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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156. 서북, 동북, 청사공정의 공통점? 개고기 금기

유목사

개고기 금기를 없앤 마오쩌둥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는 개고기를 먹으면 벌을 받거나 지옥에 간다는 금기가 존재했다. 텡그리 신앙을 이은 한반도는 단군 조선 이후, 텡그리 신앙의 간접 지배를 중국 대륙은 당, 송 왕조 이후 개고기 금기가 생겼다. 


<고구려 시대 개는 단군과 함께 신앙의 대상이었다, 장천1호분, 예불도 5세기 후반>


이 개고기 금기를 없애고 당 왕조 이전 고대 중국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 조선 왕조와 중국 공산당이었다. 그들에게 개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그들의 사상을 증명할 증거였다. 


<19세기 말 에도 단군은 여전히 조선 백성이 가장 많이 믿은 무교의 신이었다>


개고기를 먹어야 순수한 중국 한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순수한 고대 중국 한족 왕조로 돌아가고자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서 개고기 금지를 없앤 게 마오쩌둥이다. 중국 대륙이 공산화 되면서 중국인도 개고기에 오염되기 시작했다


개고기 거부하는 중국인은 학살, 문화대혁명   


공산혁명 완수를 위해 중국인에게 개고기를 먹여야 했던 그는 개고기가 얼마나 맛있는지 찬양하며 춘추전국 시대 기록까지 끄집어냈다그는 개고기가 천하 8대 진미 중 하나라는 헛소리까지 하며 중국인들에게 개고기를 먹였다


<단군 신앙의 근원인 알타이 샤먼에서 개는 신과 소통할 때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문화혁명 당시 마오쩌둥은 중국인에게 뭐다? 신이었다. 죽음의 신. 마오쩌둥 말을 따르지 않는 모든 중국인은 학살되었다이 말은 즉, 개고기는 천하 8대 진미라는 사실에 토를 다는 모든 중국인은 이 때 다 죽었다는 의미다


<1989년 천안문사태로 수 십만 명이 학살되면서 중국 내 지식인은 거의 사라졌다, 조선일보, 2014년 6월 9일>


이렇게 해서 196~70년대 이후 중국에서 개고기가 전통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 지식인은 사라졌다여기에 1989년대 일어난 천안문 사건도 한 몫 했다. 중국의 개혁 개방을 주장한 중국 지식인 수 십 만 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난징학살보다 더 많은 중국인을 죽인 천안문 사태 


참고로 중국이 주장하는 난징 대학살 당시 최대 사망 수정 숫자가 30만 명이다. 한 마디로 1992년 중국과 국교를 수교해 조선족을 받아들였을 때 중국에는 역사를 아는 지식인이 씨가 마른 상태였다. 조선족 중국인은 엉터리 역사를 배울 수 밖에 없던 것이다. 


왜? 중국 공산당에게 복종하지 않은 역사 학자는 모두 죽었으니까. 역사는 쥐뿔도 모르는 조선족 100만 명이 한국에 들어와 개고기 역사를 주입하며 개고기 식문화를 선도한 결과가 현재 세계 최악의 개 학대 국가라는 악명이다.  


<조선 왕조는 모든 한국 왕조와 이질적인 왕조로 중국의 개고기가 한국인의 전통이라고 주장했다>


개고기 전통론과 마찬가지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야금야금 중국 공산당이 왜곡한 역사가 바로 그 악명 높은 서북공정과 동북공정, 청사 공정이다. 서북공정은 티베트와 위구르, 몽골이 역사 이래 중국 한족의 지배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역사관이다. 


티베트와 위구르 지배 근거는 서북공정 


동북공정은 한반도가 중국 한족의 지배를 받았다는 역사관이다. 이런 왜곡된 중국의 역사관은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서북공정은 중국 공산당이 위구르와 티베트를 강제 점령할 당시 명분이 되었다. 

<서북공정 결과 중국에 편입된 위구르는 도시 전체가 수용소로 변해 남자들은 수용소에 감금당하고 여자들은 주로 강간을 당한다, KBS, 2019년 12월 7일>


원래 우리 땅이니까 우리가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 중국 공산당 측 주장이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와 신라, 백제가 중국 역사라는 역사관이다. 역시 중국의 한반도 침략의 역사적 근거가 되고 있다. 


<고대 중국과 고구려의 개에 대한 인식 차이>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실 한국은 원래 중국 땅이었다고 말한 근거가 바로 동북공정이다. 중국 공산당은 서북공정과 동북공정과 함께 청사공정도 주장하고 있다. 만주족이 중국 소수 민족이며 만주는 중국 속국이라는 사관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 일부였다고 말한 시진핑 주석, 2017년 4월 20일>


음...청 왕조는 만주족이 주인이었잖아? 이게 사실이라면 소수민족인 만주족이 패권 민족인 중국 한족을 지배한 것이다. 노예가 주인을 다스렸다는 말보다 더 웃긴 소리다. 이런 황당한 역사관으로 물먹는 하마처럼 주위의 모든 역사를 빨아들여 먹겠다는 것이 중국 공산당 식 역사관이다. 


고구려도 중국 역사, 동북공정 


런데 서북공정, 동북공정, 청사공정이야말로 중국과 티베트, 위구르, 몽골, 만주(청), 한민족이 전혀 다른 왕조였다는 근거가 된다. 그 근거의 가장 큰 증거가 개고기다. 그래, 바로 개고기. 


<청 왕조에서 개는 자금성에 들어가 건륭제가 재판하는 모습을 구경했지만 중국 공산당 하에서 개는 개고기용 가축이다, 청, 18세기 중반 >


개고기는 고대 중국 한족이 중앙아시아와 중국 대륙에서 얼마나 이질적인 존재인지 설명해주는 증거다. 고대 중국 한족은 텡그리 신앙을 믿지 않았다. 서북공정, 동북공정, 청사 공정의 대상 왕조는? 텡그리 정신을 믿었다.  


<스키타이와 흉노에서 개는 왕을 상징했다, 기원전 3~4세기>


텡그리 정신은? 알타이 샤먼이다. 개를 숭배하는 신앙이다. 즉 개고기 금기 문화다. 중국 공산당이 서북공정, 동북공정, 청사공정을 내세우며 파괴하고 다니는 국가는 모두 개를 숭배했다. 즉, 아주 강력한 개고기 금기가 있었다. 

136. [요약] 항일 독립운동과 중국 공산혁명의 개고기

중국 공산당

인류 역사 상 개를 가축으로 먹은 문명은 중국 황하 문명이 유일하다. 이에 반해 나머지 3대 문명은 개를 사랑하고 숭배했다. 단군을 이은 한민족은 개 숭배 문명권에 속했지만 조선 시대 중화사대주의자들은 한민족이 황화 문명에 속한다고 믿었다. 

단군을 믿은 한민족은 개를 사랑하고 숭배한 증거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 잘 나타나 있다. 고구려와 흉노는 같은 문화를 공유했으며 개가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다. 

<고대 개고기 문명과 개 숭배 문명 중 한민족은 개 숭배 문명에 속했다>

이에 비해 같은 시기 중국 한족 왕조(진나라, 한나라 등)는 개고기와 개 피가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다. 고구려, 흉노, 선비로 이어지는 기마 유목 민족이 한 편이었고 한나라 및 중국 한족 왕조가 한 편이었다. 

개 숭배 문명과 개고기 문명은 서로 대립관계였다. 그러나 현재 한국인은 고대 중국인이 자신의 조상이라고 믿으며 복날이면 액막이를 하기 위해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대 중국과 고구려의 개에 대한 인식 차이>

조상의 적을 조상으로 기리는 이런 현상은 조선부터 시작되었다. 조선은 단군부터 고려까지 이어온 한민족의 정체성을 깡그리 바꿔 버렸다. 조선 후기 중국 대륙을 다스린 청왕조 역시 중국 한족의 정체성을 뒤흔들었다. 

조선과 청 왕조는 고대 개식용 문명과 개 숭배 문명 지역을 맞바꾼 것처럼 굴었다. 고대 중국인이 개고기를 먹은 중국을 다스린 청 왕조는 개 숭배 문화를 더 열심히 퍼트렸다.   

<조선과 청 고대 개고기 문명 개 숭배 문명이 뒤바뀜 >

개 숭배 문명권인 한반도를 지배한 조선 왕조는 한민족에게 개 식용 문화를 퍼트리려 갖은 노력을 했다. 조선은 고려를 포함한 모든 한국 왕조를 혐오했는데 특히 신라를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는 청 왕조를 증오했다. 


개를 사랑하고 숭배한 청 왕조에 대한 복수인지 조선을 개고기 문명권으로 편입시키려는 빅픽쳐였는지 모르겠지만 전보다 더 심하게 백성들에게 개고기 먹기를 강요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복날 개고기다. 


<민족 역사 속 유일하게 개 식용 정책을 편 조선>

그러나 이미 수 천년동안 단군(텡그리) 신앙으로 대변되는 알타이 샤먼을 믿은 한민족은 굶어죽을 지언정 개를 잡아먹을 수 없었다. 따라서 조선 말기까지 복날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조선에서 가장 천하고 가난한 사람들로 제한되었다. 


<1907년까지 조선에서 개고기는 가장 비천한 신분의 사람들만 먹도록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모든 상황은 1910년 조선 왕조가 망해 일제의 식민지가 되고 1911년 청 왕조까지 멸망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청 왕조 멸망과 동시에 청 왕조가 강력하게 실시하던 개 도살금지법도 폐지되었다.  

청 왕조에 분노한 중국 사람들은 개가 마치 청 왕조 황제나 되는 것처럼 때려죽이기 시작했다. 실제 페키니즈, 시추 등의 사자개는 청 황실을 상징했다. 


<도광제와 황실 가족들의 사랑을 받은 페키니즈, 청, 1800년>

청 왕조가 망하는 순간 황실 사람들은 청 황실견을 모두 죽여 정통성을 보존하려 했지만 영국 군인들 손에 의해 서양에 전해졌다. 구출된 몇 마리 황실 견 외의 모든 중국 개들은 1921년 중국 공산당이 창당되면서 본격적으로 개고기 용 가축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은 개 도살을 청 왕조에 대한 저항으로 이해했다. 마오쩌둥은 이미 개고기 먹는 관습을 잊은 중국인에게 개고기 먹기를 강요했다. 개고기는 중국 공산당의 상징이 되었다.  


청 왕조의 상징이던 소중한 개는 중국 공산당 치하에서 개고기용 가축으로 취급받았다. 하필 청 왕조에 반대하고 일제를 포함한 모든 서양 제국주의 국가도 개고기에 반해했다. 중국 공산당은 모든 제국주의 국가

개는 청 왕조와 모든 제국주의 국가의 상징으로 죽어 마땅한 존재였다. 중국 공산당은 고대 중국의 개고기 문명을 재건하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 독립운동가들은  만주와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동해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지원을 받았다. 


<1925년 조선공산당을 창당한 청나라 요리집 아서원, 오마이뉴스, 2019년 2월 16일>

조선 독립운동가들이 개고기를 반청 운동, 반 제국주의 운동, 항일운동의 상징으로 받아들인 중국 공산당식 사상을 만주 독립운동가들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개고기로 중국공산당과 한민족이이 하나된다는 의미였다. 


한반도는 중국 공산당의 속국이었다. 역사와 민족을 팔아넘기는 매국노 짓이라고? 공산주의자에서 역사와 민족은 중요하지 않다. 공산혁명에 필요하다면 역사 왜곡쯤 할 수도 있다. 개고기? 먹을 수도 있다. 이게 공산주의식 마인드다.  


<개고기 전통으로 보는 만주 독립운동과 조선족의 중국 공산화 논리>

한반도에 중국식 공산주의 사상이 침투되는 상황이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실 조선인은 공산주의가 뭔지 잘 몰랐다. 서양 선진 문물 중 하나 정도로 이해한 지식인들도 많았다. 

당연히 한반도 개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나라가 망하고 일본 놈이 쳐들어오고 천지개벽하는 상황에서 만주의 독립운동가들은 사회 각 분야에 침투해 독립운동을 벌였다. 개고기를 먹으면서 말이다. 


<1921년 이후 중국공산당의 개고기 역사 공정 >

공산혁명에 가담을 했는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1910년 이후 한반도에서 선교 활동을 보장받은 천주교와 개신교도 열심히 개고기를 먹었다. 

조선 시대까지 민족 정체성을 지키며 개고기를 거부한 조선의 백성들은 '서양 종교, '신문물' '교육, 의료', '독립운동' 등의 엄청난 대업에 압도되어 전통을 잊고 개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개고기 식용으로 보는 조선족의  625남침과 문화 침략 과정>

 

이렇게 해서 개고기로 고문당하며 조선 왕조에 항의한 동학 농민군은 복날 개고기를 먹은 것으로 역사가 왜곡되었다. 일부 가난한 사람만 먹던 개고기를 일본 학생이 놀리자 화를 내며 싸우다 동맹휴학까지 한 학생만세 운동의 의미도 퇴색되어 학생 운동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개고기를 먹어야 하는 풍토가 형성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만주 독립운동가들이 모조리 가져 갔다는 점이다. 한국 독립운동하면 조선족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만주의 독립운동 정신을 따른다는 것은 결국 중국 공산주의를 따른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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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개 식용은 반청복명 운동, 중국 공산화 운동

조선

개고기는 중국 문화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은 청나라가 아니다. , 당 왕조 이전의 고대 중국과 명나라,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여기에는 1392년 건국된 조선도 포함된다

1392년 고려인은 조선인이 되었다. 조선은 명나라를 추종하며 순수 한족 중국 왕조를 조선에 재연하고자 했다. 우리 조상인 고려인이 조선인이 되었고 명나라 인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키자 조선 지배층은 패닉에 빠졌다. 


<고대 중국과 고구려의 개에 대한 기본 인식 차이>

조선 건국 이념 상 명나라와 함께 망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망하는 대신 조선은 이중정책을 썼다. 청나라에게는 복종한다고 약속해놓고 조선 안에서는 배신자를 색출하며 내부 단속을 했다. 그래서 광해군이 제거되었고 소현세자와 그 가족들이 몰살되었다

진짜 명나라 대신 청나라를 택하는 순간 조선 시대 지배층은 즉시 제거되었다그 결과 모든 조선 시대 지배층은 조선이 망하는 순간까지도 오직 명나라만 추종하게 되었다조선이 망하고 일제의 지배를 받은 후에도 명나라 사랑은 변치 않았다


<비밀 명나라 복원 운동을 하던 조선의 왕은 청 나라 사신이 오면 성 밖까지 나가 마중을 해야 했다, 18세기>

일제 황국 신민이 된 조선인은 여전히 몰래 마지막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 이후 형성된 기이한 소중화주의는 중국 공산당이 창당되자 중국 공산당 추종으로 이어졌다. 왜 그런가?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자 중국 대륙에서는 진짜 한족 중국을 복원하자는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진짜 중국이 명나라라고 믿은 중국인은 국민당이 되었고 중국 공산당이라고 믿은 사람들은 공산당이 되었다


<아편전쟁에서 청 왕조가 패배하기 전까지 티베트탄 스패니얼 계열의 사자 개는 오직 청 황족만 만지고 볼 수 있었다, 1899년>

이 시기 황국 신민이 된 조선인 중 일제에 의해 독립해 명나라인이 될 것인지  중국 공산당 당원이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믿은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은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조선 독립운동 파벌이 형성되었다.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각 지역 군벌이든 너도나도 개고기를 다시 먹기 시작했고 조선의 독립운동가들도 개고기를 먹었다개고기를 먹는 것은 명나라 복원 운동이자 청나라 반대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선 땅에도 해당되었다


<민족 역사 속 유일하게 개 식용 정책을 편 조선>

병자호란 이후 조선에도 개를 죽이며 명나라를 부활시키려는 세력이 있었다조선 후기 지배층이었다조선 후기에도 개고기를 먹는 것은 명나라 부흥운동이자 청나라 반대 운동이었다

힘으로 청 왕조에 굴복해 복종은 하지만 속마음까지는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 조선 후기 지배충들이 가진 기본 이념이었다. 송시열이 주장한 소중화주의는 결국 반청 운동의 일환이었다


<청 나라에서 사자개는 오직 황족만 키울 수 있었다,  도자기, 청, 17~18세기>

이런 신념은 청 왕조가 다스리는 중국 대륙 안에 숨어 암약하던 명나라 복원 세력과 뜻을 같이 했다. 청 왕조에게 있어 조선은 반정부 세력이나 마찬가지였다명나라를 부흥시키자는 중국 내 반청 세력과 조선의 반청 세력은 개를 죽였다

? 청 왕조가 개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다. 만약 청 왕조가 개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개 도살 금지법 같은 걸 만들지 않았다면 중국과 한국에 개고기 식용 악습은 농업혁명과 더불어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청 왕조를 증오하며 개고기를 군량미로 사용한 중국 공산당 군대, 1930년>

하지만 하필 청 왕조는 개를 유독 사랑했다. 그것이 개를 둘러싼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다. 청 시조인 누르하치의 목숨을 구해준 개는 모든 만주족에게 신성했다. 청 왕조에는 황족만 만지고 볼 수 있는 특별한 개가 있었다

그 개는 페키니즈, 시추, 라사압소로 불리는 사자개다. 페키니즈, 시추, 라사압소는 티베트 개다. 티베트, 청 왕조의 고향인 만주, 위그르, 몽골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 개를 죽이는 것은 지독한 금기다


<티베트와 위그르가 청나라에 복속된 이유는 같은 기마 유목 민족이기 때문>

지금도 오직 중국 한족만 이 지역에서 개고기를 먹는다. 티베트, 만주, 위그르는 모두 청 왕조로 하나되어 있었다. 청 왕조는 이들 국가의 맏형 격이었다. 맏형인 청왕조가 중국 대륙을 다스리니 티베트, 위그르, 만주, 몽골도 형의 지배력 아래 들어가 함께, 파트너 자격으로 중국을 다스린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같은 문화와 종교를 가졌다는 동질성에 의해 가능했다. 티베트, 만주, 위그르, 몽골, 청은 같은 편이었고 개를 사랑했다이에 반해 중국 한족은 적이자 개고기 먹는 인간들이었다. 청 왕조는 다수의 적인 중국 한족을 소수의 만주족으로 다스렸다


<몽골의 샤먼 의식에 신성한 동물로 등장하는 몽골 전통개는 삽살개와 유전자가 99.9%동일하다>

티베트, 위그르, 몽골 등 다른 유목 왕조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다. 만주족과 마찬가지로 개를 신성시한다 왕의 상징으로 여기는 이들은 청 왕조의 동료였다. 개를 죽이는 것을 법으로 금지할 정도로 사랑한 청 왕조에 반대하려면? 개를 죽이면 되었다

개고기를 금지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에게 반대한 586운동권들이 행한 방법과 같은 방법이었다. 20 세기 한국과 달리 청 왕조 시대 중국에서 개를 죽이다 걸리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고 불교와 도교의 영향으로 개고기를 먹는 관습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지만 말이다


<청 황제의 명으로 서양화가가 그린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개인 티베트탄 마스티프>

그런데 청 반대 세력은 조선 땅에도 있었다고 했다. 더군다나 중국 땅에서는 못 죽이는 개를 조선에서는 마음껏 죽일 수 있었다병자호란 후 조선 양반들은 개를 죽임으로써 청 왕조에 엿을 먹이고 굶어죽는 대중을 선동하는 치졸한 방법을 썼다

양반들이 (지들은 먹지도 않으면서) 글로 써서 우아하게 개를 죽여 개고기를 약과 식량으로 먹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면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백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실행했다. 이렇개 해서 조선의 개고기 역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개고기로 보는 조선 양반과 백성의 민족 의식 차이>

실제로 조선백성들이 고등어 구워 먹듯 개를 많이 먹어서 역사가 된 것이 아니다. 전직 고려인인 조선 백성은 한민족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한민족의 전통에 의하면 개는 먹어서는 안 되는 신성한 동물이다

티베트, 만주, 위그르, 몽골과 마찬가지로 한민족 역시 개가 죽음과 관련된 영물이라고 믿었다백성들의 생활과는 달리 조선 후기 지배층은 그동안 중국에서 출판된 고대 중국 의학서를 죄다 긁어모아 출판했고 이것이 조선의 역사로 둔갑했다


<김일성 황구라는 새 견종까지 만들어 낸 북한이 믿은 『동의보감』의 원 저자인 신농>

알곡인지 쭉정인지 가리지 않고 조선시대 출판된 책은 모두 조선의 역사로 취급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역사 인식 수준이다. , 중국 역사책이 조선 역사책이고 중국 역사가 조선 역사다

이렇게 해서 중국과 일체화된 조선의 개고기 역사는 만들어졌고 조선족과 북한의 김일성은 개고기가 보약이라고 믿게 되었다. 중국 조선족과 북한의 개고기 역사 인식은 1997년 이후 한국에 전파되어 오늘날 우리가 믿는 개고기 전통설과 개고기 만병통치설이 되었다. , 한국 개고기 문제의 원흉은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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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김일성이 먹을 개를 본 자, 사형에 처한다

북한

청나라에 반발한 마오쩌둥은 개고기 먹는 관습이 거의 사라진 중국 대륙에 다시 개고기 열풍을 불어 넣었다. 김일성 이전 북한의 권력은 천도교 세력에 있었다. 천도교는 개고기를 금지한다.

그렇다고 김일성이 천도교 세력에 대한 반발로 개고기를 먹은 것 같지는 않다. 중국 공산당 출신 김일성은 진심으로 개고기를 좋아했다. 김일성을 신으로 모시는 북한의 주체사상은 세계10대 종교에 포함된다.

북한은 변형된 형태의 사회주의 국가인 동시에 종교국가다. 중세 카톨릭 독재 시대에 유럽에서 교황이 전지전능한 권력을 휘둘렀듯이 북한에서 김일성은 신이자 교황이었다. 

그런 김일성이 하루에 두 끼는 반드시 개고기를 먹을 정도로 좋아했으니 국가 기관이 총 동원되어 개고기를 찬양할 수 밖에 없었다. 북한에서 개고기 전통론이 생겨난 이유다. 

1960년대 김일성은 민간 시찰을 나갔다가 왜 개고기 음식을 만들어 팔지 않느냐고 했다. 그 말 한 마디에 북한에서는 가지각색의 (아마도 조선족 요리법을 참고하여) 개고기 요리가 만들어졌고 개고기 요리 전문점이 생기게 되었다. 

심지어 해마다 개고기 요리 경연대회를 열고 당(국가)은 정기적으로 개고기 요리 전문가를 차출하여 교육한다. 이 쯤 되면 개고기는 북한의 대표요리다. 냉면 육수에도 개고기가 들어간다고 하니 말 다 했다. 

북한은 황구(누렁이)가 몸에 가장 좋다는 중국 기록에 따라 김일성 일가만이 먹는 독특한 견종을 만들어냈다. 북한 주민들은 굶어죽는 와중에 눈물 나는 개량 연구를 통해 머리부터 발끝부터 심지어 눈알까지 노란 개를 만들 낸 것이다. 

나는 이 견종을 김일성 황구로 칭하겠다. 이 김일성 황구를 직접 본 사람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중이 목장 중에서도 보초 초소를 지나야 들어갈 수 있는 제한 구역 안에 개농장이 있고 그 앞을 중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고 한다. 

김일성 황구 개 농장 앞에는 만약 이 개를 허가 없이 보거나 개에 대한 정보를 외부에 발설하는 자는 김일성의 만수무강에 위해를 가한 자로 간주하여 처벌 하겠다는 취지의 경고문이 적혀 있다고 한다. 

이 기이한 경고문을 보는 순간 나는 청 왕실에서 기르던 페키니즈와 시츄 등의 사자 개가 떠올랐다. 청 황실에서도 허가없이 황실견을 보는 자는 죽였다. 그만큼 황실견이 신성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도 김일성 황구라는 황실견을 키운다. 잡아먹으려고 말이다.

 

혹시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먹는 시금치 밭도 허가 없이 들어가거나 함부로 시금치를 훔쳐보거나 하면 죽인 걸까? 잡아먹기 위해 기르는 개를 일급 군사 기밀 시설에서 기르고 연구하는 국가는 전 세계 인류 역사 상 북한 밖에 없다. 

어쨌든 김일성 황구를 직접 본 자 중 외부에 정보를 누설한 자는 사형을 당했든지 정치법 수용소에 갇혀 있든지 할 터이니 직접적인 정보는 얻을 수 없다. 추측컨대 중국에서 구한 노란 샤페이와 누렁이를 교배시켜 만든 혼종이 아닐까 한다. 

 

<노란 샤페이 강아지, 사진 출처 :Beverly &Pack>

 

주체 경제를 하는 북한의 특성 상 북한은 중국, 러시아 등 극히 제한된 국가와만 교역을 한다. 그 몇 안 되는 국가 중 노란 개를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 정도일 것이다. 

샤페이는 티베트탄 테리어 계의 사자개다. 만약 샤페이가 교배되어 김일성 황구로 태어나 북한에서 개고기 용 가축으로 사육되고 있다면 유목사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철통 보안 속에 사육되는 김일성 황구에 대한 정보가 외부에 노출된 이유는 김일성의 식탐에 있다. 여름 동안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는 포태리 여름 별장에 가서 지낸다고 한다.

여름휴가 동안에도 개고기는 먹어야 하니 평양 중이 목장에서 김일성 황구를 운반했다고 한다. 죽여서 운반하면 고기의 신선도가 떨어지니 살아있는 김일성 황구 강아지들을 비행기로 실어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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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일의 낭군님 속 개의 고향은 티베트

유목사

중국에서 황실 견을 키운 시기는 당, 청 왕조   

'백일의 낭군님'라는 드라마가 있다. 귀엽고 재미있고 톡톡 튀는 이 드라마에서 박선도 영감은 한양에서 갓 부임한 신임 현감을 찍어 누르기 위한 장치로 개를 이용한다. 


명나라 황실 출신의 귀한 개라고 소개하며 인사를 하라고 한 것이다. '백일의 낭군님'이 퓨전 사극이긴 하지만 이건 명백한 고증 오류이다. 박선도 영감이 안고 있던 개는  페키니즈로 티베트 개이다. 중국 명 나라 개가 아니다. 



<티베트가 고향인 페키니즈>



차이니즈 스패니얼로 잘못 알려진 이 개는 티베트탄 스패니얼로 티베트가 고향이다.  티베트탄 스페니얼, 패키니즈, 시추, 라사압소 모두 티벳 개이다. 사자개라고도 한다. 사자개는 티베트난 마스티프다. 크기는 다르지만 유전자가 같다. 


티베트 개가 왜 중국 개가 되었을까?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를 점령한 후 티베트 개도 중국 개가 되었기 때문이다. 티베트와 중국 공산당은 개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다른 민족임을 알 수 있다. 


하다하다 청나라 황실 견까지 훔쳐간 중국 




<티베트에서 개는 왕이나 수호신을 상징했다. 현 달라이 라마의 섭정 레팅 린포체와 티베트탄 테리어. 1936년. 출처 tibet.fr>



고대 티베트에서 개는 신이었다. 불교가 지배한 후에도 티베트에서 개는 신성했다. 삼예 수도원에서는 여전히 개를 신으로 모셨다. 티베트를 다스린 지배자들인 승려들은 개와 함께 사진을 찍어 세를 과시했다.  


이에 반해 중국 한족 정부인 중국 공산당은 수 백만 티베트 인을 학살했고 개고기를 먹었다. 티베트 인은 중국 공산당을 가리켜 '개고기 먹는 인간'이라 욕했다 . 북방 기마 유목민족과  중국 한족의 차이다. 



<티베트 소총 부대와 티베트탄 마스티프. 1914년>



중국 역사에서 티베트 개를 황실에서 키운 시기는 당과 청 뿐이었다. 송 왕조와 명 왕조 때에는 황실에서 티베트 개를 기른 기록이 없다. 그럴 수가 없었다.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티베트 산 개는 어떤 의미에서 옥새와도 같아서 드라마처럼 결코 황실 이외의 사람에게 분양하지 않았다. 페키니즈, 라사압소, 티베트탄 테리어, 티베트탄 스패니얼, 티베트탄 마스티프, 시추 등은 북방 기마 유목 왕족만 만지고 볼 수 있었다. 


티베트 개는 왕의 상징 



<티베트탄 테리어와 티베트 승려. 1938년>



황족과 개 전담 관리 외에 다른 사람이 황실 견을 보기만 해도 사형을 시켰다. 왜? 신성하니까.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북한도 외부인이 김일성 황구(김일성 일가 전용 보신탕을 만들기 위해 품종개량 한 황구)를 보면 죽인다. 


청 황실은 절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1911년까지 중국에는 '개 도살금지법'이 존재했다. 그럼 누가 중국에서 고대 개고기 식용 문화를 되살렸나? 중국 공산당. 


 


라사압소, 페키니즈, 시추, 티베트탄 스패니얼, 티베트탄 마스티프가 북방 기마 유목 왕족 이외의 인간들에게 유출된 것은 청 황실이 망한 후였다. 청 황실이 망하는 순간 황실 사람들은 대대로 금이야 옥이야 길러온 이 개들부터 죽였다.


<영국으로 납치된 티베트탄 스패니얼. 1899년>



미쳐서 그랬던 게 아니다. 신성한 혈통을 외부에 유출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개들은 소유활 수 있는 사람은 (북방기마 유목민 중) 황족 밖에 없었다. 신이 선택한 정당한 소유자가 사라졌으니 개도 죽어야 했다. 


청 왕조가 망하자 영국으로 납치된 시추



선택받은 주인과 신성한 개는 죽어서도 살아서도 하나였다. 고구려 벽화에 주인 무덤을 지키는 반려견들 그림이 많은 이유이다. 그러나 대학살 속에서도 몇 마리가 살아남아 영국 군인들 손에 넘어갔고 영국 황실에 바쳐졌다. 



<요나라 무덤 벽화 속 티베트탄 테리어. 907-1125년>



그 후  개들이 혈통 개량을 통해 현재의 페키니즈, 시추, 라사압소가 되었다. 이 정도로 신성시한 개를 선물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북방기마 유목민의) 황족으로 즉, 같은 지배자로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황금 보검을 선물해 지배권력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이 개들을 선물한 것이다.


페키니즈, 라사압소, 티베티탄 스패니얼은 당 황실과 청 황실 그림으로 남았다. 또 송 왕조 시기 중국 북부를 지배한  거란과 여진 무덤 벽화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거란과 여진  지배층도 (북방 기마 유목민의) 진정한 지배자였기 때문에 이 개들을 기를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비빈들과 함께 하는 도광제(1820~1850년) 페키니즈. 청, 19세기 후반>





명나라 왕자가 쓴 『활인심방』 을 이황이 쓱싹 



'백일의 낭군님'은 조선 시대가 배경이다. 중국의 명 왕조 시기이다. 이 시기 명 황실에서 개를 신성하게 길렀다는 기록은 없다. 대신 명나라 황자 주권은 개고기 술을 연구했다.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주권은 도교서에 심취했는데 당시 중국 대륙에서는 명맥이 사라진 고대 중국 한족 기록인 '개고기 술' 기록을 찾아내 책으로 남겼다. 그 책을 이 황이 저자 이름만 바꿔 표지갈이 출판을 했다. 이황의 후학들이 지금도 해마다 시연한다는 『활인심방』이다. 

 


<당 황실 여인들과 노는 황실견 페키니즈. 당 왕조. 9세기>



『활인심방』이 한국 개소주의 시초이다. 원저자는 명나라 황자, 표절자는 이황이다. 한편, 모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신라에서 일본으로 개를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을 들어 개고기가 될 개를 신라에서 일본으로 보낸 증거라고 했다. 


신라 황실 견 삽살개가 개고기 용?


금 중국과 한국처럼 개고기 밀수선이 쉽게 왔다 갔다하는 줄 착각한 것이다. 해상왕국 신라였지만 고대의 배삯은 지금의 비행기 티켓 값보다 훨씬 비쌌다. 비싼 배삯을 치르며 거래하던 물건들은 금, 은, 인삼, 비단 등 초고가 제품들이었다. 



<청 왕조의 서태후가 왕가의 징표로 루즈벨트 대통령 딸에게 선물한 페키니즈. 1905년>



거금을 주고 배에 태워 일본으로 보낸 개를 고작 개고기로 먹었을 거라는 추론은 신라인과 일본인이 개고기를 먹은 증거가 되었다. 신라에는 청 왕조와 마찬가지로 황실에서만 키울 수 있는 신성한 개가 있었다. 삽살개다. 



북방기마유목 왕조끼리 마치 옥새와도 같이 신성한 개를 주고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망각한채 정신마저 중국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티베트 개는 명나라 개가 되었으며 중국의 개고기는 한국인의 개고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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