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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일루미나티의 몰록? 고대 중동 다문화 짝퉁 악마

유목사

산타클로스가 악마 몰록?


음모론자들 주장에 의하면 일루미나티 모임에서 사용하는 마약은 고문한 신생아 피라고 한다. 또 그들은 몰록이라는 뿔 달린 악마를 숭배한다. 몰록은 숫소와 인간을 합친 형상이다. 읭? 어디서 들어봤다. 머리에 뿔이 있고 수소의 신이야. 그래, 치스 칸. 시베리아 종교권의 산타클로스.


<어린아기를 불 구덩이 속에 집어 넣는 몰록 숭배>


그런데 왜 시베리아에서는 위대한 숲의 신이던 치스 칸이 중동 사막 쪽으로 가서는 아기들 잡아먹는 악마가 되었냐? 결국은 뽕이 아니었을까? 일루미나티라는 사람들이 아기 피에 섞인 마약을 드링킹하는 것처럼 중동 사막 지대로 이동한 유목민에게는 부작용 없는 순록 오줌 마약이 없던 거지. 


<중동에 가서 악마화 되기 이전 시베리아의 대샤먼 치스 칸은 수소의 신이었다>


일루미나티가 짝퉁 지배자인 것처럼 몰록도 짝퉁 지배자다. 짝퉁이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동 사막 악마도 다문화야. 섞였어. 앞서 순록 먹이가 줄어들자 툰드라 유목민은 아래로 이동을 했고 거기가 시베이라 침엽수림이라고 했다. 왕은 여전히 샤먼이었다. 샤먼은? 


고대 다문화 짝퉁 악마 몰록


순록 오줌에 섞인 마약을 먹고 뿅 간 상태에서 신을 만나 모든 일을 정해. 근데 순록이 없어. 그래서?  순록 뿔이라도 머리에 쓰고 왕권을 과시했다. 신라금관처럼 말이다. 스키타이 양식도 순록 뿔에서 나왔다고 본다. 자, 그래, 순록 뿔은 어떻게 왕관으로 커버친다 쳐. 


<순록 뿔을 닮은 신라 금관은 왕비가 썼다>


근데 마약은 어떻게 해?  마약을 먹어야 신을 만나는데? 시베리아 지대에서는 그나마 수월했어. 광대 버섯으로 대체할 수 있었으니까. 순록 오줌은 없었어도 빨간 광대버섯이 있었다. 애초에 순록이 하얀 이끼에 섞인 광대버섯을 먹고 싼 오줌에 마약 성분이 섞였다는 설이 있다. 


<광대버섯을 먹고 가사 상태에 빠져 신을 만나는 시베리아 샤먼>


이 사진은 시베리아 지역 샤먼(무당)이 광대버섯을 먹고 가사 상태에 빠지는 모습이다. 광대버섯은 시베리아 침엽수림에서 주로 자생한다. 샤먼은 광대버섯을 먹고 뿅 간 상태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다.  산타클로스가 왜 빨간 모자를 썼을까? 


산타클로스는 왜 빨간 모자를 썼을까? 


얘들아, 산타클로스 환상을 깨서 미안.  빨간 광대버섯 먹고 뾰로롱 간 상태에서 순록을 타고 하늘을 둥실 나는 환상을 본 게 아닐까? 아주 강력한 치스 칸을 믿던 시베리아에서 그 아래 스텝 지대로 이동하면서 순록 유목 역사가 확 바뀌었을 거다. 왜냐? 



<시베리아 산 광대버섯에는 마약 성분이 있다고 한다>


쨔잔~거기부터  순록 유목민에서 기마 유목민으로 바뀌었거든. 비옥한 스텝 지대에는 야생마들이 떼로 살고 있었어. 그 옆에는 양 떼도 뛰놀고 있었겠지. 풀이 있는 곳에는 말과 양이 살아. 말과 양을 노리는 늑대도 살겠지. 늑대는 툰드라 문화권의 곰처럼 신으로 추앙돼. 


<스키타이를 제외한 모든 기마 유목민의 본거지인 몽골의 오논 강변은 말을 방목하기 최적의 조건이다, 출처 : 주채혁 교수>


늑대가 있는 곳에는 개도 있어. 말과 양을 치려면 개가 필요하잖아. 늑대와 개는 거의 같은 취급을 받았고(유전자가 거의 같으니까) 특정 개는 특정 부족의 상징이 된다. 그 부족이 패권을 잡으면? 신성한 왕권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티베트탄 마스티프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말 떼만 차지하면 양 떼(식량)와 티베트탄 마스티프는 그냥 다 따라온다. 왜? 말 떼를 장악해서 권력(무력)을 가지면 부(양 떼)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야. 말이 곧 군사력이야. 유목 문화에서는 무조건 힘센 놈이 진리거든. 그래서 적과 친구를 나누는 게 중요한 거다. 


말 떼만 잡으면 천하를 얻는다


동맹을 맺은 특정 부족과 부족만 결혼하는 근친혼이 발달한 이유다. 아무튼 어떻게 돼?스텝 지대를 두고 쟁탈전이 벌어져. 하고 많은 유목 부족 중 이 스텝 지대를 차지하는 부족이 유목 왕국을 건설하게 되니까. 시베리아 아래로 고산 사막지대, 중동 사막 지대 일부까지 다 먹는다고 보면 돼


<흉노가 개와 함께 말 달리던 시절, 중국 한나라는 개를 잡아먹었다, 2세기>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개고기 먹는 중국까지 먹을 수 있어. 동서 물류의 통로를 딱 먹는 거니까. 요새로 따지면 석유 수송로를 먹는 거나 마찬가지. 중국과 로마의 비단 교역을 중간에서 딱 흉노가 관리한 거만 봐도 이 스텝 지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지? 


<개 머리를 한  새를 새긴 청동기 도끼가 나온 지역은 스키타이의 활동무대,  기원전 11~7세기>


여기를 차지한 역대 부족, 즉 스키타이, 흉노 등 부족 이름이 거대한 유목 왕국 이름이 되는 거다. 당연히 개의 가치도 올라가지. 말을 잘 쳐야 군사력이 좋아지고 군사력이 좋아져야 모든 걸 가질 수 있는데 말은 누가 쳐? 개. 말과 개는 한 세트. 말은 유목 귀족의 상징. 마스티프가 유목 왕조에서 옥새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 이유다. 


<스키타이, 흉노, 투르크, 에트루리안의 이동>


주채혁 교수님의 지도를 다시 보자. 시베리아에서 내려와서 서쪽 스텝 지대가 스키타이, 동쪽 스텝 지대가 흉노의 본거지다. 자세히 족보를 파고들면 48색 연필로도 모자라니 대충 크게 네 가지 색으로 분류해 보자. 빨간색 화살표를 스키타이, 파란색 화살표가 흉노. 보라색은? 빨간색 찍고 유턴해서 파란색으로 향하는 투르크. 


말, 교역, 개는 귀족의 상징 


노란색은? 빨간색 찍고 중동 사막으로 갔다가 그리스- 로마에 진출한 에트루리안. 그러니까 같은 툰드라-시베리아 조상에서 나왔는데 스키타이, 흉노, 투르크는 기마 유목민이 된 거고 에트루리안은 해양 유목민이 된 거다. 결국 같은 유목민이고 같은 특징을 지닌다. 


<그리스 신을 새긴 은제 장식물이 흉노 세력권에서 나왔다,  기원전 1세기~ 기원후 1세기>


그렇기 때문에 중앙아시아와 중동,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 지역에서 말, 교역, 개는 왕족(혹은 귀족)의 상징이자 때로는 신의 대리인이다. 당연히 이 지역과 이 지역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럼 중동 사막 지역과 카르타고, 미노스 등에서 짝퉁 산타클로스 몰록은 왜 생겼느냐? 


<암소를 태운 배,  이집트 혹은 시프러스, 혹은 페키니아, 기원전 1340-1200년>


해양 유목민 에트루리안이 현지 토착민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광대버섯을 조달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부작용 없는 신성한 마약을 구할 수 없으니 일단 짝퉁 마약이라도 먹어야 했고 그게 아이들 피가 아니었을까 싶다. 결론은? 일루미나티가 섬긴다는 악마 몰록이 그 몰록이라면 짝퉁이다. 


108. '하나의 중국', 개고기 먹는 장기털이범 조선족

중국 공산당

해외 동포들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는 미국, 중국, 일본, 소련(현재 러시아 및 구 러시아 연방 일부)이다. 이중 공산권인 중국과 소련 동포 중 다수는 자신들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한다.

독립운동가라는 마법의 단어는 그들 가문의 역사를 아름답게 치장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적어도 한국 외교부와 법무부의 재외동포 정책 상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단어는 훈장 그 자체다.

<티베트 독립 시위 선봉에 선 '개', 경남일보, 2008년 3월 17일>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의 후손 중 북한과 남한으로 간 나머지를 제외하고는 조선족 자치구에 그대로 살고 있다. 중국 조선족 자치구에 사는 조선족은 자신들이 중국인이라고 믿는다

하나의 중국은 중국이 티베트와 위그르 포함 55개 소수민족을 지배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정책이다. 하나의 중국은 중국 판 미국의 용광로인종 정책이다55개 소수민족을 중화사상으로 녹여 쿠키 반죽으로 만든 후 하나의 중국이라는 쿠키 틀로 찍어내는 것이다


<위그르 시내를 장악한 무장한 중공군, 주간동아, 2017년 3월 13일>

쿠키 틀에 찍히는 걸 거부하는 소수민족은 잔힌하게 탄압한다. 위그르와 티베트처럼 말이다수백만의 위그르 인이 처형되거나 산 채로 장기가 적출되거나 강제 수용소에 감금되었다. 강제 수용소 안에서는 쿠키 반죽이 되기 위한 사상교육을 받는다

직접 위그르 수용소에 갇혀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알만 하다위그르는 중국이고 위그르 역사는 중국 역사라는 중화사상을 강요할 게 뻔하다위그르 인과 마찬가지로 쿠키 반죽이 되기를 거부한 티베트 인들도 학살되었다

<7명이 사망한 티베트 독립 시위, 경남일보, 2008년 3월 17일>

중국공산당은 수 백 만 명의 티베트 인을 학살한 영토에 중국 한족을 이주시켰다중국 공산당의 소수민족 정책은 매우 단순 무식하다. 반발하는 소수민족은 죽인다. 그 자리에 한족을 이주시켜 채워 넣는다

티베트에 산다고 모두 티베트 인이 아니고 위그르 자치구에 산다고 모두 위그르인이 아닌 것이다위그르와 티베트 모두 개를 신성시하며 개고기를 절대 먹지 않는다. 위그르나 티베트 영토에서 개고기를 먹는 인간은 십중팔구 중국 한족이다

<고구려는 조선족 역사가 아니라는 조선족 자치구, 동아일보, 2018년 1월 1일>

다른 소수민족 자치구와 마찬가지로 조선족 자치구도 한족 비율이 조선족을 앞선지 오래다.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조선족 자치구 인구의 60%가 한족이었다. 다행히 티베트 위그르와 달리 조선족은 하나의 중국정책에 거부하지 않았다

자진해서 고구려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주장한 덕분에 장기 적출을 당하지 않았다. 조선족은......장기 털이범이 조선족이다


미안하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조선족은 중국인이다. 조선족 스스로 자신들은 중국인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조선족은 연변 거지 시절부터 엄청난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럴 만한 것이 중국 공산당 창당에 조선족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 조선족이 앞장서서 하나의 중국인 중공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젊은 한국 여성을  죽여 수 백 조각 낸 조선족 오원춘의 인육 혐의, 연합뉴스, 2012년 8월 15일>

마오쩌둥의 붉은 군대는 중국 내륙지역과 만주 등지의 험지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국공 내전, 중국 내 항일 전쟁에 가장 앞장서서 싸운 사람들은 조선족 군대였다. 위그르 군대가 아니었다. 티베트 군대가 아니었다

애초에 조선족이 중공 건국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조선족은 곧 중국 공산당이다. 왜 위그르와 티베트 인은 끝까지 개고기 먹기를 거부했는데 조선족은 솔선수범해서 먹었을까

<오웬춘이 시체의 인육을 불상의 용도에 제공하기 위해 살인했다는 판결문, 연합뉴스, 2012년 8월 15일>

조선족이 마오쩌둥과 한 패였기 때문이다만주 벌판에서 마오쩌둥의 붉은 군대와 함께 개 뒷다리를 뜯어 먹으며 국민당 타도, 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외친 인간들이 바로 조선족이었다조선족은 독립운동을 한 공산주의자의 후손이다

조선족 지도자는 독립운동을 한 중국 공산당원이다. 조선족 지도자가 독립운동을 하다 공산주의자가 되었는지, 공산주의 혁명을 하기 위한 전술로 독립운동을 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공산주의자라는 것이 중요다. 북한의 김일성처럼 말이다


<중국 소수민족 중 최고 지위에 오른 조선족 (고)조남기 부주석, 일요신문, 2013년 8월 28일.>

조선족과 북한이 조선을 해방시킨 미국을 증오하는 이유는 미국도 제국주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조선족과 북한의 뇌는 1950년이나 지금이나 1919년에 멈춰있다거기에서 벗어나면 사상이 오염되었다는 이유로 숙청된다

마오쩌둥, 등소평, 강택민, 시진핑에 걸쳐 중국이 변화해도 조선족은 변하지 않고 개고기에 집착하는 이유도 거기 있다조선족이 개고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초기 순수한 중국 공산당 정신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조선족이 중국과 한국을 연결하는 동북아 개고기 벨트를 형성, 미디어 오늘, 2004년5월 27일>

조선족의 개고기 자부심은 마치 조선 시대 소중화주의를 보는 것처럼 기괴하기 짝이 없다. 조선족만이 순수한 중국 공산당 정신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그러면 조선족은 왜 이런 미친 소리를 하는가? 쥐뿔도 몰라서 그렇다. 

조선말 말살 정책은 일본 놈들보다 중국 놈들이 더 악랄했다. 1990년대까지 조선족은 아예 한국 역사, 문화, 언어를 배울 수 없었다. 오직 중국 공산당의 지시대로 뇌를 포맷한 후 새로 세팅했다. 그게 고구려는 중국 역사고 개고기는 한국 전통이라는 동북공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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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개 머리를 한 기독교 성인 크리스토퍼

종교

당나라는 양귀비가 죽은 후에도 장장 152년이나 유지되었다당나라는 위그르가 망하는 바람에 같이 망했다유목 왕조가 원래 같이 일어났다 꺼지듯 망하는 특징이긴 하다


위그르가 망한 이유는 채식이다황당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그렇다마니교가 채식을 했기 때문이다. 엘리트 기마 무사들이 채식을 하게 되면서 살생을 하지 않았다. 위그르 군사력이 약해진 것이다

<고창 왕국, 중국 풍 옷을 입은 위그르 왕자, 9~12세기>


이것도 따지고 보면 위그르가 너무 살아서 그렇게 아닌가 싶다아즈텍-마야 문명의 보물을 쓸어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인플레이션으로 휘청인 것 처럼 말이다. 유목민에게는 고기가 흔하고 곡식이 귀하다


나라에 돈이 많으니 곡식이 넘쳤을 것이다비잔틴 제국 사신 말에 의하면 돌궐 왕의 천막은 온통 황금으로 장식되었. 위그르가 믿은 마니교에 대해 설명하자면 예수 탄생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초기 기독교 성지, 하면 시리아 안티오크였다


<17세기의 안티오크>


지금은 터키 끝에 속한 안티오크는 고대 시리아 수도였다. 당연히 터키와 시리아는 오랜 앙숙이다로마 제국은 동서로 길게 위치했 로마와 로마는 문화역사정치 모든 달랐다특히 기독교의 경우 원조는 로마의 동쪽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안티오크알렉산드리아 등이 있는데  안티오크는 기원전 67 로마에 정복 당하기 전까지 앗시리아스키타이페르시아그리스의 영향권에 있었다구약을 믿는 유대교는 동로마 지역에 존재한 수많은 토착 종교 하나였다


<기원전 1세기~기원후 7세기 로마와 페르시아 지도>


예수 탄생 이후 유대교와는 달리 신약을 믿는 기독교가 생겼다예루살렘과 인접한 이들 지역에는 예수 사후에도 관련된 기록과 증언이 생생하게 존재했다증언과 기록을 근거로 저마다 정통성을 주장하는 교회가 생겼다


대표적으로 시리아의 안티오크 파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파가 있었다. 초기 기독교 중심 도시들을 로마가 지배 하기 시작하면서 무시무시한 박해도 시작되었다로마인들은 이교도인을 현지에서 바로 죽이지 않았다. 


<안티오크의 성 이그나티우스, 17세기>


굳이 이탈리아 로마까지 끌고 와 콜로세움 사자 먹이로 던져 주어 죽였콜로세움 살육 파티가 당시 로마 시민들이 가장 즐기던 놀이였다


로마로 끌려와 사자에 물어 뜯겨 죽은 기독교도 중에는 108 순교한 이그나티우스도 포함되어 있었다안티오크 주교인 그는 ‘카톨릭 교회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다. 


아기 예수를 업고 강을 건넌 것으로 추앙받는 크리스토퍼도 시리아에서(안티오크 추정순교했다그런데 성 크리스토퍼는 머리를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대체  신성한 성인 머리가 개인지 종교학자와 역사학자는 설명을 하지 못한다. 티오크는 현재 터키 땅이다. 터키와 고대 시리아가 속한 아나톨리아 반도는 투르크가 지배했다. 왕이 늑대 머리 깃발을 휘날리던 그 투르크


<개 머리 성인 성 크리스토퍼, 러시아, 17세기>


중앙아시아 기마 유목민이 인종과 시대만 다를 뿐 문화가 같다고 했다. 적어도 스키타이 시절부터 아나톨리아 반도에서는 텡그리와 신성한 (늑대신앙을 믿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개 머리를 한 인간은 이 지역에서 고대부터 믿어온 늑대 인간과도 일치한다. 그가 선택받은 인간의 (텡그리)이라는 뜻이다그래서인지 로마 카톨릭이 이상 지배한 중세 유럽에서는 크리스토퍼가 철저하게 지워진다


<성 크리스토퍼, 독일, 14세기>


중세가 끝나가는 14~15세기가 돼서야 조금씩 흔적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나마  머리를 모습이 아니고 아기 예수를 어깨에  인간 모습이다반면 안티오크 파를 계승한 동방교회 에서는 때때로 머리를 모습 그대로 그려진다


카톨릭 교회라는 단어의 창시자와 아기 예수를 구한 성인이 안티오크 출신이라는 점에서 안티오크 파가 가지는 자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313년 로마 제국 황제가 느닷없이 기독교를 국교로 공표하면서 안티오크 파는 쫄딱 망한


<안티오크 파 주교를 파문한 로마 카톨릭의 제 3차 공의회>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안티오크 파를 이단으로 규정해 파문한 것이다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하나로 통일하고자 했다. 하나의 성경, 하나의 교리로 만들자는 것이다. 취지는 좋았으나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로마 제국 멸망 동안 모든 유럽인은 오직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정한대로 살아야했다조금이라도 규정을 어기면 죽었다로마 카톨릭 교단에서는 주로 불에 태워 죽였다


<스위스의 마녀 화형식, 16세기>


313년을 시작으로 거의 동안 중세의 암흑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모든 종교는 권력과 밀접하다고 했다. 백성들의 신앙심만 강하다면 종교 지도부 관리하면 되기 때문이다그런데 정작 로마 당국은 기독교에 대해  몰랐다


지리적으로 발흥지와 너 멀었고 국교가 되기 바로 전날까지도 기독교는 이단이었다로마에서는 계파 기독교 수장들을 불러 통일된 교리(성경) 만들라고 지시했당연히  기독교 계파  교리 싸움이 벌어졌다.


313년 기독교 공인, 개 머리 성인, 마니교, 성 이그나티우스, 성 크리스토퍼, 안티오크, 안티오크의 아그나티우스, 위그르, 카톨릭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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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개 전용 사원이 있던 당나라

한국 속 유목사

삼국 유목 전통을 가장 충실히 지켰고 신라 왕족만 키울 있는 삽살개가 있던 것으로 보아 신라는 명백히 개숭(배하는)파였다. 성골이 끝나는 시점인 7세기까지는 개고기 먹을 일이 없었다.  


통일신라의 국교는 불교였다. 10세기에 세워진 고려도 불교였다. 역시 개 먹을 일이 없다. 가끔 선승인 뭐니 하며 개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하는 땡중이 있다. 헛소리다. 부처님이 콕 찝어 개는 절대 먹지 말라고 하셨다.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국보, 통일신라, 719년 , 국립중앙박물관>


적어도 14세기 건국된 조선 시대 전까지 우리 민족에게 개고기라는 단어는 불길한 단어였다그렇다면 신라는 당나라와 일본에 굳이 개를 배에 실어 보냈을까?  


신라 계림로 황금 보검처럼 국교 차원에서 나라 왕족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정세 공식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신라 황금보검과 유사한 황금장식이 발견된 카자흐스탄>


신라 황금 보검과 같은 양식은  세계에서 극소수 지역에서만 출토된다. 신라, 로마이집트흉노서아시아중앙아시아 등이다특히 지금의 카자흐스탄에서는 신라 계림로 보검 손잡이 장식과 똑같은 장식이 발견되었다


일단 신라와 카자흐스탄이 관련 있다는 얘기다극동의 신라 수도 경주에서  중앙아시아와 흉노가 사용하던 황금보검이 발굴 되었는지 몰라 한국사 최대의 수수께끼라고 한다뭐가 수수께끼라는 건지 모르겠다.  


<기마 인물 모양 토기, 신라, 국보, 5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계림로 황금보검이 발견된 무덤에서는 기마 인물형 토기와 수레 모양 토기도 같이 나왔다. 신라 왕조가 유목 왕조인 것이다. 고대부터 카자흐스탄 지역은 투르크와 관계 깊다한나라 유방이 흉노에게 공주를 바치던 기원전 2세기에는 오손이 지배했다. 


오손  곤막은 늑대가 키운 아이였다돌궐과 위그르에서는 늑대가 신이었다왕은 늑대머리 깃발을 휘날렸다. 투르크 인은 개가 인간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믿었다유목민은 조상이 누구냐에 따라 적과 친구가 분명하게 나뉜다고 했다



기마유목 왕조에는 마치 옥새와도 같은 신성한 개가 있었다삽살개는 신라 왕족의 상징이다. 8세기 신라 김교각 스님이 당나라 건너갈 삽살개를 데려간 이유는 그가 왕족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국(당나라 중심지인 안휘성)에서 김교각 스님은 삽살개와 함께 추앙받는다같은 숭배 문화권에 같은 늑대 혈통 왕족이니 친선의 의미로 쪽에서는 황금보검을, 저 쪽에는 개를 보낸 것이다


<당나라 황실을 그린 당인궁악도 속 페키니즈, 836~907년>


신라와 마찬가지로 당나라도 황실에서만 키울 수 있는 사자 개가 있었다. 페키니즈다. 신성한 개 개념과 유물의 유사성 외에도 신라 자체가 투르크 계라는 설이 있다. 당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봤을 그럴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청나라 황제 건륭제도 청 왕조 조상은 신라인이라고 했다. 사실 신라가 흉노 계인지 투르크 계인지 따지는   숭배 문명권에서 봤을  무의미하다어차피 형이냐 동생이냐 차이다. 

<조상이 신라인이라고 한 청나라 황제 건륭제 (1735-1796)>



수컷 늑대와 인간 여자가 결혼을 해서 낳은 아이들이 흉노다반이 늑대다.  흉노인 남자가 다시 암컷 늑대와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 투르크다. 4분의 3 늑대 혈통이다. 더 신성하다


흉노와 투르크는 누가  잘났냐 피터지게 싸웠겠지만 이리 메치나 저리 메치나 어차피 둘 다 개숭(배하는)파다신라가 황금 보검을 주고 받은 6세기~8세기 카자흐스탄은 투르크인 돌궐과 위그르가 지배했다

<당나라에서 활동한 중앙아시아 사람들, 7세기~10세기>


돌궐과 위그르는 당시 사실 당나라를 지배했다당나라는 왕조 시작부터 돌궐과 함께 했다늑대 머리 깃발을 휘날리던 돌궐이 망한 후에는 역시 늑대 머리 깃발을 휘날린 위그르 군대가 왕조를 지켜주었다. 


왕조와 돌궐-위그르는 마치 바지사장과 주인 같은 관계였던 것 같다돌궐의 도움으로 시작된 왕조는 위그르의 멸망과 함께 사라졌다당 궁정에서는 지금의 폴로 게임을 즐겼다. 


당나라 유물 중에는 유독 중앙아시아 서역인 상이 많이 남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당나라에는  10  정도의 마니교도 살았다. 소그드 상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서역인이다


<폴로 게임을 즐기는 당나라 귀족들>


마니교는 조로아스터교와 기독교가 합쳐진 종교다. 개를 신으로 받드는 조로아스터교와 당시 머리 성인을 믿은 기독교가 만났다 정신으로 개고기를 먹었을까? 마니교 수장은 돌궐과 위그르를 움직여 당나라 황제를 쥐락펴락했다


마니 교도가 아니더라도 당시 당나라에는 개 먹는 중국 한족 풍습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수행 중심의 불교와 도교가 유행하면서 채식을 권장했기 때문이다마니교불교도교 모두 개고기를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도교의 권선서 내용을 조각한 당나라 시대 주택 난간, 7세기~10세기>



베이징에는 병든 반려견의 건강을 기원하는 전용 도교 사원이 있었다이런 당나라에 개고기 개를 비싼 배에 실어 수출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당시 일본 역시 개고기 시장이 존재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6~8세기 일본은 아스카 시대였다


일본의 국가 체제를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쇼토쿠 태자가 야심차게 불교를 국가 정책으로 밀고 있었다국가의 인재를 모아 당나라 불교를 배우러 보내던 일본 황실에서 개고기  개를 굳이 배로 수입 했을까? 


<호류지에서 강의하는 일본 쇼토쿠 태자>


먹을 널린 황족이 일본 역사를 통틀어 개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신석기인인 조몬인과 에타 족밖에 없다에타 족은 일본 불가촉천민이다. 신라의 개고기 일본 수출설은 뇌수술을 당한 중화사대주의자가 아니라면 생각할 없는 발상이다



건륭제, 계림로 보검, 김교각 스님, 당나라 페키니즈, 돌궐, 마니교, 삽살개, 쇼토쿠 태자, 신라 황금 보검, 아스카 문화, 애신각라, 위그르, 조로아스터교, 청나라 신라, 카자흐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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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위구르의 늑대 머리 깃발과 개고기

유목사

투르크 족이 세운 제국인 돌궐과 위그르 군대는 늑대머리 깃발을 사용했다. 사나운 늑대가 입을 크게 벌리며 포효하는 머리에 술이 늘어져 있어 바람이 불면  마치 용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이는 깃발이다. 


왕들 역시 늑대 머리 깃발을 사용해 자신의 권위를 나타냈다. 유목민들의 거주지인 게르 앞에 늑대 머리 깃발이 꽂혀 있다면 그 게르 안에는 왕이 있다는 의미였다. 


<늑대 머리 깃발 by Omer Toy>


그러므로 늑대 머리 문양이 새겨진 유물은 투르크 계 지배층이 사용했던 것일 가능성이 크다. 늑대 머리 양식은 사자머리를 한 용으로 변형 되기도 한다.

이것이 동양에서는 하늘을 나는 용 문양으로 발전한 듯 하고 서양에서는 투르크 계인 에트루리안이 로마 제국에 지배된 후 사자 문양으로 발전된 듯 하다. 모든 투르크 계에게 늑대와 개는 특별했다. 

<에트루리안 테라코타 주전자 늑대 머리 기원전 550년>

시작은 역시 늑대가 자신들의 시조와 관련되었다는 신화이다. 이 이야기는 최소한 기원전 6세기 경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기원전 2세기 경 오손 왕 곤막이 갓난 아기였을 때 암늑대가 젖을 물려 키웠다는 이야기가 생기기 훨씬 전인 기원전 6세기 경부터 이탈리아 반도의 에트루리안은 늑대 머리 깃발과 동일한 문양을 사용했다. 


돌궐의 부민 카간(Vusun kagan 522) 막내 아들도 오손의 곤막처럼 암컷 늑대가 젖을 먹여 키웠다 흉노에 의해 왕국이 멸망한 홀로 버려진 막내 아들을 암컷 늑대가 구해 젖을 먹여 키웠다

이를 보고 감동한 흉노 왕이 막내 아들을 데려와 빼앗은 부민 카간의 제국을 돌려주었다. 흉노가 멸망시킨 오손의 곡막을 흉노 왕이 거둬준 것과 같은 이야기 구조다. 

<개 혹은 늑대 머리 모양 장식, 흉노, 기원전 3~2세기>

역시 투르크 계인 키르기스 족에게도 늑대 시조 신화가 있다. 사지가 마비된 아이를 부모가 황야에 버리자 암컷 늑대가 데려다 젖을 먹여 키웠다. 아이가 지금의 키르기스 카바 씨족의 선조이다.

카자흐족과 혈연 관계인 나이만족에도 늑대 시조 신화가 있다. 다른 부족의 침입으로 모두 죽고 늙은 남자 혼자만 살아 남았는데 암늑대가 그를 동굴로 데려가 살려주었다.

<터키 종신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1934>

러시아에 사는 투르크 민족인 바르키시 (Bashkirs) 또한 그들이 늑대에서 유래했다고 믿는다. 이처럼 모든 투르크 민족은 늑대 신앙을 믿었고 지금도 여전히 믿고 있다터키의 아버지 스타파파 케말도  ‘푸른 늑대라고 불렸다. 


투르크는 모든 면에서 늑대를 숭배했다. 투르크 인에게 늑대는 수호자인 동시에 다른 세상으로 안내하는 안내자였다위그르의 영웅 오구즈 칸이 원정을 갔을 신비로운 청회색 갈기를 가진 푸른 늑대가 나타나 길을 안내해 주어 승리했다. 

<자니베크 칸.  1375년>

전쟁터에서 패한 위그르 인들이 오도가도 못하고 있을 늑대 마리가 나타나 동굴 안으로 안내했다. 복잡한 동굴 끝에는  드넓은 초지가 있어 위그르 인들은 있었다


몽골 제국 킵차크 칸국의 10대 칸인 자니베크 칸은 늑대 덕분에 카자흐 칸국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늑대가 자니베크 칸의 가슴을 뛰어넘어 늑대의 신통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위그르와 돌궐 군대 깃발에는 항상 늑대 머리가 올라가 있다. 늑대머리 깃발이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조상이 늑대 머리를 하고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늑대 인간은 고대 알타이 지역의 암각화에 등장한다. 

<늑대인간 암각화 by tarihvearkeoloji.blogpost.com >


물론 늑대를 죽이거나 학대하는 인간들도 있지만 늑대가 가지는 신성성은 지금도 투르크 인에게 유효하다.늑대 머리나 늑대 가죽을 뒤집어 쓰는 건 늑대의 힘을 갖고자 하는 행위다. 

위그르 족과 카자흐 족은 늑대의 이빨과 뼈를 호신 부적으로 지니며 삿된 것을 쫓고자 갓난아이 곁에 늑대 이빨과 뼈를 걸어두기도 한다. 

<흉노, 늑대 모양 허리띠, 기원전 3세기>

키르기스 족은 아이가 늑대처럼 건강하고 용감하기를 바라며 태어난 아기를 박제한 늑대 입에 넣었다 꺼낸다. 위그르 임산부는 늑대 가죽 위에서 분만한다. 아이가 용감하게 자란다는 것이다

카자흐 족은 가축을 잃어버렸을  늑대 힘줄을 태우면 도둑이  사지에 경련을 일으켜 잡을  있다고 한다그런데 늑대를 신으로 숭배한  지역에서도 개고기를 먹는다는 신문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다

 

<과거 투르크 문화권인 아제르바이잔 우표.1996>


역사 이래 늑대 신앙을 믿고 창세기 신화에 개가 인간의 생명의 은인으로 등장하는 투르크 문화권에 개고기를 먹는 문화는 존재할 없다. 곳에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스탈린 시대 강제 이주를 당하고 혹독한 기아를 경험한 고려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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