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라는 권력 구조가 생기기 이전인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에도 노예는 존재했다고 본다. 날개달린 개를 신으로 모신 고대 종교를 믿은 청동기 지배 세력도 노예제도를 이용했을 것이다.
이 시기의 지배 관계는 지배층과 노예의 관계라기보다는 신과 신자 정도의 관계로 봐야 할 것이다. 고도로 정교한 청동기 세공술과 금 세공술을 가진 집단을 처음 본 고대인들은 너무 놀라 그들이 신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흉노의 청동칼, 몽골 국보, 기원전 13세기~10세기>
개인적으로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날개 달린 개를 모신 고대 청동기 세력(중 해양 무역 세력인 에트루리안)이 모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에트루리아 초기 왕조는 말과 함께 배를 타고 그리스, 로마 지역으로 건너왔으며 날개 달린 개를 신으로 믿었다.
에트루리안을 비롯한 고대 청동기 지배세력은 압도적인 기술력의 차이로 인해 전쟁다운 전쟁을 할 필요도 없이 절대 다수의 비 청동기 인을 노예로 부렸을 것이다. 이 날개 달린 개를 모신 고대 청동기 세력은 다시 두 갈래로 나뉘었다.
<날개 달린 개가 새겨진 청동 도끼, 세베로오세티아 공화국, 기원전 7~11세기>
한 갈래는 알타이 산맥과 중앙아시아로 이동한 기마 유목 왕조다. 이들이 황하 문명을 압박한 스키타이, 흉노, 선비, 고구려, 돌궐, 몽골, 거란, 청 등의 오랑캐다. 우리 고대 지배 왕조는 선비, 고구려, 몽골, 청 왕조와 연관이 있다.
다른 한 갈래는 정착해 문명을 일구었다. 이들이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인더스 문명의 주역이라고 생각한다. 즉, 황하 문명을 제외한 나머지 문명이다. 이 시기에도 물론 노예는 있었다.
<날개달린 개 두 마리가 그려진 에트루리안 무덤 벽화, 이탈리아, 기원전 6세기 경>
강아지, 고양이를 돌보는 편한 일을 하는 노예도 있었겠지만 사회 계층 중 가장 밑바닥에 있던 만큼 노예는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에트루리아에서도 마찬가지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노예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연회에 동원되어 춤을 추고 연주를 하거나 성적 접대를 했다. 현재 북한의 기쁨조가 하는 역할과 수천 년 전 에트루리아 연회 노예의 역할은 동일하다.
<에트루리안 벽화 중 연회 속 주인과 노예들, 이탈리아, 기원전 5세기 경>
흔히 이집트 노예의 대표가 파라오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이집트에서 신전이나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것은 왕이 맡는 가장 중요하고 신성한 과업이었다.
신전 하나 잘못 건설해서 왕조가 바뀌는 일도 있었다. 이 중요한 피라미드를 건설한 사람들은 노예가 아니라 건축 기술자였다.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는 월급도 많았고 휴가도 넉넉하게 받아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씨름을 하는 이집트 흑인 노예, 1941년, Herbert M Herget 작>
비록 피라미드 건설이 끝난 후에는 비밀 유지를 위해 모두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전통적으로 노예는 주로 전쟁에서 진 패전국 국민이거나 죄인이거나 납치, 인신매매의 희생자였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노예들이 납치 인신매매의 희생자이고 심청은 친족에 의한 거래 인신매매의 희생자다. 인류의 노예 역사에서 중요한 사실은 고대 기마 유목 문명,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왕조는 농경국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씨름을 하는 에트루리안 남자들과 시중 드는 노예들, 기원전 520년 경>
이들 왕조는 교역과 전쟁을 주로 했다. 즉, 넓은 의미의 유목 왕조다. 교역과 전쟁을 주로 하는 왕조에서는 군인과 상인이 중요하다. 군인이나 상인이나 능력이 있어야 한다.
왕이 멍청하면 왕조가 망하고 상단 주인이 눈치코치가 없으면 상단이 망한다. 군인이 싸움을 못하면? 전쟁터에서 죽는다. 무능력자는 얄짤없이 도태되니 왕이든 군인이든 상인이든 치열하게 능력을 키워야 한다.
<수염 달린 남자와 날개달린 개가 새겨진 석상, 히타이트, 기원전 10세기>
이런 사회에서 노예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이다. 노예가 왕 대신 어떤 신전을 건설할지 정해줄 수 없다. 환관이 날뛰면 대개 그 왕조는 망했다. 노예가 주인 대신 장사를 해줄 수 없다.
전쟁터에 대신 나갈 수도 없다. 노예는 노예고 주인은 주인이다. 나는 노예라서 그지 같은 삶을 사지만 저 주인 놈은 그래도 전쟁도 나가고 교역을 해서 돈을 벌어오니 인정해 줄 수밖에 없다. 그게 지도자다.
<여인들과 노비들을 그린 요나라 무덤벽화 속 개, 내몽골, 907-1125년>
중국 황하 문명을 포함한 제외한 나머지 모든 문명의 지배층은 제 밥벌이를 해야 했다. 군인도 아니고 세금도 안 내면서 보조적인 잡일을 주로 하는 노예가 인구의 30~50%나 차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노예 수만큼 국부와 국방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조선의 노비 제도는 인류 역사 상 최악의 노예제도다. 조선은 인구의 30~50%가 노비였다. 조선이 개국하는 순간부터 국고가 바닥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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