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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보드 게임으로 보는 신라인 청나라 조상설

유목사

청나라 황제 건륭제는 자기가 신라인의 후손이라고 했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통일신라 멸망 후 신라인이 중국 북부로 이동해 발해가 있던 지역의 여진족을 통합해 금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후금을 세운 아골타, 12세기>

금나라가 망했다가 17세기 다시 후금을 세웠으니 바로 청나라다. 그렇다면 통일신라 시대까지 왕족만 키울 수 있던 삽살개와 청나라 황족만 키울 수 있던 사자개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황실 개로 보는 통일신라와 금, 청의 관계>


기원전 14세기 키푸로스에서 신성한 개를 믿던 지배 세력이 스키타이와 흉노로 이동했고 흉노는 계속 갈라져 신라와 금, 청나라의 지배층이 되었다는 가설이다. 

모든 기마 유목민이 인종과 언어를 제외하고 같은 문화를 지녔다고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증명을 해보라고? 


<보드 게임을 하는 금나라 여인들, 12세기>

단서는 의외로 사소한 데 있을 수 있다. 보드 게임이다. 12세기 금나라 여인 두 명이 열심히 보드 게임을 하는 모습이 그려진 벽 타일이다. 

이 유물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째, 금나라 여인들의 복식과 배경으로 보아 금나라 지배층은 상당히 발달한 문화를 누렸다는 사실이다.  

<흉노의 보드 게임 판과 말,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적어도 고려와 조선이 욕한 것처럼 개가죽을 뒤집어 쓰고 토굴에 사는 야만인은 아니었다. 두 번 째, 몽골의 흉노 유적에서 발견된 보드 게임 유물로 보아 보드 게임은 적어도 1300년 동안 기마 유목민 사이에서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금나라가 신라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면 통일신라 지배층도 마찬가지로 보드 게임을 하고 놀았을 수 있다. 왜 보드 게임이 기마 유목민의 문화인가? 

<육박 게임을 하는 한나라 여인들, 1~2세기>

흉노와 비슷한 시기 한나라 유물을 보자. 아마도 왕실 여인인 듯한 두 여인이 육박 게임을 하고 있다. 육박은 전한 시대 이후 바둑이 유행하기 전까지 중국 대륙에서 즐긴 게임이다. 


한나라 인은 육박 게임을 하고 흉노인은 보드 게임을 했다. 왜 흉노 사람은 보드 게임을 하고 한나라 사람은 육박 게임을 했을까?   

<중국인이 즐긴 육박과 바둑놀이>

흉노 인이 말을 타고 생활했기 때문이다. 보드 게임은 언제든 탁탁 접어 상자에 넣어 들고 다닐 수 있다. 보통 상류층이 사용하는 바둑판은 귀한 나무에 옻칠을 하거나 옥으로 만들어 매우 무겁다. 

말에는 못 싣고 소가 끄는 수레에나 실어야 한다. 번거롭다. 그래서 기마 유목민이 보드 게임을 즐긴 것 같다. 당나라와 청나라는 기마 유목 왕조가 중국인을 지배한 경우다. 바둑과 보드 게임을 모두 즐겼을 가능성이 있다. 

<에도 시대 바둑판과 바둑알, 일본, 1800~1880년>

사실 보드 게임의 역사는 흉노 시기보다 더 오래되었다. 무려 기원전 13세기에서 11세기 사이 키푸로스에서 보드 게임 상자가 발견된 것이다. 

앞서 소개한 날개달린 개의 변형인 불새가 그려진 게임 상자가 그것이다. 영국 박물관에서 이 게임 상자를 펼쳐서 그려 보니 이렇게 생겼다. 흉노의 보드 판과 같다. 


<키푸로스에서 발견된 보드 게임 상자, 기원전1250~1050년>


키푸로스의 보드 게임판까지 따지면 금나라가 세워진 12세기 현재, 보드 게임의 역사는 무려 2500년이 넘는 것이다. 2500년 동안 기마 유목 문화가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키푸로스에서 발견된 보드 게임 상자 조감도, 기원전 1250~1050년, 영국박물관>


키푸로스와 흉노, 금나라로 이어진 보드 게임의 이동을 지도로 그려보면 이렇게 된다. 보드 게임으로 대변되는 기마 유목 문화가 소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 한반도와 만주로 이어진 것이다. 


<보드 게임으로 보는 기마 유목 문화의 이동 경로>


키푸로스의 게임 상자에 그려진 불새는 날개 달린 개다. 보드 게임의 이동 경로는 신성한 개를 믿는 신앙의 이동 경로와도 일치한다. 청나라 시조가 뜬금없이 왜 개가 자기 목숨을 구해줬다고 동네 방네 떠들고 다녔을까

<사자 개를 조각한 수정 인장, 청, 17세기>


보드 게임 문화권에서 날개 달린 개는 신의 대리인이나 신 그 자체 혹은 지상의 왕을 의미했다. 개 즉 하늘이 자신을 지상의 왕을 정했다고 소문낸 것이다. 신라와 청나라 황실에서 황실 개를 키운 이유다. 황실 개는 옥새였다. 


29. ‘황제의 딸’ 조상은 신라인

중국 속 유목사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엄청나게 히트한 중국 드라마가 있다. 잃어버린 청나라 공주 이야기를 그린 ‘황제의 딸’이다. 이 드라마 하나로 무명이던 조미는 일약 중화권 최고 스타가 되었다. 


강남 순행 중 하룻밤 사랑으로 태어난 ‘황제의 딸’ 의 아빠는 청나라 건륭제다. 건륭제는 중국 역사 상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룬 황제 중 하나다. 그 위대한 건륭제가 자기 조상은 신라인이라고 밝혔다. 


<강남 순행 중인 건륭제, 청, 1770년>


아빠 조상이 신라인이니 딸 조상도 당연히 신라인이다. 건륭제 이름은 애신각라홍력(愛新覺羅弘曆). 성이 애신각라고 이름이 홍력이다. 건륭제를 비롯한 청나라 황족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다.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하자, 라는 뜻이다. 


뜬금포로 청 황족 이름에 신라가 나오자 당황을 했는지, 단순히 한자를 차용한 것일 뿐이라는 해석이 쏟아졌다. 청나라는 원래 여진족으로 자기 나라 글자가 없으니 한자를 가져다 쓴 것이라는 것이다. 


<반란 토벌 후 축하연을 여는 건륭제, 청, 1758~1759>


예를 들어 애신(愛新)은 부족 이름인 아이신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화답하듯 한국에서는 유전자 검사 결과 만주족과 신라인은 서로 다른 인종이라는 결과가 발표됐다. 중공 역사학자들이 파르르 하는 건 이해된다. 


대체 거기에 동조하는 한국 역사학자들은 뭔지 궁금하다. 유전자 검사로 같은 민족임을 조사한다는 발상 자체도 지극히 농경민족적인  관점이다. 스키타이 이래 모든 기마 유목 왕조는 인종과 시대만 다르고 문화가 같다고 했다. 


<서재에서 업무 중인 건륭제, 청, 18세기 중반>


지배 가문끼리 연합해 혈통을 지키려 노력한 것이지 인종을 지키려 한 것은 아니다. 왕 부족과 왕비 부족 인종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런데 건륭제가 자기네 조상은 신라인이라고 주장하는 역사책에 남겼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한국과 중국 역사학자들은  『야사』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야사』는 역사가 아니라 소설 나부랭이라는 뜻이다. 한나라 유방처럼 일자 무식쟁이도 아니고 그 위대한 건륭제가 설마 『야사』를 근거로 조상의 뿌리를 운운 했을까? 


<조상을 기리는 글을 낭송하는 건륭제, 청,  1788년>


건륭제는 청나라 두뇌들이 모인 한림원에 특별히 명해 청 황실 조상에 대한 역사책  『흠정만주원류고』를 쓰게 했다. 중국 한족들이 남긴 한족 관점에서 본 역사가 아닌 기마 유목 왕조 관점에 판단하는 역사를 남기고 싶었던 듯 하다. 


건륭제 뿐 아니라 인류 이래 역대 모든 역사는 정권과 야합했다. 물론 지금도 역사 전쟁은 진행중이다. 영국은 프랑스와 싸우고 한국은 일본과 싸운다. 각 나라 역사 교과서에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쓴다. 마지막에 끝까지 살아남는 역사가 『정사』다.



<자금성에서 재판하는 건륭제. 청중 속에 개가 있다. 청, 18세기 중반>


역사 전쟁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간파한 중국 한족은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그 작업을 하고 있다. 유목민은 역사를 노래로 남겼다고 했다. 기록이 귀한 만큼 유목민 관점에서 쓴 『흠정만주원류고 가  중요하다 할 수 있다. 


건륭제의 명을 받은 한림원 학자들은 신라와 백제의 영토가 한반도를 넘어 중국 만주와 요서지방에 이른다고 결론지었다. 이 사실 역시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애써 무시하며 건륭제의 주장은 허황된 『야사』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개가 목숨을 구해준 청나라 시조 누르하치>


신라와 백제가 중앙아시아를 누빈 유목 왕조라면 충분히 가능한 가설인데도 말이다. 어째서 일본 황족이 일본 황실은 백제 계라는 말을 하면 환호 하고 청 나라 황제가 청나라 조상은 신라라는 말은 무시하는 걸까? 


아무런 역사적 근거도 없는 식품 영양학과 교수가 주장하는 신라 개고기 식용설은 믿으면서 말이다. 가짜라고 치부하기 전에 신라 사람이 어쩌다 청 황실의 조상이 되었는지 알아보는 것이 순서다. 


<건륭제 아버지인 옹정제 명으로 그린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개 중 한 마리. 청, 1737년>


청왕조와 중국 한족은 지배민족과 피지배민족 관계였다. 주인과 노예다. 조상은 천랑성이 뜨면 약탈당하는 신세였다. 사이가 좋을 리 없다. 청나라 말기 중국 한족은 공산당과 국민당을 중심으로 청 왕조 타도를 외쳤다. 


결국 중국 대륙을 차지한 중국 공산당은 만주로 쫓겨난 청나라 왕족과 만주족 수 십 만 명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인종 청소다. 그러면서 청나라 영토를 물려 받았으니 과거 청나라 영토를 점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나라 지도, 1935년 발행>


청나라가 역대 최대의 영토를 확보할 수 있던 이유는 청과 만주, 몽골, 티베트, 위그르가 같은 개숭(배하는) 파 유목 왕조였기 때문이다. 치고 받고 한 끝에 맏형 격인 청왕조에게 일임한 것이다. 그 맏형인 청 왕조를 중국 공산당이 죽였다. 


죽여놓고 사실은 자기 조상이니 그 집 재산이 다 자기네 거라는 격이다. 중국 한족은 개먹(는)파다.  중국 한족은 국민당 공산당 가리지 않고 티베트 침공 후 개를 죽이고 개고기를 먹었다. 


<타타르(신장) 사신에게 백마를 선물 받는 건륭제, 청,  1757년> 


티베트인은 중국인을 '개고기 먹는 인간'으로 부른다. 청 왕조에는 황족만 만질 수 있는 페키니즈가 있었다. 개먹파와 개숭파는 절대 같지 않다. 티베트, 위그르, 몽골, 만주는 원 주인에게 돌려주는 게 도리다. 


만주는 만주 전쟁과 한국 전쟁 후 쑥대밭이 되면서 중공으로 넘어가 조선족 자치구가 되었다. 티베트와 위그르, 몽골에서는 수 백만 명이 학살되거나 수용소에 갇혀 있다. 이것이 현재 중국과 티베트, 위그르, 몽골, 만주의 역학 관계다. 


<폐허 속에서 개를 끌어안고 우는 티베트 어린이>


나는 청나라 신라인 설 역시 한국의 개고기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고 본다. 만일 중국 공산당이 청나라의 정당한 후계자라면 청 왕조 조상은 절대 신라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청 왕조가 신라 역사에 포함된다면 청나라 영토는 한국 땅이 될 수도 있다. 청 왕조와 신라 역사를 분리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신라는 농경민족이 되어야 한다. 개고기는 한국의 전통이 되어야 한다. 역사 전쟁이다.  


건륭제, 만주, 몽골, 몽골 독립, 애신각라, 애신각라(愛新覺羅), 위그르 독립, 티베트 독립, 황제의 딸, 황제의 딸 리메이크, 흠정만주원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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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28. 개 전용 사원이 있던 당나라

한국 속 유목사

삼국 유목 전통을 가장 충실히 지켰고 신라 왕족만 키울 있는 삽살개가 있던 것으로 보아 신라는 명백히 개숭(배하는)파였다. 성골이 끝나는 시점인 7세기까지는 개고기 먹을 일이 없었다.  


통일신라의 국교는 불교였다. 10세기에 세워진 고려도 불교였다. 역시 개 먹을 일이 없다. 가끔 선승인 뭐니 하며 개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하는 땡중이 있다. 헛소리다. 부처님이 콕 찝어 개는 절대 먹지 말라고 하셨다.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국보, 통일신라, 719년 , 국립중앙박물관>


적어도 14세기 건국된 조선 시대 전까지 우리 민족에게 개고기라는 단어는 불길한 단어였다그렇다면 신라는 당나라와 일본에 굳이 개를 배에 실어 보냈을까?  


신라 계림로 황금 보검처럼 국교 차원에서 나라 왕족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정세 공식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신라 황금보검과 유사한 황금장식이 발견된 카자흐스탄>


신라 황금 보검과 같은 양식은  세계에서 극소수 지역에서만 출토된다. 신라, 로마이집트흉노서아시아중앙아시아 등이다특히 지금의 카자흐스탄에서는 신라 계림로 보검 손잡이 장식과 똑같은 장식이 발견되었다


일단 신라와 카자흐스탄이 관련 있다는 얘기다극동의 신라 수도 경주에서  중앙아시아와 흉노가 사용하던 황금보검이 발굴 되었는지 몰라 한국사 최대의 수수께끼라고 한다뭐가 수수께끼라는 건지 모르겠다.  


<기마 인물 모양 토기, 신라, 국보, 5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계림로 황금보검이 발견된 무덤에서는 기마 인물형 토기와 수레 모양 토기도 같이 나왔다. 신라 왕조가 유목 왕조인 것이다. 고대부터 카자흐스탄 지역은 투르크와 관계 깊다한나라 유방이 흉노에게 공주를 바치던 기원전 2세기에는 오손이 지배했다. 


오손  곤막은 늑대가 키운 아이였다돌궐과 위그르에서는 늑대가 신이었다왕은 늑대머리 깃발을 휘날렸다. 투르크 인은 개가 인간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믿었다유목민은 조상이 누구냐에 따라 적과 친구가 분명하게 나뉜다고 했다



기마유목 왕조에는 마치 옥새와도 같은 신성한 개가 있었다삽살개는 신라 왕족의 상징이다. 8세기 신라 김교각 스님이 당나라 건너갈 삽살개를 데려간 이유는 그가 왕족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국(당나라 중심지인 안휘성)에서 김교각 스님은 삽살개와 함께 추앙받는다같은 숭배 문화권에 같은 늑대 혈통 왕족이니 친선의 의미로 쪽에서는 황금보검을, 저 쪽에는 개를 보낸 것이다


<당나라 황실을 그린 당인궁악도 속 페키니즈, 836~907년>


신라와 마찬가지로 당나라도 황실에서만 키울 수 있는 사자 개가 있었다. 페키니즈다. 신성한 개 개념과 유물의 유사성 외에도 신라 자체가 투르크 계라는 설이 있다. 당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봤을 그럴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청나라 황제 건륭제도 청 왕조 조상은 신라인이라고 했다. 사실 신라가 흉노 계인지 투르크 계인지 따지는   숭배 문명권에서 봤을  무의미하다어차피 형이냐 동생이냐 차이다. 

<조상이 신라인이라고 한 청나라 황제 건륭제 (1735-1796)>



수컷 늑대와 인간 여자가 결혼을 해서 낳은 아이들이 흉노다반이 늑대다.  흉노인 남자가 다시 암컷 늑대와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 투르크다. 4분의 3 늑대 혈통이다. 더 신성하다


흉노와 투르크는 누가  잘났냐 피터지게 싸웠겠지만 이리 메치나 저리 메치나 어차피 둘 다 개숭(배하는)파다신라가 황금 보검을 주고 받은 6세기~8세기 카자흐스탄은 투르크인 돌궐과 위그르가 지배했다

<당나라에서 활동한 중앙아시아 사람들, 7세기~10세기>


돌궐과 위그르는 당시 사실 당나라를 지배했다당나라는 왕조 시작부터 돌궐과 함께 했다늑대 머리 깃발을 휘날리던 돌궐이 망한 후에는 역시 늑대 머리 깃발을 휘날린 위그르 군대가 왕조를 지켜주었다. 


왕조와 돌궐-위그르는 마치 바지사장과 주인 같은 관계였던 것 같다돌궐의 도움으로 시작된 왕조는 위그르의 멸망과 함께 사라졌다당 궁정에서는 지금의 폴로 게임을 즐겼다. 


당나라 유물 중에는 유독 중앙아시아 서역인 상이 많이 남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당나라에는  10  정도의 마니교도 살았다. 소그드 상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서역인이다


<폴로 게임을 즐기는 당나라 귀족들>


마니교는 조로아스터교와 기독교가 합쳐진 종교다. 개를 신으로 받드는 조로아스터교와 당시 머리 성인을 믿은 기독교가 만났다 정신으로 개고기를 먹었을까? 마니교 수장은 돌궐과 위그르를 움직여 당나라 황제를 쥐락펴락했다


마니 교도가 아니더라도 당시 당나라에는 개 먹는 중국 한족 풍습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수행 중심의 불교와 도교가 유행하면서 채식을 권장했기 때문이다마니교불교도교 모두 개고기를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도교의 권선서 내용을 조각한 당나라 시대 주택 난간, 7세기~10세기>



베이징에는 병든 반려견의 건강을 기원하는 전용 도교 사원이 있었다이런 당나라에 개고기 개를 비싼 배에 실어 수출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당시 일본 역시 개고기 시장이 존재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6~8세기 일본은 아스카 시대였다


일본의 국가 체제를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쇼토쿠 태자가 야심차게 불교를 국가 정책으로 밀고 있었다국가의 인재를 모아 당나라 불교를 배우러 보내던 일본 황실에서 개고기  개를 굳이 배로 수입 했을까? 


<호류지에서 강의하는 일본 쇼토쿠 태자>


먹을 널린 황족이 일본 역사를 통틀어 개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신석기인인 조몬인과 에타 족밖에 없다에타 족은 일본 불가촉천민이다. 신라의 개고기 일본 수출설은 뇌수술을 당한 중화사대주의자가 아니라면 생각할 없는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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