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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소 돼지는 먹는데 개고기는 왜 안돼요?

종교

개고기를 약으로 쓴 초기 도사들의 사기 행각은 너무 빨리 들통 났다. 휴거를 외치며 빌딩에서 뛰어낸 사람처럼 불로초를 먹은 진시황도 죽은 것이다.

그러자 도사들은 서양의 연금술사처럼 자신들이 금(금단)을 만들 수 있다고 공언했다. 당시 황제들이 먹은 금단은 우황청심환처럼 금박을 입힌 환약인 환약일 것이다.

<금을 만드는 연금술사, 영국, 1750~1810년>

무협영화에서 주인공은 우연히 이상한 풀(불로초)을 먹거나 영약(금단)을 먹고 초절정 고수가 된다. 황제들이 먹었을 때 기력이 반짝 회복된 걸로 봐서는 스테로이스 성분이 들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모 한국 일일 드라마에서 불로장생약처럼 등장하던 일부 공진단에도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다. 스테로이드는 운동선수 금지 약물이다. 무엇보다 금단에는 수은이 들어 있었다.

<숯 바구니를 든 금단 도사, 원, 1351~1400년>

비싼 금단을 사먹은 황제와 부호들은 수은 중독 증상으로 죽었다. 그러자 도사들은 한식산을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떠들었다. 6세기 북제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보면 귀족들이 한식산을 술에 섞어 마시고 있다.


중독성이 강한 한식산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머리가 맑아지고 체력이 좋아진다고 한다. 그림을 보면 귀족들이 대낮부터 벌거벗고 있다. 딱 봐도 한두 번 벗어본 폼이 아니다. 

 <양자화의 북제교서도 중 한식산 마시는 사대부 혹은 귀족, 6세기>

훌훌 옷을 벗어던질 정도로 몸에서 열이 나고 견딜수 없던 것이다. 갈증이 나 술을 퍼마시다 알코올 중독이 되거나 미쳐서 죽었다. 선비족 왕가 고 씨 패밀리처럼 말이다.

한식산마저 마약성 독약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도사들은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살아남기 위해 중국 도교는 변해야했다. 때마침 중국 내부 사정도 변하고 있었다. 

 <물약을 비우는 도사와 여의를 든 불멸의 황제, 명, 1573-1620>

고구려한테 패배한 후 멸망한 수 왕조 대신 들어선 당 왕조 치세 동안 중국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번성했다. 자잘한 전쟁과 자연재해는 있었지만 몇 백 년 간 큰 전쟁이 없던 덕분에 백성들은 적어도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호탄산 옥을 당나라 전역에 유통시킨 소그드 상인과 돌궐, 위그르 인들은 교역을 발전시켰다. 경제가 윤택해지고 생활수준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다.  

<이공린이 모사한 8세기  괵국부인 유춘도, 송, 12세기>

 

백성들 대상으로 포교 활동을 해도 돈이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채식 위주의 불교와 경교, 마니교 등도 중국 사회 분위기를 변화시켰다. 이 모든 요인들로 인해 상류층 중심의 중국 도교는 백성 중심 도교로 변하기 시작했다.


허무맹랑한 불로장생약은 집어치우고 수련만 하면 누구나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황제한테 금단을 파는 것보다 일반 신도들을 상대로 헌금을 받는 것이 더 남는 장사였다.

 

<지팡이 든 노인과 신성한 나무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좁쌀 한 말도 잘만 모으면 성을 살 수 있었다. ‘개 머리를 한 새’를 믿는 빛의 종교에 대해서도 쉽게 설명만 하면 통할 수 있는 시대가 드디어 온 것이다.

중국 도교가 받아들인 것으로 추정되는 빛의 종교 교리의 포인트는 빛이 어둠을 이기고 광명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백성 중심의 도교가 되자 도교의 가르침도 쉽고 현실적이 될 필요가 있었다. 

<불새 청동 거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빛의 종교에서 개 혹은 개 머리를 한 새는 신이나 지상의 왕을 상징했다. 혹은 죽은 영혼을 신성한 산(천국)으로 안내하는 신의 사자였다. 좌우지간 개는 먹으면 안 되었다.


“그래, 신의 섭리가 뭔가?”라는 왕의 질문에 답해야 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소 돼지는 되는데 개는 왜 안 되는데요? 도(개 새 신의 뜻)가 뭔데요?”라고 묻는 백성들의 질문에 찰떡같이 답해야 했다.

<당나라 개 도자기, 7~10세기>

일단 광명의 영역이 신선 세계라는 데까지는 대중에게 이해를 시켜둔 상태였다. “신선 세계에는 어떻게 들어가는데요?”라는 질문에도 백성들 입장에서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나라에 돈이 돈다 해도 대다수 백성들은 여전히 배고프고 가난했다. 거지같은 현실을 벗어나려면 신선이 되어야 한다는데 그게 언제 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무덤 벽화 속 저택과 불새, 북제, 6세기>

개인의 능력에 따라 당장 오늘 일 수도 있었고 삼십 년 후일 수도 있었고 재수 없으면 영영 못 될 수도 있었다. 황제한테 한 것처럼 “이 약만 잡숴봐”라며 약을 팔수도 없었다.

어떻게 인내심 없는 백성들을 교화(선동)해서 좁쌀 한 말이라도 받아낼 것인가? 4~6세기까지는 죽을 때까지 고사리만 먹더라도 산속에 틀어박혀 고고하게 살자는 청담사상 같은 도교도 통했다.  

<4세기 왕희지가 시회에서 유상곡수를 즐기는 장면, 명>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결론은 트렌드였다. 당 대가 되면서 중국 도교는 “일단 믿어봐, 믿으면 부자 돼. 자식이 출세 해.” 이런 식의 세속적인 교리를 폈다.

신선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돈만 생겨도 백성들은 바랄 게 없었다. 도교가 일반 백성들의 믿음을 얻은 것은 도교 교단이 발전하는 것을 의미했다. 여러 교단이 생긴 걸 보면 백성 친화적인 도교는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41. 주나라 왕비가 흉노족인데 웬 중화사상 뽕?

중국 속 유목사

비단 찢을 때마다 왕을 홀리는 웃음을 지어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포사는 결국 왕비 자리를 꿰찼다. 그러자 열 받은 전직 왕비가 북방 기마 유목민인 견융을 끌어들여 주 왕조를 멸망시켰다.


여자 하나 잘못 만나 나라가 망한 건 맞지만 정확히는 비단 찢다 망한 게 아니라 흉노의 침입으로 망한 것이다. 견융, 개 견 자를 쓰는 것부터 범상치 않다. 개를 섬기는 오랑캐, 즉 흉노다.

 

<흉노 혹은 선비족 인형, 기원전 4~3세기>


여불위와 진시황의 민족인 초나라 묘족도 조상이 개였다. 주 나라 마지막 왕이 쫓아낸 왕비 역시 흉노족일 가능성이 높다. 고대 중국 유물에 개와 불새와 같은 북방 기마 유목 왕조의 상징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주나라부터 따지자면 모든 고대 중국 왕조가 북방 기마 유목민과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는 셈이다. 날개달린 말과 신성한 나무, 그리고 불새는 전형적인 북방 기마 유목민의 상징이다. 

<불새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불새는 개 머리를 한 새 혹은 사자나 남자 얼굴을 한 새로도 변한다. 즉 신성한 나무와 빛의 왕국을 믿는 기마 유목 민족의 종교다.


한 왕조 유물 중에 신성한 나무 위에 앉은 불새를 활로 쏘는 남자 모습이 있는 걸로 봐서는 키푸로스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 내부에 잔존한 흉노 세력을 마침내 몰아냈다고 선포한 것 같다. 

<한 왕조의 천마와 기원전 1세기 흉노의 천마>



쫓겨난 왕비의 한풀이로 주나라가 망하자 무려 550년 간 중국은 내전에 휩싸였다. 하루아침에 나라가 세워졌다 망했다는 춘추전국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약 3년 여간 이어졌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한국 국민이 얼마나 배고팠는지 떠올려 보자.

<불새를 겨냥하는 궁수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최소 그 상태로 550년을 서로 죽이며 지냈다면 살아남은 사람들 상태가 정상일 수 있을까? 재물 가진 지배층이야 살 길이 있다 쳐도 백성들은 달랐다.

육체적인 고통과 당장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처절한 배고픔 속에 지배층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 당연했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 

 

<중화사상 개념도>

그래서인지 이 시기 학자들은 중화사상을 퍼트렸다. “중국인 외의 모든 인간은 모두 짐승(오랑캐)! 그러니까 우리 중국 최고!” 라는 믿음이다. 이집트는 앗시리아와 싸웠고 고구려도 당나라와 싸웠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외교도 하고 교역도 했다. 중국 안은 인간 세계, 중국 밖은 짐승 세계라는 이분법적 믿음은 굶어 죽는 백성들에게 뽕 맞은 거 같은 정신적 만족감을 줄 수는 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우리는 중국인이니까 훗, 그나마 짐승 같은 저 놈들보다는 백 번 나아.”라고 자뻑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주나라 마지막 왕비가 정말 흉노족이라면 이 중화사상 뽕은 완전 헛소리다.

이런 선전·선동을 학문으로 승화시킨 것이 유교였고 그 대표 주자가 맹자와 공자였다. 늙어 죽을 때까지 떠돌이 생활을 한 공자는 한나라 유방이 유교를 국가 정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공자의 일생을 그린 책, 청,  17~20세기>


중화사상 역시 20세기 모택동이 국가정책으로 이용하지 않았다면 잊혀졌을 것이다. 한편, 중화사상 뽕으로 버티던 550년의 춘추전국 시대를 흉노설이 떠도는 진시황이 통일 했지만 얼마 안 가 내란이 터졌다.

고대 중국 역사는 계속 이런 식이었다. 내란 아니면 북방기마유목민이 쳐들어왔다. 결론은 중화사상 뽕이든 뭐든 백성들은 마음 편히 농사조차 짓지 못했다. 그래서? 또 굶어죽었다. 계속 굶어죽었다.

<부엌 목매달아 잡은 개 추정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여차하면 짐 싸 짊어지고 멀리 떠날 수 있는 유목민과 달리 농경민인 중국인 농사를 못 지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식량이 부족하면 뭐든 먹는다.

쥐 고기도 먹고 개고기도 먹고 사람 고기도 먹는다. 산둥성에서는 책상 다리 빼고 다 먹는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다. 중국 역사에는 가뭄이나 전쟁으로 성 안 인구가 반으로 줄었다는 기록이 끝도 없이 등장한다. 

<유민도, 명, 16~17세기>

 

시체를 먹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사냥해 잡아먹어 인구가 반으로  준 것이다. 한나라 유방이 적장의 고기를 먹거나 공자가 사람 고기로 만든 젓갈을 즐긴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당시 법 상 반드시 개고기를 먹어야 하는 피지배층이었다. 다행히 두 사람 다 사람고기도 좋아했고 개고기도 좋아했다. (모택동도 개고기는 좋아했다)

<장막 안에서 여인과 함께 있는 황제, 한, 기원전 232 경 추정>

백성들은 미국 드라마 ‘워킹데이’ 속 좀비들처럼 서로를 잡아먹고 먹혔지만 지배층은 달랐다황금과 권력을 쥔 그들은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지금과 같은 안락한 삶을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아 헤맸고 황제들은 금단을 먹거나 한식산을 먹었다. 초기 도교 도사들의 주요 고객도 이 황제, 귀족, 부호들이었다. 일반 백성들은 치료를 할 때나 만났다. 한의사도 겸한 그들은 개고기를 약으로 썼다. 

<목줄한 개 석상, 한, 1~2세기>

 

고대 개고기를 약으로 쓴 건 중국 한족만이 아니었다. 앞서 살펴봤듯 ‘개 새’를 믿은 지역 즉 개를 죽음의 신 아누비스로 숭배한 이집트, 여신 굴라와 신성한 개를 믿은 바빌로니아에서도 개고기를 약으로 썼다.

그러나 중국인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신전의 관리 하에 아주 엄격히 개고기를 약으로 사용했다. 중국에서는 아무런 제제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개를 잡아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신농'의 처방대로 약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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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39. 아르미안의 네 딸들 속 '개 머리 새'

종교

여불위가 진시황 아버지라면 진시황도 흉노족일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문란한 성생활으로 악명 높은 진시황 엄마는 억울하다. 

왕성한 성생활을 통해 자손을 많이 남기는 것은 기마유목민의 미덕이었다. 그래서인지 진시황 시대 유물을 보면 티베트탄 마스티프 석상이 있다.

 <진 왕조 마스티프 석상>

사자개는 유목 왕조에게는 마치 옥새와도 같다 했다. 이런 개 석상이 중국 진왕조 유적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생뚱맞다.

 
진 왕조가 받은 석상이거나 과거 초나라 영토 안에 사자 개 석상을 가진 유목 왕족이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어느 쪽이든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자마자 만리장성을 쌓아 흉노를 열 받게 했다.

 <만리장성>

흉노를 막기 위해 쌓은 만리장성이 흉노의 침입을 더 초래했다. 그 전까지는 겨울이 되어 천랑성(늑대의별 혹은 개의 별)이 뜨면 풀이 얼어 죽어 양 떼가 굶주린 흉노족이 남쪽으로 이동했다.

양을 몰고 이동하다 보니 거기가 중원이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중원을 노리고 양떼를 몰고 내려왔는지 모르지만 흉노는 계절에 따라 초지를 이동하듯 중국을 침입했다.

 

 <청동기 개 머리 새  추정 장식, 한,  기원전 206~서기 220년>

그런데 어느 날 진시황이 장성을 쌓아 길을 딱 막아버린 것이다. 흉노는 만리장성 건설 후 더 기를 쓰고 중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지 못한 중국인은 개와 사람을 잡아먹었다. 빛의 종교 ‘개 새’와 신성한 개에 대해 백날 떠들어 봐야 중국인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은 이유다.
  

<청동기 도끼에 새겨진 개, 세베로오세티아 공화국, 기원전 11세기~7세기>

중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달랐다. 빛의 종교에서 ‘개머리를 한 새’ 는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신이나 신의 대리인, 혹은 왕을 상징한다. 당연히 영원불멸한 존재다.

‘개 새’ 양식이 나타난 지역은 조로아스터교를 믿었거나 영향을 받았다는 의미다. 그 중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지역에서는 불새라는 개념으로 토착화된다.

<날개 달린 남자와 불새가 새겨진 점토 문양, 아케메니아 페르시아 추정, 영국박물관>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라는 순정 만화를 보면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영원불멸의 신인 불새를 믿는다. 실제 페르시아 바빌론에서 발견된 점토를 보면 개 새와 피닉스가 만난다.

고대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지역에서 믿은 불새는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에 한 번씩 인간들 앞에 나타났다가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죽었다 부활하니 영원불멸한 신이다. 조로아스터교의 ‘개 머리를 한 새’는 중앙아시아의 북방기마 유목민에게도 아주 중요한 신이었다.

흑해 연안은 중앙아시아 북방 기마 유목민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다. 늑대 머리를 한 인간을 그린 암석화도 이 지역에서 출토되었다.

<기원전 11세기 개 문양 도끼 출토 지역과 조로아스터 출생 지역>

아마도 이 곳에서 기마 유목민의 모든 역사가 시작된 것 같다. 11세기 흑해 연안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물에는 개가 새겨져 있다. 날개만 없다 뿐이지 개 머리 새와 같은 문양이다. 

개 머리를 한 새를 믿는 조로아스터교와 몽골의 전통 종교는 같았다. 같은 신을 믿었다. 조로아스터교의 최고 신인 아후라 마즈다(개 새)는 몽골의 최고 신인 호르마스트 텡게르다.

<불새가 그려진 직물 일부, 위그르 지역, 8~9세기>

조로아스터는 몽골의 서쪽 지역에서 태어났다. 선비족, 고구려, 돌궐, 위그르 등이 '개 새'(주작)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유다.

한 집안 신이었다가 갈라져 저 쪽으로 가더니 세련된 ‘개 새’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돌궐과 위그르에서는 ‘개 새’를 왕의 깃발로 사용했다. 그게 늑대 머리 깃발이다.

<불새와 함께 하는 부처 입상, 북위, 471년>

왜 뜬금없이 늑대 머리를 깃발로 사용했을까?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이 마치 날개 달린 개(늑대)같다. 투르크의 늑대 머리 깃발은 현재 터키로 이어지고 있다.

스키타이, 흉노, 돌궐, 위그르, 몽골 등이 기록을 남기지 않은데 비해 소아시아와 이란으로 진출한 기마 유목민은 조로아스터교와 ‘개 새’라는 형태로 만들어 유물을 남긴 것이다.

<개 머리 성인 크리스토퍼, 19세기>

로마 제국 시대 시리아에서 예수를 구해준 성 크리스터퍼가 왜 개 머리를 하고 있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소아시아 지역 최고 토착 신인 ‘개 새’가 아기 예수를 구해줬다고 나름 풀어서 설명한 것이다.

‘개 새’로 표현되는 치열한 권력 투쟁도 시리아 바로 앞 바다에 있는 키푸로스 섬의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리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 키푸로스는 현재 터키계와 그리스 계로 분단된 상태다.

<마스티프와 황소 청동기 조각, 키푸로스, 기원전 1340~1200년>

현대도 이렇게 피터지는데 고대에는 더했을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지중해 교역의 중심지인 만큼 키푸로스를 차지하려는 세력들이 많았다.

히타이트, 앗시리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 지중해 패권을 차지한 국가는 반드시 키푸로스를 차지했다. 마치 중앙아시아 비단길에 위치한 호탄과 쿠차 왕국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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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아기를 개 먹이로, 난릉왕 고 씨 패밀리

종교

양나라는 개고기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비단 찢을 때마다 왕을 홀리는 미소를 지어 온 나라 비단을 찢어 바치다 나라가 망했다는 주나라도 아니고 양나라는 절에 돈을 쏟아 붓다 망했다.

재정파탄 여러 실책이 겹치면서 양무제는 후경이라는 인간에 의해 비참하게 죽는다. 후경은 또 북제의 미친 고 씨 패밀리 중 하나인 고징에 의해 정리된다.  

<교각반가상, 북위, 470–480>

 

동위의 황족이자 승상이던 고징은 형제의 난 끝에 죽었지만 난릉왕 삼촌이 북제를 세우자 사후 황제로 추존되었다이 고징의 아들이 중국 역대 4대 미남 중 한 명인 난릉왕이다.

난릉왕(541~573)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잘생겼다고 한다.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 가면을 쓰고 전쟁을 해야 했다는 난릉왕은 북제를 지킨 전쟁의 신으로도 추앙받는다

<북위 혹은 북제, 말 등에 탄 관리, 6세기>

 

난릉왕은 절세 미남에 성격마저 아름다웠다는데 아버지 고징은 역사에 길이 남을 미친놈이었다. 고징 뿐 아니라 집안 내력이 정신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 씨 패밀리는 미친 짓을 많이 했다. 

정말 미쳐서 그런 게 아니라면 아마도 고 씨 왕가는 한식산에 중독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이 저지른 기행과 패륜이 도교에서 만든 불로장생 약인 한식산에 중독된 후유증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도교의 신들, 명(1368–1644) >

 

기독교는 천당에 가고 불교는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도교는 그 딴 거 다 필요 없다.  젊은 상태로 영원히 사는 것이 목표였다. 그게 신선이다. 2017년 히트한  중국 드라마 '삼생삼세 십리도화'은 신선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신선이 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수련을 하는 방법과 약을 먹는 방법이었. 초기 도교에서는 간편하게 약을 먹는 법을 선호했다. 불로장생 약을 만드는 전문가 집단인 도사가 있을 정도였다

 

<도교의 신선경을 조각한 옥, 청, 18세기>

 

한의사도 겸한 이 도사들은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신농이 남긴 기록에 따라 개의 모든 신체 부위를 약으로 사용했다그러므로 당·송 대 이전 중국 한의서와 도교서에는 개고기를 약으로 사용한 기록이 많다. 


조선에서 출판된 그 많은 개고기 기록도 모두 초기 도교와 한의서를 복사한 것이다. 조선은 516국이나 북조· 당· 원·청 같은 유목왕조는 무시하고 오직 순수 한족 왕조가 다스린 시대만 물고 빨았다. 

<한의학의 신 신농, 1914년>

 

한족 중국은 큰 중국이고 조선은 작은 중국이라는 조선의 헛소리와는 별개로 중국 도교의 불로장생 약은 시대에 따라 변했다. 진시황 시대에는 '불로초'였다. 불로초 약빨이 다 하자 이번에는 금단이 유행했다. 

그 다음에는 '한식산'이었다. 선비족 고 씨 패밀리가 미친 짓을 하던 남북조 시대에 유행하던 불로장생 약은 한식산이었다. 당연히 불로장생 약을 둘러싼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풀때기 찾아 돈만 날린 진시황은 행운아였다. 금단에는 수은이 듬뿍 들어 있었다. 금단을 먹은 사람들은 수은 화장품을 바른 유럽의 귀부인들보다 더 빨리 수은 중독 증세를 보이며 죽어갔다. 

그걸 좋다고 먹었으니 황제들도 금단을 먹고 줄줄이 죽어나갈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한식산의 경우 죽지 않는다면 심한 갈증 탓에 술을 양동이 째 들이켜 알콜 중독이 되거나 광증과 기행은 일삼다 미쳐버렸다.

<월주 요에서 제작된 귀병 속 신선 세계,  서진, 3~4세기>

 

난릉왕 아버지 고징은 아버지 후궁과 정을 통하는 등 패륜을 저질렀다. 고위, 고작은 개 먹이로 사람을 던져 줄 정도로 미친 듯이 사람을 죽였다. 그  와중에 페르시아 개는 살뜰히 챙겼으니 더 미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늘 끼고 다디던 페르시아 개에게 가장 높은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아마도 승상 자리를 개한테 준 것 같다. '이런 미친 놈...' 같지만 고려에서도 개한테 벼슬을 내린 적이 있다. 

 

<티베트탄 마스티프 석상, 전진, 기원전 221~기원전 206년>

 

유목민적 관점에서 보면 미친 짓이라고 할 수 없다. 비단 몇 천 필을 내야 살 수 있었다는 이 페르시아 개는 티베트탄 마스티프 인 듯 하다. 페르시아 왕조에서 신처럼 추앙받던 티베트탄 마스티프는 유목 왕조에서 옥새처럼 키우는 사자 개이기도 하다.

신라 지배층에서 보듯 동복 형제와 친모를 제외한 모든 여자와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  유목 문화니 불륜도 이해하고 넘어간다 치자. 그렇다 해도 말술을 마시고 광증을 보이며 닥치는대로 사람을 죽이는 건 아무래도 한식산 부작용 같다.

<은거하며 술을 마시는 중국 한족 선비들, 5세기>

 

조선 시대 선비들이 그렇게 동경해 마지않던 죽림칠현도 사실은 한식산 부작용으로 미친 듯이 술을 퍼마신 거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한식산 부작용은 심각했다이렇게 해서 당·송 대 이후 중국 도교가 확 변하게 된다.

약은 포기하고 수련에 매진한 것이다. 이후 도교에서는 금식을 하며 몸 안에 있는 기를 먹고 살면 언젠가 신선이 될 수 있다고 믿었신선이 되려면 성 생활, 육식, , 음주 모두 삼가야 했다.  

<당나라 저택 난간에 새겨진 권선서>

 

신선 열풍은 당·송 시대를 강타해 도교 수행자가 아닌 일반 백성이 먹어서는 안 될 음식 목록에도 개고기가 들어갔다. 당나라 시대 지어진 저택 난간에는 도교의 권선서 내용이 조각되어 있다.

도교의 권선서에는 개고기를 먹으면 어떤 벌을 받게 되는지 꼼꼼하게 기록되었다이렇게 해서 굶어죽기 직전인 비천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당·송 대 이후 중국 대륙에서 개고기는 사라지게 된다

고위, 고작, 고징, 금단, 난릉왕, 북위, 북제, 불로초, 삼생삼세 십리도화, 선비족, 신농, 여상육정, 죽림칠현, 진시황, 한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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