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18. 황후가 된 여자 노예와 이황의 노비 장사

AnDant 2019. 8. 29. 12:12

중앙아시아와 유럽에서 활동한 모든 기마 유목부족은 끊임없는 전쟁을 하며 노예를 확보했다. 노예들은 주로 농사를 짓거나 다른 잡다한 일들을 했다. 지배층은 오직 전쟁과 교역만 했다

몽골의 칭기즈칸은 1000만 명에 달하는 베이징인을 죽이는 대신 거의 노예 상태로 만들었다. 원 제국 시기 인구의 90%가 넘는 과거 송나라 인은 만쯔라고 불리는 노예였다

<원 제국 시절 노예 취급 받은 송나라 사람, 청명상하도, 1120년>

지금의 터키인 오스만 제국에서는 노예무역이 성행했다. 터키의 노예 상인이 얼마나 악명 높았는지 19세기 영국 만국박람회에서는 터키 상인에 의해 팔려가는 그리스 여자 노예 조각상이 전시되기도 했다.

청나라 건륭제는 위그르 반란을 진압한 후 수많은 포로를 끌고 왔다. 전쟁에서 진 포로들은 대개 노예가 되었다로마-카톨릭은 유럽의 인종주의로 발전했고 피부 색이 다른 인종을 노예로 부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형성되었다


<터키의 노예상인이 고객에게 노예를 팔고 있다, 프랑스, 1746-7년>

이 인종론이 17세기 이후 아프리카 흑인을 유럽과 미국의 노예로 만들었. 노예를 부리는 데는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직 조선만 같은 민족, 같은 나라 사람을 (그것도 대규모로) 노예로 부렸다

1392년 이후 하루아침에 노비가 된 전 고려 백성들은 세금도 내지 않고 군역(군대)도 하지 않았다. , 국방력과 세수에 30~50%의 구멍이 생겼다. 건국 직후부터 조선은 점점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 시대에는 아동도 기생이 되었다, 1910-1920년>

조선의 신분 제도와 노비법 상 시간이 갈수록 노비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조선시대에는 일단 노비가 되면 자손 대대로 노비가 되어야 했다.

엄마가 노비면 당연히 자식은 노비였다. 아버지가 노비고 엄마가 양인이면? 엄마도 노비가 되고 그 자식들도 노비가 되었다. 만일 우리 집에 남자 노비가 10명 있는데 각자 양인 처녀 10명과 결혼을 시켰다


<자식들에게 노비를 양인과 결혼시켜 노비를 늘리라고 조언한  이황, 중앙일보, 2018년 9월 15일>

그럼 노비가 20명이 된다. 이들 노비 가정이 각각 자식을 두 명 씩 낳으면? 순식간에 노비 수는 40명으로 불어난다. 이게 조선 시대 성리학의 상징인 이황이 한 재산 증식법이었다

상식적으로 누가 노비와 결혼해 노예가 될까, 싶은가? 죽기 직전까지 굶으면 그렇게 된다. 16세기 이황이 개고기 술을 신나게 먹으며 노비 수를 늘리던 조선은 전염병과 기아로 죽는 사람들 천지였다.


<축제 용 의상을 입는 미국 흑인 노예, Winslow Homer, 미국, 1877년>

밥이라도 먹여주겠지,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자식을 노비로 팔거나 노비와 결혼을 해 스스로 노비가 된 것이다. 조선의 노비 제도는 미국의 노예제도보다 잔인하고 간악하고 비인간적이었다


미국 노예주인은 백인과 노예를 억지로 결혼시키지도 않았다. 어쩌다 노예와 결혼한 백인이 노예가 되지도 않았다. 미국 남부는 노예와 백인을 분리하는 정책을 폈다. 노예 상인으로 악명 높던 오스만 제국은 황후가 노예 출신이었다. 



<노예 출신 오스만 제국 황후인 록살라나 (1500-1558), 오스만 제국, 18~19세기 작품>

즉, 노예도 얼마든지 신분이 바뀔 수 있었다. 조선은 양반 남성의 자식을 열 명을 낳아도 안방마님이 될 수 없었다. 에트루리안 귀족의 연회에서 성적 접대를 한 노예가 임신을 한다면 그 아이는 귀족 쩌리 쯤으로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더 최악은 조선 시대 노예 주인은 놀고먹었다는 것이다. 원래 주인은 교역이든 전쟁이든 해서 밥벌이를 해야 한다. 조선은 교역도 안 하고 전쟁도 안했다. 침략만 당했다. 그 와중에 장사도 금했다. 상인은 농민 다음의 천민이었다


<뛰어난 재능으로 노예에서 해방되어 작위까지 받은 화가 후안 드 파레하, 스페인, 1650년>

농사가 최고라고 세뇌했다. 나라에서 돈 벌 방법은 농사 밖에 없으니 농사지을 노동력이 필요하다조선 국방력을 약화시키면서 수 백 만 명의 노예가 있어야 한 이유다. 온 나라가 매달려 농사를 지어야 했으니까

무릇 교역을 하지 않는 나라는 안에서부터 썩는다. 고인 물이 썩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떻게 썩느냐가난해서 굶주려서 죽은 백성들의 시체가 쌓여 썩는다. 조선 왕조처럼 말이다. 조선 시대 지배층은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영국 만국 박람회에 전시된 그리스 여자 노예 조각상, John Absolon, 영국, 1851년>

중국 황하 문명을 제외한 모든 문명의 왕조 지배층에게는 맡은 바 업무가 있었다. 조선에서는 오직 지배층만 일을 하지 않았다조선 왕조는 왕부터가 왕이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도 하지 않았다

왕조의 기본 역할은 외교(외교가 안 통하면 전쟁)와 교역을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해 백성들을 먹이는 것이다. 물론 이타심이 넘쳐서 백성들을 먹인 게 아니다백성들을 어느 정도 먹고 살게 해야 왕조가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글만 읽은 조선 시대 양반, 18세기>

조선 왕조는 전쟁도 하지 않고 교역도 하지 않았다. 지배층은 공자 왈 맹자 왈 글만 읽으며 평생 탱자 탱자 놀았다. 나라가 가난해지니 백성들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그래서 어떻게 했나

소중화주의로 세뇌 교육을 하며 두레와 향학, 오가작통법 등을 통해 강력한 독재를 했다. 조선의 모든 부를 소유한 채 무위도식하며 독재를 하는 인간들이 조선 인구의 10%에 달했다진정한 기생충들이다.