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115. 개고기와 함께 시작된 한국의 민간 국제 외교

AnDant 2019. 8. 22. 12:30

지금 이 순간에도 수 천 만 마리의 한국 개들이 조선족들에 의해 도살되고 있다. 조선족은 한국에서 개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한다. 개고기 장사로 부를 축전한다. 개 농장에서 일한 경력으로 영주권을 받는다

축적한 돈은 다시 중국으로 빼돌린다. 이 과정에서 우리 한국인이 얻는 이득은 무엇일까? 개고기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한다고? 남과 북이 개고기를 먹으면서 사이좋게 쎄쎄쎄? 여기서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이 지구에는 남과 북만 존재하지 않는다.


<모란시장 개도축업자 90%가 조선족, 동포타운신문, 2010년 8월 22일>

전 세계에는 개고기를 혐오하는 수많은 나라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나라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조선 왕조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말이다. 역사적으로 자유롭게 교역을 해야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정적으로 교역을 하려면 군사력은 기본으로 갖추어야 한다. 군사력을 갖추려면? 돈이 든다. 돈을 벌려면? 교역을 해야 한다. 이 사이클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된다. 식민지 제국주의 시기 뿐만 아니라 황금(경제력), 군사력, 교역은 언제나 한 몸이었다


<점령지 한국에 들어온 미국 군인, 1945년 9월 8일>

교역을 하려면? 외교를 해야 한다. 잘 나가는 나라든 망쪼가 든 나라든 기본적으로 외교는 해야 한다. 조선은 500년 간 교역다운 교역을 하지 않은 나라였다. 나라 문을 걸어 잠갔고 오직 명나라와 교역했다

명나라가 망한 후에는 청나라가 유일한 교역 상대였다. 그런 이유로 조선 시대 지배층(양반)에게 외교란 대 중국 외교를 뜻했다. 조선족 뇌가 포맷되어 고구려가 중국이라고 믿는 것처럼 조선 시대 양반들도 조선은 중국이라고 믿었다


<반려견과 함께 사진을 찍은 케네디 대통령 일가, 1931년>

이 사람들이 그대로 일제 시대 조선 식민지 황국 신민을 거쳐 해방 후 한국인이 되었다. 뇌가 중국인으로 포맷된 채로 말이다. 조선 시대 양반 중 황국신민인 상태를 받아들인 사람은 친일파가 되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독립운동을 했다


친일파냐 독립운동이냐? 자유주의냐, 공산주의냐? 지지고 볶는 사이에 1945년 해방이 되었다. 남북이 갈리고 북한은 다시 공산주의 독재로 나라 문을 걸어 잠갔다. 북한은 조선 왕조와 마찬가지로 특정 국가와만 제한된 외교를 했다


<친미파 개신교 신자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케네디 대통령과 만나는데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 1961년>

중국, 소련 등 공산국가와만 말이다우리 자유 대한민국은 1948년 이후 혼자 힘으로 전 세계국가를 상대해야 했다. 운전면허 따고 도로 주행 없이 고속도로 탄 격이었다.  대형사고가 터질 수 있다. 당연히 외교와 무역을 국가가 제한했다. 

일제 시대는 물론 해방 후 1980년 대까지 한반도에서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선택받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런데 해외 여행 자유화 이전 외국을 (외국의 도움으로) 제 집 처럼 자유롭게 들락날락 거리던 집단이 있었다. 천주교와 개신교 지도자들이었다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한 친미파 기독교 중 한 명인 김활란 이대 총장, 1959년>

대한민국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한 이들은 한국의 개고기 식용 사실을 외국에 가장 적극적으로 알린 사람들이기도 하다. 특히 천주교 주교와 추기경 및 신부들은 개고기를 순교의 음식으로 여기며 자랑했다

공산주의자라는 의혹을 받기도 한 교황 비오 12세는 한국의 제사가 우상 숭배가 아니라고 인정해준 교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제사는 무교에서 기원한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며느리가 음식을 장만하는 유교식 제사는 조선 시대 들어 가미된 형식으로 원래는 제사 때 차를 올렸다


<한국 제사를 인정해준 교황 비오 12세, 1922년>

그래서 차례라고 한다. , 천주교 교황님이 천주교에서 미신이라고 질색한 제사를 인정해줬어, 그럼 미신을 인정해준건가? 아니다. 개고기를 먹음으로써 한국 미신에 빅엿을 먹였다. 조선 시대 양반은 개가 조상신이라 절대 개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겉으로는 제사를 인정하고 지내면서 뒤로는 개고기를 신나게 먹으면? 열 받은 조상신이 오지 않아 결과적으로 제사 빨이 안 받게 된다. 이보다 완벽하게 더 한국 미신을 엿먹이는 방법은 없다. 조상 신 쫓는 주술적인 효과 외에도 한국 천주교의 정치적 성향 상 개고기는 먹을수록 좋았다. 


<60년대부터 외국인에게 한국에는 식용개가 따로 있다고 설명하고 다닌 고 김수환 추기경과 고 노기남 대주교>

해방 후 천주교가 적극적으로 앞장 선 농촌 계몽 운동, 노동 운동, 민주화 운동, 시민운동 등등은 누구와 연관이 깊다? 중국 공산당. 중국 공산당을 세운 마오쩌둥은 뭐를 먹는다? 개고기. 제사 신빨 죽이는 개고기와 중국 공산당의 개고기가 만났다

개고기와 개고기가 만났으니 한국 천주교가 개고기에 환장한 건 당연하다개신교도 사정은 비슷하다. 천주교처럼 확 좌경화 되었느냐, 서서히 좌경화 되었느냐 차이다. 1910년 조선 식민지 지배와 함께 조선에 당당히 입성한 미국식 개신교는 대체적으로 친일을 했다


<맥아더 장군과 쇼와 천왕, 1945년>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미국이 일본과 친했으니까. 무도회를 열어 왕궁의 불꽃놀이를 해 준 메이지 천황과 달리 고종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딸과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을 묘지로 데려가 점심을 먹였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는 빨갱이라면 치를 떨었지만 역시 점차 좌경화 되었다개신교 지도자 중에는 친일파에서 친미파로 전향한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부터 친미파였던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 정도로 그 수가 매우 적었다.


<동물은 인간이 이용하라도록 신이 준 자원이라는 한국 카톨릭, 한국일보 2015년05월

개신교 지도자들은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개고기를 열심히 먹었다. 여기부터 한국 개들 역사가 단단히 꼬인 셈이다. 원래 개는 조상신이라 먹지 않는다고 한 조선 시대 양반들은 해방 후 친일파란 이름으로 찍 소리 못하고 살았다. 

신 운동이란 운동은 다 하고 민간 외교를 하고 다닌 천주교, 개신교,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득세를 했다. 1980년 대 이전까지 한국 외교를 담당한 민간 외교관들 중 상당수 역시 이들이었다. 그들이 개고기는 전통이라고 백 번 우긴 결과 개고기는 전통이라고 믿게 되었다. 


<500년 동안 세계 4대 문명 중 개고기 먹은 중국 문명과만 교류한 조선>

특히 고 김수환 추기경 등은 개고기는 한국 전통이고 식용개와 애완견은 따로 있다는 헛소리를 하고 다녔다. 500년 동안 중국만 상대하던 구 조선인 (현 한국인)은 몰랐지만 전 세계 4대 문명 중 개고기를 식량으로 먹은 문명은 중국 황하 문명이 유일했다

,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문명국가는 개고기를 극도로 혐오했다국제 외교 데뷔 초장부터 한국인은 스스로 혐오와 비난을 짊어지고 세계를 상대했던 것이다. 이 상황을 찍어 누른 사람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다. 그들은 친일파 지식인, 천주교, 개신교, 운동권 세력의 열망과 달리 개고기를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