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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개고기에 목숨 건 이유?

정치

1998년 시작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 온 정책이 있다. 조선족 지원 정책이다. 조선족 지원 정책은 재외동포, 혹은 동포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조선족 지원 정책은 곧 중국인 지원 정책이다. 조선족이 중국 국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중국인은 중국 공산사상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중국인은 공산주의자다. 


<조선족은 중국국적을 가진 중국인이다>


중국 공산주의는? 한국 좌파의 근원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조선족 지원 정책은 곧 중국 공산주의 지원 정책인 셈이다. 쉽게 말해 직접적으로 남한을 공산화하기 어려우니까 미국을 거점으로 이용해 우회적으로 조선족을 지원한 것이다. 

그게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조선족 지원 정책의 실체다. 그렇게 생각하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왜 그토록 개고기에 집착을 했는지 답이 나온다. 개고기가 곧 조선족이기 때문이다. 개고기가 곧 중국 공산화기 때문이다. 


<한국 개 식용 문화 전파와 중국 공산화 운동>


전세계 공산주의 중 중국 공산주의만이 개고기를 전통이라고 주장한다. 청 왕조에서 개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개고기 정책에 가장 잘 따른 중국인이 조선족이었다. 그 말은 중국에서 조선족이 가장 열렬하게 공산혁명을 수행했다는 의미도 된다. 

당연히 중국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개를 때려 잡아 먹었다. 개고기가 전통이라고 주장하며 개를 가축으로 키워 먹는다. 이렇게 해서 조선족이 가는 곳에는 반드시 개고기 집이 생기게 되었고 한국으로 조선족이 이주하게 된다면 반드시 개고기 집도 같이 따라와야 했다.

<조선족을  위해 국경과 법을 허문 노무현 대통령을 칭송하는 서경석 목사, 동북아신문, 2009년 5월 20일>

이 모든 일들이 갑작스레 일어난다면 한국 내부에서 반발이 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작전은 주도면밀하고 철저한 계산 하에 이루어졌다. 먼저 명분 제공. 조선족을 지원하는 명분은, "한민족, 통일, 인권'이었다. 


뭐 하나 나쁜 말이 없다. 한민족, 통일, 인권을 위한다는데 반대한다면 그 인간이 나쁜 놈이다. 그런데 이 말을 더 정확히 풀어하면 이렇게 된다. "조선족을 위한 한민족, 조선족을 통한 통일, 조선족을 위한 인권" 


<1992년 이후 한국 좌파와 미국 한인 사회의 조선족 지원 기본 정책은 한민족, 통일, 인권>


중요한 '조선족'이라는 주체는 쏙 빼고 사람들을 국민들을 선동한 것이다. 한국에서 말하는 인권에 평범한 삶을 사는 한국인의 인권은 없다. 피해자의 인권도 없다. 한국에는 외국인(조선족 포함)과 가해자의 인권만 존재한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나? 

현재 100만 명이상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한국인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이 되었다. 또 전 세계 누구든 일단 한국 땅에만 들어오면 정부 세금 지원을 받는 수많은 인권단체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권'을 부르짖으며 한국에서 영구적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한국 불법체류자들이 인권을 내세우며 불법 체류 합법화를 주장하는 대규모 시위를 하고 있다, 2019년 10월 20일>


불법체류자들이 수도에서 대규모 시위를 하는 나라는 단언컨대 이 나라 대한민국 밖에 없다. 경찰은 불체자를 단속하라는 신고를 받고도 이들을 철통 경호하가며 시위를 도왔다. 

이 모든 게 '인권'을 절대 선인양 떠받들며 조선족에게 국경을 허문 결과다. 인권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누구? 김대중 대통령이다. 


<인천공항에 입국해 난민신청을 한 앙골라 가족은 인권단체의 지원으로 승소해 임시 한국인이 되었다, 노동자연대, 2019년 10월 12일>


조선족을 지원한 차종환 씨는 공교롭게도 김대중 '인권'센터와 손을 잡고 미국에서 활동했다. 차종환 씨를 대표로 하는 좌경화된(중국공산사상에 물든)된 미국 교포 사회는 조선족 지원의 모든 명분을 제공했으며 실질적인 역할도 수행했다. 

실질적인 지원은 서경석 목사가 했다. 누구를 시켜서? 노무현 대통령을 시켜서. 서경석 목사는 박정희 정부를 전복해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후 석방되자 미국으로 건너가 목사 안수를 받았


<한국 불법체류자들이 인권을 내세우며 불법 체류 합법화를 주장하는 대규모 시위를 하고 있다, 2019년 10월 20일>


종환과 서경석 목사는 서울대 선후배 사이답게 나란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조선족 지원 정책을 담당했다. 한국-> 미국-> 중국-> 한국을 옮겨다니며 활동한 서경석 목사는 한국에 돌아와 조선족 교회를 만들었이게 그 유명한 조선족 교회


이 조선족 교회를 중심으로 연변 교회와 미국 한인 교회, 한국 교회라는 트라이앵글이 완성되었다. 1998년 이후 조선족 사회의 절대 과제인 한국 집단 이주 정책도 완성되었다. 조선족의 한국 거주에서 가장 큰 문제는 체류 자격 즉 비자라고 했다


<차종환과 서경석 목사로 보는 중국 공산화와 개고기 전통론>

김대중 정부와 차종환이 재외동포법까지 만들어줬지만 약 200만 명에 이르는 모든 조선족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재외동포법 상 국가 당 쿼터 제가 있어서 제한된 수의 조선족만 정식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는 조선족 조폭에게 사채 빚을 지고 개고기 밀수선을 타고 밀항해 들어온 조선족 불체자가 엄청나게 살고 있었다이 모든 조선족 불체자들의 구원자가 서경석 목사의 조선족 교회였다

 

< 미국 교민 사회를 중심으로 한 차종환과 서경석 목사의 조선족 지원 형황과 개고기 전통론>


불체자 검거가 심해지자 서경석 목사와 조선족 불체자들은 조선족교회에 모여 단식투쟁을 하기 시작했다. 불법을 합법화하라고 중국인들이 데모를 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친히 납셨다 

조선족 교회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모든 조선족 불체자 사면을 약속하며 범죄자일지라도 불법체류자가 당당히 공항으로 가 출국할 수 있는 권리를 줬다. 그리고 모든 조선족에게는 방문취업 비자를 줘 당당히 한국에 입국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선족이 형성한 차이나 타운에는 반드시 개고기 시장이 존재한다, 애니멀라이프,  2018년 9월 23일>


이렇게 해서 25세 이상 모든 조선족은 직업이 있든 없든, 재산이 있든 없든, 살인을 저질렀든 아니든 방문취업 비자를 가지고 당당히 한국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 개고기 식용 문화도 정착되었다.

조선족은 곧 개고기 식용 문화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개고기 식용 정책에 그토록 공을 들인 것이다. 개고기 문화를 한국에 정착시키는 것이 한국의 중국공산화 작업의 마무리였다. 

130. 노무현 대통령은 왜 ‘개 가축 고시’를 만들었나?

개고기 문제

많은 사람들은 왜 노무현 정부가 그토록 급하게 편법까지 동원해가며 개를 가축으로 지정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라는 매우 사소한 문제에 흡사 목숨이라도 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개를 가축으로 만드는 작업에는 정부(농림부, 외교부, 법무부)와 동물보호단체, 언론계, 지식인계가 똘똘 뭉쳤다. 정말 이상했다. 왜 개고기 문제에 대한 모 동물보호단체의 세미나를 외교부 건물에서 열었는지 말이다


<개고기로 민족의 동질성 회복하자느 통일뉴스, 2015년9월 14일>

정부와 학계, 언론은 매일 같이 엉터리 발표를 하고 엉터리 보도를 하고 엉터리 선동을 했다. 고작 개 하나로 이렇게 온 나라의 하나가 되어 매달린 상황을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개를 농장에서 키울 수 있는 가축으로 지정한 이 사소한 장관 고시 하나로 100만 조선족이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영구 거주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1997~1998년 사이에 일어난 개고기에 대한 급격한 변화는 결국 조선족의 한국 이주를 위한 정지 작업이라는 할 수 있다


<1992~1997년 미국 한인 사회와 김영삼 정부의 조선족 지원에 대한 기본 정책>

1992년 중국 개방 이후 한국은 조선족 사회에 빨대가 꽂혀 있었다그 빨대가 IMF로 강제로 차단되자 1997~8년 이후부터는 조선족이 직접 한국으로 대량 이주했다. 중국인이 20년 사이에 100만 명이 한국으로 민족의 대이동을 한 것이다

이 경우 가장 큰 문제는 국민적 저항을 받지 않고 그들이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개 가축 고시제정으로 그렇게 되었다.


<조선족, 북한 지원을 앞장 선 미국 교민 사회의 대표이자 750만 해외동포 대표인 차종환 씨가 미국에서 박근혜 탄핵 집회를 하고 있다, 민족통신, 2013년 8월 30일>

조선족의 한국 대량 이주는 중국(조선족 사회)과 한국 좌파 정부(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미국 교민 사회(좌파)의 삼각 편대가 한 몸이 되어 움직였다고 옳다. 이 과정에서 한국 교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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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는 매우 복잡해서 그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런데 조선족 문제에서만큼은 정체성이 뚜렷하다. 한국에서 조선족 지원을 하는 대전제는 '한민족, 통일, 인권'이다


<한민족 발전과 통일을 위해 중국인인 조선족에게 과감한 도움을 줘야 한다는 조선족 자치구 대표, 1998년>

한민족의 통일을 위해 조선족을 원조, 육성해야 하고 조선족의 도움을 받기 위해 조선족을 먼저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위해서는 중국(조선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민족, 통일, 인권'이라는 단어는 한국 좌파와 매우 친숙한 단어다. 여기에서 한국 좌파의 친 중국 논리가 성립된다. 우리 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위해 조선족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 조선족은 중국인이기 때문에 중국과 친해야 하는 것이다.


<차종환 씨로 보는 미국 교인 사회와 조선족 관계 >

이 논리는 정확히 1970년대 후반부터 좌경화되기 시작한 미국 교인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미국 교민 사회의 좌경화에도 키워드는 한민족, 통일, 인권이다. 이 논리를 장착한 미국 교민 사회는 1992년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아주 적극적으로 중국 조선족 사회에 들어갔다.  

조선족 사회에는 미국 교민의 지원을 받은 교회와 학교가 우후죽순으로 세워졌다. 중국 공산당 중앙정부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인 중국에서 종교를 믿는 건 이적행위다


<중국 정부는 파룬궁 신자들의 장기를 적출해 팔고 있다, 뉴시스,  2019년 6월 18일>

교회를 건립하면 파룬궁 수행자들처럼 바로 잡혀가 감금되거나 더 운이 나쁘면 장기 가 다 털린 사형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조선족 교회만은 중국 공산당 정부가 적극 지원을 했다

중국 공산당과 조선족 교회가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다1992년부터 한국 교회와 미국 교인 사회(실은 두 집단은 협력 관계일 가능성이 높다)에서 지원한 조선족 교회와 인권단체가 우후죽순으로 세워졌다


<1999년 한국에 처음 조선족 교회를 세운 서경석 목사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20년 형을 받은 후 사면된 후 미국에서 목사가 되었다,  NEWS M, 2017년 9월 20일>

이후 한국에도 국가 전복 혐의로 20년 형을 받은 전직 좌파 출신 서경석 목사가 1999년 조선족 교회를 세우면서 교회를 통한 미국, 중국, 한국이라는 삼각 편대가 형성되었다이들이 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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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인들의 헌금으로 세워진 조선족 교회 관계자들은 북한에 수시로 들어갔다. 그리고 북한에 교회를 건설한다는 헛소리를 하며 신나게 개고기를 먹었다. 민족의 전통음식인 개고기를 북한은 소중히 지키고 있다는 감탄을 하면서 말이다. 

북한까지 선교 사업을 확장한다는 말에 깜짝 놀란 다수의 미국 교회 후원자들이 우수수 빠지자 이제 미국 교인 사회의 조선족 선교 사업에는 오직 순수 좌파만 남게 되었다


<1997년 IMF 이후 미국 한인과 한국의 지원이 끊긴 조선족 자치구의 경제는 위기를 맞았다>


이런 상태에서 1997IMF가 터진 것이다. IMF는 한국 경제를 완전히 거덜냈다. 한국 교회와 조선족 지원 미국 한인 교회는 밀접한 관계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한국 경제가 거덜나자 한국 교회도 부도가 났다

한국 교회, 미국 한인 교회 모두 조선족 지원을 끊었다. 대기업의 조선족 자치구 투자 약속도 사라졌다. 그 대기업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1997년까지 조선족 자치구, 북한, 미국, 한국을 연결하며 신나게 쌓아온 민족 통일의 염원은 한국이 망하면서 모두 사라졌다.


<1998년 이후 중국 조선족이 수출한 청산가리 개고기가 국내에  수입. KBSNEWS, 2003년 8월 29일>

1998년 김대중 정부와 중국의 조남기 부주석 체제 하에서 조선족 불법체류자들이 한국으로 물밀 듯 들어왔다. 청산가리로 독살한 개고기 밀수선을 타고 말이다. 조선족 조폭에게 사채 빚을 지고 한국으로 밀항한 이들을 실어 나른 인간들이 조선족 조폭이었다

개고기 밀수선에는 조선족 밀항자들이 떼로 타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적발하지 않았다개고기는 암행어사 마패와 같아서 보여주기만 하면 한국 해경이나 세관은 무사통과였다


<IMF 후 조선족 한국 이주에 대한  미국 한인 사회와 김대중 정부의 기본 개념>

강원도청이나 감사원, 한국 경찰과 마찬가지로 한국 해경과 세관 역시 개고기는 전통이기 때문에 전통을 사랑하는 조선족 조폭들을 적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해경은 해양수산부 소속이다

개고기 불간섭 선언을 한 노무현 대통령은 1999년 김대중 정부의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다. 당연히 노무현 정부도 조선족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인을 죽이고 중국인인 조선족을 살리는 그의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가 개 가축 고시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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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미국 한인 사회와 조선족이 개고기로 뭉친 이유

중국 공산당

한국인이 제사상에 개고기를 올린다는 헛소리를 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1998년 중국에서는 조선족인 조남기가 부주석이었다. 주석은 장쩌민(강택민)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을 둘러싼 황당한 루머 중 하나가 출생의 비밀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사실 한국전쟁 당시 한국에서 전사한 마오쩌둥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만약 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김대중 대통령과 조남기 부주석은 절친 사이다


<마오쩌둥 아들 베프인 조선족 조남기는 한국전쟁 공로로 중국 부주석이 되었다, 연합뉴스, 2018년 6월 19일>

조남기가 부주석까지 출세한 가장 큰 공적이 한국전쟁에 참전해 수백만 한국인을 학살한 것이었는데 그 때 사망한 전우가 마오쩌둥 아들이었다. 출생의 비밀이 사실이든 아니든 김대중 대통령과 조남기 부주석은 개고기를 좋아한 공통점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말한 제사에 개고기를 올리는 한국인은 조선족 외에는 없다. 그가 말한 한국인은 조선족이다. 조선족을 사랑해서인지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1998년년 재외동포법을 만들었다. 철저히 조선족 위주로 말이다

<1997년 위기 후 조선족 사회는 3년 이내에 한국으로 이주해 돈을 벌어 송금하지 않으면 붕괴될 수 있었다>

이 재외동포법으로 인해 현재 100만 명 이상의 조선족이 한국에서 한국인보다 더 좋은 권리를 누리고 있다. 1998년 당시 재외동포법 제정은 중국 조선족 사회를 구할 유일한 생 명줄이었다

앞서 말했듯 1992년 이후 한국에서 보내주던 엄청난 자금으로 꿀 빨던 조선족 사회는 한국에 IMF가 터지자 같이 쫄딱 망했다. 이미 5년 이상 진행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인해 물가는 폭등한 상태였다


<IMF후 조선족은 돈을 벌러 한국으로 떠나는 민족의 대이동을 했다>

조선족 지도부는 살아남기 위해 3년 이내에 거의 모든 조선족이 한국으로 대량 이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조남기가 이끈 조선족 자치구의 정책은 조선족을 한국으로 통째로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한국의 김대중 정부는 조선족 대량 이주를 받아들일 법과 정책을 만들었다. 이를 도운 것이 미국 한인 사회였다. 한국으로 이주한 조선족은 북한이 외화벌이 하듯 돈을 벌어 송금을 했다. 조선족 자치구 경제가 망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계는 여전히조선족을 표 밭으로 인식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7월 1일>

여기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조선족의 체류비자였다. 당시 정부는 취업비자, 유학비자, 방문비자 외에 비자를 발급해 주지 않았고 유학비자와 방문비자로는 한국에서 취직을 할 수 없었다


교육 수준이 낮은 조선족이 공정하게 한국인과 경쟁해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조선족이 백만 명 단위로 한국에 들어와 돈을 벌고 산다면 한국 사회는 큰혼란에 빠질 게 분명했다. 지금처럼 말이다.


<1998년 이후 미국 한인 대표 차종환 씨와, 조선족 대표, 한국 교인 및 언론은 개고기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 >

이 문제를 합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재외동포법을 만든 것이다. 다른 관계 부처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법무부가 전격 제정한 재외동포법은 미국 교민 사회가 20여 년을 공들인 숙원이었다

미국 교민 사회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였다. 이중국적과 참정권. 이중국적은 미국 국적도 갖고 한국 국적도 갖는 것이다. 참정권은 선거권이다. 그런데 전격 제정된 재외동포법에서 이중국적은 빠져 있었다. 조선족이 결사반대했기 때문이다.

 

<조선족이 한국 국적을 원하지 않아 1998년 재미교포는 숙원인 이중국적을 포기해야 했다>

웃기지만 사실이다. 조선족은 한국 국적을 준다는데도 팔짝 뛰었다. 조선족의 조국은 오직 중국뿐이라며 절대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게 심각한 이유가 조선족 백 만 명이 한국에 산다는 이야기는 중국인 백 만 명이 한국에 산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중국인이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인보다 더 나은 권리를 누리며 참정권으로 정치까지 주무른다면 결국 한국은 중국에 종속되게 된다. 그 결과를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중공 건국 70주년 기리는 서울시. 펜앤드마이크 2019년 9월 26일>

2017년 백만 명 조선족은 정치단체를 결성해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으며 2019년 서울시와 부산 시는 103일을 중국건국 70주년으로 축하하고 있다. 국군의 날은 조선족 조남기가 이끈 조선족 부대와 싸우던 1950년 제정되었다


우리나라를 지킨 순국선혈들의 적을 지금 우리는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이 심각한 재외동포법을 제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할을 한 사람이 미국 교인 사회 리더인 차종환 씨였다


<1998년 개고기를 찬양한 차종환과 2013년 김대중 대통령 최측근인 박지원 의원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 상임위원을 했다>

몰몬교 신자인 그는 1954년 서울대에 들어간 후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하다 교수에서 해직되었고, 미국에서 한국 이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교인 사회의 지도자로 성장했다. 


1980년대 재미 교포 사회 대표로 변신해 귀국한 그는 전두환 대통령을 만나 교포들의 이중국적과 참정권을 요구했다. 그러다 김대중 대통령의 인권센터와 재외동포법과 인권을 위한 운동을 하더니 어느 새 보니까 김대중 대통령 측근인 박지원 의원과도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공통 분모로 연결되어 있었다.  


<친중국, 친 개고기를 표방한 차종환, 김대중 대통령, 박지원 의원의 관계도>

모든 게 스리슬쩍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김대중 대통령 계 좌파는 재외동포법과 인권으로 미국 교포 사회를 장악할 수 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대중 대통령 당선 후 미국 교포 사회는 재외동포법 제정이라는 결실을 앞두고 뒷방 노인네로 물러났다

대신 전면에 나선 이들이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은 조선족이었다. 미국 교포 사회는 숙원인 이중국적 요구를 기꺼이 포기했다. 조선족을 위해 20년 재미교포 사회의 노력을 갖다 바친 셈이다.  


<1976년 박정희 반대를 외치다 해직된 차종환 전교수는 2013년 LA에서 박근혜 하야와 국정원 해체를 외쳤다>

김대중 대통령과 밀접한 관련이 있던 차종환 씨는 개고기가 한민족의 특징이라고 정의했다그의 주장에 따르면 전 세계 어디 살든 개고기만 먹으면 그 사람은 한국인이었다. 물론 거짓이다

전 세계 어디에 살든 개고기를 먹는 사람은 중국인이다정확히는 중국 공산주의자다. 개고기는 고대 중국 전통이며 1911년 이후 중국 대륙에서 개고기 식용을 되살린 건 중국 공산당이기 때문이다.


<개고기를 찬양한 차종환 씨는 10여 차례의 북한 방문 중 정치적 활동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전통에서 개고기는 불길한 음식이다이즈음 한국 개들에게도 큰 변화가 생겼다. 복날 개고기 먹는 풍습이 우리 민족의 전통이라고 주장하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불과 일 년 전인 1997년 복날에는 개고기는 중국의 풍습일 뿐이라는 메이저 신문 사설이 실렸다차종환 씨와 서경석 목사 등 운동권 출신이 이끄는 미국 한인 사회와 한국 그리고 중국의 조선족 사회는 개고기 전통론으로 똘똘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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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샐러드 볼 이민 정책과 친중파의 개고기 왜곡

중국 공산당

이민자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금지한 미국의 용광로 이민 정책을 뒤집은 것이 샐러드 볼(Salad Bawl) 이론이었다. 샐러드 그릇에 들어있는 야채와 과일처럼 각자의 개성을 유지한 채 하나의 근사한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미국의 샐러드 볼 이론이 현재 한국에서 만연하고 있는 다문화주의의 이론적 근거다1972년 이후 미국의 이민 정책은 완전히 달라졌다. 남미 이민자들도 종교 의식 때 마약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재료 선택과 손질에 신경 써야 하는 샐러드 요리>

그들이 빠는 것은 마약이 아니라 문화전통이었기 때문이다. 다문화주의에 의해 일부 마약은 합법이었다. 같은 논리로 다문화주의에 의해 개고기도 합법이었다.

미국에 한해 1970년대까지 개고기 문제는 없었다. 학살에서 겨우 살아남은 인디언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멸종보호 종으로서 살아가야 했다보호구역은 미국 정부에 의해 강력히 통제되었다


<The Smoke Signal, 프레데릭 레밍턴, 미국, 1905년>

살아남은 인디언들은 개고기를 먹을 수도 없었고 먹을 필요도 없었다. 미국 정부가 넘치도록 먹을 것(주로 술과 돈)을 주었기 때문에 굳이 개를 잡아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어떤 아메리칸 인디언도 개고기는 인디언의 전통이니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미국 땅에서 코요테 고기라고 뻥을 치며 개고기를 먹는 인간이 나타난 건 1970년대 이후였다


<워싱턴 평화운동, 미국, 1963년>

베트남 전쟁 후 미국으로 이주한 많은 베트남인은 개고기를 먹었다. 1970년대 한국인의 미국 이민이 허용된 후 미국으로 들어간 한국인들 중 일부도 개고기를 먹었다

개고기 먹는 베트남인과 한국인이 미국에서 그나마 숨어서 개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바뀐 미국의 이민 정책 덕분이었다

<한국인의 특징인 보신탕은 문제될 거 없다고 한 차종환, 교포 정책 포럼, 1999,>

베트남 이민자 대표는 뭐라고 했는지 몰라도 한국의 미국 이민자 대표자는 개고기 식용이 한국인을 구분 짓는 민족적 특징이라고 했다. 적어도 조선족과 관련된 재외동포법을 추진한 미국 한인사회 대표는 그렇게 말했다.   

조선 왕조에 대항해 죽창가를 부르며 내전을 일으킨 동학신자들은 절대 개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1920년대 후반 전국 동맹 학생 독립운동을 일으킨 학생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1960년대 후반까지 개고기 금지법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말이다.


몰몬교 신자이며 운동권, 지식인, 친조선족, 친북 성향을 가진 한 인간이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미국에서 수 백 권의 책을 저술한 그의 말은 미국 지식 사회에 진실처럼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정확히 조선 시대와 같은 상황이 1970년대 이후 미국과 국제사회에서 펼쳐진 것이다.


<한국어를 하는 중국 시민이 말하는 개고기와 서양제국주의 , 자주시보 2014년 8월 24일>

조선 시대 대다수 한국 백성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 개고기는 저주받은 음식이었으니까. 이것이 사실이다. 사실과 반대는 거짓이다. 조선시대 유일하게 책을 쓸 수 있는 권리가 있던 지배층은 개고기가 조선의 전통 음식이라는 책을 썼다

수 천, 수 만, 수 십 만권을 썼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쌓인 개고기 관련 책은 거짓이었다. 일부 천주교 신자 사례와 음식디미방등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 조선 시대 발행된 개고기에 관한 모든 기록은 신농본초가 원 출처였다

<조선 왕조, 중국공산당이 주장하는 개고기 전통론의 근거인 신농, 1503년>

그러므로 조선 시대 그 많은 개고기 기록은 거짓이다1970년대 대다수 한국인도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 저주받은 음식인 개고기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으니까. 조선족(중국 공산당)과 김일성, 미국 한인 사회(차종환 등)가 개고기는 우리 전통이라고 한 말은 거짓이다

그들의 근거는 거짓인 조선 시대 기록이다. 거짓을 기반으로 한 주장은 거짓이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한국을 세계에 소개한 대표적인 집단인 미국 한인 사회는 개고기가 우리 민족의 전통이자 정체성이라는 거짓말을 했다.

<중국공산당의 개고기 식용에대한 개념도> 

이 쯤 되면 궁금해진다. 조선족, 김일성, 미국 한인 사회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그들은 왜 개를 잡아먹었을까? 그들 뒤에는 중궁공산당이 있다. 정확히는 중국 공산당의 건국이념에 있다. 중국 공산당은 청 왕조를 증오했다. 일본과 미국을 증오했다

청 왕조, 일본(제국주의), 미국(제국주의)을 죽여 없애야 한다는 명분으로 세워진 국가가 중국 공산당이다. 청 왕조, 일본, 미국에서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개를 죽이는 것은 사회 통념상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청 왕조, 일본, 미국에 반대하는 것이 진정한 중국 공산당 운동이었다


<독재자가 금지하는 개고기를 판 1980년대 학생 민주화 운동, 한겨레21, 200207>

1980년대 주사파 학생 운동가들이 독재자(전두환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화 운동이라며 개 뒷다리를 뜯어 먹었다이 단순한 논리를 가장 먼저 편 것이 중국 공산당이었다

1911년 이후 중국 공산당은 개가 마치 청 왕조와 일본 제국주의, 미국 제국주의의 상징이라도 되는 것처럼 열심히 때려죽였다. 그 중 제일 열심히 때려죽인 인간들이 조선족이었다. 지금도 조선족은 중국에서 가장 많이 개를 죽이는 사람들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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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유승준도 못 받는 F-4비자, 개농장 조선족은 OK

개고기 문제

개 농장, 개고기 유통업자, 개 이동업자, 개 도살자는 연결되어 있다. 개 도살업자가 조선족이라면 개 유통업자도 조선족이다. 조선족은 같은 조선족끼리만 일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역 상권을 순식간에 장악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조선족 점원 한 사람이 두 사람, 세 사람, 열 사람이 되고 그들이 돈을 모아 가게 하나를 사면 순식간에 그 일대는 조선족으로 채워지게 된다. 


<전국 500여 개 음식점(조선족 운영 추정)에 육류를 공급하는 조선족 갑부,  동아일보 2017년 7월 22일>

칼부림 속에 대림동 상권을 장악한 수법도 이것이었다. 조선족은 조선족끼리만 일한다. 조선족이 가는 곳에는 반드시 개고기 집이 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연변 거지에서 벤츠를 굴리는 부자로 성공한 조선족 대부분은 음식점으로 돈을 벌었다. 

그들이 말하는 음식점은 바로 보신탕집이. 중국에서 들여오는 한국 개고기 시장의 30%에 달하는 중국산 불법 개고기의 밀수업자도 조선족 조폭이다. 개고기 밀수를 하면 덤으로 밀항, 밀수도 할 수 있으니 그들이 버는 돈은 조 단위일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더 있다.


<조선족 축산업자는 곧 개도축업자, 중국동포타신문, 2010년 8월 22일>

 방문 비자로 한국에 온 돈 없고 기술 없고 연고 없는 조선족이 한국에서 F-4(재외동포)비자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도 개 농장에 취직하는 것이다. 개 농장에서 일하면 유승준도 못 받은 그 재외동포 비자(F-4)를 받을 수 있다

조선족의 아버지라 불리는 노무현 정부가 농림부를 시켜 부랴부랴 개를 가축으로 포함시킨 이유 중 하나로 추정된다. 개가 가축이면 개 농장, 강아지 농장도 축산업에 속하게 된다. 선족이 한국에서 취업할 수 있는 업종 중 하나가 축산업이다.


<방문취업비자로 조선족이 일할 수 있는 업종에 개 농장 포함, 법무부, 2014>

한국에 놀러온 조선족이 개농장에서 몇 년 일하면 영주권과 다름없는 F-4(재외동포)비자를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조선족 체류 자격을 위해서라도 농림부는 개를 가축에서 제외시키지 않을 것이다. 만약 조선족을 위한 한국 농림부라면 말이다 .  

개 농장과 조선족의 체류 자격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한국의 재외동포 정책 및 미국의 이민정책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이 문제 역시 우리나라 조선족 정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국에 중국 사람 없는 곳이 없다는 조선족 보신탕 업자, 서울대저널, 2017년 6월 28일>

조선족이 한국에 100만 명 이상 들어오게 된 이론적 근거는 미국의 이민 정책과 인권이었다100만 명의 조선족이 증가했다는 것은 100만 명의 개고기 식용 인구가 늘었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보면 조선족 때문에 한국 개들은 끔찍한 삶과 죽음을 맞게 되었고 한국인은 중국인과 다름없는 인종으로 전락해 전 세계적으로 욕을 먹고 있다. 조선족 뒤에는 재외동포법이 있다. 

<개 농장에 취업한 해외동포는 F-4비자 신청 가능, 법무부, 2014>

재미동포, 재일동포 등의 재외동포는 아주 간절하게 이중국적과 참정권, 경제적 자유를 원해왔다이중 국적은 조선족이 펄쩍 뛰며 반대해 무산되었지만 참정권과 경제적 자유는 현재 조선족이 한국에서 넘치도록 누리고 있는 권리들이다. 


그런데 1982년 이후 우리나라 재외동포 정책을 선도해온 집단은 조선족이 아니라 미국 재미교포 사회였다재미교포의 대표가 차종환 씨다. 몰몬 교 신자로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교수에서 해직된 그는 1976년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조선족과 북한, 미국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승준도 신청한 F-4비자,  중앙일보, 2019년 7월 13일>

'한국인의 정체성은 개고기'라고 한 그는 물론 김대중 대통령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차종환 씨를 중심으로 추진해 온 재외동포의 권리에 관한 문제는 1988년 김대중 대통령이 합류하면서 세계적인 인권 문제, 소수 민족 문제로 확대되었다 

따지고 보면 예멘 난민의 사상적 지주라 할 수 있는 한국인권문제연구소는 1983년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 망명을 하던 중에 설립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초대 이사장이었다

<줄어드는 한국인 개고기 소비, 증가하는 조선족 개고기 소비, 중국동포타운신문, 2010년 8월 22일>

우리나라가 불법체류자 및 재외동포 문제를 인권 문제로 인식하게 된 것은 모두 김대중 대통령 덕분이다. 그러니까 조선족 문제를 국적법이 아닌 인권을 들먹이며 처리하게 된 것도 김대중 대통령 때문이다.

500여 명의 건강한 예멘 남자들이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와 난민 신청을 했을 때 경악한 많은 한국인들은 어째서 한국의 언론과 인권단체, 정부가 하나가 되어 그들을 지원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예멘 난민신청자 인권 보호 33개 연합체, 연합 뉴스, 2018년 6월 27일>

들의 근본적인 사상에는 김대중 정신이 있다. 그리고 재외동포법이 있다. 한국 이민자들이 미국이나 일본에서 소수 민족의 설움을 겪었으니 한국에 온 불법 체류자들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그가 비록 불법체류자일지라도 소수자는 보호받아야 하고 소수 민족의 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미국의 샐러드 이민 정책은 유럽에서도 유행해 이슬람 난민들은 그들만의 이슬람 문화를 유럽에서 누리고 있다. 


<개고기를 제사에 올린다고 한 김대중 대통령, 2002년 9월 6일>

역시 소수 민족의 전통을 존중한 김대중 대통령은 개고기 전통론을 퍼트리는 데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2001년 그는 개고기는 우리 전통음식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사에 개고기를 올린다고 외신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제정신인가?” 싶을 테지만 조선족과 김대중 대통령의 관계를 알아보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제사에 개고기를 올리는 사람이 조선족이라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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