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32. 개 식용은 반청복명 운동, 중국 공산화 운동

AnDant 2019. 10. 5. 13:54

개고기는 중국 문화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은 청나라가 아니다. , 당 왕조 이전의 고대 중국과 명나라,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여기에는 1392년 건국된 조선도 포함된다

1392년 고려인은 조선인이 되었다. 조선은 명나라를 추종하며 순수 한족 중국 왕조를 조선에 재연하고자 했다. 우리 조상인 고려인이 조선인이 되었고 명나라 인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키자 조선 지배층은 패닉에 빠졌다. 


<고대 중국과 고구려의 개에 대한 기본 인식 차이>

조선 건국 이념 상 명나라와 함께 망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망하는 대신 조선은 이중정책을 썼다. 청나라에게는 복종한다고 약속해놓고 조선 안에서는 배신자를 색출하며 내부 단속을 했다. 그래서 광해군이 제거되었고 소현세자와 그 가족들이 몰살되었다

진짜 명나라 대신 청나라를 택하는 순간 조선 시대 지배층은 즉시 제거되었다그 결과 모든 조선 시대 지배층은 조선이 망하는 순간까지도 오직 명나라만 추종하게 되었다조선이 망하고 일제의 지배를 받은 후에도 명나라 사랑은 변치 않았다


<비밀 명나라 복원 운동을 하던 조선의 왕은 청 나라 사신이 오면 성 밖까지 나가 마중을 해야 했다, 18세기>

일제 황국 신민이 된 조선인은 여전히 몰래 마지막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 이후 형성된 기이한 소중화주의는 중국 공산당이 창당되자 중국 공산당 추종으로 이어졌다. 왜 그런가?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자 중국 대륙에서는 진짜 한족 중국을 복원하자는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진짜 중국이 명나라라고 믿은 중국인은 국민당이 되었고 중국 공산당이라고 믿은 사람들은 공산당이 되었다


<아편전쟁에서 청 왕조가 패배하기 전까지 티베트탄 스패니얼 계열의 사자 개는 오직 청 황족만 만지고 볼 수 있었다, 1899년>

이 시기 황국 신민이 된 조선인 중 일제에 의해 독립해 명나라인이 될 것인지  중국 공산당 당원이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믿은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은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조선 독립운동 파벌이 형성되었다.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각 지역 군벌이든 너도나도 개고기를 다시 먹기 시작했고 조선의 독립운동가들도 개고기를 먹었다개고기를 먹는 것은 명나라 복원 운동이자 청나라 반대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선 땅에도 해당되었다


<민족 역사 속 유일하게 개 식용 정책을 편 조선>

병자호란 이후 조선에도 개를 죽이며 명나라를 부활시키려는 세력이 있었다조선 후기 지배층이었다조선 후기에도 개고기를 먹는 것은 명나라 부흥운동이자 청나라 반대 운동이었다

힘으로 청 왕조에 굴복해 복종은 하지만 속마음까지는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 조선 후기 지배충들이 가진 기본 이념이었다. 송시열이 주장한 소중화주의는 결국 반청 운동의 일환이었다


<청 나라에서 사자개는 오직 황족만 키울 수 있었다,  도자기, 청, 17~18세기>

이런 신념은 청 왕조가 다스리는 중국 대륙 안에 숨어 암약하던 명나라 복원 세력과 뜻을 같이 했다. 청 왕조에게 있어 조선은 반정부 세력이나 마찬가지였다명나라를 부흥시키자는 중국 내 반청 세력과 조선의 반청 세력은 개를 죽였다

? 청 왕조가 개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다. 만약 청 왕조가 개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개 도살 금지법 같은 걸 만들지 않았다면 중국과 한국에 개고기 식용 악습은 농업혁명과 더불어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청 왕조를 증오하며 개고기를 군량미로 사용한 중국 공산당 군대, 1930년>

하지만 하필 청 왕조는 개를 유독 사랑했다. 그것이 개를 둘러싼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다. 청 시조인 누르하치의 목숨을 구해준 개는 모든 만주족에게 신성했다. 청 왕조에는 황족만 만지고 볼 수 있는 특별한 개가 있었다

그 개는 페키니즈, 시추, 라사압소로 불리는 사자개다. 페키니즈, 시추, 라사압소는 티베트 개다. 티베트, 청 왕조의 고향인 만주, 위그르, 몽골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 개를 죽이는 것은 지독한 금기다


<티베트와 위그르가 청나라에 복속된 이유는 같은 기마 유목 민족이기 때문>

지금도 오직 중국 한족만 이 지역에서 개고기를 먹는다. 티베트, 만주, 위그르는 모두 청 왕조로 하나되어 있었다. 청 왕조는 이들 국가의 맏형 격이었다. 맏형인 청왕조가 중국 대륙을 다스리니 티베트, 위그르, 만주, 몽골도 형의 지배력 아래 들어가 함께, 파트너 자격으로 중국을 다스린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같은 문화와 종교를 가졌다는 동질성에 의해 가능했다. 티베트, 만주, 위그르, 몽골, 청은 같은 편이었고 개를 사랑했다이에 반해 중국 한족은 적이자 개고기 먹는 인간들이었다. 청 왕조는 다수의 적인 중국 한족을 소수의 만주족으로 다스렸다


<몽골의 샤먼 의식에 신성한 동물로 등장하는 몽골 전통개는 삽살개와 유전자가 99.9%동일하다>

티베트, 위그르, 몽골 등 다른 유목 왕조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다. 만주족과 마찬가지로 개를 신성시한다 왕의 상징으로 여기는 이들은 청 왕조의 동료였다. 개를 죽이는 것을 법으로 금지할 정도로 사랑한 청 왕조에 반대하려면? 개를 죽이면 되었다

개고기를 금지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에게 반대한 586운동권들이 행한 방법과 같은 방법이었다. 20 세기 한국과 달리 청 왕조 시대 중국에서 개를 죽이다 걸리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고 불교와 도교의 영향으로 개고기를 먹는 관습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지만 말이다


<청 황제의 명으로 서양화가가 그린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개인 티베트탄 마스티프>

그런데 청 반대 세력은 조선 땅에도 있었다고 했다. 더군다나 중국 땅에서는 못 죽이는 개를 조선에서는 마음껏 죽일 수 있었다병자호란 후 조선 양반들은 개를 죽임으로써 청 왕조에 엿을 먹이고 굶어죽는 대중을 선동하는 치졸한 방법을 썼다

양반들이 (지들은 먹지도 않으면서) 글로 써서 우아하게 개를 죽여 개고기를 약과 식량으로 먹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면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백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실행했다. 이렇개 해서 조선의 개고기 역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개고기로 보는 조선 양반과 백성의 민족 의식 차이>

실제로 조선백성들이 고등어 구워 먹듯 개를 많이 먹어서 역사가 된 것이 아니다. 전직 고려인인 조선 백성은 한민족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한민족의 전통에 의하면 개는 먹어서는 안 되는 신성한 동물이다

티베트, 만주, 위그르, 몽골과 마찬가지로 한민족 역시 개가 죽음과 관련된 영물이라고 믿었다백성들의 생활과는 달리 조선 후기 지배층은 그동안 중국에서 출판된 고대 중국 의학서를 죄다 긁어모아 출판했고 이것이 조선의 역사로 둔갑했다


<김일성 황구라는 새 견종까지 만들어 낸 북한이 믿은 『동의보감』의 원 저자인 신농>

알곡인지 쭉정인지 가리지 않고 조선시대 출판된 책은 모두 조선의 역사로 취급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역사 인식 수준이다. , 중국 역사책이 조선 역사책이고 중국 역사가 조선 역사다

이렇게 해서 중국과 일체화된 조선의 개고기 역사는 만들어졌고 조선족과 북한의 김일성은 개고기가 보약이라고 믿게 되었다. 중국 조선족과 북한의 개고기 역사 인식은 1997년 이후 한국에 전파되어 오늘날 우리가 믿는 개고기 전통설과 개고기 만병통치설이 되었다. , 한국 개고기 문제의 원흉은 중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