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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132. 개 식용은 반청복명 운동, 중국 공산화 운동

조선

개고기는 중국 문화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은 청나라가 아니다. , 당 왕조 이전의 고대 중국과 명나라,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여기에는 1392년 건국된 조선도 포함된다

1392년 고려인은 조선인이 되었다. 조선은 명나라를 추종하며 순수 한족 중국 왕조를 조선에 재연하고자 했다. 우리 조상인 고려인이 조선인이 되었고 명나라 인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키자 조선 지배층은 패닉에 빠졌다. 


<고대 중국과 고구려의 개에 대한 기본 인식 차이>

조선 건국 이념 상 명나라와 함께 망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망하는 대신 조선은 이중정책을 썼다. 청나라에게는 복종한다고 약속해놓고 조선 안에서는 배신자를 색출하며 내부 단속을 했다. 그래서 광해군이 제거되었고 소현세자와 그 가족들이 몰살되었다

진짜 명나라 대신 청나라를 택하는 순간 조선 시대 지배층은 즉시 제거되었다그 결과 모든 조선 시대 지배층은 조선이 망하는 순간까지도 오직 명나라만 추종하게 되었다조선이 망하고 일제의 지배를 받은 후에도 명나라 사랑은 변치 않았다


<비밀 명나라 복원 운동을 하던 조선의 왕은 청 나라 사신이 오면 성 밖까지 나가 마중을 해야 했다, 18세기>

일제 황국 신민이 된 조선인은 여전히 몰래 마지막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 이후 형성된 기이한 소중화주의는 중국 공산당이 창당되자 중국 공산당 추종으로 이어졌다. 왜 그런가?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자 중국 대륙에서는 진짜 한족 중국을 복원하자는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진짜 중국이 명나라라고 믿은 중국인은 국민당이 되었고 중국 공산당이라고 믿은 사람들은 공산당이 되었다


<아편전쟁에서 청 왕조가 패배하기 전까지 티베트탄 스패니얼 계열의 사자 개는 오직 청 황족만 만지고 볼 수 있었다, 1899년>

이 시기 황국 신민이 된 조선인 중 일제에 의해 독립해 명나라인이 될 것인지  중국 공산당 당원이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믿은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은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조선 독립운동 파벌이 형성되었다.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각 지역 군벌이든 너도나도 개고기를 다시 먹기 시작했고 조선의 독립운동가들도 개고기를 먹었다개고기를 먹는 것은 명나라 복원 운동이자 청나라 반대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선 땅에도 해당되었다


<민족 역사 속 유일하게 개 식용 정책을 편 조선>

병자호란 이후 조선에도 개를 죽이며 명나라를 부활시키려는 세력이 있었다조선 후기 지배층이었다조선 후기에도 개고기를 먹는 것은 명나라 부흥운동이자 청나라 반대 운동이었다

힘으로 청 왕조에 굴복해 복종은 하지만 속마음까지는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 조선 후기 지배충들이 가진 기본 이념이었다. 송시열이 주장한 소중화주의는 결국 반청 운동의 일환이었다


<청 나라에서 사자개는 오직 황족만 키울 수 있었다,  도자기, 청, 17~18세기>

이런 신념은 청 왕조가 다스리는 중국 대륙 안에 숨어 암약하던 명나라 복원 세력과 뜻을 같이 했다. 청 왕조에게 있어 조선은 반정부 세력이나 마찬가지였다명나라를 부흥시키자는 중국 내 반청 세력과 조선의 반청 세력은 개를 죽였다

? 청 왕조가 개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다. 만약 청 왕조가 개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개 도살 금지법 같은 걸 만들지 않았다면 중국과 한국에 개고기 식용 악습은 농업혁명과 더불어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청 왕조를 증오하며 개고기를 군량미로 사용한 중국 공산당 군대, 1930년>

하지만 하필 청 왕조는 개를 유독 사랑했다. 그것이 개를 둘러싼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다. 청 시조인 누르하치의 목숨을 구해준 개는 모든 만주족에게 신성했다. 청 왕조에는 황족만 만지고 볼 수 있는 특별한 개가 있었다

그 개는 페키니즈, 시추, 라사압소로 불리는 사자개다. 페키니즈, 시추, 라사압소는 티베트 개다. 티베트, 청 왕조의 고향인 만주, 위그르, 몽골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 개를 죽이는 것은 지독한 금기다


<티베트와 위그르가 청나라에 복속된 이유는 같은 기마 유목 민족이기 때문>

지금도 오직 중국 한족만 이 지역에서 개고기를 먹는다. 티베트, 만주, 위그르는 모두 청 왕조로 하나되어 있었다. 청 왕조는 이들 국가의 맏형 격이었다. 맏형인 청왕조가 중국 대륙을 다스리니 티베트, 위그르, 만주, 몽골도 형의 지배력 아래 들어가 함께, 파트너 자격으로 중국을 다스린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같은 문화와 종교를 가졌다는 동질성에 의해 가능했다. 티베트, 만주, 위그르, 몽골, 청은 같은 편이었고 개를 사랑했다이에 반해 중국 한족은 적이자 개고기 먹는 인간들이었다. 청 왕조는 다수의 적인 중국 한족을 소수의 만주족으로 다스렸다


<몽골의 샤먼 의식에 신성한 동물로 등장하는 몽골 전통개는 삽살개와 유전자가 99.9%동일하다>

티베트, 위그르, 몽골 등 다른 유목 왕조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다. 만주족과 마찬가지로 개를 신성시한다 왕의 상징으로 여기는 이들은 청 왕조의 동료였다. 개를 죽이는 것을 법으로 금지할 정도로 사랑한 청 왕조에 반대하려면? 개를 죽이면 되었다

개고기를 금지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에게 반대한 586운동권들이 행한 방법과 같은 방법이었다. 20 세기 한국과 달리 청 왕조 시대 중국에서 개를 죽이다 걸리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고 불교와 도교의 영향으로 개고기를 먹는 관습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지만 말이다


<청 황제의 명으로 서양화가가 그린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개인 티베트탄 마스티프>

그런데 청 반대 세력은 조선 땅에도 있었다고 했다. 더군다나 중국 땅에서는 못 죽이는 개를 조선에서는 마음껏 죽일 수 있었다병자호란 후 조선 양반들은 개를 죽임으로써 청 왕조에 엿을 먹이고 굶어죽는 대중을 선동하는 치졸한 방법을 썼다

양반들이 (지들은 먹지도 않으면서) 글로 써서 우아하게 개를 죽여 개고기를 약과 식량으로 먹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면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백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실행했다. 이렇개 해서 조선의 개고기 역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개고기로 보는 조선 양반과 백성의 민족 의식 차이>

실제로 조선백성들이 고등어 구워 먹듯 개를 많이 먹어서 역사가 된 것이 아니다. 전직 고려인인 조선 백성은 한민족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한민족의 전통에 의하면 개는 먹어서는 안 되는 신성한 동물이다

티베트, 만주, 위그르, 몽골과 마찬가지로 한민족 역시 개가 죽음과 관련된 영물이라고 믿었다백성들의 생활과는 달리 조선 후기 지배층은 그동안 중국에서 출판된 고대 중국 의학서를 죄다 긁어모아 출판했고 이것이 조선의 역사로 둔갑했다


<김일성 황구라는 새 견종까지 만들어 낸 북한이 믿은 『동의보감』의 원 저자인 신농>

알곡인지 쭉정인지 가리지 않고 조선시대 출판된 책은 모두 조선의 역사로 취급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역사 인식 수준이다. , 중국 역사책이 조선 역사책이고 중국 역사가 조선 역사다

이렇게 해서 중국과 일체화된 조선의 개고기 역사는 만들어졌고 조선족과 북한의 김일성은 개고기가 보약이라고 믿게 되었다. 중국 조선족과 북한의 개고기 역사 인식은 1997년 이후 한국에 전파되어 오늘날 우리가 믿는 개고기 전통설과 개고기 만병통치설이 되었다. , 한국 개고기 문제의 원흉은 중국이다.   

110. 조선족이 개고기를 안 먹으면 티베트가 독립?

중국 공산당

1911년 이후 본격적으로는 1921년 이후 중국 공산주의를 추종한 세력이 조선족(독립운동가 포함), 북한, 남한의 공산주의자들(민주화, 종교 세력)이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개고기다

얘네들이 개고기에 목숨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적어도 1921년 이후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서 개고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중국 공산주의 혁명의 상징이다개고기로 하는 성찬식이자 이념 전쟁이다.


<마오쩌둥의 명령으로 시작된 문화혁명, 1968년 5월>

청 왕가 멸망 후 중국의 많은 지도자(군벌)들이 앞 다투어 세력을 키웠다. 그 중 대표가 국민당과 공산당이었다. 사실 공산당은 국민당에 비해 쩌리였다

마오쩌둥은 소련과 일본의 팽창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 덕분에 쩌리에서 일약 국가 지도자급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마오쩌둥 식 공산주의 독재의 정점은 1966~1976년까지 불어 닥친 문화혁명이다.

 

<1949년 중곡의 침략으로 망명을 떠난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개>

마오쩌둥은 쩌리답게 공산주의 혁명 이론 따위 지키지 않고 제 멋대로 독재를 했다. 독재를 하다 보니 닥치는 대로 정적을 죽였다. 더 이상 죽일 명분이 없자 대중을 선동해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의 대학살을 했다

인류 역사 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인간은 개를 사랑한 칭기즈칸이 아니다. 개고기 먹은 마오쩌둥이다. 그는 최소한 수 천만 명의 중국인을 죽였다. 문화혁명은 단순, 무식, 잔인했다. 일단 그들이 정한 ‘이 있고 이 있다


<문화혁명 당시 학살을 주도한 노동자, 여성, 어린 학생들. 연합뉴스 2016월 5월 12일>

선은 마오쩌둥이고 악은 마오쩌둥에 반대되는 모든 것이다. 문화혁명 부대는 마오쩌둥 어록을 들고 다니며 시시콜콜 반동분자를 색출해서 죽였다. 마오쩌둥 말씀에 따라 어린 학생이 선생님 목을 자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등 패륜의 극을 달렸다

5천 년 찬란한 중국 역사, 문화, 지식이 모두 반동이 되었다. 문화혁명 부대는 탈레반보다 더 악랄하게 중국 문화유산을 파괴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보다 더 꼼꼼하게 역사책을 불태웠다. 그나마 양식 있고 똑똑한 중국인은 다 죽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혁명 당시 반동 분자로 찍힌 처형 직전의 중국 지식인들>

중국인 수준이 낮아진 이유다. 조선족도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중국 공산당 편이 아닌 조선족은 다 죽였다. 부주석까지 오른 조남기조차 좌천되어 가택 수색을 수도 없이 당했다. 항일 독립운동을 했어도 미국, 소련, 국민당과 관련 있는 조선족은 다 죽였다.


그 결과 현재 조선족 자치구에 사는 독립운동가는 모두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은 중국 공산주의자들이다. 조선족은 문화혁명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중국인 중 하나다문화혁명 당시 중국은 위그르, 티베트, 조선족 등 중국 소수민족의 역사와 민족 유산 말살 정책을 폈다


<세상 모든 개의 아버지라 불리는 티베트탄 마스티프인 사자개는 티베트의 상징이다. 출처 : National Purebred Dog Day>

그나마 남아 있던 조선족의 한국인으로서의 민족의식은 철저히 말살되었다. 1941년에 태어난 조선족이 한국 역사와 문화, 언어를 알았다가는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뇌를 포맷할 수 밖에 없다. 살기 위해서 말이다. 

개고기가 한국인의 전통이 아니라고 말한 조선족 역시 죽었다. 살아남은 모든 조선족은 개고기가 전통음식이라고 외쳐야 했다. 깨끗하게 포맷된 그들의 뇌에는 개고기는 한국인의 전통이라는 문구가 문신처럼 새겨졌다.


<1949년 이후 티베트, 위그르 인이 따라야 했던 중국의 개고기 식용 정책의 표본, 한나라, 2세기>

현재 조선족은 한민족에게 개고기 금기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다. "쉿...알면 죽어..." 이거다. 1950년대 이후 중국은 이미 미국보다 더 극단적인 용광로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용광로 정책은 중국 공산주의 세뇌즉 중화사상이었다중화사상에 의하면 개고기는 전통음식이다. 동시에 55개 중국 소수민족 중 조선족만은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개고기를 먹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개와 함께 사진을 찍은 티베트 카르마파 달라이 라마의 아들, 1952년> 

한민족의 개고기 금기에 대해 설명하려면 알타이 샤먼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중국 샤먼은 복 날 개피를 문에 발라 액막이를 했지만 알타이 샤먼에서는 개를 숭배했다는 차이를 설명해야 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기마 유목 민족 왕조였다는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그 많은 개들은 생전에 무덤 주인이 사랑한 반려견이자 영혼인도동물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


<티베트 카르마파와 비슷한 구도로 그려진 단군과 삽살개장천1호분, 5세기 후반>

그렇게 되면 중국 공산당이 서북공정에 이어 심혈을 기울이던 동북공정은 끝장난다. 고구려는 중국 한족 왕조와는 전혀 다른 기마 유목 왕조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고구려, 위그르, 티베트가 같은 기마 유목 왕조였다는 결론은 위그르, 티베트 , 몽골, 만주 독립과도 연결된다.

고구려, 티베트, 위그르는 중국과 생판 남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1953년 휴전한 한국 전쟁은 중국 공산당에게 매우 중요한 전쟁이었다. 한국 전쟁은 중국과 소련이라는 공산진영과 미국과 유엔이라는 자유진영이 치른 대리전이었다


<지금도 티베트 인은 개와 전통을 지키고 있다, 출처 : Sciencemag.org>

대리전에서 죽어난 것은 조선족 군대와 북한 군대, 300만 명의 한국인 민간인이었지만 말이다. 만약 중공군(실은 조선족)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휴전 없이 북한까지 자유민주국가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조선족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고 중국에서 분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족이 분리되었다면 마오쩌둥은 1970년대 후반까지 독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오쩌둥이 없었다면? 티베트와 위그르, 몽골, 만주는 애저녁에 독립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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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황제의 딸’ 조상은 신라인

중국 속 유목사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엄청나게 히트한 중국 드라마가 있다. 잃어버린 청나라 공주 이야기를 그린 ‘황제의 딸’이다. 이 드라마 하나로 무명이던 조미는 일약 중화권 최고 스타가 되었다. 


강남 순행 중 하룻밤 사랑으로 태어난 ‘황제의 딸’ 의 아빠는 청나라 건륭제다. 건륭제는 중국 역사 상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룬 황제 중 하나다. 그 위대한 건륭제가 자기 조상은 신라인이라고 밝혔다. 


<강남 순행 중인 건륭제, 청, 1770년>


아빠 조상이 신라인이니 딸 조상도 당연히 신라인이다. 건륭제 이름은 애신각라홍력(愛新覺羅弘曆). 성이 애신각라고 이름이 홍력이다. 건륭제를 비롯한 청나라 황족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다.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하자, 라는 뜻이다. 


뜬금포로 청 황족 이름에 신라가 나오자 당황을 했는지, 단순히 한자를 차용한 것일 뿐이라는 해석이 쏟아졌다. 청나라는 원래 여진족으로 자기 나라 글자가 없으니 한자를 가져다 쓴 것이라는 것이다. 


<반란 토벌 후 축하연을 여는 건륭제, 청, 1758~1759>


예를 들어 애신(愛新)은 부족 이름인 아이신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화답하듯 한국에서는 유전자 검사 결과 만주족과 신라인은 서로 다른 인종이라는 결과가 발표됐다. 중공 역사학자들이 파르르 하는 건 이해된다. 


대체 거기에 동조하는 한국 역사학자들은 뭔지 궁금하다. 유전자 검사로 같은 민족임을 조사한다는 발상 자체도 지극히 농경민족적인  관점이다. 스키타이 이래 모든 기마 유목 왕조는 인종과 시대만 다르고 문화가 같다고 했다. 


<서재에서 업무 중인 건륭제, 청, 18세기 중반>


지배 가문끼리 연합해 혈통을 지키려 노력한 것이지 인종을 지키려 한 것은 아니다. 왕 부족과 왕비 부족 인종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런데 건륭제가 자기네 조상은 신라인이라고 주장하는 역사책에 남겼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한국과 중국 역사학자들은  『야사』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야사』는 역사가 아니라 소설 나부랭이라는 뜻이다. 한나라 유방처럼 일자 무식쟁이도 아니고 그 위대한 건륭제가 설마 『야사』를 근거로 조상의 뿌리를 운운 했을까? 


<조상을 기리는 글을 낭송하는 건륭제, 청,  1788년>


건륭제는 청나라 두뇌들이 모인 한림원에 특별히 명해 청 황실 조상에 대한 역사책  『흠정만주원류고』를 쓰게 했다. 중국 한족들이 남긴 한족 관점에서 본 역사가 아닌 기마 유목 왕조 관점에 판단하는 역사를 남기고 싶었던 듯 하다. 


건륭제 뿐 아니라 인류 이래 역대 모든 역사는 정권과 야합했다. 물론 지금도 역사 전쟁은 진행중이다. 영국은 프랑스와 싸우고 한국은 일본과 싸운다. 각 나라 역사 교과서에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쓴다. 마지막에 끝까지 살아남는 역사가 『정사』다.



<자금성에서 재판하는 건륭제. 청중 속에 개가 있다. 청, 18세기 중반>


역사 전쟁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간파한 중국 한족은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그 작업을 하고 있다. 유목민은 역사를 노래로 남겼다고 했다. 기록이 귀한 만큼 유목민 관점에서 쓴 『흠정만주원류고 가  중요하다 할 수 있다. 


건륭제의 명을 받은 한림원 학자들은 신라와 백제의 영토가 한반도를 넘어 중국 만주와 요서지방에 이른다고 결론지었다. 이 사실 역시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애써 무시하며 건륭제의 주장은 허황된 『야사』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개가 목숨을 구해준 청나라 시조 누르하치>


신라와 백제가 중앙아시아를 누빈 유목 왕조라면 충분히 가능한 가설인데도 말이다. 어째서 일본 황족이 일본 황실은 백제 계라는 말을 하면 환호 하고 청 나라 황제가 청나라 조상은 신라라는 말은 무시하는 걸까? 


아무런 역사적 근거도 없는 식품 영양학과 교수가 주장하는 신라 개고기 식용설은 믿으면서 말이다. 가짜라고 치부하기 전에 신라 사람이 어쩌다 청 황실의 조상이 되었는지 알아보는 것이 순서다. 


<건륭제 아버지인 옹정제 명으로 그린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개 중 한 마리. 청, 1737년>


청왕조와 중국 한족은 지배민족과 피지배민족 관계였다. 주인과 노예다. 조상은 천랑성이 뜨면 약탈당하는 신세였다. 사이가 좋을 리 없다. 청나라 말기 중국 한족은 공산당과 국민당을 중심으로 청 왕조 타도를 외쳤다. 


결국 중국 대륙을 차지한 중국 공산당은 만주로 쫓겨난 청나라 왕족과 만주족 수 십 만 명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인종 청소다. 그러면서 청나라 영토를 물려 받았으니 과거 청나라 영토를 점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나라 지도, 1935년 발행>


청나라가 역대 최대의 영토를 확보할 수 있던 이유는 청과 만주, 몽골, 티베트, 위그르가 같은 개숭(배하는) 파 유목 왕조였기 때문이다. 치고 받고 한 끝에 맏형 격인 청왕조에게 일임한 것이다. 그 맏형인 청 왕조를 중국 공산당이 죽였다. 


죽여놓고 사실은 자기 조상이니 그 집 재산이 다 자기네 거라는 격이다. 중국 한족은 개먹(는)파다.  중국 한족은 국민당 공산당 가리지 않고 티베트 침공 후 개를 죽이고 개고기를 먹었다. 


<타타르(신장) 사신에게 백마를 선물 받는 건륭제, 청,  1757년> 


티베트인은 중국인을 '개고기 먹는 인간'으로 부른다. 청 왕조에는 황족만 만질 수 있는 페키니즈가 있었다. 개먹파와 개숭파는 절대 같지 않다. 티베트, 위그르, 몽골, 만주는 원 주인에게 돌려주는 게 도리다. 


만주는 만주 전쟁과 한국 전쟁 후 쑥대밭이 되면서 중공으로 넘어가 조선족 자치구가 되었다. 티베트와 위그르, 몽골에서는 수 백만 명이 학살되거나 수용소에 갇혀 있다. 이것이 현재 중국과 티베트, 위그르, 몽골, 만주의 역학 관계다. 


<폐허 속에서 개를 끌어안고 우는 티베트 어린이>


나는 청나라 신라인 설 역시 한국의 개고기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고 본다. 만일 중국 공산당이 청나라의 정당한 후계자라면 청 왕조 조상은 절대 신라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청 왕조가 신라 역사에 포함된다면 청나라 영토는 한국 땅이 될 수도 있다. 청 왕조와 신라 역사를 분리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신라는 농경민족이 되어야 한다. 개고기는 한국의 전통이 되어야 한다. 역사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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