 민족임을 알 수 있다. 


하다하다 청나라 황실 견까지 훔쳐간 중국 




<티베트에서 개는 왕이나 수호신을 상징했다. 현 달라이 라마의 섭정 레팅 린포체와 티베트탄 테리어. 1936년. 출처 tibet.fr>



고대 티베트에서 개는 신이었다. 불교가 지배한 후에도 티베트에서 개는 신성했다. 삼예 수도원에서는 여전히 개를 신으로 모셨다. 티베트를 다스린 지배자들인 승려들은 개와 함께 사진을 찍어 세를 과시했다.  


이에 반해 중국 한족 정부인 중국 공산당은 수 백만 티베트 인을 학살했고 개고기를 먹었다. 티베트 인은 중국 공산당을 가리켜 '개고기 먹는 인간'이라 욕했다 . 북방 기마 유목민족과  중국 한족의 차이다. 



<티베트 소총 부대와 티베트탄 마스티프. 1914년>



중국 역사에서 티베트 개를 황실에서 키운 시기는 당과 청 뿐이었다. 송 왕조와 명 왕조 때에는 황실에서 티베트 개를 기른 기록이 없다. 그럴 수가 없었다.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티베트 산 개는 어떤 의미에서 옥새와도 같아서 드라마처럼 결코 황실 이외의 사람에게 분양하지 않았다. 페키니즈, 라사압소, 티베트탄 테리어, 티베트탄 스패니얼, 티베트탄 마스티프, 시추 등은 북방 기마 유목 왕족만 만지고 볼 수 있었다. 


티베트 개는 왕의 상징 



<티베트탄 테리어와 티베트 승려. 1938년>



황족과 개 전담 관리 외에 다른 사람이 황실 견을 보기만 해도 사형을 시켰다. 왜? 신성하니까.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북한도 외부인이 김일성 황구(김일성 일가 전용 보신탕을 만들기 위해 품종개량 한 황구)를 보면 죽인다. 


청 황실은 절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1911년까지 중국에는 '개 도살금지법'이 존재했다. 그럼 누가 중국에서 고대 개고기 식용 문화를 되살렸나? 중국 공산당. 


 


라사압소, 페키니즈, 시추, 티베트탄 스패니얼, 티베트탄 마스티프가 북방 기마 유목 왕족 이외의 인간들에게 유출된 것은 청 황실이 망한 후였다. 청 황실이 망하는 순간 황실 사람들은 대대로 금이야 옥이야 길러온 이 개들부터 죽였다.


<영국으로 납치된 티베트탄 스패니얼. 1899년>



미쳐서 그랬던 게 아니다. 신성한 혈통을 외부에 유출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개들은 소유활 수 있는 사람은 (북방기마 유목민 중) 황족 밖에 없었다. 신이 선택한 정당한 소유자가 사라졌으니 개도 죽어야 했다. 


청 왕조가 망하자 영국으로 납치된 시추



선택받은 주인과 신성한 개는 죽어서도 살아서도 하나였다. 고구려 벽화에 주인 무덤을 지키는 반려견들 그림이 많은 이유이다. 그러나 대학살 속에서도 몇 마리가 살아남아 영국 군인들 손에 넘어갔고 영국 황실에 바쳐졌다. 



<요나라 무덤 벽화 속 티베트탄 테리어. 907-1125년>



그 후  개들이 혈통 개량을 통해 현재의 페키니즈, 시추, 라사압소가 되었다. 이 정도로 신성시한 개를 선물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북방기마 유목민의) 황족으로 즉, 같은 지배자로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황금 보검을 선물해 지배권력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이 개들을 선물한 것이다.


페키니즈, 라사압소, 티베티탄 스패니얼은 당 황실과 청 황실 그림으로 남았다. 또 송 왕조 시기 중국 북부를 지배한  거란과 여진 무덤 벽화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거란과 여진  지배층도 (북방 기마 유목민의) 진정한 지배자였기 때문에 이 개들을 기를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비빈들과 함께 하는 도광제(1820~1850년) 페키니즈. 청, 19세기 후반>





명나라 왕자가 쓴 『활인심방』 을 이황이 쓱싹 



'백일의 낭군님'은 조선 시대가 배경이다. 중국의 명 왕조 시기이다. 이 시기 명 황실에서 개를 신성하게 길렀다는 기록은 없다. 대신 명나라 황자 주권은 개고기 술을 연구했다.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주권은 도교서에 심취했는데 당시 중국 대륙에서는 명맥이 사라진 고대 중국 한족 기록인 '개고기 술' 기록을 찾아내 책으로 남겼다. 그 책을 이 황이 저자 이름만 바꿔 표지갈이 출판을 했다. 이황의 후학들이 지금도 해마다 시연한다는 『활인심방』이다. 

 


<당 황실 여인들과 노는 황실견 페키니즈. 당 왕조. 9세기>



『활인심방』이 한국 개소주의 시초이다. 원저자는 명나라 황자, 표절자는 이황이다. 한편, 모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신라에서 일본으로 개를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을 들어 개고기가 될 개를 신라에서 일본으로 보낸 증거라고 했다. 


신라 황실 견 삽살개가 개고기 용?


금 중국과 한국처럼 개고기 밀수선이 쉽게 왔다 갔다하는 줄 착각한 것이다. 해상왕국 신라였지만 고대의 배삯은 지금의 비행기 티켓 값보다 훨씬 비쌌다. 비싼 배삯을 치르며 거래하던 물건들은 금, 은, 인삼, 비단 등 초고가 제품들이었다. 



<청 왕조의 서태후가 왕가의 징표로 루즈벨트 대통령 딸에게 선물한 페키니즈. 1905년>



거금을 주고 배에 태워 일본으로 보낸 개를 고작 개고기로 먹었을 거라는 추론은 신라인과 일본인이 개고기를 먹은 증거가 되었다. 신라에는 청 왕조와 마찬가지로 황실에서만 키울 수 있는 신성한 개가 있었다. 삽살개다. 



북방기마유목 왕조끼리 마치 옥새와도 같이 신성한 개를 주고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망각한채 정신마저 중국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티베트 개는 명나라 개가 되었으며 중국의 개고기는 한국인의 개고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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