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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132. 개 식용은 반청복명 운동, 중국 공산화 운동

조선

개고기는 중국 문화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은 청나라가 아니다. , 당 왕조 이전의 고대 중국과 명나라,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여기에는 1392년 건국된 조선도 포함된다

1392년 고려인은 조선인이 되었다. 조선은 명나라를 추종하며 순수 한족 중국 왕조를 조선에 재연하고자 했다. 우리 조상인 고려인이 조선인이 되었고 명나라 인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키자 조선 지배층은 패닉에 빠졌다. 


<고대 중국과 고구려의 개에 대한 기본 인식 차이>

조선 건국 이념 상 명나라와 함께 망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망하는 대신 조선은 이중정책을 썼다. 청나라에게는 복종한다고 약속해놓고 조선 안에서는 배신자를 색출하며 내부 단속을 했다. 그래서 광해군이 제거되었고 소현세자와 그 가족들이 몰살되었다

진짜 명나라 대신 청나라를 택하는 순간 조선 시대 지배층은 즉시 제거되었다그 결과 모든 조선 시대 지배층은 조선이 망하는 순간까지도 오직 명나라만 추종하게 되었다조선이 망하고 일제의 지배를 받은 후에도 명나라 사랑은 변치 않았다


<비밀 명나라 복원 운동을 하던 조선의 왕은 청 나라 사신이 오면 성 밖까지 나가 마중을 해야 했다, 18세기>

일제 황국 신민이 된 조선인은 여전히 몰래 마지막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 이후 형성된 기이한 소중화주의는 중국 공산당이 창당되자 중국 공산당 추종으로 이어졌다. 왜 그런가?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자 중국 대륙에서는 진짜 한족 중국을 복원하자는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진짜 중국이 명나라라고 믿은 중국인은 국민당이 되었고 중국 공산당이라고 믿은 사람들은 공산당이 되었다


<아편전쟁에서 청 왕조가 패배하기 전까지 티베트탄 스패니얼 계열의 사자 개는 오직 청 황족만 만지고 볼 수 있었다, 1899년>

이 시기 황국 신민이 된 조선인 중 일제에 의해 독립해 명나라인이 될 것인지  중국 공산당 당원이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믿은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은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조선 독립운동 파벌이 형성되었다.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각 지역 군벌이든 너도나도 개고기를 다시 먹기 시작했고 조선의 독립운동가들도 개고기를 먹었다개고기를 먹는 것은 명나라 복원 운동이자 청나라 반대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선 땅에도 해당되었다


<민족 역사 속 유일하게 개 식용 정책을 편 조선>

병자호란 이후 조선에도 개를 죽이며 명나라를 부활시키려는 세력이 있었다조선 후기 지배층이었다조선 후기에도 개고기를 먹는 것은 명나라 부흥운동이자 청나라 반대 운동이었다

힘으로 청 왕조에 굴복해 복종은 하지만 속마음까지는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 조선 후기 지배충들이 가진 기본 이념이었다. 송시열이 주장한 소중화주의는 결국 반청 운동의 일환이었다


<청 나라에서 사자개는 오직 황족만 키울 수 있었다,  도자기, 청, 17~18세기>

이런 신념은 청 왕조가 다스리는 중국 대륙 안에 숨어 암약하던 명나라 복원 세력과 뜻을 같이 했다. 청 왕조에게 있어 조선은 반정부 세력이나 마찬가지였다명나라를 부흥시키자는 중국 내 반청 세력과 조선의 반청 세력은 개를 죽였다

? 청 왕조가 개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다. 만약 청 왕조가 개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개 도살 금지법 같은 걸 만들지 않았다면 중국과 한국에 개고기 식용 악습은 농업혁명과 더불어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청 왕조를 증오하며 개고기를 군량미로 사용한 중국 공산당 군대, 1930년>

하지만 하필 청 왕조는 개를 유독 사랑했다. 그것이 개를 둘러싼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다. 청 시조인 누르하치의 목숨을 구해준 개는 모든 만주족에게 신성했다. 청 왕조에는 황족만 만지고 볼 수 있는 특별한 개가 있었다

그 개는 페키니즈, 시추, 라사압소로 불리는 사자개다. 페키니즈, 시추, 라사압소는 티베트 개다. 티베트, 청 왕조의 고향인 만주, 위그르, 몽골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 개를 죽이는 것은 지독한 금기다


<티베트와 위그르가 청나라에 복속된 이유는 같은 기마 유목 민족이기 때문>

지금도 오직 중국 한족만 이 지역에서 개고기를 먹는다. 티베트, 만주, 위그르는 모두 청 왕조로 하나되어 있었다. 청 왕조는 이들 국가의 맏형 격이었다. 맏형인 청왕조가 중국 대륙을 다스리니 티베트, 위그르, 만주, 몽골도 형의 지배력 아래 들어가 함께, 파트너 자격으로 중국을 다스린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같은 문화와 종교를 가졌다는 동질성에 의해 가능했다. 티베트, 만주, 위그르, 몽골, 청은 같은 편이었고 개를 사랑했다이에 반해 중국 한족은 적이자 개고기 먹는 인간들이었다. 청 왕조는 다수의 적인 중국 한족을 소수의 만주족으로 다스렸다


<몽골의 샤먼 의식에 신성한 동물로 등장하는 몽골 전통개는 삽살개와 유전자가 99.9%동일하다>

티베트, 위그르, 몽골 등 다른 유목 왕조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다. 만주족과 마찬가지로 개를 신성시한다 왕의 상징으로 여기는 이들은 청 왕조의 동료였다. 개를 죽이는 것을 법으로 금지할 정도로 사랑한 청 왕조에 반대하려면? 개를 죽이면 되었다

개고기를 금지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에게 반대한 586운동권들이 행한 방법과 같은 방법이었다. 20 세기 한국과 달리 청 왕조 시대 중국에서 개를 죽이다 걸리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고 불교와 도교의 영향으로 개고기를 먹는 관습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지만 말이다


<청 황제의 명으로 서양화가가 그린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개인 티베트탄 마스티프>

그런데 청 반대 세력은 조선 땅에도 있었다고 했다. 더군다나 중국 땅에서는 못 죽이는 개를 조선에서는 마음껏 죽일 수 있었다병자호란 후 조선 양반들은 개를 죽임으로써 청 왕조에 엿을 먹이고 굶어죽는 대중을 선동하는 치졸한 방법을 썼다

양반들이 (지들은 먹지도 않으면서) 글로 써서 우아하게 개를 죽여 개고기를 약과 식량으로 먹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면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백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실행했다. 이렇개 해서 조선의 개고기 역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개고기로 보는 조선 양반과 백성의 민족 의식 차이>

실제로 조선백성들이 고등어 구워 먹듯 개를 많이 먹어서 역사가 된 것이 아니다. 전직 고려인인 조선 백성은 한민족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한민족의 전통에 의하면 개는 먹어서는 안 되는 신성한 동물이다

티베트, 만주, 위그르, 몽골과 마찬가지로 한민족 역시 개가 죽음과 관련된 영물이라고 믿었다백성들의 생활과는 달리 조선 후기 지배층은 그동안 중국에서 출판된 고대 중국 의학서를 죄다 긁어모아 출판했고 이것이 조선의 역사로 둔갑했다


<김일성 황구라는 새 견종까지 만들어 낸 북한이 믿은 『동의보감』의 원 저자인 신농>

알곡인지 쭉정인지 가리지 않고 조선시대 출판된 책은 모두 조선의 역사로 취급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역사 인식 수준이다. , 중국 역사책이 조선 역사책이고 중국 역사가 조선 역사다

이렇게 해서 중국과 일체화된 조선의 개고기 역사는 만들어졌고 조선족과 북한의 김일성은 개고기가 보약이라고 믿게 되었다. 중국 조선족과 북한의 개고기 역사 인식은 1997년 이후 한국에 전파되어 오늘날 우리가 믿는 개고기 전통설과 개고기 만병통치설이 되었다. , 한국 개고기 문제의 원흉은 중국이다.   

58. 백제는 일본을 지배했나? 만주는?

한국 속 유목사

임나일본부설, 한반도 일본 지배설은 별 의미 없다고 본다. 아마 당시 한반도와 일본을 지배한 계층은 기마 유목 왕조인 제 3의 세력이었을 것이다.  기마 유목 왕조의 국제 커넥션이 6~7세기 중국 선비족 왕조와 백제, 신라, 일본을 반가사유상으로 연결해주었을 수 있다. 

특유의 기마 유목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신성한 개를 믿는 관념이다. 신성한 개는 고대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믿은 알타이 샤먼 즉 텡그리 신앙에서 시작되었다. 

 <날개 달린 개 신앙과 한민족의 치우 신앙>


텡그리 신앙은 빛을 믿는 신앙이다. 빛의 종교에서 개는 신의 사자이거나 신 그 자체, 혹은 지상의 왕을 상징한다. 하늘에 있는 신이므로 개에게는 날개가 있다. 날개 달린 개는 곧 신이다. 날개 달린 신성한 개를 믿은 지역을 보자. 

중앙아시아 대륙으로 국한해서 봤을 때 고대 중국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포함된다. 이 고대 빛의 종교는 고대 4대 문명권에서 각자 다른 신앙으로 발전했다. 중국 황하 문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개와 개고기로 보는 세계 5대 문명권>

패권을 장악한 기마 유목 왕조에게는 왕조를 상징하는 신성한 개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집트, 인더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지배층에게도 신성한 개가 있었다. 그 신성한 개가 티베트탄 마스티프에서 유래되는 마스티프 계열의 사자 개다.

신라 왕조에서 왕족만 키울 수 있던 삽살개는 단군과 함께 제단에 모셔진 신성한 개였다. 그 신성한 삽살개를 일본 만주군은 개 가죽 군복으로 만들어 멸종시켰다. 그런데도 현재 한국인은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산수도깨비 문양 벽돌, 백제, 6세기 추정>

또 삽살개가 단군과 함께 할 정도로 신성했다는 사실과 신라 왕족들만 키울 수 있었다는 사실도 모른다.  삽살개든 뭐든 한국에 사는 모든 개는 언제든 때려잡아 먹을 수 있는 식자재라고 보기 때문이다. 심한 비약이라고?

애지중지 키우던 내 개를 이웃이 납치해 때려죽여 먹어도 고작 벌금 몇 푼만 내면 되는 되는 것이 현재 한국 실정이다. 신성한 개를 둘러싼 고대 기마 유목 왕조와 한반도, 일본의 역학 관계는 당나라가 멸망 하면서 깨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 시조 김알지의 탄생 설화>


신라 성골 시대가 막을 내리고 진골 시대를 연 통일신라가 국풍(신라 문화)를 버리고 화풍(중국 문화)를 따르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한반도의 중국화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망한 왕조의 왕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낙랑과 마찬가지로 한국 고대사 학계는 고구려, 신라, 백제 영토가 정확히 어디인지조차 속 시원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백제 금동대향로, 국립부여박물관, 520~534년, 국보>

홍산문명권에서 고도로 발달된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면서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 한국 왕조 영토에 만주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제기 되었지만 국뽕이라고 비난받았다.

정작 국뽕 한 사발 마신 건 중화사상을 발전시킨 고대 중국인인데 말이다. 분명한 것은 통일신라 영토가 고구려, 백제, 신라 땅을 합친 것보다 훨씬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고구려 땅은 그대로 발해가 가져갔다. 그럼 백제 영토는?

 <7세 통일신라 이후 국제 관계와 개에 대한 개념

663년 백제가 멸망하고 그 지배층은 어디로 갔을까? 의자왕과 삼천궁녀처럼 전부 다 물에 퐁당했을까? 나라를 잃으면 왕이 목을 잘리는 것은 중국 농경민적인 관점이다. 

말 타고 배 타고 이동하는 것이 업인 유목민은 여차하면 튈 수 있다. 백제의 경우 중국 대륙과 요서 지방,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 교역 커넥션을 가지고 있었다. 기존의 국제 교역로를 따라 배 타고 도망쳤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매 사냥하는 거란 혹은 몽골 족, 9~10세기>

전 왕조의 모든 왕족을 다 잡아 죽일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전 왕족을 전멸시킨 것은 조선이 유일하다. 튈 놈은 튀고 남을 놈은 남고 잡힐 놈은 잡히는 것이 유목 왕조의 특성이다. 

도망치는 전 왕조의 왕족은 언제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 백제, 통일신라, 발해가 멸망한 후에도 끊임없이 왕조 부흥 운동을 일으킬 수 있었다. 전 왕조 부흥 운동을 일으키지 않은 건 고려가 유일했다. 왜? 이성계가 다 죽였으니까. 


<날개 달린 개와 피닉스 신앙 지역>

자, 그럼 어디로 튀었나? 우리 역사학계는 멸망한 백제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을 지배했다는 가설은 신나게 떠든다. 그런데 중국 대륙이나 요서 지방으로 갔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또 입을 다문다. 

중국으로 튀어서 거기를 휘젖고 다녔을 가능성 자체가 국뽕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중국만 나오면 국뽕이라는 이름으로 입을 틀어막는지 모르겠다. (중국 뽕을 말아 드셨나?)

<백제의 산수봉황무늬 벽돌, 6세기 추정>

백제 지배층이 중국 북부나 만주 지역으로 갔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기존 기마 유목 왕조와 합류하거나 또 다른 왕조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존 왕조에 합류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결혼이다. 같은 기마 유목 왕족이니 적어도 결혼 상대는 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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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조선 공주, 청 황실의 정비가 되다

조선

효종이 송시열의 바지사장이 된 이유는 조카 대신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약점이 많았다. 그래서 효종이 죽고 대비가 상복입는 기간을 두고 피터지며 싸워야 했다.

광해군이 쫓겨나지 않았다면? 소현세자가 죽지 않았다면? 조선 역사는 달라졌을 테지만 청 왕조 3대 황제가 될 뻔한 섭정 왕 도르곤이 돌연사 하지만 않았다면 조선 역사는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앉은 개를 새긴 인장,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기원전 700~550년>

17세기 망하는 대신 운 좋게 살아난 조선 왕조에게 가장 거슬리는 상대는 역시 청나라였다. 이 시기 청나라와 조선의 가장 큰 차이는 개고기로 대변되는 정체성이었다. 

청 태조 누르하치는 죽을 뻔한 위기에서 개가 목숨을 살려줘 훗날 청 왕조를 세울 수 있었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과 같은 이야기 구조다. 신성한 개가 하늘이 정한 새 지도자(황제)를 선택했다는 소리다.

<당 황실 여인의 신발을 물어뜯는 랩독(소매 개), 8세기>

누르하치는 개를 죽이지 말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개를 사랑했다. 신발 물어뜯은 당나라 황실 개와 마찬가지로 청 황실에도 황족만 만질 수 있는 사자개(페키니즈, 시추, 라사압소 등)가 있었다.

황족 외에 이 개들을 보는 사람은 죽였다. 청나라에서 개를 죽이는 건 불법이었다. 개고기는 당연히 존재할 수 없었다. 똑같이 신농이 쓴 『본초』에서 시작된 한의학이었지만 명나라와 청나라 판 『신농본초』에는 주석이 달려 있었다.

 <개고기 조리법을 쓴 안동 장 씨의 음식디미방, 조선, 1670년>

"고대에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은 먹는 것조차 부끄러워진 개고기" 라고 말이다. 소현세자와 세자빈, 세손들이 줄줄이 죽은 후 효종으로 즉위한 전직 봉림대군은 백성들에게 개고기를 먹으라고 장려했다.

특히 『본초』의 99%를 베낀 『동의보감』에 의하면 개고기는 만병통치약이었다. 이렇게 다른 조선과 청이었지만 알고보면 긴밀하게 엮여 있었다. 청나라에서는 2대 황제 홍타이지의 동생인 도르곤이 섭정을 했다.

<청 태조 누르하치의 초상

누르하치가 가장 사랑한 아들이자 무공이 가장 뛰어났다는 도르곤은 효종에게 조선 공주를 자신의 정비로 맞고 싶다는 청혼을 했다. 효종은 한나라 유방이 양녀를 흉노 왕에게 시집보낸 것처럼 신하의 딸을 양녀 삼아 도르곤에게 보냈다.

한나라 공주는 중전(좌부인)이 될 수 없었다. 아들도 정식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엄마가 왕비족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효종의 양녀는 도르곤의 정실(적복진)이 되었다. 적복진이 되었다는 것은 아들이 정식 후계자가 된다는 의미다.

<건륭제 황후의 초상, 청, 19세기 >

또 역대 청나라 황후와 같이 이런 초상화를 그릴 자격이 있었다는 뜻이다. 모든 기마 유목 왕조에게는 정실부인이 될 수 있는 왕비 부족이 있었다.

‘황제의 딸’이나 ‘미월전’ 같은 청 왕조 시대 드라마를 보면 황제는 끊임없이 수녀를 선발해 후궁을 채워 넣는다. 그 많은 수녀들이 모두 왕비 부족에서 고르고 골라 보낸 여인들이었다.

 

청 왕조 시대 적복진(황후)이 된다는 것은 황후 부족이 권력을 얻는다는 뜻이었다. 도르곤은 조선 공주가 데려간 궁녀까지 측복진(후궁의 품계)으로 삼았다. 

아내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딱 뛸 일이겠지만 황실 내명부의 권력 투쟁 관점에서 본다면 정실의 시녀를 후궁으로 삼는 건 정실에게 힘을 실어주는 배려였다. 같은 부족의 두 여자가 한 편을 먹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사냥감을 모는 사냥 개를 그린 호렵도, 청, 19세기>

그런데 암살을 당했는지 진짜 사냥을 갔다가 말에서 떨어죽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도르곤은 섭정이 된 후 얼마 후 요절했다. 르곤이 장수했다면 17세기 이후 조선에는 고려 말 기황후 일족을 능가하는 새로운 권력층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인조와 조선 지배층에게는 아주 다행스럽게도 도르곤이 죽으면서 조선 공주도 청 황실에서 찬밥이 되었고 조선에 돌아온 후 환향녀 취급을 받으며 아주 비참하게 살다 죽었다.

 

<사자 개를 조각한 수정 인장, 청, 17세기>

누르하치가 처음 후금을 통일하고 조선에  통교를 청했을 때는 형제의 나라로 외교를 맺자고 했다. 병자호란에서 패한 후 외교 관계는 군신 관계로 격하되었다. 

 
명 왕조와 청 왕조의 조공관계는 분명히 다르다. 명 왕조는 조공 관계의 나라를 형제의 관계니, 군신의 관계니 하고 나누지 않았다. 똑같은 황제국과 제후국의 관계였다.

 

<인장 모양 은제 사자 개 조각상, 청  17세기> 

청 왕조가 조공관계에서 형제의 나라라고 한 것은 기마 유목 왕조 파트너라는 의미였다. 조선도 몽골, 티베트, 위그르와 같이 기마 유목 왕조 동료로 끼어준다는 소리다.

청이 위그르를 응징한 것은 일종의 서열 싸움 같은 거였다. 이런 역학 관계를 모른 인조와 조선 지배층은 오랑캐와 강제로 형제가 될 수는 없다며 전쟁을 불사했다.

<자금성으로 돌아오는 강희제 행렬, 청, 1689>

조선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자유로웠던 고려조차 원이 사나운 공주들을 파견해 지배했다고 억울해했으니 조선이 기마 유목 왕조의 외교 관계에 무지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지한 조선을 상대로 청은 인내심을 발휘했다. 배려를 했다. 병자호란 후 포로 끌려간 소현세자는 사실 상 청 황실은 종친 대접을 했다. 조선 공주는 청 황실 섭정의 정실이 되었다.

<김홍도 모구양자도, 조선, 1745-1806>

만주족의 경우 남자는 얼마든지 첩을 둘 수 있었지만 정실은 언제나 만주족이었다. 만주족이 아니면 만주족과 동일한 수준의 부족 여인이어야 했다. 군신관계로 격하되었을지언정 청 왕조에게 조선 왕실이 그랬던 것이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청 황실이 신라인의 후손이기 때문에 한민족과 동질성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 신라에서 통일신라로,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졌으니 결국 한 뿌리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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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개고기 대신 로또 기원, 명나라 도교

종교

907년 당나라가 망하고 약 60년 동안 중국 대륙은 선비족 미친 고 씨 패밀리 가 날뛰던 남북조 시대보다 더 정신없었다.

북부와 남부로 나뉘어 북부에는 다섯 개 왕조가, 중국 남부에는 열 개 왕조가 들어서는 오대십국 시대가 된 것이다. 나라가 망했다 세워지는 혼란기였으니 중국 사람들은 다시 개고기를 먹었을까? 

<정원에서 노는 어미개와 강아지, 명, 15세기>

스위스 산간벽지 사람들처럼 정말 굶주린 사람들은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의 정서는 이미 몇 백 년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당 왕조와 함께 경교와 마니교가 망했어도 아직 불교와 도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대십국 시대부터 청 왕조가 망하는 순간까지 중국 도교에서는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부자가 된다고 믿었다.

<오대십국 시대의 신선 유해섬, 청, 18~19세기>

개고기를 먹으면 죽어서 벌을 받는다고도 믿었다. 중국 도교 트렌드가 완전히 변해버린 것이다. 오대십국 시대 승상 유해섬은 벼슬을 때려 치고 수련을 해서 신선이 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도 그는 선계로 올라가지 않고 지상에 남아 백성을 구제했다. 생긴 게 두꺼비 같이 생겼는지 두꺼비 신선으로 불리는 그는 재복의 신이었다.

<도교 팔선 한상자가 피리 부는 모습, 명, 16세기>

가난한 백성들에게 아무리 퍼 줘도 마르지 않는 엽전 꾸러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0세기 이후 중국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으면 유해섬이 모셔진 도교 사당에 가서 빌었다.

유해섬을 모신 도교 사당은 엽전을 벌었다. 풍류를 즐기며 살고 싶으면 음악의 신이자 피리의 신인 한상자에게 빌었다.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신들처럼 재복, 건강, 벼슬, 출산 등등 분야 별로 주요 신선들이 있었다.

<도교 팔신선나전칠기 쟁반, 명, 16세기>

천상의 제일 신은 옥황상제였다. 지옥의 신은  염라대왕이었다. 14세기 원나라에서 그린 시왕도(염라대왕 그림)를 보면 살아 생전 잡아먹은 짐승들이 염라대왕 앞에서 복수의 증언을 하는 장면이 있다.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기 전에 신선이 되어 하늘(신선 세계)로 올라가고 싶은 사람은 개고기는 먹으면 안 되었다. 신선이 되려면 술, 성 생활, 육식 모두 삼가야 했다.

<시왕도, 원, 14세기, 일본나라박물관>

 

음식을 먹지 않고 몸 안의 기로 사는 방법이 최상의 상태라고 믿었는데 개고기를 먹으면 기가 상해 그간 해 온 힘든 수련을 망친다고 절대 먹지 않았다.

참선을 중시한 중국 불교에서 채식을 강조하며 자극적인 맛이 나는 음식을 금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개와 함께 오리, 잉어, 뱀 등도 절대 먹으면 안 됐다.


이 중 개고기는 신선 수련을 하는 도사 뿐 아니라 일반 백성도 절대 먹으면 안 됐다. 개고기를 먹으면 어떤 벌을 받게 되는지 벌점까지 정해져 있었다.

 

단순히 수련을 위해 먹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죽어서 벌을 받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된다고 한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도교 생명의 나무를 심는 신선세계의 일꾼들,  청, 17세기>

조로아스터교에서는 개를 죽이거나 먹으면 죽어서 벌을 받는다고 믿는다. 17세기 중국 명나라 시대 발간된 도교의 목판화를 보자. 신선 세계에 사는 신선들과 하늘을 나는 선녀가 있다.

가운데 일꾼들이 심는 나무는 생명의 나무다. 개 머리를 한 새를 믿는 빛의 종교에서는 예배를 볼 때 생명의 나무에게 빈다. 빛의 종교 ‘개머리를 한 새’가 말하는 종교가 중국 도교의 시작이라고 했다.

<마니교 예배 모습 중 광명왕국으로 가는 생명의 나무 8~9세기 이전 추정>

결국 돌고 돌아 제 자리로 온 것을 알 수 있다. 빛의 세계인 신선 세계도 까막눈인 일반 백성들이 알아듣기 쉽게 보다 쉽고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려졌다.

신선세계에는 어떤 신들이 어떤 일을 하며 사는지,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는 어떤 맛인지, 선녀가 얼마나 예쁜지 하는 내용이 적힌 것이 도교의 권선서였다.

<선녀를 태운 뱃사공 옥 조각, 청, 18세기>


어느 마을에 사는 아무개가 개를 잡아먹었는데 벌을 받아 비참하게 죽었다, 아무개는 잉어가 눈물을 흘리자 다시 놓아 줬는데 알고 보니 용왕님 아들이어서 떼돈을 벌었다, 뭐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권서서를 보면 마치 이야기책을 보는 거 같기도 하고 무협 소설을 보는 거 같기도 하다. 실제 무협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전진교가 도교 교단인 걸 보면 중국 무협지는 도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사자개에 올라탄 서왕모, 명>


기연을 만나 내공을 얻고 수련을 해 육갑자의 공력이 생기다는 둥 날개 짓 한번으로 천리를 가는 봉황을 타고 하늘을 난다는 등의 도교적 요소가 잔뜩 들어있다. 

당·송을 지나 명나라가 되었어도 개고기는 먹지 않는 것이 중국 도교의 상식이었다. 최고 여신인 서왕모는 사자개 등에 올라탄 모습으로 그려졌다. 사자 개는 유목 왕조에서 옥새와도 같이 귀하게 여기던 티베트탄 마스티프다.

<재물의 신 조공명, 명, 1482년>

정확히 이 시기 중국 도교가 조선에 전해졌다. 명나라 조정에서 조선에 권선서 500권을 선물한 것이다. 개 새 종교를 돌고 돌아 받아들인 중국 도교가 조선에 수출된 셈이다.


개 새 종교를 직접 받아들인 고구려는 오랑캐라 하여 역사에서 지워버린 조선은 스스로 중국의 교화를 받아 짐승(오랑캐)에서 벗어나 인간 꼴을 갖췄다며 자학했다. 중국 도교를 따르는 모습은 더 기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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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주나라 왕비가 흉노족인데 웬 중화사상 뽕?

중국 속 유목사

비단 찢을 때마다 왕을 홀리는 웃음을 지어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포사는 결국 왕비 자리를 꿰찼다. 그러자 열 받은 전직 왕비가 북방 기마 유목민인 견융을 끌어들여 주 왕조를 멸망시켰다.


여자 하나 잘못 만나 나라가 망한 건 맞지만 정확히는 비단 찢다 망한 게 아니라 흉노의 침입으로 망한 것이다. 견융, 개 견 자를 쓰는 것부터 범상치 않다. 개를 섬기는 오랑캐, 즉 흉노다.

 

<흉노 혹은 선비족 인형, 기원전 4~3세기>


여불위와 진시황의 민족인 초나라 묘족도 조상이 개였다. 주 나라 마지막 왕이 쫓아낸 왕비 역시 흉노족일 가능성이 높다. 고대 중국 유물에 개와 불새와 같은 북방 기마 유목 왕조의 상징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주나라부터 따지자면 모든 고대 중국 왕조가 북방 기마 유목민과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는 셈이다. 날개달린 말과 신성한 나무, 그리고 불새는 전형적인 북방 기마 유목민의 상징이다. 

<불새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불새는 개 머리를 한 새 혹은 사자나 남자 얼굴을 한 새로도 변한다. 즉 신성한 나무와 빛의 왕국을 믿는 기마 유목 민족의 종교다.


한 왕조 유물 중에 신성한 나무 위에 앉은 불새를 활로 쏘는 남자 모습이 있는 걸로 봐서는 키푸로스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 내부에 잔존한 흉노 세력을 마침내 몰아냈다고 선포한 것 같다. 

<한 왕조의 천마와 기원전 1세기 흉노의 천마>



쫓겨난 왕비의 한풀이로 주나라가 망하자 무려 550년 간 중국은 내전에 휩싸였다. 하루아침에 나라가 세워졌다 망했다는 춘추전국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약 3년 여간 이어졌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한국 국민이 얼마나 배고팠는지 떠올려 보자.

<불새를 겨냥하는 궁수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최소 그 상태로 550년을 서로 죽이며 지냈다면 살아남은 사람들 상태가 정상일 수 있을까? 재물 가진 지배층이야 살 길이 있다 쳐도 백성들은 달랐다.

육체적인 고통과 당장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처절한 배고픔 속에 지배층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 당연했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 

 

<중화사상 개념도>

그래서인지 이 시기 학자들은 중화사상을 퍼트렸다. “중국인 외의 모든 인간은 모두 짐승(오랑캐)! 그러니까 우리 중국 최고!” 라는 믿음이다. 이집트는 앗시리아와 싸웠고 고구려도 당나라와 싸웠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외교도 하고 교역도 했다. 중국 안은 인간 세계, 중국 밖은 짐승 세계라는 이분법적 믿음은 굶어 죽는 백성들에게 뽕 맞은 거 같은 정신적 만족감을 줄 수는 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우리는 중국인이니까 훗, 그나마 짐승 같은 저 놈들보다는 백 번 나아.”라고 자뻑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주나라 마지막 왕비가 정말 흉노족이라면 이 중화사상 뽕은 완전 헛소리다.

이런 선전·선동을 학문으로 승화시킨 것이 유교였고 그 대표 주자가 맹자와 공자였다. 늙어 죽을 때까지 떠돌이 생활을 한 공자는 한나라 유방이 유교를 국가 정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공자의 일생을 그린 책, 청,  17~20세기>


중화사상 역시 20세기 모택동이 국가정책으로 이용하지 않았다면 잊혀졌을 것이다. 한편, 중화사상 뽕으로 버티던 550년의 춘추전국 시대를 흉노설이 떠도는 진시황이 통일 했지만 얼마 안 가 내란이 터졌다.

고대 중국 역사는 계속 이런 식이었다. 내란 아니면 북방기마유목민이 쳐들어왔다. 결론은 중화사상 뽕이든 뭐든 백성들은 마음 편히 농사조차 짓지 못했다. 그래서? 또 굶어죽었다. 계속 굶어죽었다.

<부엌 목매달아 잡은 개 추정 탁본, 한, 기원전206~서기200년>

여차하면 짐 싸 짊어지고 멀리 떠날 수 있는 유목민과 달리 농경민인 중국인 농사를 못 지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식량이 부족하면 뭐든 먹는다.

쥐 고기도 먹고 개고기도 먹고 사람 고기도 먹는다. 산둥성에서는 책상 다리 빼고 다 먹는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다. 중국 역사에는 가뭄이나 전쟁으로 성 안 인구가 반으로 줄었다는 기록이 끝도 없이 등장한다. 

<유민도, 명, 16~17세기>

 

시체를 먹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사냥해 잡아먹어 인구가 반으로  준 것이다. 한나라 유방이 적장의 고기를 먹거나 공자가 사람 고기로 만든 젓갈을 즐긴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당시 법 상 반드시 개고기를 먹어야 하는 피지배층이었다. 다행히 두 사람 다 사람고기도 좋아했고 개고기도 좋아했다. (모택동도 개고기는 좋아했다)

<장막 안에서 여인과 함께 있는 황제, 한, 기원전 232 경 추정>

백성들은 미국 드라마 ‘워킹데이’ 속 좀비들처럼 서로를 잡아먹고 먹혔지만 지배층은 달랐다황금과 권력을 쥔 그들은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지금과 같은 안락한 삶을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아 헤맸고 황제들은 금단을 먹거나 한식산을 먹었다. 초기 도교 도사들의 주요 고객도 이 황제, 귀족, 부호들이었다. 일반 백성들은 치료를 할 때나 만났다. 한의사도 겸한 그들은 개고기를 약으로 썼다. 

<목줄한 개 석상, 한, 1~2세기>

 

고대 개고기를 약으로 쓴 건 중국 한족만이 아니었다. 앞서 살펴봤듯 ‘개 새’를 믿은 지역 즉 개를 죽음의 신 아누비스로 숭배한 이집트, 여신 굴라와 신성한 개를 믿은 바빌로니아에서도 개고기를 약으로 썼다.

그러나 중국인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신전의 관리 하에 아주 엄격히 개고기를 약으로 사용했다. 중국에서는 아무런 제제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개를 잡아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신농'의 처방대로 약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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