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이 짝지워주는대로 결혼을 했으니 지금도 모든 유럽 왕가는 친척이다. 국가 개념보다는 영지로 나눠지던 중세시대 제일 잘 나가던 친척은 지금으로 치면 프랑스, 이태리 왕가였다.
<새(불 새 추정)와 개(불 개 추정)새겨진 타일, 스페인, 15~16세기>
좀 떨어지는 친척은 스페인 반도, 영국, 독일이었다. 스페인 반도는 일부 이슬람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영국과 독일은 프랑스에 비교하면 시골 촌구석이었다.
<끝내 알프스 산을 넘지 못한 9세기 말더듬이 왕, 루도비쿠스 2세와 비만견>
프랑스, 이태리 사이에 낀 스위스는 지지리도 못 사는 친척이었다. 특히 넘어오기만 하면 준다는 이태리 왕위도 포기한 프랑스 왕이 있을 정도로 험난한 알프스 산간 지대에 사는 스위스인은 더 가난했다.
<강아지 모양 배지, 15세기, 영국>
굶어죽지 않기 위해 그들은 치와와를 잡아먹은 아즈텍, 마야 문명 사람들처럼 알프스 눈 속에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해주던 세인트버나드라도 잡아먹어야 했다.
<스위스 사람들이 잡아 먹었을 세인트버나드의 인명구조 장면, 1831년>
19세기 파리, 특히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당시 파리에 개고기와 쥐고기를 파는 상점이 있었다는 이유로 유럽에서도 개고기를 먹는다고 하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멧돼지 공격하는 개가 그려진 메달, 프랑스, 1240-60년>
적어도 중세 유럽에서 개는 채찍으로 때려죽일 수는 있었어도 먹을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 천주교와 개신교는 멋대로 해석해 개고기를 먹어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엄연히 성경에는 금지음식이다.
<하프스텐 성당 바닥 타일 중 개 문양, 영국, 14세기>
<아기 예수를 멘 성 크리스토퍼 펜던트, 독일, 15세기>
<용을 공격하는 개가 그려진 메달, 프랑스, 1110-30년>
이렇게 해서 유럽에서 여행자의 수호신 성인 크리스토퍼는 어깨에 아기 예수를 둘러멘 모습으로 기운 센 천하장사로 묘사되게 되었다. 이 밖에도 중세 유럽에서 개는 무서운 용과 싸우는 용감한 수호자이기도 했다.
<개가 그려진 십자가, 프랑스, 1160-1170년>
무엇보다 중세 유럽에서 개는 십자가에도 등장하는 신성한 존재였다. 12세기 프랑스 천주교 십자가에는 개가 그려져 있었다. 십자가 그림 중 오른쪽을 보자.
<<개가 그려진 십자가, 프랑스, 1160-1170년>>
유대인이 이집트를 탈출한 출애굽기를 기념한 유월절 모습이다. 유월절은 유대교 기념일이지만 유럽 천주교에서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십자가 속 남자가 들고 있는 그릇 속 빨간 액체는 숫양 피다.
양 피로 집안 대문에 부적(글씨)를 쓰고 출애굽을 기념한다. 그런데 이 남자, 개 집 문설주에까지 양피 부적을 써주고 있다.
<개를 안은 마리아 청동상, 프랑스, 14세기>
중국 『사기』에 의하면 고대 중국에서는 복날이면 개 피로 쓴 부적을 대문에 붙여 액운을 막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 팔자는 참 극과 극이다.
<성 로크의 개, 프랑스, 1500년>
다친 순례자를 천사에게 인도하는 성인 로크의 개를 보면 개는 치유의 상징이기도 했다. 루크의 개는 항상 주둥이에 빵을 물고 있다. 천주교에서 빵은 곧 예수님의 신체다.
이처럼 중세 유럽에서 개가 십자가에 등장하고 성모 마리아가 개를 안고 있었다는 것은 개가 곧 신이라고 믿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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