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

77. 사자왕 리처드의 뒤통수를 친 프랑스의 필립 2세

AnDant 2019. 5. 11. 12:00

중세 유럽에서 국가라는 개념보다는 영지 개념이 컸다. 영지는 귀족, 혹은 왕족의 가족 재산으로써 주인이 죽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거기 사는 백성들 운명도 소용돌이쳤다.

예를 들어 결혼 지참금으로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을 통째로 가져오기도 했고 왕이 후계자(아들) 없이 죽는다면 프랑스 왕국 전체가 먼 남자 친척에서 상속되기도 했다.


<앙리 제국의 후계자 리처드 1세(재위 1189-1199년), 영국 1620년>

이렇게 해서 중세 유럽에서는 거대한 씨족 연합체가 성되었다. 대표적인 씨족 정치 연합체가 리처드 1세 집안인 앙주 제국이었다. 

앙주 제국은 이탈리아 피렌체 산맥부터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을 포함한 현재 프랑스 영토의 3/2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까지 다스리던 대제국이었다. 


<리처드 1세와 필립 2세, 1180년 이전 추정 >

앙주 제국의 상속자 중 한 명이자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웅 중 하나인 리처드 1세는 영국에서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로빈 후드이야기에 등장하는 정의로운 왕이다. 


<제 3차 십자군전쟁을 일으킨 교황 그레고리 8세(~1180), 1675년 발행>


그 리처드 1세의 뒤통수를 쳐서 앙주 제국의 힘을 약화시킨 후 리처드 사후 노르망디 지역을 빼앗아 온 게 필립 2세였다만약 리처드 1세가 십자군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전하지 않았다면 노르망디는 여전히 영국 땅일 가능성이 높다. 

필립 2세와 리처드 1세는 어릴 때부터 형제처럼 친했다고 한다리처드 1세의 할아버지는 프랑스 왕족이었다둘은 따지고 보면 사촌 간이었다그 말은 즉, 서로의 왕국에서 후계권을 다투는 경쟁자라는 뜻이다. 


<리처드 1세가 예루살렘에서 만난 숙적 살라딘(1193년 사망),William and Henry Rock 작, 1838-5년>


리처드 1세는 분명 용감하고 정의로웠다. 하지만 그리 현명하지는 못한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는 직진만 하는 인생을 살았다. 형제보다 친하던 리처드 1세와 필립 2세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나뉘게 된 것은 십자군전쟁이었다


<사자왕 리처드와 이슬람 술탄 살라딘의 전투1193년 이전>

 

신앙심이 불탄 리처드 1세는 자신의 전재산을 정리해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떠났다이슬람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칭송받은 살라딘과 싸운 사람도 리처드 1세였다

필립 2세도 같이 가긴 갔는데 중간에 핑계를 대고 홀랑 철수해 버렸다. 리처드 1세와 달리 후진도 하는 인생이었던 것이다. 


리처드 1세가 살라딘을 죽이고 있을 때 필립 2세는 앙주 제국을 붕괴시킬 힘을 다지며 이 심상치 않은 성골함을 만들었다


<크리스탈 성골함 정면, 프랑스, 1175-1200년>


언뜻 보기에는 그냥 좀 멋없는 전구처럼 생긴 이 수정 성골함 위에는 그리핀으로 추정되는 새들이 잔뜩 있다. 옆면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조각되어 있다

12세기 이후 프랑스 성골함답게 벽에는 개 머리도 장식되어 있다반대편 옆면을 보면 더 심상치 않다동일한 구도에 동일한 인물이 나오는데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만 없다


<크리스탈 성골함 정면프랑스, 1175-1200년>


대신 저 위에서 새(그리핀 추정)가 날개를 편 채 하강하고 있다하필 딱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위치다십자가 모양의 날개를 편 새가 예수님을 대신했다고 봐도 좋은 정도로 의도적이다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하고도 남을 정도의 신성모독이다. 


<크리스탈 성골함 측면프랑스, 1175-1200년>

이걸 교황은 용인했을 것이다. 어째서 굳이 안티오크 파를 없애고 천주교에서 개 머리 성인을 지워버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날개달린 개를 믿은 고대 빛의 종교를 상징하고 있는데 말이다.  


<필립 2세의 직인, 프랑스, 1180년 이후>

노르망디 지역을 빼앗아 카페 왕조의 부흥을 연 필립 2세의 직인에는 사자 개로 추정되는 개 두 마리를 깔고 앉은 모습이 그려졌다

비슷한 시기 필립 2세의 직인과 비슷한 그림을 그린 메달이 영국에서도 제작되었다. 하지만 영국 왕을 그린 듯한 영국 메달에는 왕좌 밑을 떠받치고 있는 개 두 마리가 없다. 


<말탄 기사와 용이 그려진 메달과 다른 메달들, 영국, 1213~1219년>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유독 프랑스 왕조에게 있어 개는 매우 중요했다. 필립 2세의 카페 왕조는 987년부터 1328년까지 중세 프랑스를 다스렸다. 

그 뒤로 발루아 왕조부르봉 왕조가 이어졌다. (발루아 왕조부르봉 왕조 모두 카페 왕조의 방계이나 여기에서는 구분하기로 한다)


<발루아 왕조가 만든 거룩한 가시 왕관 성체함, 프랑스, 1390년대 >

발루아 왕조는 가시나무 성골함을 만든 왕조로 영화 여왕 마고의 배경이 되는 가문이다부르봉 왕조는 마리 앙뜨와네트와 함께 처형된 루이 16세를 끝으로(혹은 그 왕자가 살아 루이 17세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막을 내렸다.


<감옥까지 주인을 따라간 코코와 처형되기 직전의 마리 앙뜨와네트, 영국, 1895년>

카페 왕조발루아 왕조부르봉 왕조는 개를 매우 사랑하고 신성시한 왕조이기도 하다마리 앙뜨와네트의 애견 코코는 주인이 감옥에 갇히고 처형이 되는 순간까지 주인 곁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